디베이팅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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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신천지 사태로 확장되었던 코로나19가 이번에는 서울 사랑제일교회를 시작으로 재유행 위기하게 되었다. 지난 8월 14일,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사랑제일교회 성도 1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히며, 방역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사랑제일교회 측은 다음 날인 8월 15일 보수단체와 함 […]

    • K.Marx replied 3 주 전

      COVID-19 가 인간에게 치명적이고, 현재 한국내의 확진자수가 심창치 않은 속도로 늘어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교회 예배중지는,등교중지,재택근무 등과 함께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부의 예배금지령을 거부한 기독교계의 입장은 ‘종교의 자유는 종교인들에게는 목숨과도 바꿀수 없기에 예배금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저는 이해했는데요, 이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COVID-19가 전염성이 적고 자기자신의 선에서 피해가 멈춘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의 주장을 수용할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이례적으로 높은 감염률로 인해 팬데믹의 단계에 까지 이르렀을 정도로 CORVD-19의 위험성과 감염률이 수많은 인명의 죽음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예배를 강행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재앙을 야기할수도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고수한다는거겠죠?

       

      물론 종교의 자유는 절대 탄압할 수 없는 인간의 자유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를 빌미로 다른 사람의 생명권을 부정할 수도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은 절대 자유라고 볼수 없는 것이겠죠? 앞서 말했다시피 그 높은 전염성으로 전세계를 팬데믹의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바이러스의 위험성은 절대 자기자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당사자의 가족, 지인은 물론 얼굴을 알지도 못하는 보행자A, 당사자가 들른 편의점 알바생 등 수많은 사람들을 위험한 상황에 내모는 반자유/반인도/이기적/반인권적인 행위가 개인의 자유라는 탈을 쓰고 ‘사람을 죽이지 말라’ 라는 계명을 중요시하는 집단이 그 입장으로 내놓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에 맹세코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누구에게나 종교와 신념의 자유는 존재하지만, 그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빌미로 타인의 생명권과 살아갈 자유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 먼저, 사랑제일교회와 몇몇 교회들의 집단감염사례를 근거로 개신교/기독교계의 모든 교단과 개별 교회들이 방역에 비협조적이였다는 것을 일반화하듯이 말씀드린것에 대해서는 저의 생각이 짧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자발적으로 비대면 예배를 행하는 교회들도 많이지고 있고요.

       

      물론, 개신교회만이 코로나19를 야기한것은 절대 아닙니다. 교회마다 다 특수성과 고유성을 띄기 떄문에 교회일반이 코로나19 집단감염의 문제를 불러왔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러나 코로나19는 집단이 한 장소에 모일때, 감염률이 상당히 높아집니다. 교회예배는 그 특성상 사회적거리두기를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교회예배가 큰 문제가 되는 것이지 교회자체가 문제가 되는것이 아니죠. 이는 물론 이슬람교도들의 모스크에서의 종교활동, 천주교도들의 성당에서의 종교활동 또한 이에 해당합니다. 더 나아가 학교 또한 단체수업을 하기에 그렇고, 클럽또한 이태원클럽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사회적거리두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례들을 통합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상황’을 근거로 특정 시설의 잠정폐쇄를 결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발생한 집단감염사례의 다수가 교회에서 나왔습니다. 교회가 많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이런 사례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적거리두기가 불가능하거나 여려운 상황’에 해당하는 교회들은 학교와 클럽 등과 같이 예배금지 또는 제한을 두지 않는 한 앞으로 집단감염이 더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생각됩니다.

       

      넷째로는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보장받는 것이 다른 이의 생명권을 부정하는 것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당장 식당에서 코로나가 확산이 되었다면
      식당 주인의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할 권리를 행사한 것이
      생명권을 위협하며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다른 경제 주체들의 경제활동을 할 권리를 제한시켜야합니까?

      종교와 신념의 자유는 정신적인 영역이기에 그 자체로서 타인의 생명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신념에 따른 개인의 활동은,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19가 세계적인 팬데믹상태에 이를만큼 심각해진 상황에서는 충분히 타인의 생명과 살아갈 자유를 부정할 가능성을 농후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식당에서 코로나 19 방역지침을 따라서 타인에게 피해를 야기할 상황을 충분히 방지했는지를 먼저따져봐야겠죠? 취식을 하는 행위도 충분히 바이러스 감염을 야기할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니 방역지침에 따라 고객을 위해 충분히 안전한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점주의 의무입니다. 이렇게 방역수칙에 따라 받을 수있는 손님들의 수를 최대한 줄이고 방역을 꼼꼼히 하는것부터가 일단 경제활동에 제한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손님을 받아 코로나 19 확산이 발생했다면, 이는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은 점주가 책임을 져야 하는것이겟죠? 손님의 안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으니까요.

      종교의 자유도 위와 똑같습니다.
      만일 모든 교회에서 확진자가 속출한다면 이는 종교의 자유를 추구할 권리가 생명권의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종교의 자유를 비롯한 권리 행사가 코로나 19 확산에 조금의 위협이라도 된다하여
      권리를 제한한다면 그것은 나치독일 당시 유대인들의 독일 공동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간주하던 전체주의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추구할 권리는 물론 누구에게나 있는 것입니다. 그 자체만으로는 절대 타인의 생명권에 대한 위협이 될수 없죠. 그에 따른 행동이 언제나 위험을 발생시킵니다. 나치독일 당시 유대인학살이 자행된것은 ‘유대인’이라는 민족의 존재자체에 대한 부정입니다. 이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근 4000년된 고서를 근거로 한 인류역사상 손에 꼽히는 반인륜적인 행위로 우리들에게 각인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개개인의 가치보호와 그 기반을 마련하는 생명을 보호하는일과 연관이 있는 일인가요? 홀로코스트가 실제로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망상을 근거로 자행된데에 반해, 교회예배금지는 지금까지 교회의 집단예배가 야기하는 집단감염의 사례와 그것으로 도출되는 집단감염의 가능성을 근거로, 한 신념을 근거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아버릴 가능성이 있는 ‘신념’이 아닌 ‘타인의 가치와 생명권을 부정하는’ 행동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만일 해당 명재가 성립한다면 휴가철에 휴가를 떠난 사람들은 모두 생명권을 부정 해버린겁니까?

      식당을 운영한 자영업자들 역시 생명권을 부정해버린 겁니까?

      휴가를 간다고 해서, 식당을 운영한다고 해서,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코로나 19가 확산되는 것이 아니듯
      그리고 그러한 권리를 행사한 사람들이 모두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기 위해서 악의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듯
      생명권을 부정한다는 명제를 성립시키기에는 무리수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만약에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하면, 그리고 코로나19를 전파했다고 하면, 당사자가 품고있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생명권을 부정하게 된 것이 되겠죠?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바이러스 전파에 조심해야 되는 것입니다. 자영업자들 역시 이러한 상황에서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고 영업을 했다면, 더 나아가 이것이 코로나 19집단감염을 야기한다면, 이것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겠죠. 무조건적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농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거죠. 예를 들어 A라는 한사람이 아무 의도 없이 무작위의 장소에 폭탄을 떨어뜨릴수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폭탄이 인간이 사는 지역에 떨어질 확률은 10%내외의 확률이고 그외의 지역은 거의 무인지대입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악의 없이 A가 폭탄을 떨어뜨려 사람을 죽게 한다면 A는 아무런 악의없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할 의지도 없었기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것입니까? 생명권을 부정한다는 것은 , 살인과같이 당사자가 그것을 목적으로 행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개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벌인일이 타인의 생명권을 뺏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악의가 없었기에 죄가 없는 일입니까? ‘악의’의 유무가 그 사람의 죄의 유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에 얼마나 기여한 정도가 죄의 유무를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무지함이 죄에 대한 면죄부가 될지 의문입니다만?

       

      독실한 종교인들이 종교와 신념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에도 똑같이 신중하게 바라보아야합니다.
      만일 종교와 신념의 자유가 다른 권리들 보다 희생되어도 상관 없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오히려 해당 권리가 자신의 어떤 권리보다도 소중한 사람들을 향한 또다른 이기주의입니다.
      이것은 다수가 동의하더라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전체주의에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계속 말씀드리는 바 이지만, 개인의 신념과 개인의 신념에 따른 활동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신념자체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줄수있는 것이 아니기에 합리적인 이유로는 절대 부정할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따른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가능성과 타인의 신념체계 자체를 부정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의 종교에 따른 행동으로 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예배에 나서 자신이 혼자 코로나19에 걸려 죽는다면 종교적인 믿음이라는 자신의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죽기에 상관이 없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생명을 자신의 제1가치로 여기는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전파시켜, 이사람에게 피해를 주는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개인의 신념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윤리적 자기만족을 위해 타인에게까지 피해를 전가할수 있는 일을 강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가 아닌, 타인의 정당한 권리와 신념을 자신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짓밟는 그야말로 이기주의적이고 반인도적인 행위입니다. 개개인의 가치관을 부정하는 일을 부정하는 것은, 전체주의적인 사상이 아니라, 오히려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일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동이 타인의 인격에 가져올 위험을 알면서도 이를 강행하는 것은, 개개인의 인격에 상화관계를 부여하는 전체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사고입니다.

      • 마지막문단 마지막 줄 상화관계->상하관계

      • 그렇다면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옳은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수가 소수를 희생시키면 안되고,

        소수가 다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왜 되는지 궁금합니다.

        다수는 사람이 아닙니까?

        뭐든, 개인적 욕심으로 사회가 아니여도 소수든 다수든 피해를 끼치면 안된다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형성과정에서 “안전”이 가장 중요했으므로

        아니라면 사회의 형성 가정 자체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법은 공평하게 제제를 못해도 ”최대한” 처벌을 하는게 역할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따지자면 모든 법은 필요가 없으며 없앨 수 있습니다.

        허점이 있어 빠져나갈 수 있으니 모두 없애버려야 할 것 입니다.

        교회나 카페가 가장 큰 집단이기 때문에

        지금 피해를 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으니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앙도 소중하지만,

        사회의 전제조건과 :안전:을 위해 합의된 차이점을 이해해주셨음 합니다.

        저도 사실 카페 가는 것을 일상 중에서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 중 하나였지만

        (만족감이 너무 커서)

        지금은 가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카페가 아니여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 다니는 사람들도 이겠지만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취미는 안되고, 다른 사람 취미는 되는게 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이전에 제가 그 차이점 속에서도 충분히 보호받아 왔고,

        사회가 꽤나 합리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회가 불합리하다고 벗어난 적도 없기 때문에

        보호받은 만큼 사회의 전제 가정도 제 스스로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안전과, 제 가족, 더 나아가서는 기독교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말이죠.

        만약 내가 사회의 전제 가정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을 줄 모릅니다.

         

        솔직히 저는 제 취미를 지킴으로써 다른 태어났을지 모르는 누군가의 존재 가능성을 지우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은 하나로써만 의미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손도 이어지지 않는다-라는 이야기도 같이 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어져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어 많은 사람이 사망한다면,

        그 사람만을 제 개인적 욕심으로 죽인게 아니라 태어날 누군가의 존재 가능성도 지웠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태어나면 달라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태어난 후에 그 당사자에게 말하면 폭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도덕적으로는 모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기독교는 도덕에 먼 것 인가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K.Marx님도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도덕에서 한참 이미 멀어진 행동을 하고 계시고

        감정에 따라 주장을 하시고 있을 뿐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이해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런 것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피해보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죠.

        그리고 전 그게 진정히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면 안된다.’는 것의 진의미라 생각합니다.

        인원보다는 “무시”, 누군가를 나의 개인적 이유로 :공동체:를 이루면서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것.

        그것이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는 상황과 가장 비슷한 상황이고,

        공동체와 “약속”을 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잘못이 되는 것입니다.

      • 익명->K.marx

    • 매우 찬성 합니다. 하느님은 자신이 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도 행하라 했습니다. 즉, 자신이 당하고 싶은 않은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본인이 코로나 걸리기 싫으면 남에게 코로나를 전파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걸린 사람 영상 보시면 얼마나 위험한 병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 항상 저는 극단적인 선택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계와 문제를 안고 있다고 봅니다.

       

      1. 예배중지와 예비강행 둘 중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번 정권이 못하는 것 중 하나가 단계별 적용(Phase Implication)입니다. 징벌제로 현재 수행하듯이 공무원이 주기적 점검하여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는 곳에 행정 명령을 내릴 수도 있고, 교계 지도자와 보여주기 식으로, 달래기 식으로 식사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비대면 예배에 대해서 논의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즉 찬성이라 하더라도 예배 금지할 만한 불총족, 충족 조항은 무엇인지 논의할 수 있습니다.

       

      2. 논쟁으로 찬반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런 토론에선 영적인, 종교적인 교류가 반드시 대면 상태에서만 나오느냐?-가 관건일 거 같습니다. 면대면으로만 영적인 교류가 모이고, 물리적인 공간에만 영적인 효과가 발휘된다면… 영적인 교류는 뇌파 교환이란 것에 대한 착시일 뿐이고 영적인 성지란 수맥처럼 그저 아직 센싱되지 않은 물리적 효과일 뿐일 겁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제껏 종교/영성의 패턴을 볼 때 그러한 교류는 단순 3차원이 아니므로 비대면 방식으로 접근하는 법도 연구자나 과학자, 정부 관계자 뿐만 아니라 종교인들끼리도 논의해볼 수 있지 않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서, 기존의 헌금/후원 행위 등을 온라인, 전자식으로 받는 걸 단순 조롱하기만 할지 아니면 정부나 언론이 오히려 응원할지 여부입니다. 지금 상태 그대로를 유지하되 코로나 방역에 방해만 되니까 그냥 예배하지 말라고 하면, 종교인들은 탄압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게 상식적 논리 흐름입니다.

       

      3. 이제껏 방식을 보면 카페는 2.5단계에 적용시켜되 빵집은 또 안 하는 등 행정 기준이 더 명확해야할 필요가 보입니다. 교회 또한 ‘교회’라고 할 것이 아니라 종교 모임으로 해야할 거 같고 모여서 구두로 의식하는 건 유사한데 교회만 가정할 것이 아니라 직접 연구를 통해 각 종교별 감염 리스크를 내부적으로 파악해 관리하고, 더더욱 교계의 협조와 종교인들의 방역을 우선순위로 할 거면 자극적인 표어와 언론 보도보다는, 역지사지하여 PR필터링한 방식으로 정책을 펼치는 게 오히려 사회적 수용 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 3.은 각종 위험 시설에 대한 일반인들의 적극 신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안하는 것이 아닌, 사실상 위험성을 몰라 금지안하는 것 같습니다.

        빵집 같은 경우는 예를 들어 우리 인식에는

        “동네빵집” 같이 작아 보여 위험성이 작다고 평가한 것 같습니다.

        파리바게트 같은 곳도 실제로 가보면 책상도 거의 없거나,

        하나만 있는 정도이고 정부에 관료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착오를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다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아무래도 바쁜데 전문가로서 뉴스를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소식을 늦게 들을 수도 있습니다.

        3.은 정부 관료가 탈인간화된 것처럼 초월적인 존재라는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가정이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대기업조차 이런 경우 본인들이 실수를 하고는 하는데,

        비슷한 인재들이 모인 정부관료라고 다를까요?

         

        2.

        (joseph 님의 생각을 반영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종교인들이 보는 영적 현상의 ct촬영을 하면 환각과 같은 증상이 뇌에서 보인다고 밝혀졌습니다. 영적 효과가 있다면 현실적으로 모든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엑소시즘 등에서는 효과를 보이는 것 같지만, 그건 “신부” 등을 통해야지 생겨나는 효과거나 허구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만, 현상 자체는 사진이 있기에 믿는 편입니다.

         

        결론은 아무리 교회 다녀도 일반 교인들에게는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이 있다 하더래도 천국 가려 기도하는 거지, 교회가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이 맞겠지요

         

        1. 1은 결과적으로 예배를 “안” 하겠다는 의지는 있는 것이군요. 사회가 정말 필요합니다. 개인의 욕심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주세요. 저희는 전혀 다수가 소수에게 탄압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연쇄 살인범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줘서 욕을 먹는 것이지 인구를 많이 죽여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욕구로 죽였기 때문에 상관없을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까지 욕 먹습니다. 지금 전체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지만, 그보다 자신의 욕심으로 타인에게 피해주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저는 카페 가는 것을 제가 공부하는 것보다 소중히 여기는 편이였습니다.

        공부는 그냥 어쩌다가 흥미를 가져 하는 것이고, 카페는 여유를 찾는 중요한 공간이였지요.

        게다가 하나의 습관 같은 거라 굉장히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가지 말게 되었지만 그것에 대해 수긍하고 불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욕심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형성과정에서 보자면 이는 합당합니다.

        누군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개인의 욕심으로 피해를 만드는 것을 제한한 것 입니다.

        이미 합의된 규칙인데 여기에서 제 욕심이나 joseph님의 욕심을 실행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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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이너 베이비(Designer Baby)는 문자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디자인한 아기를 말한다. 인간의 탄생에 관여하는 것은 신의 영역 혹은 알 수 없는 유전자의 조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유전공학의 발달로 직접 원하는 스타일의 아기를 태어나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성별을 선택하는 것은 물론이고, 피부나 머리카락 색깔까지 […]

    • 현재 세계를 주름잡고있는 자본주의 체계가 유지된 상태로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이 도입된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인간사회 대부분의 부를 독점하고있는 소수의 부유층들이 이 유용하고도 희소한 기술을 자본이라는 합법적인 힘으로서 독점하고 통제할것이 분명합니다. 인류는 현대에 이르러 기술과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왔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인간사회내에서 인간과 인간간의 격차는 지금도 계속해서 벌어지고있습니다. 누군가는 부촌의 아파트에서 각종첨단기술을 누리며 윤택한 삶을 영위하는 반면, 누군가는 도시 외곽의 달동네에서 구시대의 생활양식을 지금까지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자는 인간과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사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살지만, 후자는 오히려 그렇지 못합니다. ‘기술의 진보는 인류 생활에 윤택함을 부여한다’.라는 명제에는 분명히 오류가 존재합니다. 이는 인간사회내에서 권력과 부를 쟁취해 나머지 인간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부유층은 인간일반과는 부와 권력으로 차별화된 특별계급 또는 부르주아지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국가간에도 이러한 이론이 적용되어 국가일반과 선진국간의 경계선이 형성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선진국 A는 국가안보와 항공우주기술에 큰 도움이 되는 인공위성을 수십대를 보유해 국가이익을 위해 활용합니다. 그러나 국가B는 인공위성 기술은 커녕 지구내에서 적을 탐지하는 레이더 기술도 온전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인간일반과 특수계층, 국가일반과 선진국 간의 예를 토대로 우리가 도출해낼수 있는 결론은 기술의 진보는 인간일반이 아닌, 소수의 특별계급 또는 부르주아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특별계층이 독점한 기술도 민간의 수중에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미 그 기술은 인류가 보유한 최신의 기술이 아닐것입니다.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된다고 가정하면 물론, 부르주아지가 먼저 그 기술을 독점 할 것입니다.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은 이보다 혁신적이고 유용한 기술이 개발되기까지 부르주아지들의 권력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부 창출의 도구로서 이용될것입니다. 자본주의 체계의 종래의 기술과는 달리 이 기술을 더욱 경계해야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곧 인간일반과 부르주아지들의 유기체적인 또는 생물학적인 차별화를 가져올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부르주아지들이 독점해왔던 기술들은 분명히 인간문명내에서의 차별을 불러오던 기술들이었습니다. 종래에는 기껏해야 부 창출과 권력획득을 위해 여러 기술이 도구화되었다면 디자이너 베이비는 인간 문명내의 특권과는 분명히 차별화되는 생물학적인 특권을 가져다 줄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히틀러가 꿈꾸었던 우생학을 기반으로 한 우등민족창조가 이제는 과학적으로 가능해져 자본주의 체계 내에서 우등계층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와는 달리 넘을 수 없는 벽을 인간일반과 부르주아지 사이에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빈부격차와 계층이 이제는 생물학적으로 정당화되는것입니다. 부유층은 우등생물, 그 외의 다른 인간들은 열등생물로서.

      • XE replied 2 개월 전

        글쎼요 인류 전반을 볼떄 정말 인류가 빈부격차의 극에 치닫고 있는지는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프리카를 봅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2pYRhVWyys&feature=youtu.be&t=66

        https://www.youtube.com/watch?v=Um9TV0VOVAI

        https://www.injurytime.kr/news/articleView.html?idxno=12280

        팩트 풀니스에 따르면 인류는  우리 생각보다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빈곤포르노 라는 기부단체에서 일부로 왜곡된 정보를 보여주는 경우도 많죠

        인류가 정말 빈부격차에 그렇게 까지 시달리는가? 정말 상황이 심각한가? 하는것은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 빈부격차가 존재하는 한, 그 규모가 작고 크고를 떠나 빈부격차의 존재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저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착각하고 있던 절대적인 빈곤문제는 물론 현대에 이르러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완화된 것이 맞습니다만, 이에 대한 완전한 해결이 이루어진 것은 단연코 아닙니다. 그리고 그 심각성이 완화된 절대적인 빈곤의 문제 또한 충분히 문제로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이 된다 해도, 어떻게 보면 절대적인 빈곤보다도 난제인 상대적인 빈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상대적인 빈곤은 의식주 해결이 안되는 계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적당한 수준의 복지와 사회평등이 이루어졌을때 문제가 크게 부각됩니다. 이는 절대적인 빈곤이 야기했던 빈곤층이 받는 생명의 위협과 의식주 문제보다는 그 심각성이 낫지만 오히려 그 타파책은 찾기가 상대적으로 더욱 어렵습니다. 기술이 발달해 절대적인 빈곤이 사라지더라도, 오히려 이후에 대두되는 상대적 빈곤이 부르주아지와 인간 일반사이의 계급갈등을 더 키울 여지가 많습니다. 인류가 더 이상, 절대적 빈곤이라는 문제에 심각하게 시달리지 않게 됬지만, 오히려 상대적 빈곤이라는 문제에 심각하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문제로서 대두되는 수저 계급논란이 이러한 문제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죠.

         

         

        디자이너 베이비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빈부격차의 정도와는 크게 연관을 갖지 않습니다. 그에 반해 중요한 건 빈부격차의 존재입니다. 빈부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그에 따른 부르주아지의 기술,혜택,권력 등의 독점 또한 이루어집니다. 이는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 또한 그 기간과 규모가 어떻게 되든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지에게 독점 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종래의 최신기술들이 독점당했던것과 같이 부르주아지의 최신기술독점이라는 문제로서 끝나겠지만, 디자이너 베이비의 특수성이 문제를 크게 만듭니다. 위에서 언급했던것과 같이 부르주아지에게 독점 된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은 종래의 기술과 차별화된, 생물학적인 특권을 부르주아지에게 부여할 것이고, 이는 계급갈등을 심화시키는 것을 넘어 부르주아지의 생물학적 우월성과 생물학적으로 열등한 나머지 인간간의 빈부격차를 마치 자연의 섭리인것 마냥 정당화시켜 새로운 계급체계를 형성할 여지가 다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근데 묻고 싶은게 있는데 빈부격차라른 것을 해결한다 함이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똑같은 부를 가지는 것?

      • 음 일단 부의 정량적인 완전평등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빈부격차 해결은 온전한 기회의 평등을 이룩하고 모두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부가 유산계급에게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고 계급갈등을 종식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예를 들어보자면, A는 미국 슬럼가의 빈민으로 태어나 원하는 교육을 전혀받지 못하고 하루하루 막노동으로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는데에 반해, B는 한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의식주가 해결되고 자신의 진로를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비교적 유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연 이 둘의 상황이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같이 이 둘의 순수한 능력차이를 드러내는 것일까요? 이 둘의 경제력차이는 이들의 부모와 주변환경으로 부터 기인하는 것이지, 절대 이들의 자유의지에 따른 능력형성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떤환경에서 어떤 과정에 따라 자랐냐는것 등등과 같이 이들에게 이러한 능력과 부차이가 형성되는 것은 블루마블에서 하는 주사위굴리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 부모운과 환경운 등등이 굉장히 큰 역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상태에서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과 같은 기술을 인류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발전시킨다면 B같은 유복한환경이 갖추어진 자들은 자본의 불균형이 부여하는 불평등한’자유’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고. A는 평생을 일해도 디자이너 베이비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을 거의 누리지 못합니다.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으면요. 과연 이러면 A에게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자본주의 사회는 겉으로는 모두에게 정의롭고 평등한 자유의 보장을 그 모토로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에는 자본의 양 또는 생산수단의 유무에 따라 자유의 범위가 규정됩니다. A에게 자본주의적인 자유를 준다한들, A에게 이득이 되는것이 있을까요? 오히려 자본가들에게는 이와 상반되게 A와같은 노동자들을 착취할 자유마저 부여합니다. 그러면 자유라는 권리는 굉장히 차별적으로 사회각계층의 인사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결국 노동계층에게는 약간 기분이 좋아지게 해주는 ‘자유’라는 공허한 단어밖에는 부여하지 않는거죠. 이러한 자유라는 개념의 남용을 방지하고 모두에게 ‘자유’라는 실질적인 권리를 평등하게 부여하는 것이 빈부격차 해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부의 재분배가 필수적이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정량적인 부의 평등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약간의 디자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체능력의 향상이나 지적능력의 향상과 같이

      부모의 재력에 따라 아기의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

      유전병이나 기형아같은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자본주의 체계 내에서 디자인 기술이 민간에 보급되어 상용화되기 전에 부유층의 우등인간 생성은 물론이거니와 물론 기형아, 유전병을 지닌 아이에 대한 해결조차 브루주아지의 아이들에게 국한될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나 민간에 그 기술이 상용화된다 해도 중산층 이하의 계급에게 보급되기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릴것으로 예상됩니다. 유전병이나 기형아 단종 또는 해결은 상류층 내에서만 이루어질 것이고, 실질적인 기형아, 유전병 일반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할것입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적극 찬성입니다 빈부격차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애초에 문제가 아니에요

       

      인류가 유전자 변형으로 지능면에서 발달할 수 있다면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기술의 발전을 꽤 할거에요

      기술의 발전은 더 좋은 기술을 더 싸게 얻게 해줄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도 이전보 다 더 좋은 기술을 싼값에 이용하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생활 편의가 올라갈겁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더라도 결국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불러올거에요

      게임이론적 측면에서도 봅시다 상위계층만 이 기술을 사용하는것은 상위계층에게 손해에요

      틴포탯 전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죠 자세한 건 아래 시뮬레이션 사이트를 참고해 주세요

      https://osori.github.io/trust-ko/

      지능이 높아진 상위계층도 결국 하위계층의 유전자 기술이용을 통한 지능계발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꺠달을 겁니다 더 많은 고지능자가 잇으면 더 빨리 사회는 발전할겁니다

      다시말해 모든사람에게 유전자 기술을 시행해주는것이 자신에게 더 발달된 문명이 이득을 보게되는

      속도를 가속화 할것임을 깨달을 거라고요

      그러한 이유로 장기적으로 봣을떄 빈부격차 문제는 문제도 아니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며 사라질겁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물론, 이 토론에서 이야기 하는 상황이 제로섬 게임이라면 제 생각이 잘못된 거겠죠

        하지만, 더빠른 문명의 발달과 더 좋은 기술의 이용 혹은 더 느린 문명의 발달과 덜 좋은 기술의 독차지 중에

        어떤것이 더 이득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자가 더 이득이라는 건 논쟁의 여지가 없기에 제로섬 게임일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적극 찬성입니다 빈부격차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애초에 문제가 아니에요

        어떠한 기술이 현실에서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는 빈부격차와 같은 정치-경제적인 문제들은 기술과 불가분적인 관계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빈부격차 또한 고려대상이 됩니다.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과 같은 기술은 그 자체로서는 기술적-과학적 논의에서 머무르나 디자이너 베이비 활용문제와 같이 현실과 연결된 문제들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사용과 관련되는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와 같이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류가 유전자 변형으로 지능면에서 발달할 수 있다면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기술의 발전을 꽤 할거에요

        자신의 편의를 위해 기술의 발전을 꾀하는 새로운 우등 인간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타인보다 상대적으로 우월한 자신의 차별성을 자신의 권력과 부 축적을 위해 사용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한 인류가 지능적으로 발달한다고 기술발전이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보장이 있나요?

        결과적으로 가장 가난한 사람도 이전보다 더 좋은 기술을 싼값에 이용하면서 가장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생활 편의가 올라갈겁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더라도 결국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불러올거에요

        가장 가난한 사람도 이전보다 더 좋은 기술을 싼값에 이용하여 생활편의가 올라가면, 가장 부유한 사람도 이전보다 더 좋은 기술을 이용하여 생활편의를 증진시켜 빈부격차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기술의 진보라는 측면에서는 분명 좋은 결과라고 할수 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빈부격차의 원상유지가 좋은결과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가지 더 보태자면, 역사가 증명했듯이 기술의 발전에 의한 신기술이 불러오는 결과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닌, 정치적/사회적인 영향에서 야기됩니다.

         

        게임이론적 측면에서도 봅시다 상위계층만 이 기술을 사용하는것은 상위계층에게 손해에요틴포탯 전략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죠 자세한 건 아래 시뮬레이션 사이트를 참고해 주세요
        지능이 높아진 상위계층도 결국 하위계층의 유전자 기술이용을 통한 지능계발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꺠달을 겁니다 더 많은 고지능자가 잇으면 더 빨리 사회는 발전할겁니다
        다시말해 모든사람에게 유전자 기술을 시행해주는것이 자신에게 더 발달된 문명이 이득을 보게되는
        속도를 가속화 할것임을 깨달을 거라고요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기술의 독점은 분명 손해입니다. 인류의 진보라는 숭고한 가치를 등지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상류층이 정치적이고 권력적인 측면에서 얻는 것 또한 중요시 할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약에 개조된 우등인간들이 모두 기술자나 과학자와 같은 기술의 진보를 자신의 제1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면 당신의 말이 더 신빙성있게 들리겟지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부 획득을 통한 타자보다 상대적으로 강대한 사회적,정치적 권력을 누리는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뛰어난 두뇌를 인간일반을 위한 진보가 아닌, 본인의 부 취득과 계급유지를 위해 이용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한 이유로 장기적으로 봣을떄 빈부격차 문제는 문제도 아니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며 사라질겁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빈부격차의 해소를 불러오지는 못합니다. 또한 빈부격차가 문제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의 진보에 따라 순환하며 계속 인류를 괴롭히는 문제가 될 것 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와 같은 기술의 진보가 모든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공상적인 믿음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문제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인류가 기술적인 진보를 중요시할것이라 여기고 인류일반을 베이컨과 같은 과학자/기술자의 인격을 지닌 존재로 상정합니다. 또한 모든 문제를 과학이 해결해 줄것이라 여기고, 현재 사회의 폐단과 부조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 무책임한 자세를 보입니다. 이는 종교인들이 신을 찾는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몽상가들이 과학기술을 찬양한다고 보여집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무조건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고, 또한 사회적/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그러므로 정치적/사회적 안정화를 이룬 뒤에 기존의 사회에서는 정치적/사회적 지각변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디자이너 베이비 와 같은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인류일반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그래요 현대에도 미국에 의료 문제를 고려해보면 상대적 빈곤이 문제를 일으킬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당연히,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부 획득을 통한 타자보다 상대적으로 강대한 사회적,정치적 권력을 누리는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기 겟죠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러기에 협력을 하게 될겁니다

        분명,유전자 개량 이후에 부루주아지 라고 불리는 이들의 전체적으로 지능이 향상된다면 이론적으로 접근한 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설득력 강화가 분명 있을겁니다

        이기적 이타주의 의해서요

         

         

      • XE replied 2 개월 전

        분명 자신의 협력으로 사회가 더 나아진다면 사람들의 지지의 의해서 권력은 자연스럽게 오를겁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사회적 지지를 쌓을 수 잇는 기회를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 XE replied 2 개월 전

        물론, 개인이 이러한 일을 할수 있을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유전자 개량으로 지능의 발달은 이기적 이타주의에 대한 동기를 마련해 줄겁니다

        시작은 자신의 이득을 위한거겠죠 하지만 점점더 많은 부루주아지 이기적 이타주의자들은 결국 사회를 바꾸고 말겁니다

        순전히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서요

      • XE replied 2 개월 전

        이러한 현상은 전에도 말한 틴포텟 이론의 진화론적 측며에서도 설명이됩니다

         

        틴포탯 이론 창시자인 미시간대 정치학 교수, 로버트 액설로드는 자신의 책 신뢰의 진화를 통해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로버트 액설로드는  미국에 상원에서의 호혜주의의 원칙을 예로 듭니다

        책의 내용인용 하면 이렇습니다

        ‘미국 상원 에서도 전형적인 형태의 협력 행동을 찾아볼수 잇다. (…) 하지만  이런 상황이 서로의 이해가 완전히 상충되는 제로섬 게임인 상황은 거의 없다 이 두명의 상원의원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선택할 기회는 널려있다 (…) 떄문에 상원에서는 매우 정교한 교정이나 관습이 형성 되었다  이가운데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호혜주의의 원칙(…)’

        이외에도 정치나 사회적인 면의 권력에서 협력이 더 많은 이득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지금도 이런데 불구하고 이론적으로 계산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루주아지의 지능 발달로 이론적으로 행동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 XE replied 2 개월 전

        여담으로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틴포탯 전랙이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며 자신은 [협력의 진화]의 전도사로 칭할 정도이죠

        시간이 나신다면 한번 읽어 보시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오타 정정 합니다

        진뢰의 진화를  통해 -> 신뢰의 진화를 통해 전달하고 있듯이

         

        진화론적 측면에 대한 설명이 빠졌는데, 시뮬레이션에서도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생략하겠습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게임이론과 진화론적인 틴포탯을 이용한 협력의 원인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을 고려해 보면 부루주아지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행동은 이기적 이타주의를 이끌어 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그러한 점에서 최소한 유전자 개량이후에 시대에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뉴아틀란티스와 같은 기술의 진보가 모든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공상적인 믿음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문제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라는 주장은 적합하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생략한 부분에 대해 요약하자면 권력은 돈의 의해서만 나타난는 것도 아니고, 나무만 보지말고 숲을 봅시다 개인이 돈으로 권력을 강화할떄 다른 부루주아지는 가만있을까요?

        게다가 부루주아지와 빈곤층의 차이의 의한 상대적 우월감을 그렇게 중요시한다는 것은  이미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고 잇다는 것으로 간단히 반박됩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기준조차 애매한 상대적 빈곤으로 대체 얼마나 부루주아지와 빈곤층의 차이가 나길래 자신의 이득까지 버린다는 겁니까?

      • XE replied 2 개월 전

        이미 제로섬 게임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고 논제로섬 게임의 시대가 오고 잇습니다 그런 부루주아지의 권력이론은 낡아가고 있고,유전자 개량으로 인한 이론중심의 시대에서는 게임이론과 진화론으로 증명된 틴포탯으로  반박되지 않을까요?

      • XE replied 2 개월 전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듯 싶네요 저는 유전자 개량을 원인으로 지능 개발이 이뤄진다면 그래서 부루주아지 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론적으로 행동한다면 해결될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해결될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고 K.MARK님의 입장은 그러한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거라는 거네요 물론 지능 개발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하는 점에 크게 영향을 줄수 잇다고 생각해요 간단하게만 발달시켜준다면야 K.MARK님에 주장에 동의하지만 상당히 발달 시키게 된다는 전제하에서는 동의하지는 못할거 같아요

        물론 사회적 안정화가 먼저 이루어진다면 2중의 장치로 더 안전해 질거라는 생각에서 그 점은  동의 합니다

      • 이들의 전체적으로 지능이 향상된다면 이론적으로 접근한 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설득력 강화가 분명 있을겁니다.

        이에는 동의하는 바 입니다만 이들이 과연 이들에게 권력을 쥐여주는 빈부격차를 포기할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위에서 언급햇듯이, 빈부간의 상대적인 격차에서 기인하는 부유층의 권력은 절대 무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무지의 베일을 쓴 한 사람이 현대 선진국의 중산층과 중세의 왕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전자가 후자에 비해 대체적으로 발전된 기술과 현대화된 환경을 누리는 점에서 XE님이 강조하시는 기술적/과학적 진보의 수혜자입니다. 그러나 현대의 일반인의 생활은 중세의 왕의 생활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무미건조합니다. 타자와 비교적 평등하고 다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을 지니지 못하고 자신은 타인에게 종속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중세 왕의 위치에서는 대부분의 주변인보다 절대적인 권력과 부를 누리며 현대인의 생활보다는 못하지만 충분히 호화롭게 살아갑니다. 대부분의 백성이 경제적/정치적으로 나에게 종속되고 나의 절대적인 권력에 복종합니다. 이 둘중에서 과연 어떤 선택이 지금까지 타자보다 상대적으로 풍족한 부와 권력을 통해 살아온 부르주아지에게는 더 지능적인 생각에 가까울까요?

        분명 자신의 협력으로 사회가 더 나아진다면 사람들의 지지의 의해서 권력은 자연스럽게 오를겁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사회적 지지를 쌓을 수 잇는 기회를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XE님의 말씀대로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그것이 경제적인 상향평준화를 이룬다면, 부르주아지가 이익을 봄과 동시에 상대적인 격차에 의해 유지되어온 자신의 신성을 잃게됩니다. 사회가 경제적으로 상향평준화 된다는 것은 곧 계급의 소멸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부르주아지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 자신들의 장기적인 신성과 같은 권력을 단기적인 사회적 지지와 맞바꾸는 행동을 부르주아지들이 행할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개인이 이러한 일을 할수 있을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유전자 개량으로 지능의 발달은 이기적 이타주의에 대한 동기를 마련해 줄겁니다
        시작은 자신의 이득을 위한거겠죠 하지만 점점더 많은 부루주아지 이기적 이타주의자들은 결국 사회를 바꾸고 말겁니다
        순전히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서요

        물론 부르주아지들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올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신들의 이익창출을 위한 행동이 도리어 상향평준화를 통해 자신들의 신성과 같은 권력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올것이라 눈치채면, 사회일반의 진보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시킬 것입니다. 또한 만약에 당신의 말대로 이들이 이익을 위해 행동해 권력을 포기하고 기술의 진보를 택한다 하면, 그것 또한 기존의 부르주아지들과 인간 일반 간의 빈부격차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빈부격차문제를 뒷전으로 두고 기술의 발전을 추구한다면, 빈부격차문제는 인류사의 끝까지 인류를 괴롭힐 것입니다.

         

        미국 상원 에서도 전형적인 형태의 협력 행동을 찾아볼수 잇다. (…) 하지만  이런 상황이 서로의 이해가 완전히 상충되는 제로섬 게임인 상황은 거의 없다 이 두명의 상원의원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선택할 기회는 널려있다 (…) 떄문에 상원에서는 매우 정교한 교정이나 관습이 형성 되었다 이가운데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호혜주의의 원칙(…)’

        이에 대해 무지한 답일지도 모르지만, 위의 예시는 한 권력집단 내의 내부협력의 형태로 보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보이는 것 아닌지요? 우리나라의 거대 정당들 내에서도 서로 견제하기 보다는 당권을 위해 호혜주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이전부터 존재했던 권력계층내에서의 제한적인 호혜주의와 그 맥을 같이합니다. 이들은 계층의 이익을 위해 내부에서 서로 견제해 자신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보다는 협력해 자신들이 공통적으로 소속되어있는 권력집단의 권력을 유지시키고 키우는데에 집중합니다. 부르주아지/자본가들의 담합또한 이러한 형태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호혜관계로 보입니다.

         

        게임이론과 진화론적인 틴포탯을 이용한 협력의 원인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을 고려해 보면 부루주아지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행동은 이기적 이타주의를 이끌어 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르주아지들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론을 정직하기 따라가기 보다는 이론을 이용해 자신들을 정당화하거나 조금은 받아들이고 교묘하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작하는것에 집중해왔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소멸의 예언을 접한 이들은 위험을 감지하고 노동자 착취를 비교적 완화시켰고, 선전선동을 통한 반공 정서를 조장해 자신들의 권력 소멸을 피해갔거나 다른방식의 교묘한 선전선동을 통해 스탈린처럼 공산주의 체계를 마치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체제로 변형시켜 이를 이용해왔습니다. 또 한가지로는, 불가피하게 자신들의 권력이 소멸을 택하는 대신, 자신들의 권력을 일부 포기하고 사회주의를 일부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 서유럽 국가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유추해본다면, 부르주아지들은 틴포탯 이론과 게임이론을 이용해 자신들을 정당화하거나, 이를 조금은 받아들이는 척하며 교묘하게 계층소멸을 방지하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지능의 발달이 이론에의 충실함과 정직함을 가져온다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생략한 부분에 대해 요약하자면 권력은 돈의 의해서만 나타난는 것도 아니고, 나무만 보지말고 숲을 봅시다 개인이 돈으로 권력을 강화할떄 다른 부루주아지는 가만있을까요? 게다가 부루주아지와 빈곤층의 차이의 의한 상대적 우월감을 그렇게 중요시한다는 것은  이미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고 잇다는 것으로 간단히 반박됩니다

        권력은 물론 ‘부’한가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와 사회적인 지위, 명예와 같은 것들이 상호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부르주아지들간에도 정도의 차이에 따라 전통적인 권력집단의 호혜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물론 부르주아지간의 경쟁이 있을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이들의 권력계층을 무너뜨리는 정도는 절대 아닐것입니다.

        또한 절대적 빈곤이 사라지는 것으로 부르주아지와 빈곤층의 차이에 의한 상대적 우월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대적 빈곤이 적어진 현대에서는 상대적 빈곤이 절대적빈곤의 역활을 대행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도 수저계급논란으로 대표되는 상대적인 빈곤이 절대적인 빈곤문제가 아님에도 이렇게 큰 화두가 될만큼 큰 문제를 야기합니다.

        기준조차 애매한 상대적 빈곤으로 대체 얼마나 부루주아지와 빈곤층의 차이가 나길래 자신의 이득까지 버린다는 겁니까?

        중위소득 50% 미만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가구 또는 개인이 상대적인 빈곤자로 정의됩니다. 수치로 나타낼수 있다고 다 정확한 수치는 아닐것입니다만, 그렇다고 애매하다고 할수는 없을 것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양극화 현상이 이 상대적 빈곤의 큰 문제로서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 이 문제가 오히려 이것이 인간일반과 부르주아지간의 뚜렷한 경계를 남긴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제로섬 게임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고 논제로섬 게임의 시대가 오고 잇습니다 그런 부루주아지의 권력이론은 낡아가고 있고,유전자 개량으로 인한 이론중심의 시대에서는 게임이론과 진화론으로 증명된 틴포탯으로  반박되지 않을까요?

        오히려 저는 기술의 진보와 과학의 발전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의 행보를 보고 당신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국가간의 범주에서 부르주아지 국가라고 할 수있는 미국은 오히려 정치적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과 계속 갈등을 빚고 있는 형국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론대로라면 국가간의 상향평준화가 곧 자신에게 기술적인 이득을 가져올 것을 인지한 미국이 타 국가와 경제적인 패권다툼을 하기보다는 상냥한 자선사업가가되어 기술을 나누어줘야하지 않을까요? 결국 미국은 자국에게 이득이되는 기술 일반의 진보가 아닌 세계에서의 자신의 권한/권력 또는 영향력을 택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미국의 대통령이 대표적인 자본가인 도널드 트럼프인것에 대해 주목해야됩니다. 실익을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기술일반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닌,  정치적인 영향력을 택했다는것은 정치적인 영향력을 실익으로 인식한것이고, 안타깝게도 기술일반의 발전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또한 G1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의 화려한 도시들을 살펴보면 또한 상대적빈곤의 그림자가 나타납니다. 뉴욕이라는 같은 도시에 거주한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맨해튼에서 거주하고, 누군가는 어둠에 잠긴 허름한 공장가에서 거주합니다. 이러한 상대적인 빈부격차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자본주의의 수호자/대리인이라고 자부하고 기술과 과학의 진보를 선도해온 미국은 오히려 심각한 양극화문제를 앓고있는 국가로 전락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을 통해 우리는, 사회계급의 존재를 이 21세기에도 느낄 수 있습니다.

    • 재반론에 앞서 먼저 게임이론과 틴포탯이론과 같은 이론들에 대한 저의 무지함으로 인해 토론이 상대적으로 원할하게 이루어지지 못한점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사죄하실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론들에 대한 입증책임은 저애게있고 실력이 부족해서 설명이 완벽하지 못한점에대해 오히려 제가 사죄해야 할 일입니다 게다가 미처 글의 정리가 끝나지 않은채 댓글을 달아버려 급하게 글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글의 맥락이 뒤죽박죽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그러한 점에 대해서도 사죄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제 생각이 너무 짧아던것같네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할것 같아요 바로잡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아마도 우리는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듯 싶네요 저는 유전자 개량을 원인으로 지능 개발이 이뤄진다면 그래서 부루주아지 라고 불리는 이들이 이론적으로 행동한다면 해결될수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해결될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고 K.MARK님의 입장은 그러한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거라는 거네요 물론 지능 개발이 어디까지 가능한가 하는 점에 크게 영향을 줄수 잇다고 생각해요 간단하게만 발달시켜준다면야 K.MARK님에 주장에 동의하지만 상당히 발달 시키게 된다는 전제하에서는 동의하지는 못할거 같아요
      물론 사회적 안정화가 먼저 이루어진다면 2중의 장치로 더 안전해 질거라는 생각에서 그 점은  동의 합니다
       

      -저는 유전자 개량의 문제와 계급문제가 그 자체로서는 일단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활용의 단계에 이르렀을떄, 유전자 개량의 문제가 자본주의 일반과 계급체계의 모순을 정당화하고 그 모순들에서 나오는 문제들을 심화시킬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기술의 발달이 빈부격차의 해결을 위한 답이 될수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부르주아지들의 이론에 맞는 행동을 일관되게 주장하시는데, 저는 이론과 현실에서의 적용은 별개의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완전한 원을 이론적으로 가정하고 탐구할때에 반해 현실에서 종이에 이론적으로 완전한 원을 그리는것이 불가능한것을 들 수 있겠죠. 과거로부터 이론을 성립하고 이론을 지키고자 하는 행동들이 이어져왔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국가들은 기독교 이론에 따라 국가를 세속적인 것과 대치되는 신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에 실패했고, 조선은 완전한 유교 사상의 국가를 실현시키는데에 실패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원인이 대부분 계급과 개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학습된 이기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이론을 실생활에 실현시키기 이전에 이 계급구조를 소멸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사회적 안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 이후에 기술의 진보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술일수록, 더더욱 사회적 안정화를 이룬후에 도입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안정보다도 기술을 먼저 진보시킨다면, 계급의 모순의 심화는 물론이거니와 그 기술의 사용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끼칠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본격적인 인정이나 반론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k.marx님의 주장을 간단히 흝어본결과 몇가지 간단한 반박과 함께 몇가지 보충을 부탁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만 원할한 토론을 위해서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k.marx님은 이들이 이익을 위해 행동해 권력을 포기하고 기술의 진보를 택한다 하면, 그것 또한 기존의 부르주아지들과 인간 일반 간의 빈부격차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기적 이타주의에 의하면  권력을 포기하고 기술의 진보를 택한다 하는것은 빈부격차의 해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듯 싶군요

         

        또한 이론을 어떻게 협력이론을 교묘하게 이용하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이미 검증된 바 잇습니다 실제로, 이를 악용하려 시도한 전문가의 모든 전략은 제대로된 틴포탯에는 못미치더군요 오히려 자신의 이득을 깍아먹는 결과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으로 현대에 논제로섬게임이 완전히 도래했다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능의 발달과 함꼐 논제로섬 게임이 완성될수 잇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현대의 상황은

        지금도 이러한데 사회가 이론중심이 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 입니다 게다가 현재에 이론적으로만 정치에 접근하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XE replied 2 개월 전

        오타 정정 합니다

        또한 이론을 어떻게 협력이론을 교묘하게 이용하것이라 -> 또한 이론을 어떻게든 악용하여 협력이론을 교묘하게 이용하것이라

      • XE replied 2 개월 전

        물론 틴포택의 악용 전략은 특수한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경우가 있었지만 실제로 쓰여지기에는 범용성면에서 틴포탯을 따라올수가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효율성이 오히려 낮습니다

      • k.marx님은 이들이 이익을 위해 행동해 권력을 포기하고 기술의 진보를 택한다 하면, 그것 또한 기존의 부르주아지들과 인간 일반 간의 빈부격차를 해결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이기적 이타주의에 의하면  권력을 포기하고 기술의 진보를 택한다 하는것은 빈부격차의 해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듯 싶군요

        부르주아지 일반이 만약에 어느 순간 과학지상주의적인 인격을 갖게 되어 자신들의 권력유지보다도 기술일반의 발전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 여겨 자신들의 권력을 포기하고 이기적인 이타주의적인 행보를 보인다면 물론 빈부격차의 해소가 일어날 것이라는 저도 동의하는 바 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주장해왔던 것은 빈부격차의 완화가 아닌 빈부격차의 완전소멸입니다. 물론 영겁의 시간이 지나면 빈부격차의 완전소멸이 일어날 가능성도 빈약하게나마 생기겠지만, 저는 이 가능성이 레몬 한 방울로 바다를 몽땅 레몬즙으로 만들어낼 가능성보다도 낮다고 생각합니다. 부르주아지들이 이렇게 기술력에서의 상향평준화를 이루게 된다고 해도, 빈부격차와 계급의 경계는 완화될뿐 완전소멸에 이루지 않습니다. 아니면 오히려 현대에서의 부의 척도가 과거의 부의 척도였던 노동력과 단순물질생산보다는 ‘정보’라는 새로운 부의 척도가 생겨낫듯이, 과거의 부의 산물을 통한 상향평준화를 이룬다고 해도, 절대적인 빈곤은 배제할 가능성이 높아지나 새로운 부의 척도가 야기하는 상대적 빈곤을 절대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가설을 배제하고 틴포탯 이론을 낙관한다고 해도, 제가 말했듯이 빈부격차의 완전해소를 불러오지 못합니다. 적어도 현대에서는. 우리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입니다. 우리들의 눈앞에서 빈부격차가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낳고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미래세대를 위한 기술일반의 발전을 위해 미루는 것을 주장하는것은 곧 미래세대를 위해 현세대의 빈부격차로 생기는 피해자들을 무시하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이 미래세대를 고려해야 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위해 현세대를 빈부격차와 계급이 야기하는 문제점들에 의해 피해자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 또한 이론을 어떻게 협력이론을 교묘하게 이용하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이미 검증된 바 잇습니다 실제로, 이를 악용하려 시도한 전문가의 모든 전략은 제대로된 틴포탯에는 못미치더군요 오히려 자신의 이득을 깍아먹는 결과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이득은, 앞서 제가 이야기햇던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기술적 효율로 인해 악용자들이 보는 경제적/기술적 이득이 아닌, 정치적/사회적 이득을 말한 것 이었습니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소련을 공산주의의 핵심이 되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무시하고 자신의 독재국가로 만들어버린것과 마찬가지로, 선전선동을 통해 이론을 교묘하게 조작해 이용하는 것을 예로 들수 있겠죠. 소련이 만약에 제대로 된, 이론에 가까운 공산주의나 제대로 된 자본주의적인 노선을 따랐다면, 경제적 이득과 기술적인 면의 이득을 취할수 있었겠지만,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관료계층의 부르주아지들이 공산주의라는 이론을 교묘하게 이용해 정치적인 이득을 취했죠.

         

         

      • 마지막으로 현대에 논제로섬게임이 완전히 도래했다 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능의 발달과 함꼐 논제로섬 게임이 완성될수 잇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현대의 상황은 지금도 이러한데 사회가 이론중심이 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 입니다 게다가 현재에 이론적으로만 정치에 접근하지는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실정치를 예로 든 제가 약간의 오류를 범한 셈입니다. 제가 현실정치의 예를 든것으로 이론자체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말을 할 수 없겠죠. 그러나 제가 의구심을 가지는 것은 과연 이론중심의 사회가 도래할까? 에 대한 것입니다. 또한 지능의 발달이 과연 이론중심의 체제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요. 인류의 지능 발달이 지금 당신이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행동을 취할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믿음 아닐까요? 언제나 현실에서는 이론의 타당성과 현실적용은 온도차이가 존재해왔으니까요.

      • 물론, 언제나 현실에서는 이론의 타당성과 현실적용은 온도차이가 존재해왔다는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디자이너 베이비 활용 이후에 시대에 대해서에요 지금까지 그래왔으므로 디자이너 베이비 활용 이후에도 그럴것이다는 약간 비약인것처럼 들립니다 지금까지의 인간사의 대부분이 제로섬 게임이었고 인류의 지능이 발달되기 이전 시대니까요, 그래서 디자이너 베이비 가 활용될 미래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그리고 디자이너 베이비 활용으로 인류전반이 이전과는 지능면에서 달라질것을 생각하면  왜 지능의 상당한 발전이 이론중심의 체계를 불러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에대해서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요

        제 생각엔 지금까지에 사례를 디자이너 베이비 이후에 적용시키는 건 약간의 무리가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기적 이타주의가 발현되기 이전에 그 교묘한 이용이 어떤식으로 이루어 질지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어떤식으로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것인지 간략하게라도 일어날것으로 추정되는 일에대해서  예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사례만으로는 이론을 악용한것이 아니기 때문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부탁드립니다

         

      • 너무 낙관적일수도 잇습니다 하지만 만일 계산적인 이론에 의해서도 상대적 빈곤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생대적 빈곤이 해결할수 잇다고 보시는 겁니까?

        계산적인 이론보다 더 합리적인 해결방법도 없잖습니까 가장 최선책은 디자이너 베이비 활용으로 이기적 이타주의와 틴포탯의 강화라고 생각됩니다

        애초에 이걸로 해결할 수 없다면 그러니까 계산의 의해서 해결할 수 없다면 운에 맞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례가 있었고, 아무리 논제로섬 게임을 완성하더라도 그것을 응용할 지능이 없으면 틴포탯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이미 이론은 준비되엇고 남은 건 그걸 응용하게 해줄 지능의 발달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해  대안책 없이,이론적인 계산의 의한 최선책을 놔두고 어떻게 해결되기 바라는것은 낙관적인것을 넘어 가능성이 없지않습니까?

      • 이기적 이타주의가 발현되기 이전에 그 교묘한 이용이 어떤식으로 이루어 질지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어떤식으로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것인지 간략하게라도 일어날것으로 추정되는 일에대해서  예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전 사례만으로는 이론을 악용한것이 아니기 때문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이전 사례와 같게 이론의 이름만을 차용하여 체제를 유지시키는 예 입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중국 ,소련,러시아, 북한, 유신정권 시대의 한국 정도겠죠? 특정 이론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이론의 이름만을 갖고 선전선동을 통해 지배층이 이익을 보는 형태로 이루어진 경우들입니다. 틴포탯 이론 또한 그 본질과는 상관없이 부르주아지의 선전선동의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물론 이런일이 절대적으로 일어날것이라는 예언을 하는것이아닙니다.

      • 너무 낙관적일수도 잇습니다 하지만 만일 계산적인 이론에 의해서도 상대적 빈곤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대체  어떤 방법으로 생대적 빈곤이 해결할수 잇다고 보시는 겁니까?계산적인 이론보다 더 합리적인 해결방법도 없잖습니까 가장 최선책은 디자이너 베이비 활용으로 이기적 이타주의와 틴포탯의 강화라고 생각됩니다 애초에 이걸로 해결할 수 없다면 그러니까 계산의 의해서 해결할 수 없다면 운에 맞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례가 있었고, 아무리 논제로섬 게임을 완성하더라도 그것을 응용할 지능이 없으면 틴포탯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이미 이론은 준비되엇고 남은 건 그걸 응용하게 해줄 지능의 발달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말해  대안책 없이,이론적인 계산의 의한 최선책을 놔두고 어떻게 해결되기 바라는것은 낙관적인것을 넘어 가능성이 없지않습니까?

        계산적인 이론이라는 것은 틴포탯 이론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닌 넓은 범주의 것이겠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또한 경제학을 이용한 계산적인 이론이라고도 할 수 있고, 수학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피타고라스주의와 플라톤 철학 또한 계산적인 이론이겠죠? 그러므로 계산적인 이론이 가장 합리적인 이론이라는 것은 거짓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당신이 가장 최선책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틴포탯이론은 기술/과학 발전에만 눈이 돌아가 있고 정치, 사회적인 문제해결은 인류의 디자인을 포함한 기술과학 발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상정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정치/사회문제를 경시하고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어느 천재 과학자와 천재 기술자가 신적인 수준의 기술/과학 발전을 이룬다고 해도, 이것이 타당하게 보급되리라는 생각은 베이컨의 과학지상주의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생각입니다. 정치/사회적 발전 또한 미래의 인류를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일입니다. 애초의 상대적 빈곤의 해결을 상정하는 이론이 아닌 과학만능주의/기술발전만능주의적인 생각에 따라 인간일반의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는 공상적인 생각은 당연히 상대적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막연한 기술발전과 함께 찾아오는 지능의 발전, 그리고 인간의 이론중심주의적인 사고로의 전환 그리고 이에 따라 당신의 뉴아틀란티스가 이루어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타당성과는 별개로 이것들에는 아무런 확증이 없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모든문제를 해결해줄것이다.=신에 대한 믿음이 인간의 모든문제를 해결해줄것이다. 이렇듯이 당신은 맹목적인 믿음에 상댁적 빈곤을 맡긴다고 하고있는것입니다. 과연 과학만능주의에 지나치게 치우친 공상적인 생각을 계산적인 이론이라고 볼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저의 생각과 시각에서는 상대적빈곤을 위한 해법은 단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계급소멸-이를 통한 사회민주주의 국가로의 이행. 이상이 제가 생각하는 상대적 빈곤의 해소법입니다. 제 생각이 최선의 생각은 아닐 가능성이 물론 굉장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상대적인 인간의 지식으로 탄생한 상대적인 이론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의 이론이 가장 합리적인 생각이자 최선이라는 당신의 생각에 대해서는 저는 마치 맹목적인 성직자의 생각을 듣는것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적인 것이 당신이 생각하시는 대로 고정되어 있고, 미래의 사람들이 이에 따르리라는 생각을 한건 당신만이 아니라 성직자와 신부님들께서 근2천년동안 해왔던 생각이니까요. 그러나 과연 당신의 생각이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신의 진리에 가까운 생각일까요? 저는 빈부격차문제와 상대적 빈곤과 정치/사회 문제를 방치하는 수준의 과학만능주의적인 의견이 진리에 가깝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제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덕분에 너무 맹목적이었다는 점을 깨달을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지금까지 토론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지금도 외모 따지고 핏줄 따지며 잘만 입맛대로 골라 가지려 든다. 장애 검사해서 조기에 낙태도 시킨다.

       

      근데 그렇게 낳아놓고도 나머지 랜덤 요소 때문에 부모나 자식이나 불행한 경우가 생긴다.

       

      어차피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제대로 맞추는 게 낫다. 그게 기존 랜덤 뽑기보다 아이 입장에서 더 나쁠 게 뭔가?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냥 입양하는 것이다. 자꾸 부모 욕심에 낳을 생각만 하니까 불행한 아이가 생기는 거다.

    • 이미 인간은 인간을 동의 없이 멋대로 인간을 만들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

       

      차라리 랜덤 뽑기보다는 디자인해주는 게 더 아이를 위하는 길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위하는 길은 75억 지구 그만 좀 낳고 입양하는 것이다.

       

      낳아서 세상 고통 알게 하고 죽게 만드는 건 이기심일 뿐이다.

    • 계급화가 아이에게 뭐가 문제죠? 계급이 낮으면 안 낳으면 됩니다. 그게 불만인 건 거지 주제에 애를 낳고 싶은 이기적인 인간들 뿐이죠. 무지의 베일 아시죠? 익명님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계급 낮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을까요?

       

      아이 입장에선 디자이너 베이비로 태어나는 게 무계획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당연히 더 낫죠. 더 나은 육체를 가질 수 있음에도 거지 부모한테서 태어나는 것이 옳습니까? 바닥을 깔아주는 아이는 거지 부모의 자존심과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로 태어나야 한다는 건가요?

       

      디자이너 베이비가 문제라면 애초에 현행이 더 문제고, 태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일 겁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 입장을 따지는 게 이기적이라고요? 그럼 태아 장애 검사 유전병 검사가 이기적이에요? 거지라서 그것도 못하고 아무렇게나 열댓 명씩 싸지르는 게 이기적인 거 아니고요? 인간은 철저히 자기 부모 선택 때문에 태어납니다. 이기적이니까 낳는 거예요. 안 이기적이면 입양하겠죠.

      • 아이한테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말은 진짜 웃기네요. 10살 먹은 아이도 부모가 통제하는데 아직 제대로 자아도 형성 안 된 신생아보다도 더 미발달한 태아가 자기결정권이 있다? 무슨 신한테 물어보고 애 만드나 ㅋㅋ

      • K.Marx replied 3 주 전

        반론에 앞서 먼저 ‘익명’이 실수로 비로그인 상태로 글을 쓴 저였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계급화가 아이에게 뭐가 문제죠? 계급이 낮으면 안 낳으면 됩니다. 그게 불만인 건 거지 주제에 애를 낳고 싶은 이기적인 인간들 뿐이죠. 무지의 베일 아시죠? 익명님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계급 낮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을까요?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의 영향으로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계급이 정해지고 이를 따라 아이가 살아가게 된다면, 중세시대에서 신분제도가 했던 역활을 새로 형성될 생물학적 계급이 대체하게된다는 것 입니다. 부모가 누구인지, 살아온 환경이 어떗는지와 같은 지극히 운적인 요소들이 개인의 인격형성과 능력형성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주어 불평등을 야기하는데, 그러한 우연적 요소들로 인해 형성된 계급을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정당화시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계급이 낮으면 안 낳으면 됩니다. 그게 불만인 건 거지 주제에 애를 낳고 싶은 이기적인 인간들 뿐이죠

        계급이 낮으면 안 낳으면 된다는 것은, 주사위 굴리기와 같은 운적인 요소들을 통해 형성된 부와 계급이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규정하는 근거가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왜 가치관에 따라 멋대로 계급이 낮은 사람에게 아이를 낳지 말 것을 강요하는 거죠? 오히려 운적이고 우연적으로 형성된 계급이 개개인을 규정하는 신적인 진리라고 생각해 이를 강요하는 듯한 당신의 가치관이야말로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만?

         

        무지의 베일 아시죠? 익명님 당신이 다시 태어난다면 계급 낮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싶을까요?

        존 롤스가 고안한 논리적인 가상상황인 무지의 베일내에서는 자신의 인격에 대한 정보 없이, 기본적인 경제관념과 시사상식을 가진다고 고안자가 가정했습니다. 계급이 낮은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은 계급이 높은 가정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기본적인 경제관념에 속하겠죠? 그러나 계급이 낮은 인간이 계급이 높은 유산계급에게 착취당하는것 또한 기본적인 시사상식이기에 저는 우연적인 요소로 유복한 생활을 누리지만 하위 계급을 착취하는 상위계급의 부모보다는, 착취당하지만 적어도 누군가를 또 착취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겠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내 안의 도덕법칙이라는 ‘대’를 희생시켜 우연으로 얻은 지위와 노동자들을 착취해 얻은 부라는 ‘소’를 얻는 것이 저에게는 굉장히 불합리해 보이네요.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자본의 양’이 행복한 삶의 전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모두 다 그런것은 아니고요, 앞서 말한 우연적인 요소들로 인해 이것들 또한 규정됩니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선택이 무조건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 K.Marx replied 3 주 전

      아이 입장에선 디자이너 베이비로 태어나는 게 무계획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당연히 더 낫죠. 더 나은 육체를 가질 수 있음에도 거지 부모한테서 태어나는 것이 옳습니까? 바닥을 깔아주는 아이는 거지 부모의 자존심과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로 태어나야 한다는 건가요?

      당신이 신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거나 미래를 예지하지 못하는 이상, 아이가 어떤 미래를 맞을 지는 모릅니다. 물론 아이가 대부분의 하층민들의 비교적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첫번쨰로 이렇게 당신은 아이의 미래를 예지하지 못합니다. 아이가 복권에 당첨되어 행복한 삶을 누릴지, 자수성가하여 사업가가 되어있을지, 당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부모를 저주하며 근근히 살아갈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우리들의 옳고 그름에 대한 척도로 아이가 살아갈 인생을 평가하기 전에, 아이의 인생과 생겨나는 ‘가능성의 유무’ 그 자체가 더 큰 고려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눈으로 아이를 평가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가 살아간다고 하면 아이 본인이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척도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겠죠? 그러나 애초에 우리들의 척도로 아이의 출산자체를 막아버리면 이러한 기회와 가능성조차 우리들의 윤리적 자기 만족에 의해 사라지는 겁니다. 이렇게 당신의 윤리적 척도로 아이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것은, 당신의 윤리적 속단의 제물로서 아이가 만들어낼 여러가지 가능성의 가지를 무참히 베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 베이비로 태어나는 것이 무계획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이의 행복에 대한 보장은 미래에 형성될 아이의

    • K.Marx replied 3 주 전

      아이 입장에선 디자이너 베이비로 태어나는 게 무계획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당연히 더 낫죠. 더 나은 육체를 가질 수 있음에도 거지 부모한테서 태어나는 것이 옳습니까? 바닥을 깔아주는 아이는 거지 부모의 자존심과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로 태어나야 한다는 건가요?

      당신이 신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거나 미래를 예지하지 못하는 이상, 아이가 어떤 미래를 맞을 지는 모릅니다. 물론 아이가 대부분의 하층민들의 비교적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첫번쨰로 이렇게 당신은 아이의 미래를 예지하지 못합니다. 아이가 복권에 당첨되어 행복한 삶을 누릴지, 자수성가하여 사업가가 되어있을지, 당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부모를 저주하며 근근히 살아갈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우리들의 옳고 그름에 대한 척도로 아이가 살아갈 인생을 평가하기 전에, 아이의 인생과 생겨나는 ‘가능성의 유무’ 그 자체가 더 큰 고려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눈으로 아이를 평가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가 살아간다고 하면 아이 본인이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척도를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겠죠? 그러나 애초에 우리들의 척도로 아이의 출산자체를 막아버리면 이러한 기회와 가능성조차 우리들의 윤리적 자기 만족에 의해 사라지는 겁니다. 이렇게 당신의 윤리적 척도로 아이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고 배제하는 것은, 당신의 윤리적 속단의 제물로서 아이가 만들어낼 여러가지 가능성의 가지를 무참히 베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디자이너 베이비로 태어나는 것이 무계획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행복한 인생을 살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이의 행복에 대한 보장은 미래에 형성될 아이의 인격에 존재하니까요. 거지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당신에게는 불행일 수 있어도 아이에게는 행운일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아이의 윤리관과 행복관이 당신의 것과 같을 것이라는 보장은 도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죠?

       

      바닥을 깔아주는 아이를 낳는 부모가 죄라고 하시면, 지금까지 인류문명에 지대한 기여를 한 아이를 낳은 낮은계급의 부모들또한 죄인인가요? 낮은계급의 부모가 낳는 아이는 무조건 불행한 일생을 살기에 부모가 죄를 진다는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모순이 생길것같습니다만? 애초에 이러한 계급의 피해자들에 대한 해결책은 당신의 주장인 노동자 계층의 종족보존의 본능을 거세하는 것 보다, 이렇게 우연으로 계급이 규정되는 사회구조를 본질적으로 바꾸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가 부모의’자존심과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로 하층민 부모들에게 이용당한다고 하셧는데, 이는 상위계층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부모가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로 자신이 아이의 몸과 정신을 규정하는 것이 과연 부모의 자존심과 욕망을 채워주는 행위가 아닐까요?

    • K.Marx replied 3 주 전

      디자이너 베이비가 문제라면 애초에 현행이 더 문제고, 태어나는 것 자체가 문제일 겁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 입장을 따지는 게 이기적이라고요? 그럼 태아 장애 검사 유전병 검사가 이기적이에요? 거지라서 그것도 못하고 아무렇게나 열댓 명씩 싸지르는 게 이기적인 거 아니고요? 인간은 철저히 자기 부모 선택 때문에 태어납니다. 이기적이니까 낳는 거예요. 안 이기적이면 입양하겠죠.

      맞습니다. 그러니 제가 윗글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것이 현제 사회의 계급구조와 맞물려 야기할 일 들이 문제라고. 현재 사회구조가 이렇기에 사회계급이 생겨나고 디자이너 베이비와 같은 획기적인 기술이 사회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요.

       

      태아장애와 유전병 검사는 애초에 아이가 온전하게 태어나게 하기 위해 행해지는 일인데,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은 거기에 더해 아이를 부모가 임의적으로 규정하는 일입니다. 아이가 온전하게 태어나기 위한 안전장치와 임의적으로 아이의 몸과 정신을 개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이기적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아이떄문에 생길 1년의 공백기를 감안하여 아기를 낳지 않을 것이며 아이를 키우는데 지대한 시간과 부를 소모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아이를 키울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전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해가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행위가 전혀 이기적이지 않아보입니다만? 물론 아이를 낳는 것 자체는 아이를 낳고자 하는 이기심 또한 작용한 결과입니다. 아이는 당신 말대로 자기부모의 선택에 의해서 태어나고요. 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아이는 어른에 비해서는 엄연히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존재하는 한 인격체이고 이제 서서히 자기 자신이 선택을 당하는 자에서 선택을 하는 자로 바뀌어갑니다.

      • 아니 그럼 거지가 지 딴엔 가난해도 문제 없어서 낳는다고 하는 건 가치관 강요가 아녜요?

         

        장황하게 궤변 늘어놓으시는데, 반박이란 게 전부 자폭인데요?

         

        디자이너 베이비가 문제면 그냥 낳는 건 더 문제라고요 ㅋㅋ 이 말이 그렇게 이해가 안 되세요?

         

        애한테 자기결정권이란 게 정말 있다면 애를 낳아도 안 낳아도 자기결정권 훼손이라고요 ㅋㅋ

         

        가난한 애들은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 못생기든 어떻든 막 낳아도 괜찮고,

         

        장애 검사해서 님이 주장하는 ‘온전하지 못한’ 애는 불행할 게 뻔하니까 낙태해도 괜찮다? ㅋㅋ

         

        그리고 애 인생이야 어떻든 사회 불평등 때문에 안 된단 게 너무 소름 끼치는 게

         

        누구만 부자일 바에야 다같이 거지로 사는 게 낫다는 북한 마인드도 문제지만

         

        애 인생보다는 그저 사회가 먼저라서 계급 낮아도 애 낳게 시키고 하향 평준화를 시켜야 한단 게 참 ㅋㅋ

      • -반대-

         

         

         

        장황하게 궤변 늘어놓으시는데, 반박이란 게 전부 자폭인데요?

         

        자폭이라고 하심은 저의 말이 저의 다른 말의 논리를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닌, 논리적인 일관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에 대한 당신의 말씀을 검토해보죠.

         

      •  

        아니 그럼 거지가 지 딴엔 가난해도 문제 없어서 낳는다고 하는 건 가치관 강요가 아녜요?

         

        출산을 하는 것 자체는 한 인격의 가능성을 형성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격의 탄생자체는 가치관의 개입이 불가능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이란 그 가능성의 존재여부 위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가치관 존재의 토대의 역활을 하는 한 인격의 가능성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면 가치관을 부여하지도, 박탈하지도 못합니다. 물론, 아이의 탄생을 불러오는 선택은 부모의 가치관에 따르는 부모의 행동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그것을 강요할 대상인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아이의 가치관이 형성조차 되지 않은 상태니까요. 강요라는 것은 타자의 의지에 어긋나는 무언가를 강제로 수행하기를 요구하는것인데 애초에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강요라는 개념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것에 반하는 요구를 했을때 비로소 강요는 성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후에 가치관이 형성된 아이가 자신의 출생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면 이는 곧, 자기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부정이고 이는 곧, 자기자신의 존재자체에 대한 부정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출생자체에 대해 부정한다면 이는 곧 자신의 가치관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고 이는 곧 자기자신의 불만자체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출생자체에는 가치관의 강요를 적용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베이비가 문제면 그냥 낳는 건 더 문제라고요 ㅋㅋ 이 말이 그렇게 이해가 안 되세요?

         

        저는 앞서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이것이 현재의 사회계층구조와 맞물리면 문제를 야기한다고 했습니다. 먼저 이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고 싶고요. 그리고 그냥 낳는것 자체또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출산에 대한 문제 또한 역시 사회계층구조와 맞물리면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낳는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사회구조와 맞물리면서 문제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내에서 출산도 문제를 야기하고 있고, 이에 따라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또한 문제를 일으킬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느쪽이 더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불가지적입니다만, 저는 분명히 앞서 말했듯이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 또한 해악을 일으킬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만약의 당신의 생각대로 출산에 더한 문제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큰 문제가 됩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낳는것이 문제이고 현재의 상황에서 이를 막는 것이 어렵다면, 출산자체보다는 덜한 악을 불러오지만 분명히 악을 불러오는 ‘디자이너 베이비’기술의 도입을 막는것이 합리적인 행동 아닐까요? 어느쪽이 더한 문제를 불러온다고 가정하면, 막을수 있는것을 막은후에, 더 큰 문제를 해결하는것이 지금 저의 논리로는 일반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만? 그리고, 제가 앞서 말씀드린 이야기들의 핵심을 요약한다면 ‘디자이너 베이비’기술이 문제가 되는것은 출산문제와 불평등문제와 연계되어 더 큰 해악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출생문제와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이 서로 연계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이상, 둘을 따로 분리시켜 보는 시각만이 아닌 두 문제가 연계해 일으키는 문제들을 관찰하는 시각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둘을 분리해서 관찰하는것만을 고수하는 것은 문제에서 멀어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저는 현재 사회구조에서 출산이 문제를 야기한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앞서 운적인 요소가 인생을 결정짓는 큰 문제를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게 두 문제가 연계해서 더 큰 해악을 불러올 것을 저는 지금까지 계속 말씀드려온것 같은데, 이 말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신건지 궁금하네요?

         

         

      •  

         

        애한테 자기결정권이란 게 정말 있다면 애를 낳아도 안 낳아도 자기결정권 훼손이라고요 ㅋㅋ

         

        앞서 말했듯이 아이의 자기결정권은 아이의 성장에 따라 부여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를 낳는 경우에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자기존재자체에 대한 부정은 애초에 불합리하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아이의 자기결정권의 훼손은 이 경우에는 출산자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인 아이자체를 낳지 않는다면, 아이의 가치관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아이의 자기결정권을 훼손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애들은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 못생기든 어떻든 막 낳아도 괜찮고,

         

        장애 검사해서 님이 주장하는 ‘온전하지 못한’ 애는 불행할 게 뻔하니까 낙태해도 괜찮다? ㅋㅋ

         

        가난한 아이들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하는 명제입니다. ‘promortalist님의 가치관에 따른 개개인의 삶에서의 행복도에 대한 예상은 아무런 근거도 존재하지 않고 신적인 전지성과 예언능력을 가지지 못한 promortalist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단순한 예상이다.’ 라는 앞선 글들을 요약한 하나의 명제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저는 ‘온전하지 못한’ 아이의 낙태를 이야기 한적이 없습니다. 아이에게 최소한 태아장애 검사와 유전병 검사를 하는 것이 태아의 비교적 생물학적으로 온전하고 안전한 탄생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이를 주장한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낙태에 대하서는 아이의 존재자체를 지워버리는 낙태에 대해서는 두말할것도 없이 산모의 목숨이 태아에 의해 위험한 한가지 예외를 제외하고는 낙태에 절대반대하는 신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가지고 저를 비판하는 것을 허수아비 때리기라고 합니다만.

         

      • 그리고 애 인생이야 어떻든 사회 불평등 때문에 안 된단 게 너무 소름 끼치는 게

         

        누구만 부자일 바에야 다 같이 거지로 사는 게 낫다는 북한 마인드도 문제지만

         

        애 인생보다는 그저 사회가 먼저라서 계급 낮아도 애 낳게 시키고 하향 평준화를 시켜야 한단 게 참 ㅋㅋ

         

        첫 번째로, 여전히 당신의 행복의 척도를 바탕으로 아이의 인생을 멋대로 예상하고 이를 또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의 출생여부를 결정하는 당신의 행복관이 완전무결하고 보편적이다는 것을 확신하는 불완전하고 상대적인 사유에 회의감이 들고요.

         

        둘 째로, 당신의 아무 근거없는 “누구만 부자일 바에야 다 같이 거지로 사는 게 낫다는 북한 마인드”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김정은과 노동당 간부들이 부르주아계층을 형성하고 나머지가 빈곤층으로 살아가는 소비에트 연방의 국가주의 모델을 모방한 독재국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promortalist님 자신의 멋대로 된 북한에 대한 인상평가를 바탕으로 한 발언에 회의감이 들고요. 셋째로 애 인생보다는 사회가 먼저라고 한 적도 없는 저의 글에 대해 허수아비 때리기를 행하시는 당신의 사유에 또 한번 회의감을 갖게 됩니다. 애초에 저는 지금까지 사회가 먼저가 아닌, 개개인을 우선시하는 것을 제 의견의 바탕으로 진행해왔습니다.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개개인의 삶의 선택방향과 기회가 자신의 부모의 사회계급과 그에 따른 부로 서 좌지우지되는 현사회의 모순을 더욱 심화시키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그리고 계급 낮은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게 시키자고 한적도 없고, 저는 그저 계급 낮은 사람들도 아이를 낳을 자유가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또 사회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고 한적도 없고요. 이번에도 전과 동일하게 허수아비 때리기를 행하셧고요. 그리고 사회 하향평준화에 대해서도 애초에 제가 바라는 것은 하향 평준화가 아닌, 상향평준화를 통한 계급의 소멸이거든요.(이거에 대해 논쟁하고자 하시면, 답변을 해주시죠.)

         

         

         

        이로서 당신의 말씀을 다 검토해봤는데, 오히려 제 논리의 자폭을 주장하신 당신의 논리가 자폭을 하고있는것 같습니다만? 자신이 타인이 쓴 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을 글쓴이의 탓으로 돌리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행함과 동시에 무언가에 대한 자신의 근거없는 인상을 발언으로 내세우고 여전히 자신의 가치관이 완전무결하고 보편적이라는 착각을 내포하고있는 당신의 논리로 이어나간 말들이야말로 ‘궤변’이라고 부를만 하지 않을까요?

         

      • 이기적이랬다가 아니랬다가 이젠 사회를 위해서랬다가 개인을 위해서랬다가 그때그때 그냥 이겨먹을 생각만 하는 것 같네요.

         

        안 낳으면 자기결정권 훼손 아니라고 하셨으니 거지면 일단 안 낳으면 되는 거죠 그죠?

         

        근데 또 무슨 자유 보장을 하라네. 아니 부자가 디자이너 베이비 만드는 자유는 그 애가 더 거지나 유전병보다 행복 가능성이 높든 말든 훼손해야 한다면서 거지가 애 만드는 자유는 왜 보장해야 한단 거죠?

         

        가난이랑 장애는 무슨 잣대로 차이가 나냐고 하니까 온전하다 아니다 자기가 구분 지어놓고 또 온전치 않은 애 낙태해도 된단 건 아니다 어쩌라는 건지 ㅋㅋ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이유가 거지들을 위하자는 하향 평준화 뿐인데 그건 또 아니라고 하니 이건 뭐

         

        밀이 자폭 아닌 게 없으니 말이 통할 수가 없죠 정말 상향 평준화를 원하면 거지는 애 못 낳게 하면 됩니다 거지한테 초점을 맞추고 발전을 거부하는 게 무슨 상향평준화죠?

         

        돈 많고 유전적으로 더 튼튼하게 낳는 게 더 나은 부모지 돈도 없고 유전적으로 구리게 낳는 부모가 무능한 거고 뱁새인 게 잘못인 걸 왜 거꾸로 더 나은 부모를 막겠다는 건지? 자기가 못 났으면 안 낳으면 되는 거죠.

         

         

         

         

         

         

         

         

         

         

         

         

      • K.Marx replied 1 주 전

        이기적이랬다가 아니랬다가 이젠 사회를 위해서랬다가 개인을 위해서랬다가 그때그때 그냥 이겨먹을 생각만 하는 것 같네요.

        저는 언제나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토대로 이야기를 해왔는데, 그게 그렇게 보이셧나요?

        안 낳으면 자기결정권 훼손 아니라고 하셨으니 거지면 일단 안 낳으면 되는 거죠 그죠?

        계속해서 당신의 불확실하고 멋대로된 잣대인 ‘거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말것을 당신 멋대로 강요하시고 계시는데 먼저 이 점은 부모가 될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결정할 영역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기결정권의 훼손이 아닌것과 본질적으로 자기결정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그 가능성조차 생겨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결정권에 대해 논의하는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에 이 둘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또 무슨 자유 보장을 하라네. 아니 부자가 디자이너 베이비 만드는 자유는 그 애가 더 거지나 유전병보다 행복 가능성이 높든 말든 훼손해야 한다면서 거지가 애 만드는 자유는 왜 보장해야 한단 거죠?

        당신의 거지 비출생주의를 위해서 개개인의 자유를 앗아갈수는 없습니다. 그 어느 때에도 개개인의 본질적인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이것이 불평등하게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자가 디자이너 베이비를 탄생시키는 것은 앞서 계속해서 말씀드렸다시피, 운적으로 형성되는 사회자본의 획득을 통한 신계급형성을 생물학적으로 정당화시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모순 이상으로 개개인으로부터 기회의 평등, 즉 실질적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게 합니다. 다른 자유를 훼손하는 자유는 자유라고 부를 수 없기에, 그러므로 부자들의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활용은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부자들의 자유에 대해 지적해주셨는데 제 의견이 틀렸다고 가정하고, 만약에 부자들이 디자이너 베이비를 활용하는 것이 자유라고 가정한다면, 당신이 말씀하시는 ‘거지’가 아이를 만드는 자유또한 보장해야 되는거 아닌가요? 오히려 모순을 지적하는 당신의 의견에 모순이 존재하는데요?

        가난이랑 장애는 무슨 잣대로 차이가 나냐고 하니까 온전하다 아니다 자기가 구분 지어놓고 또 온전치 않은 애 낙태해도 된단 건 아니다 어쩌라는 건지 ㅋㅋ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이유가 거지들을 위하자는 하향 평준화 뿐인데 그건 또 아니라고 하니 이건 뭐

        가난과 장애에 대해서도 당신에게 제가 질문받은 기억은 없고, 위의 글을 찾아봐도 당신이 이에 대해 질문하는 글을 찾지 못했습니다만? 저번에 계속해서 ‘허수아비 때리기’로 저에게 의미없는 반박을 하셧던것에 대해 제가 지적드렸는데 이번에도 또 같은 일을 반복하시네요?

        가난에 대해 물으신다면 저는 이를 빈곤이라 정의합니다. 첫번째로 절대적인 생존의 위기에 놓일 수 있는 개인 또는 집단의 경제상태를 ‘절대적 빈곤’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특정 타인이나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놓인 빈곤의 상태를 ‘상대적 빈곤’이라 정의합니다. 절대적 빈곤의 예로서 우리나라 전후의 빈민들을 들수 있겟고, 상대적 빈곤의 예로는 현재 국내에서 논의되고있는 수저계급론을 들수 있겟죠? 장애에 대해서는 네이버 사전에 생물학적으로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고 명시되어있네요.

        저는 애초에 아이가 생물학적으로 결함이 있으면 이에 대해 가능한 치료나 검사를 행할 수 있는것에 대해 찬성했고요, 애초에 생물학적으로 온전하지 않은 아이에 대해 개개인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어떠한 제제도 가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낙태를 이야기하지도 않은 제가 낙태에 대해 찬성했다고 주장하는 당신에 난독증에 제가 책임을 져야 하나요?

        이번에도 또 허수아비때리기 하시는데, 저는 특정계급의 이해를 위해서 이야기를 한적이 없고, 모든 개개인에게 실질적인 자유와 권리의 평등을 주장했습니다. 당신의 난독증에 이어 이번에는 당신의 멋대로 된 비약이 또 당신의 주장에 결함을 형성시키네요.

        밀이 자폭 아닌 게 없으니 말이 통할 수가 없죠 정말 상향 평준화를 원하면 거지는 애 못 낳게 하면 됩니다 거지한테 초점을 맞추고 발전을 거부하는 게 무슨 상향평준화죠?

        계속 자폭이라고 당신의 난독증과 비약을 바탕으로 한 결함과 모순으로 가득한 주장을 계속하시는데, 자폭이란 말은 당신같이 논리적으로 반박과 이해를 못하는 분에게 사용하는것이 옳다고 본입니다만?

        상향평준화를 바란다면 당신의 그 ‘거지’들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에서도 굉장히 큰 모순이 발생합니다.

        1.제가 계속 말씀드려왔듯이, 당신의 그 ‘거지’계층의 부모가 낳은 아이가 그대로 거지가 될 것이라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운적인 요소로 인한 계급의 변동이 굉장히 유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세계의 자본가들 중에서는 오히려 당신의 그 ‘거지’계급출신인 사람도 존재합니다.

        2. 당신의 그 ‘거지’계급을 아예없애버리면,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자본을 불려주는 굉장히 많은 ‘소비자’들과 자신의 제품과 사업을 관리하고 판매해주는 ‘노동자’들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본가들은 애초에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통해 노동계급을 착취해 자본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그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당신의 그 피상적인 비출생주의는 오히려 생산력을 촉진시킬 노동자들의 부재를 통해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3.2번에서 파생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상대적인 성격을 지닌 계급이 상향평준화된다면 당신의 그 ‘거지’계급의 빈자리는 기존계급의 아이들로 계속해서 채워져나갈것입니다. 사화계급의 본질적인 소멸이 아닌, 그 큰 모순을 남겨둔 채 당신의 그 ‘거지’계급만 도려낸다면 다음세대에 부자만이 존재하는 당신의 유토피아가 출현하는 것이 아닌 구계급구조의 재생산을 당신은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그 속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논리야말로, 당신이 말씀하시는 ‘자폭’에 어울릴 주장같네요.

        전 애초에 발전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당신의 그 모호한 ‘거지’라는 개념에는 초점을 맞출수도 없었습니다. 이쯤되면 허수아비 때리기가 몇번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돈 많고 유전적으로 더 튼튼하게 낳는 게 더 나은 부모지 돈도 없고 유전적으로 구리게 낳는 부모가 무능한 거고 뱁새인 게 잘못인 걸 왜 거꾸로 더 나은 부모를 막겠다는 건지? 자기가 못 났으면 안 낳으면 되는 거죠

        당신의 주장을 처음 접하고 나서부터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당신의 그 ‘나은 부모’라는 척도를 나머지 70억인구가 각자 가지고있는 척도를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척도가 옳다는 근거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비논리적인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척도를 기준으로 긍정적인 인간의 권리는 한없이 긍정해주고, 부정적인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자유권조차 박탈해가는 당신의 그 사상은 나치독일의 게르만주의와 굉장히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척도로 긍정적으로 보이는 게르만인들의 권리와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보장하고, 자신의 척도에서 부정적으로 보이는 유대인들의 권리와 자유는 거의 없다시피 탄압하고. 당신의 척도에서 ‘좋은’부모와 ‘무능한’ 부모 ‘거지’와 ‘자본가’의 구분과 나치의 ‘게르만인’과 ‘유대인’의 척도는 별반 다를것이 없어보입니다. 당신의 그 파시스트적인 개인의 척도를 일률적으로 모두에게 강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닌 개개인의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것이 저에게는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당신의 주장을 다 살펴봤는데 이번에도 또 당신의 난독증과 허수아비때리기만 계속됬네요? 이런것을 보고 보통 ‘자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나요?

         

    • K.Marx replied 3 주 전

      아이한테 자기결정권이 있다는 말은 진짜 웃기네요. 10살 먹은 아이도 부모가 통제하는데 아직 제대로 자아도 형성 안 된 신생아보다도 더 미발달한 태아가 자기결정권이 있다? 무슨 신한테 물어보고 애 만드나 ㅋㅋ

      물론 아이에게 자기결정권이 당장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미래에 분명히 생겨나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기결정권이 생기기도 전에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것들과는 별개로 강제로 아이를 규정하는 것은, 분명 서서히 형성될 아이의 인격을 임의적으로 조정하고 미래에 생길 자기결정권이 형성되기도 전에 자기결정권이 부정당하는 이율배반적인 일이 일어 날것입니다.

      • K.Marx replied 3 주 전

        덛붙이자면, 애초에 부모 마음대로 아이를 규정해놓고 자기결정권을 부여하면 부르주아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 노동자에게 부여된 명목상의 자유만큼이나 그 자기결정권은 의미가 없는 명목상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대-

         

         

         

        장황하게 궤변 늘어놓으시는데, 반박이란 게 전부 자폭인데요?

         

        자폭이라고 하심은 저의 말이 저의 다른 말의 논리를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닌, 논리적인 일관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에 대한 당신의 말씀을 검토해보죠.

         

         

    • 이미 하고 있지 않나요? 선남 선녀 선호하고, 예쁜 외국인 선호하지요. 애완 동물 키운다고 성불구로 만들어서 키우거나 유전자 조작도 합니다. 먹는 것과 더불어서요. GMO 귤 크긴 하지만 몸이 안 좋아져서 그냥 작은 귤 먹습니다. 찬성한다고 해도 아마 그 기술이 생명에 문제 없다는 확신을 주기에는 500년은 걸릴 것이라 생각되므로 막을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고지능 사이코패스가 나와서 인류를 쓸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기술 개발을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평가 방법은 마련하겠지요.

      • 네 그래서 저는 그런영역들의 일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동물권의 관점에서 애초에 동물의 애완동물화를 반대하고 이에 따르는 성 중성화 수술이나 유전자 조작에 대해 반대하는 바 입니다.거기에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 기술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현재의 사회계층 구조와 맞물려 야기할 문제입니다.

    • 찬반 의견 모두 너무 사회학적 관점으로 접근한 거 같아 다른 시점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1. 애초에 진보 기술의 사회적 임팩트 관점으로만 보는데, 생물학/심리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애초에 디자이너 베이비가 기존 인류에 편입되어 빈부격차든 호혜주의든 문명 내부의 틀에서 움직인다는 가정이 있나요? 인간의 뇌 구조가 얼마나 복잡한데, 디자이너 베이비로 무의식과 전체 의식 (개중에는 영혼, 정신까지 고려해서)을 설계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그래봐야 디자이너 베이비는 유전자의 코드 변경이나 대체, 절제 정도일 테니까요. 그렇다면 어느 면에서나 더 진화된 디자이너 베이비가 애초에 ‘교정’되지 않은 인간을 동족으로 봐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치 디자이너 베이비가 당연히 인류에 편입될 거라는 가정도 깨지죠.

       

      2. 디자이너 베이비의 정도 차이도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무의식, 정신, 영혼 등 예측 불가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일반 질병 요소 제거만 할 수도 있고, 외모도 바꿀 수 있고, 일부 성향 같은 것도 유전자 프린트에 의해 치우치게 할 순 있습니다. 그러면 수위 차이도 있지 않습니까? 극단적으로 바이너리 접근이 아니라, 수위 별 접근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지 않습니까?

       

      3. 우리가 절대 선천적인 요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게 부모와 유전자입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접근이라고 하더라도, 선천적으로 부모가 재산을 많이 가진 것처럼 선천적으로 유전자부터도 우월하다면 애초에 기존 인류가 쌓아온 사회학이 통용될까요? 빈부격차의 거리가 너무 커져서 아예 세대와 종족으로 갈려버릴 수도 있습니다. 디자이너 베이비가 개량한 디자이너 베이비는 또 다를 수 있지요.

       

      4. 또한 교육적 수준과 기술, 빅데이터 기술 등을 볼 때 선천성으로 완벽하게 태어났다고 가정한 한 객체를 얼마나 궁합에 맞게 완벽하게 키워내냐-도 당연 변수일 겁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 별로 디자이너 베이비가 일반 교육, 정상 교육을 받을 시 혹은 교육을 받아 부작용이 생길지, 혹은 부작용이 생길만한 요소는 무엇일지 등을 논의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인문학은 매우 중요하지만, 종종 이런 구체적 주제에서 출발할 경우 너무 ‘이론 교환’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많은 거 같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건 결코 아니지만, 인문학과 공학 둘 다 겸양하여 고려하면 좋을 듯 합니다. 기존의 빈부격차나 호혜주의에 대한 이론과 논의는 말 그대로 인류가 내부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진보 기술’ 정도의 얘기일 때고, 저는 이런 인류 개종 수준은 ‘Disruptive Innovation’ 즉 아예 생태계 구조와 역학 자체를 새롭게 생각해야하는 접근이라고 봅니다. 더하여 토론에 기술적 견해를 더해야 현실성도 높아지고, 그저 토론을 위한 토론이 아니라 실제 미래를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토론이 될 겁니다.

      • K.Marx replied 1 주 전

        1.그렇다면 어느 면에서나 더 진화된 디자이너 베이비가 애초에 ‘교정’되지 않은 인간을 동족으로 봐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치 디자이너 베이비가 당연히 인류에 편입될 거라는 가정도 깨지죠.

        이 문제에 대해 제가 계속 이야기해 왔습니다. 디자이너 베이비를 통한 새로운 우월 계급형성 또는 새로운 종족의 형성. 디자이너 베이비가 인류에 편입될 것이란 가정을 깬다해도, 디자이너 베이비가 인류에서 파생된다고 하는 가정은 깰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사회학과 인문학에서 때어낼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베이비가 새로운 ‘종’을 형성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디자이너베이비가 된 아이들이 운적인 요소를 통해 디자이너 베이비가 되었다는 점으로 돌아간다면 이는 운을 통해 부모의 부와 권력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으로 이어지고 결국 운적인 요소로 디자이너 베이비가 결정되어 새로운 ‘종’을 이룬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베이비가 문명내부의 틀에서 움직이지 않다고 가정하더라도, 디자이너 베이비가 문명에 영향을 줄 요소들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2.지금까지 디자이너 베이비의 수위에 대해 이야기한 점이 적었기에 이에 동의합니다.

         

         

        3. 인류가 디자이너 베이비를 통해 새로운 종족으로 거듭난다면, 이 새로운 종족으로 거듭날 기회가 기존의 사회계급질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베이비들이 이렇게 기존의 사회계급과 무관하지 않다면, 이것까지는 기존 사회학의 관점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기존의 학문과 다른 이에 대한 새로운 학문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디자이너 베이비기술자체에 대해 이야기한적은 많지않고,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이 불러올 사회적 모순의 심화에 대해 경계하는 관점으로서 이야기를 계속 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디자이너 베이비 자체의 문제와 긍정적인 점들에 대해서는 담론이 잘 이뤄지지 않기에 당신의 말씀대로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 자체에 대한 담론 또한 저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 1. 좋습니다. 그럼 디자이너 베이비 세대가 문명에 줄 요소가 아예 문명을 전복시키고 기존 인류를 전복시킬 정도일까요, 아니면 상하 관계로 노예로 부릴까요, 아니면 하나의 분리된 객체로 존중하여 모종의 공존 상태를 유지할까요? 반대하시는 입장에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하나 확실한 것은 인간의 부족함 뿐만 아니라 자제력이나 감정, 욕구로 인해 끊임없이 벌어지는 범죄 등을 보면 훨씬 육체 관리, 정신 관리에 우월한 디자이너 베이비 세대는 반드시 회의를 느낄 겁니다. 저들을 격리할까? 저들을 제거할까? 아니면 은밀하게 생화학 작용이나 나노 로봇으로 통제할까?

       

      2. 반대 입장에서 보실 때 질병제거까지는 허용이 가능한가요, 아니면 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므로 그것도 반대이신가요? 참고로 전 중도이기에 중재 카테고리로 답변을 드립니다. 예전에 유교나 유태교가 보수적인 지역에선, 기본적인 수술도 불경하게 여겨지고 피를 내는 거 자체가 터부시 되었습니다. 질병치료의 선상에선 어디까지가 적정선이라고 보십니까? 가치란 모호한 것이라, 탈모 치료나 피부 개선 등 미용 영역도 질병 치료라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겁니다.

       

      3. 그러므로 아예 새롭게 논했으면 좋겠습니다. 1번과도 연결이 되지요. 기존 사회학 이론이 변형될지, 아니면 새로 탄생할지? 우리 입장에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육체적 결함이 없고 선천적으로 우월성을 타고 난 세대, 종족의 입장에서 고려해봐야할 겁니다. 유태인이 나라 잃은 난민에서, 선진국의 절반 이상을 조종하는 배후 인종으로 성장한 것에는 그만큼 정신적, 지능적 우월함이 있었다고 봅니다. 디자이너 베이비라면 충분히 더 짧은 기간과 더 넓은 범위로 문명 주도권을 얻지 않을까 합니다.

      •  

         

        1.저는 단순히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 베이비들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성장할지는 우리들이 직접 관찰을 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겠죠. 당신의 말씀대로 이를 위해서는 종래의 학문이상의 새로운 학문을 통한 새로운 관점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디자이너 베이비들의 정확한 행적을 예측하는 것은 아마겟돈의 전개과정을 예측하는 음모론자들과 다를것이 없겠죠. 다만 우리들이 인문학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디자이너 베이비의 탄생과정에서 생기는 사회적 문제들과 이후에 이것이 심화시킬 사회적 모순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이것 이상으로 그들자체에 대한 연구에서도, 디자이너베이비들은 인간문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인문학과 사회학을 제외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2.저는 질병제거와 더 나아가 이상의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개개인들의 근거없는 믿음으로 학문과 기술의 진보가 방해받아왔고, 이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포함한 개개인의 신념이 사회발전에 기여를 해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이것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개인의 자유와 학문적인 진보를 포함한 여러가지에 대해 사회가 아무런 합리적인 이유없이 박해와 억압을 자행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죠. 종교가 사회를 형성하고 도덕을 형성하던 고대에는 종교가 유익한 요소였을지 모르겠지만, 현대의 관점에서는 그저 인권을 탄압하는 하나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변질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신념과 종교는 언제나 인위적으로 인간생명 아래에 위치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지금까지 말씀드려왔듯이, 이것이 불러올 사회적 해악이 사회모순을 강화시키는데 있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에 현대사회에서의 기술의 도입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3.기존 사회학 이론이 변형되든, 새로운 이론이 탄생하든 두 경우에서 모두 기존 사회학과 인문학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유태인들에 대해서는 인종적인 특수성이 아닌, 그들의 특수한 상황과 여러가지 우연성이 결합되면서 지금의 배후인종이라는 인식을 받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여러문화들의 영향을 받아 굉장히 독특한 관점을 통해 새로운 유일신교를 형성했고, 이것이 이들의 선민사상을 포함한 여러가지 사상을 자신들의 민족을 결속시키는 관념적인 율법을 형성시키기에 이르러 세계문화에 지대한 기여를 한 민족으로 거듭났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에 대한 유물적인 설명이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 이들의 사례가 정말로 정신적, 지능적으로 우월한 디자이너베이비들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1. 기존 구세대 인문학을 디자이너 베이비 세대가 참고할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고대 시대의 노예제나 중세 시대의 봉건제에 대해 우리가 참고하고 교육을 받지만, 하등한 세계관이자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보지 우리의 가치관의 기반이자 형성 재료로 쓰진 않지 않습니까? 반대로 현대인은 고대나 중세, 심지어 근현대 시대만 가도 온갖 기차관, 사고 충돌로 온갖 연기를 하지 않으면 당장에 배척당할 겁니다. 같은 맥락으로, 참고 정도로 머무를 요소는 한 번 짚는 정도지 디자이너 베이비 같은 우월종 신세대가 애초에 새로운 시대와 패러다임에 반영해줄 정도로 중요하게 여길 요소가 아니라는 겁니다.

       

      2. 사회모순 정도가 아니라 사회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요소이지만, 동시에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중국만 해도 이미 통제에서 벗어나 디자이너 베이비를 만들고 있습니다.

       

      3. 유태인은 유물적인, 문화적인, 지형기학적인 이점이 있는데 이 정도라면, 반문하여 지능적, 정신적으로우월한 디자이너 베이비들은 얼마나 더 빠르고 강력하게 배후 인종이 되겠냐는 말이었습니다. 1,2,3번 관통하여 아예 패러다임을 뒤집고 파괴하는 요소라서 기존의 사회학, 방식 중심으로 얘기하는 거 자체가 불가능하고 음모론으로 치부받더라도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는 게 맞다는 주장입니다.

      • K.Marx replied 6 일 전

        1.저는 기존의 학문들이 신학문 형성에 기여할 여지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로서 우리들이 근 2000년전의 사상인 플라톤의 사상을 현대의 과학성과 논리에 입각하여 이를 온전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플라톤 사상의 일부분은 여전히 우리들의 관념의 토대로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들의 사고에서는 가장 기본적이자만 동시에 지극히 플라톤주의적인 논증인 연역법은 과학주의의 탄생과 함께한 경험을 그 기반으로 하는 귀납법과 여전히 공존하며 우리들의 사고속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다른 예로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는근 2000년전 피타고라스가 발견한 지극히 기초적인 수학원리지만 현대에도 굉장히 요긴하게 쓰이고 있으며 2000년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장한 휴머니즘을 빼고는 현재의 도덕과 윤리에 대해 이야기 하는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과거의 사상과 학문은 현대의 것보다 그 중요성에서 앞서간다고 할수는 없으나, 역설적으로 현대의 사상은 과거의 사상을 거쳐 탄생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현대의 도끼라는 도구보다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가 더 효율적이고 유용하다고 할 순없지만, 현대에 도끼에는 역설적으로 과거 주먹도끼의 영향을 받아 탄생할 수 있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인문학을 통해 신세대의 인문학이 탄생할것이라 생각하고 이것은 참고 이상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저도 동의합니다만, 이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상 참주정치와 독재에 가까운 중국의 경우에는 제가 이야기했던 모순들이 굉장히 극단적으로 드러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지능적으로, 정신적으로 우월한 디자이너 베이비들이 그렇다고 배후인종이 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유대인들은 우연적인 요소들로 인해 이렇게 배후인종이 된것인데, 과연 디자이너 베이비들에 우연성이 어떻게 작용할지 의문입니다. 디자이너 베이비 기술이 완전무결하고 절대적이지 않은 인간의 기술인 것을 감안하면, 현재 IQ수치상 1~2등을 왔다갔다 하는 한국인들 또한 세계를 지배하는 배후인종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절대적인 배후인종과 같은 절대성을 지닐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사회학과 인문학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은 물론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관점과 학문을 형성하는것이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1. 빌드업 되는 문명 척도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하지만 빌드업이 아닌, 아예 도태된 이론 등에 대해서는 아예 새로운 수준의 학문과 기술을 개척할 겁니다. 말 그대로 참고만 하는 수준일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빌드업 해온 것에 대해서 순식간에 흡수하고 소화하여 아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다면 가히 종잡을 수 없을 겁니다.

       

      2. 중국의 경우는 기존의 사회학이 통하지 않는 독특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융복합 형태입니다. 오히려 독재, 엘리트 직접 선정 방식이기에 전복될 때까지는 차라리 우월한 디자이너 베이비를 더 잘 관리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인권은 생각하지 않는 수준에서 통제하면서도 엘리트 계층에 직접 배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3. 저는 우선 유대인의 배후 인종 등극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대 자본을 연달아 불려서 아예 주도권을 뺏는 건 그저 우연이나 운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지능에는 IQ보다 훨씬 많은 영역이 있고, 한국인이 우수한 영역은 시험에 통과하고 특정 실무/직무를 훈련받은 대로 우수하게 수행하는 것이지 고등학생이 창의력과 직관, 집요한 자율 연구력으로 저가 암검사 기법을 개발한 경우의 지능은 평균적으론 약하다고 봅니다. 반면, 디자이너 베이비는 유대인의 장점, 한국인의 장점은 물론 전방위적으로 우월할 거라는 가정입니다. 그리고 그 우월한 지능으로 X+1 세대는 더 우월하게 만들겠지요. 인공지능이 지속적으로 자기학습하면서 진화하는 걸 유전자 생물학적으로 좀 느리게 수행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배후 인종 등극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 1.도태된 이론에 대해서는 참고수준정도에서 끝날거라는 것에 대해 동의합니다.

         

         

        2.제가 말씀드렸던 부분들이 사회적 모순들의 심화인데 중국 또한 부르주아와 노동계급간의 계급형성이 되어있기에 말씀대로 엘리트 계층의 생물학적 정당화와 같은 일들이 이것을 촉진시킬거라 생각합니다.

         

        3. 역설적으로 우연이 필연을 형성하고 필연이 우연을 형성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운적요소로서 형성된 관념적인 요소들이겠죠. 자연형성된 타세대들보다는 배후 인종과 같은 특수한 집단형태를 향유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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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cussion

    최근 JTBC 드라마 는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부분 시청률 1위를 돌파하는 등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기존에도 많았지만, 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구조를 넘어, 복잡하게 얽힌 부부 관계를 묘사해서 더 공감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핵심이기도 한 ‘복잡한 사실’은 불륜이 들통나 이혼한 주인공 부 […]

    • 가능 하다고 봅니다.

       

      반대 입장을 읽어 보았는데, 불가능하다는말을 썼는데 일단 반례가 있는시점에서 그말은 틀렸다고 볼수있고 반대입장의 전체적인 입장은 안된다기 보다는

       

      도덕적으로 안된다는 입장같은데 정조나 책임에 관한 이야기라면 당연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또 다른 이야기죠.

       

      애초에 생물학적으로 1부1처제는 부자연스러운 행위라고도 하죠. 게다가 그런 책임문제를 제쳐 놓고 서라도

       

      서구 유럽권에선 불륜이나 외도가 전혀 아닌 예로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3인커플이 꽤 존재 합니다. 영화와 책으로도 있는거로 알고 있고요.

       

      동성의 사랑으로 가면 더 복잡해 지는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두명이상의 사랑이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고 살고있는 시대 입니다.

       

      결론 배려가 없는 외도적인 사랑은 잘못 돼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다인커플은 존재한다.

    • 사랑이란. 사랑은 감정의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잘 압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죠. 양심이 그러하듯이 말이죠?

      그러니까 사랑이란 마음대로 절제-조정되는 것이 아니긴 합니다만.

      그래도 도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듯이

      이 사랑에 있어서도 도덕이라는 것이 무너진다면.

      즉 난 ‘너만을 사랑해’ 이렇게 말한다면.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가 허용되기도 어렵습니다.

      도덕이 무너진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가 존재하려면. 이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랑과 양심은 양립가능한 것이여야하지 않습니까?

      만약 메이스톤이라는 남성이 엘리스라는 여자를 공중정원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서 한 눈에 반했다고 봅시다.

      그래서 메이스톤이라는 남성은 엘리스라는 여성에게 다가가 “제 구혼의 반지를 받아주십시오. 당신은 제게 충분한 매력을 지니신 여성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여성이 나타납니다.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이.

      그러고는 메이스톤에게 말합니다. “오빠, 여기서 뭐해?” “설마, 지금 이 여자한테 내가 준 반지 이 여자에게 주려는 거야?”

      자. 그럼 여기서 메이스톤은 도덕성을 상실하고 두 여성모두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게 됩니다. 두 여성이 모두 둘다 폴리아모리에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아뇨 그것이라 할지라도 이 사랑은 유지-전위되기 어렵고 결국엔 상실-소멸의 길을 저벅저벅 걸어가고 말테지요.

      여기서 도덕은 상실이 이루어지고.

      사랑은 무너지고 맙니다.

      사랑이란 여러 형태가 있긴 마련입니다만.

      그것은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이고.

      현실계로 넘어와 물질계로 넘어와

      판단하게, 겪게된다면,

      결론적으로.

      폴리아모리는 지극히 유아론적인, 이상적인, 유토피아적인 이론이라고 결정지을 수 있게됩니다.

    • 사랑이 사람의 행복의 필수인가 아닌가 하는점을 생각해보면 절대로 필수가 아닙니다. 실제로 밥을 못먹으면 굶어죽겠지만 잠시 사랑을 못한다고 갑자기 급사하지 않지요. 만약 그렇다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연애를 안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다 병원에 집단으로 실려가서 코로나사태마냥 정부에서 발표도 하고 했겠죠…

      연애는 삶이 안정되고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상위의 행위입니다. 요컨데 그것을 지탱하는 삶이 탄탄하다면 1억명을 동시에 만나든 말든 개인의 자유겠지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자기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이 도대체 비율적으로나 몇이나 될까요? 애초에 사랑할 자격도 없고 사랑해서도 안되는 비성숙한 남녀들이 그저 조금 외롭다고 한심한 자기 인생에 타인을 끌어들이는 그 행위를 ‘사랑’이라고 표현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애초에 사회에서 말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인가요 아니면 ‘기생충’인가요?

      세상에 나돌아다니는 수많은 연애소설, 연애드라마 등등등이 사랑이 아니라 기생을 그저 아름답게 포장했을뿐이라고 봅니다.

      진짜 사랑이라면 타인이 뭐하러 관여하나요. 그들의 문제고 그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면 말그대로 사회적 문제지 사랑문제는 아니니까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상하고 비건전한 관계까지 사랑이라 억지로 인정하는 가식된 현대인들의 대범함이 변해야 해결될 문제입니다.

      • 제가보기에 zkftpfm 님은 중재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찬성인지 반대인지 의견방향성조차 알 수 없는 글이라 보여지네요.

        그저 사랑에 대한 개인적인 ‘사견’을 펼친 꼴 밖에 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해결책 없는 대안같지도 않은 대안 내놓으신 것 같고요.

    •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이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보다 나은 dna를 우선하며, 판단 하에 사랑이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겠죠. 만약, 판단으로 사랑이 가능하다 해도 둘

      이상을 동시에 사랑할 순 없겠습니다. 제시된 것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판단이니까요.

      때문에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문제는 아무래도 확실한 답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일반론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일단, 저는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일단 ‘사랑’이라는 것은 비단 사람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인상깊게 읽은 책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고, 자신이 즐겨하는 게임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며, 영화 HER에서 볼 수 있듯 실재하는 지 알 수 없는 인공지능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이 토론의 주제는 이런 포괄적 의미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또한 그들의 애인이 자신보다 일을 더 사랑하는 것에 질투를 느끼는 것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질투 가능성’ 만으로도 이 토론 주제에 위 사실을 끌어오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중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딱히 뭐라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정에 좀 더 충실하라는 말을 하지만, 지금 이 토론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강도 높은 비판은 이루어지지 않는 편입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향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와 크게 다른 것입니까? “너는 나 대신 일에 그렇게 에너지를 쓰고 감정을 소비하는데, 나는 그 대상이 일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너랑 나랑 다른가?”

       

      다만 여기에서 제가 따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게 줄 체력과 감정을 소비하는 제 애인은 일단은, 어쨌든, 제가 일을 좋아하고 에너지 쏟는 걸 떠나서 제겐 나쁜 사람 아닙니까?

       

      나쁜 사람이라고 충분히 사료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게 너무도 큰 상처가 된다면 저는 그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고백하는 사람을 차는 사람은 그 사람의 고백을 왜 거절했을까요? 그 사람과 사귀고 싶지 않은 어떤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위 일은 충분히 결격 사유가 되어 헤어질 수 있습니다. 즉, 두 사람을 좋아하는 내 애인을 내가 헤어지자고 해도 이는 정당화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아니라 사람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감정 쏟는 건 쫌…” 그게 정말 마음에 안든다면 헤어져야죠.

       

      정리하자면,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임의의 본인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 한가득이라 농도 진한 커피에 물을 타는 듯합니다. 하지만 순해져 아메리카노가 된다면 많은 사람이 마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습니다.

    • 윗 분의 말씀대로 사랑의 방식은 어떤 형태이든 존중받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윗 분들이 폴리아모리 성향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섞일 수 있을까에 대해 적어주신 것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두 집단이 서로 분리되어 섞이지 않은 것이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 폴리아모리스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방식을 내려놓아야할지, 고수할지에 관한 것일텐데 서로가 아무리 성향을 억제한다 해도 두 성향의 충돌은 현실의 도덕적 문제에 의해 사랑의 쾌락이 아닌 고통으로 더 많이 다가올테니 상식으로, 사회적 통념으로써 두 집단을 분리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은 추후에 과학기술의 발달로 두 연인중 한 사람의 성향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다른 인권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류하는게 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토론의 방향은 폴리아모리스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것인지로 나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어떤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야하는지, 또는 두 성향이 최소한의 도덕적 문제로 섞일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통념은 어떤 것이 있을지, 어떻게 발달시켜야할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관계를 갖는 사람들의 합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

       

      남이 뭐라고 하던 합의한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만얀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를 끊어내고 자신과 취향이 맞는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 될것이다.

       

      내 성향은 1:1

    • 가능은 하다. 다만 사랑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기존 상대에게 공개는 물론 허락을 구해야한다.

    • 두명을 사랑하는건 가능하지만 상대방을 속여가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건 잘못된거죠

    • 사랑이란 서로를 존중해주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2명 이상의 사랑은 서로 존중하지 못하면 불륜이지만, 존중해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라 믿습니다. 무엇이든 서로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사랑의 깨어짐은 불가피 할 것입니다. 서로 맞는 상대를 찾아가 행복한 관계를 맺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라 생각하며, 혹은 피할 수 없다면 설득을 하거나 자신을 의견을 바꿀 마음이 없다면 사랑을 이어 나가기 힘들다는 징조이므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 헤어지는게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 이 문제는 찬성/반대로 결론날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명 이상의 배우자를 갖는 제도를 합법화시킬 것인가? 라는 주제라면 모를까, 인간의 감정에 대한 문제에 찬반대를 해봤자 그 감정이 생겨나거나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게 가능한가, 그것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가능할 수 있고 누구는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개인이 누구를, 몇 명이나 사랑하는지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개인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선,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 주고 받는 사랑의 양이 비슷하다면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총량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가진 사랑의 총량이 무한 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없고 수치로 표현 가능하다면 100으로 볼 수 있겠지요.

      똑같이 사랑한다면 50:50 으로 분배가 가능합니다.

      50이라는 사랑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처럼 똑같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면 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50:50 이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50이라는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죽을 만큼 100이라야 사랑이라고 표현한다면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사랑의 기준은 최소 80 이상은 되어야 해서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한 사람은 정신적 사랑의 대상으로 보고,

      다른 한 사람은 범죄와의 전쟁 하정우 대사 “그 여사장이 니 좆집이가?”처럼 완전한 육체적 대상으로 보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퉁 쳐 버린다면 두 명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엔조이”라는 성인 사이 널리 보편화된 용어도 때로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바뀔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게 사랑이었는데, 사랑만 할 뿐인데 사랑하는 사이라는 착각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굳이 용어의 명확화를 안 해도 사랑 구분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가치가 요즘 시대에 많이 무뎌지긴 했기에 경험상 난봉꾼도 사랑이라고 표현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있지만,

      소설이 허구이긴 해도 괜히 로미오와 줄리엣이 시대를 뛰어넘는 오랜 명작은 아니겠지요.

      아마 로미오에게 2명의 줄리엣이 있었던지 아니면 그 반대라도 고전이 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에, 사랑에도 class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차가 2대가 있는데 둘 다 사랑한다고 해서 동시에 2개의 차를 몰 수는 없 듯, 본인이 그 사람을 사랑하거나 생각하는 시간 분배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2대면 관리가 어렵죠. 적당히 관리해도 사랑이라면 사랑인 것 입니다.

       

      전 일부 다처제는 지지하는 편입니다. 혼자 놀 것 다 놀고 돈 펑펑 쓰다가 결혼할 때 되어서 갑자기 착한 사람 코스프레하며 너만을 사랑해라고 운운하며, 본인이 짊어져야 할 경제적 어려움을 나누며,

      그것도 나중에 능력이 안되어 경찰 센싱도 안되는 가정 폭력으로 번지는 뻔 한 순환 고리 때문에 능력 되는 사람이 여러 처를 두는 것은 이해를 합니다. 제가 아는 일부 다처제 국가의 남편은 한 사람만

      서운하게 할 수 없게 끔 문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선물을 하면 모두 똑같이 해야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만 일부다처제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경제적 부분이 아니라 너무 잘 생겼고 여자들도

      거기에 만족하면 돈이 없더라도 서로 win-win 하는 것이겠죠.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은 class가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본인이 경제적으로 부족하면 진심으로 채우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컴퓨터에 3D 게임 2개 동시에 돌리기 힘듭니다. 사랑이라는 용어를 다양하게 쓰며 변명해도 되겠지만 이런 주제는 사실 용어를 명확하게 하고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죠. 거의 안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 사랑에 대한 생각을 왈가불가 할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중립입니다. 다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 사랑이 상대적으로 절대 질량이 커지게 된다고 가정하면 다른 가정이 되죠

        논리적으로 부족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생겼다 없어지는데

        우리가 사랑을 소유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소유하지 못했기에 제어를 못하고

        이성으로 제어를 못합니다.

        사랑에는 아마 발산하는 조건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 알 수도 없다가 갑자기 생기고,

        이 후에 알았다해도 소유를 안해 조절이 불가능합니다.

        이중인격처럼 성격을 바꿀수 없는 뿐더러 다인커플은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빌리면,

        상황이 이질적이라 생각이 어려울 뿐이지 상식적으로는 안되는 것 “같으면서” 해버린, 비극적인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약한 버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말 상황이 이질적이라 그렇지, 상식과 자신이 반대로 나가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보세요.

        이런 상황은 정말 역지사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비난은 옳지 않아요

    • 사랑의 정의란 무엇인가

       

       

      저차원적인 사랑을 말하자면, 이성에게 느끼는 성욕에 기반한 관심과 호감 (동성애, they 소수성애자들도 비슷한 원리)일 건데, 고대시대부터 인간이 느끼는 성욕이나 소유욕이 딱 하나의 대상에게만 있지 않고 취향이 다양한 바 권력이 있되 도덕적 기준은 약했던 상황에서 보면 모계사회에선 여왕이 여러 남자를 거느렸고, 부계 사회에선 마초적인 리더가 여러 여자를 거느렸습니다. 하지만 특히 권력자가 매력적인 이성을 승자독식하고, 그로 인해 우수한 자녀도 여러 갈래로 나와 분파 싸움이 끊이질 않으므로 사회 통념적으로 봐도 일처일부, 일부일처가 적합할 겁니다. 현대인이 이렇듯 여러 이성에 관심 있어하는 건, 고대 시대 때부터 흔히 있었던 얘도 가지고 싶고 쟤도 가지고 싶은 다양한 취향과 성욕, 호감 충족에 대한 원시적인 욕구에 순응하는 겁니다. 고대 시대에는 가진 자나 권력 있는 자가 그랬다면, 지금은 자유로움과 각자 개개인의 매력에 기반해서 그러는 성향이 더 강하죠.

       

      고차원적인 사랑을 말하면, 동물적인 짝찟기나 그저 호감이나 느낌에 끌려 여기저기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진정 인격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까워져 서로에게 단계별 암묵적 계약을 충족하는 걸 말합니다. 연애라 함은 충성과 일편단심, 애정과 관심, 그리고 의리 등이 가정되고 가족을 형성하는 결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죠. 그게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구태연한 구식이자 형식이 아니라 가장 집단지성적으로 볼 때 인간에게 적합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은 거죠. 애초에 유혹을 받아도 한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진짜 사랑일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헤어지거나 이별해야하는 거지, 적절히 타협해서 2번째 사랑을 키울 명분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잘 맞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짜 고차원적인 사랑이라면 애초에 여러가지 우수한 이유로 인해 몰래든 당당하게든 2번째 짝을 만들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20년이 지나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한 개인인데, 지속적으로 깊어지고 이해를 더해가는 게 아니라 그저 동물적인 끌림으로 한 눈을 파는 건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만 찾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고로 포스트 모더니즘 및 가족의 가치가 무너진 유럽에서 미완성적으로 수입해온 폴리가미, 사랑은 2개 이상일 수 있다-등은 진보의 가치 아래에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고차원적 사랑과 가족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욕구 정당화이자 저차원적인 사랑이 인간의 전부라 가정하는 행위입니다. 예로부터 여성편력, 남성편력이 있어온 사람들은 윤리에 상관없이 여러 이성들을 거느리며 그걸 자랑처럼, 트로피처럼 주변 친구나 지인들에게 자랑해왔습니다. 자신의 매력을 공증 받았다는 자랑 같은 것이죠. 단지 그 때는 적어도 들키지 않으려 하거나, 나쁜 남자/여자 행세를 하며 강제 합의를 구했다면, 이제는 합리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에 기반해서 저차원적 사랑도 존중 받을 사랑이다-라고 주장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정당화하려 하지말고 저차원의 욕구라는 걸 인정하고, 마치 진보적인 의식인 거라는 냥 포장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 고대가 이성이 있는지 현대가 이성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성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성이 만약 존재하는 거라면 우리가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념을 만들어 내서 이해를 해내야 했던 것 뿐입니다.
        이성은 그런데 왜 만들어졌냐면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함이죠.
        하지만 3T이론에서는 동성애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오히려 재능있는 인재가 몰려 산업이 발달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되었습니다.
        즉, 개방적인 곳으로 인재가 몰린다는 것이죠.
        만약 두가지 선택지를 극단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가난하고 도덕적인 것- 혹은 -부자이고 본능에 치우치는 것-
        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보통 후자를 선택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은 이것이기 때문에
        개방적인 것이 더더욱 사회의 유지에는 더 옳은 것 일지도 모르는 것 입니다.
        개방적인 것은 당연히 일인 커플과 다인 커플 중 다인 커플일 것이고요.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처럼 개방적인 극소수가 인재를 이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도덕적인 측면에서 또 이유를 반박하자면 있습니다.
        다인 커플은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서로 자기들 끼리 사랑할 뿐이지 사회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극소수 입니다.

        그리고 보통 극소수를 -비정상-이라고 칭하고 -정신병자-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다인 커플도 “굳히” 말하자면 -정신병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병은 사실 소수로 존재할 뿐이고, 소수이기에 탄압받는 것이지 본질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범죄로 이어질 때 이지만,
        일반커플과 다른 위험도를 가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신병자-는 이름만 정신병자일 뿐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기에
        ‘정신병자’라는 용어는 분류하는 용어에 가깝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 속에서 우리는 그들은 -비정상자-, -정신병자-가 아닌
        -소수-지만 -정상적인-으로 다시 재정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존중받고 이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이 하나의 살아있는 -정상적인- 사람일 뿐인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인커플을 비난할 여지는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없으며,
        만약 불편을 갖는다면, 예로부터 없는데도 정의해 왔던,
        -비정상자-, -정신병자- 등의 용어에 얽매일 뿐입니다.
        얽매인 생각은 딱딱하기에 수용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동적이고 사실적인 생각만이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발전에 도움이 되고,
        그것이 인류에 큰 이바지가 되어서 현실에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반대 의견은 고정 관념에 의한 편견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 제가 두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가정입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전체 사랑 A만큼이 있습니다. (단, A는 상대적 크기, 상황과 때에 따라 실제적 크기는 계속 변함)

        누군가에게 사랑을 A만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다음날 이 사람에게 A/2만큼의 사랑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자신이 다른 더 사랑할 수 있는 A/2는 어디로 증발했을까요?

        그런데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A/2는 증발하고 없습니다. 따라서 제 사랑 전체 A는 제가 소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제가 조절할 수 있는게 아님을 의미합니다.

        물론, 제가 의도적으로 더 좋게 바라볼려고 노력해서 사랑을 증가시킬 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 등에 의해 의도치 않게 어떤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이해쉽게 예를 들자면,

        제가 X,Y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A만큼의 사랑의 크기만을 전체로 할 수 있는데

        A/2의 사랑을 X에게, A/2의 사랑은 Y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크기는 적어도, A의 상대적 크기는 계속 커져 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증발해버렸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그건, 우리가 이유가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손안에 사랑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존재하지 않았다가 어느 조건에 의해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우리의 경험에서 파생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이성”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자신의 조건을 몰랐다가 발산하는데 어떻게 제어합니까?

        자신이 조절을 할 수 없는 일로 인해 하게 된 사람을 –저차원–이라는 비하를 사용하시는 것은

        잔인한 발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극의 사랑에서 동정을 느끼며 수긍합니다.

        그렇듯이 상황만 어색하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이 사람 입장에서는 비극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사랑은 절대 조절할 수 없어요.

      • 제가 두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가정입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전체 사랑 A만큼이 있습니다. (단, A는 상대적 크기, 상황과 때에 따라 실제적 크기는 계속 변함)
        누군가에게 사랑을 A만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다음날 이 사람에게 A/2만큼의 사랑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자신이 다른 더 사랑할 수 있는 A/2는 어디로 증발했을까요?
        그런데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A/2는 증발하고 없습니다. 따라서 제 사랑 전체 A는 제가 소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제가 조절할 수 있는게 아님을 의미합니다.
        물론, 제가 의도적으로 더 좋게 바라볼려고 노력해서 사랑을 증가시킬 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 등에 의해 의도치 않게 어떤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이해쉽게 예를 들자면,
        제가 X,Y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A만큼의 사랑의 크기만을 전체로 할 수 있는데
        A/2의 사랑을 X에게, A/2의 사랑은 Y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크기는 적어도, A의 상대적 크기는 계속 커져 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증발해버렸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그건, 우리가 이유가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손안에 사랑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존재하지 않았다가 어느 조건에 의해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우리의 경험에서 파생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이성”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자신의 조건을 몰랐다가 발산하는데 어떻게 제어합니까?
        자신이 조절을 할 수 없는 일로 인해 하게 된 사람을 –저차원–이라는 비하를 사용하시는 것은
        잔인한 발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극의 사랑에서 동정을 느끼며 수긍합니다.
        그렇듯이 상황만 어색하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이 사람 입장에서는 비극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사랑은 절대 조절할 수 없어요.

      • 같은데 두개가 올려졌네요

        보셨다면 두 가지 모두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 1. 개방과 산업의 발전이 당연히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가정을 3T이론만으로 두기에는 굉장히 통계학적 거리가 멉니다. 마치 습도가 높으면 전기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굉장히 거리가 먼 주장과 동일한 선상이라고 봅니다. 반대로 산업이 발달하고, 문명이 고도화되었기에 마침내 소수자도 말을 꺼낼 ‘여유’가 생겨난 거 아닐까요? 해당 논리로 따지면 현대 사회에 나타난 온갖 문제와 폐해도 동일하게 ‘산업 발달, 문명 진척’과 상관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당연히 그 덕은 아니겠죠?

         

        2. 극단적으로 문명이 발달했을 시기인 1차~4차 중에 소수성애자가 직접 산업 발전, 문명 발전에 기여한 경우(발명자, 기업가, 정치인 등 진짜 기여공로가 있는 사람) 중 대부분은 은폐한 게 아닌이상 일반 이성애자였습니다. 오히려 극소수 중의 극소수가 소수성애자면 관심을 받아 해당 커뮤니티에서 추앙을 받았죠. 희소성이 있으니까요.

         

        3. 본 토론은 폴리아모리에 대한 논의이며, 소수성애자 중에서도 얼마든지 (동성애자 they성애자 양성애자) 충성스러운 1대1 관계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소수성애자 중에서도 소수성애자인 겁니까, 말씀하신 이성이란 허구에 빠졌지만 동시에 개방적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겁니까? 이렇듯 혼란을 야기하는 이유는 소수성애자로 한 그룹을 묶어버려 PC나 진보적 자유생각론으로 끌고 가기에 그 내부에서도 무조건 모순이 생기는 겁니다. 애초에 진보자유진영이면, 그 내부에서 어떻게 정의하든 뭐가 맞고 그르고를 어떻게 정하겠습니까?

         

        4. 보수적인 기준과 최소한의 윤리, 그리고 인간 간의 상호 존중이 있었기에 자유로운 행위와 사상이 활동할 만한 기본적인 생태계가 확보된 겁니다. 의견에 대한 상호 존중이라는 기본가치가 없었으면, 자연스럽거나 대중적인 반응으로 인해 (예: 러시아) 혐오 받던 소수성애자가 어떻게 처음 발언을 하고 커밍아웃을 했을까요? 이성이란 것을 허구로 만들고, 가치라는 것을 허구로 만들면 애초에 그런 자유로운 발언과 사상이 등장할 기반마저 부정하는 겁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가치와 기준만 수용하는 것도 매우 편협한 행위입니다.

         

        5. 동성애자, 소수성애자 전체를 논하는 토론이 아닙니다. 추가로 예를 들어드리면, 조선 시대에 왕들이 여러 혈통을 낳은 결과 유산상속에 관하여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려졌습니까? 소수성애자로 존중 받기에는, 폴리아모리는 지나치게 사회파괴적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동물적 쾌락주의를 추구하기에, 또 나아가 그걸 정당화하기에 나온 이론일 뿐이라 봅니다.

      •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서 묻겠습니다. 고차원적 사랑과 저차원적 사랑을 구분하는 척도는 정확히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두 번째 의견에 대해 답변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토론의 장에서 마음껏 의견 개진을 하는 것이지, 제 권한을 넘어서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직접 정죄하거나 핍박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수용을 강조할 수 없듯, 저도 개인의 책임에 추구할 순 없죠. 하지만 저 개인이나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선 의견을 넘어서서 주장할 수 있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1/2의 사랑을 공급하는 묘사는 사랑총량제란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개인의 내부 환경 (심리, 건강) 외부환경 (재산, 컨디션, 하루의 경과 등)이 전부 다른데 하루하루 어차피 다른 총량을 어떻게 쪼개서 공급합니까? 더불어서 사랑해주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의 완성 조건이 아닙니다. 바라지 않고 준다고 하는 것이 가까운데, 아무런 기대 없이 친구를 위로하고 친구를 돕는 것, 혹은 귀여운 아이를 보호하고 엄마를 찾아주는 것 등은 본 토론에서 얘기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본 토론은 기본적으로 이성관계의 사랑을 논의하며, 연인, 부부 등을 논할 때 거론하는 그 사랑을 말합니다.

       

      말하신 원리 대로 당연히 엄마가 딸 이뻐했다가 아들 이뻐했다가 할 수 있죠… 그건 보편적 사랑 및 애정이라고 하는 겁니다. 본 토론에서 논의되는 사랑은 본질적 고차원 사랑을 애기하는 것이라고 보며, 그렇다면 사랑의 표현이나 사랑을 주는 그런 행위나 실적이 아니라 본질적인 정신과 마음, 측량할 수 없는 고차원의 에너지 등을 얘기하는 것이라 봅니다. 단지 신체 반응, 뇌 반응이라고 보기엔 긴 역사 동안 인류는 수없이 사랑에 특별한 반응이나 결과를 드러냈으니 그저 뇌의 생화학 장난이다-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그런 도파민 분비는 과학적으로 2년이 최대임에도 충분히 인간은 그 몇십배의 기간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내가 유혹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어 증발하지 않던 그것이 내가 원래 충분히 고차원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면 자제하고 교정할 수 있는 수준이 진짜 사랑의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저는 사랑총량제를 긍정한 적이 없습니다.

        0이 될 수도 1이 될수도 100이될 수도 있습니다.

        A=0=1=1=100=1000=무한대 이런식으로 작아질수도 커질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의논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가정한 사랑 총량제를 부정하신다면,

        사랑의 전체 양은 0도, 1도 -1도 되지 못한다.

        즉, 사랑 자체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니 존재 못하는 거라고 하시게 되는 꼴입니다.

        따라서 사랑의 총량을 상대적 크기로 지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나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나누지 않아도 아무렇게나 나누어져도 상관없습니다.

        나누어진 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랑이 A와 B와의 사이, 즉, 이인 커플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다인커플이여도 아니여도 사랑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지적한 것 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음대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힘들지도 모를 사람들을,

        비난하고 반대하는게 도리적으로 옳은가, 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다인커플에 대한 이야기는 도덕으로도 정의되어 있지 않은

        도덕적 본질을 넘어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다수가 소수를 이해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이야기 해본것 뿐입니다.

         

      • 그리고 저는 3T이론에서 소수성애자가 이익을 이끌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소수성애자가 개방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다.->타인보다 매우 수용도가 높았다->천재들은 또라이적인 성향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잘 수용했다.->결과적으로 소수성애자의 개방적인 성격이 천재들의 적응을 이끌었다.->소수성애자가 많이 분포한 지역은 발전했다.

         

        통계학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닌, 상관관계를 중점으로 이야기한 것 입니다.

        그리고 통계학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상관관계를 부정한다면, 그런 식으로라면 모든 심리학을 부정하려고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심리학을 이미 수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통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계는 과학적이고 사실입니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사람을 두고 하는 실험이나 설문이 아니라 더욱 정확합니다.

        사람에게 직접 시키면 더 잘 보이려는 사람의 습성 때문에 신뢰성이 살짝 낮아집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3T이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편견을 버리고 “개방적인”을 수용하면 더욱 발전하는 이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있지도 않은 도덕을 우리를 “지키는” “규칙” 이상으로 쌓고,

        어른들이 어릴 적 알려준 어른들의 사고방식이 잔재해 그것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틀렸습니다.

        그리고 소수성애자에 대한 내용도 그런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인커플이 될 수가 없다고 해도, 그들을 핍박하거나 비난할 이유, 경멸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 이였던 것입니다.

         

  •  

    discussion

    2019년 당시 9세였던 김민식 군은 스쿨존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어린이 교통사고를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단속 카메라와 방지턱 설치 의무화’와 ‘운전자의 안전의무 위반 시 처벌 강화’를 위한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발의되었고, 2020년 […]

    • 악법입니다.

       

      반대의 주장인 판사의 재량으로 문제가 없다면 무죄로 판결을 낼 것이다 라는 주장

      근거로 한문철 변호사가 들고나왔던 실제 판례에서 보시면

      봉고차 사이로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를 제한속도를 지키면서 쳤을 때도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법을 만들었는데 그걸 판사의 재량에 맡기는 순간부터 법이 아닙니다.

      “어린이 안전에 유의”같은 건 가치판단의 영역이라 가치판단이 들어가야하는데

      거기서부터는 증거재판주의가 무너지는 겁니다.

      법이 그걸 막을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죠.

      판사의 재량에 맡기는 영역은 거의 없어야 제대로된 법인 겁니다.

       

      증거재판주의가 왜 그렇게 욕을 먹어도 중요하게 여겨지는데요.

      공권력 앞에 개인이 저항할 수 있는 마지막 법적인 수단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실현할 법적인 제도인 거라서 그런 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증거없이 판사의 재량으로 결정해야하는 부분이 크면 클 수록 악법이기 때문에 악법이라는 겁니다.

    • 법을 집행하는 국회의원들이 감정선동으로 그런거 생각도 안하고 시행했으니 그렇지, 멍청아 덕분에 119랑 경찰차도 민식이법 지키느라 범죄현장 가는거 지연되게생김, 개 헛소릴하네

    • 민식이 법은 우선 악법입니다. 처음에는 민식이 부모의 말대로 아이가 지나가다가 달려가던 차에 치여 사망한 줄 알았습니다. 대개의 여론이 이러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발단은 민식이 엄마의 손짓과 더불어 아이가 43km/h의 속도로 주행하는 차가 아닌. 즉, 민식이 부모님의 주장과는 상반,상보,반대되는. 23km/h 의 속도로 주행하는 차에 충돌해 아이가 사망에 이르른 운전자 과실은 사실은 매우 적은 사건입니다. 여기서 더욱 더 나쁜 점. 민식이 부모님은 이를 여론에서는 아이가 억울하게 죽은 둥 70km/h의 속력으로 주행하는 차에 부딪혀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여 약 7억원에 달하는 사망보험금을 가해자측에 요구했으며. 이를 극회의사당까지 가서 울음을 보이는 둥. 국민을 기만해 왔으며 또 나라를 우롱해왔습니다. 이는 대단히 가해자에게도 우리 국민들에게도 기만을 해온점 악법인 이러한 점을 들어 민식이 법은 악법임을 다시 한번 더 강조드립니다. 그리고 본질적으론 법이란 것은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대다수가 동의가능한 사안이 성문화되어야만이 법이라고 그나마~ 그나마~ 불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그런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사법부의 2차적인 국민에 대한 우롱이며 기만입니다.  이는 민식이 법은 배후의 세력이 조작하려한 작금의 현대판 사사오입개헌 OR 마피아식 좆지랄이라고 부르고싶네요. ㅋㅋㅋㅋㅋㅋ어쩌라고오~~~~

    • https://namu.wiki/w/%ED%8A%B9%EC%A0%95%EB%B2%94%EC%A3%84%20%EA%B0%80%EC%A4%91%EC%B2%98%EB%B2%8C%20%EB%93%B1%EC%97%90%20%EA%B4%80%ED%95%9C%20%EB%B2%95%EB%A5%A0/2019%EB%85%84%2012%EC%9B%94%2024%EC%9D%BC%20%EA%B0%9C%EC%A0%95/%EB%85%BC%EB%9E%80?from=%EB%AF%BC%EC%8B%9D%EC%9D%B4%EB%B2%95%2F%EB%85%BC%EB%9E%80

       

      https://namu.wiki/w/%EC%B6%A9%EB%82%A8%20%EC%95%84%EC%82%B0%20%EC%96%B4%EB%A6%B0%EC%9D%B4%20%EA%B5%90%ED%86%B5%EC%82%AC%EA%B3%A0%20%EC%82%AC%EB%A7%9D%EC%82%AC%EA%B1%B4

       

      두 자료에서 볼 수 있듯이 사고차량은 규정속도 미만으로 운행도중 민식이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런데 민식이 부모님은 사고차량이 과속했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건 처음에 민식이 부모님이 슬픔과 충격때문에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 이해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나무위키에 따르면, 사고원인에 대한 부분들중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 그 보호자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운전자의 인권을 유린했다. 특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좌우를 살피고 차량이 오는지 확인하고 건너야 한다는 건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 수칙이다. 하지만 보행자의 아빠는 보행자가 좌우를 살피고 천천히 걸어갔다고 주장하였지만 민식 군은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보행자는 옆도 보지 않고 동생 손을 잡은 채 뛰어가다 사고를 당했다. 다시 말해 민식이 아빠는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외에도 기존의 30km 발언도 허위로 밝혀졌으므로 이것만으로도 해당 사건의 가해자는 저지른 과실에 비해 과하게 욕을 먹은 것이며 특히 유족 측이 이런 거짓말로 전국민을 속였으며, 운전자의 인권을 침해했다.’ 

       

      횡단보도를 건널때에는 멈춰서 자동차들이 정지하는지 살피고 건너야 합니다. 하지만 민식이는 그런것도 생략하고 무작정 뛰어들어 안타깝게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직 어린 민식이가 그걸 다 기억하지못해서 실수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그런 실수가 나오지 않도록 부모가 잡아줘야합니다. 자신의 자녀가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민식이 부모는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았으며, 결국 그 결과로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식이 부모는 운전자를 거짓말로 매장시키려는 행동을 보이고 온 국민을 속이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으며, 마치 유가족이라는 신분이 VIP 신분인듯한 행동을 보여 세월호 유가족과도 똑같이 유가족이라는 신분이 벼슬인 듯한 행동을 했습니다. 정상적인 유가족이라면 민식이 부모는 경찰 조사가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민식이를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인정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 아들, 딸을 잃은 유가족이라도 지켜야 될 선이 있습니다. 민식이 부모는 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어버렸습니다.

       

      • 저도 이 말에 동의합니다. 애초에 법원에서는 규정속도가 넘지 않았음에도 민식학생 부모님의 슬픔과 충격이 있더라도 이것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갔어야 하였고, 요즘 초등학생들은 스쿨존에 오는 차들에 일부로 받아서 돈을 뜯어내는 등 법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챙기는 등 현재 민식이 법에 허술한 점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 악용한다면 악법이 맞겠죠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일명 민식이법 놀이가 유행이 라고 합니다.

      영상을 보니.. 참으로 심각합니다.

      놀이 하다 다치게 된다면 증거 없는 운전자 들은 억울하게 범법자 되겠더군요.

      법이 너무 대충 만든 느낌입니다.

       

    • 고등학교 영어선생도 제대로 된 내용을 모르고 민식이법 옹호한다;;;

    • 저는 반대입장입니다. 먼저, 민식이법의 취지를 보면 아무리 차도에서도 어린이보호구역 만큼은 운전자가 절대 주의를 기울이며 아이들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운전 문화 상 이러한 인식이 다소 낯설지만, 만약 시간이 지나 민식이법이 정착된다면 다음과 같은 말을 할꺼라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도 운전자들이 쌩쌩달렸대!” or “어린이보다 달리는 차가 우선인 시대가 있었다!”.

    • ㅇㅇ 님의 의견은 잘 알겠으나, 이미 어린이 보호 구역으로 지정된 차량은 시속 30km/h를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되어 있습니다. 또한 민식이법 제정 전은 어린이보다 달리는 차가 우선인 시대가 아닌 서로의 잘못을 타당한지 아닌지 살피고 처벌을 내리는 상황이었지만, 민식이 법의 제정으로 인해 사고가 난다면 어린이의 구실과 상관 없이 운전자만 처벌되는 불리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민식이 법은 운전자에게 불공정한 처벌을 가능하게 한 법이니 악법이라 불릴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 사람이 죽으면서 메세지를 남긴 경우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 입니다. 만약, 살인자 처벌에 대해 강력한 법적 제재가 있기에 사람은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는 당연히 더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너무 이상적으로 이야기 한 것 같으니 현실적으로 이야기 해 보면, 아이가 넘쳐나서 저출산 국가 존립 위기를 걱정 하지 않는 단계라면 찬성을 생각해 봤을 것 같습니다. 부주의하며, 법을 우습게 보는 사람은 1타 2피, 3피 할 가능성이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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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청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하지만 어떻게 된 심판인지 사내는 그 고통스런 소리의 얼굴을 버리고는 살 수가 없었다. 머리 위에 햇덩이가 뜨겁게 불타고 있지 않으면 그의 육신과 영혼이 속절없이 맥을 놓고 늘어졌다. 그는 그의 햇덩이를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를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 식으로 이날 이때까지 반생을 지녀온 숙명의 태양이요, 소리 […]

  •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 김정민 옮김 | 율리시즈 펴냄

    일정 기간 동안 페이스북과 이별하고 있는 누군가를 찾다가 바로 그런 결단을 감행한 나의 동료 사라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지난 여름 커뮤니티의 단절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사람들과 연락하는 시간을 점점 더 많이 할애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시간이 너무 줄어서, 또 다른 이유 […]

  • 디베이팅데이님이 새 글을 작성했습니다. 중경삼림 7 개월 전

    20여 년 전 전혀 새로운 청춘멜로 을 다시 보다

    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에선 홍콩영화가 무척 인기였다. 장국영, 유덕화, 왕조현 등 지금은 중년이 되어버린 배우들이 한국의 아이돌 스타였다. 마치 요새 한류 배우를 해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처럼.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글_유인서 기자

     

     

    왕가위 […]

  • 디베이팅데이님이 새 글을 작성했습니다. 장미의 이름 7 개월, 1 주 전

    《장미의 이름》은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50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다. 이토록 사랑받은 이유가 뭘까?
    ‘이름’과 같이 본질이 아닌 것에 집착하여 스스로와 타인을 괴롭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해주어서일까. 글 박지니 기자
     

     

    중세 교회, 진리라는 이름에 취해 타락하다

    유럽의 ‘중세’란 일반적으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 […]

  • 디베이팅데이님이 새 글을 작성했습니다. 아이리시맨 7 개월, 2 주 전

    인생의 허무와 무질서를 녹여낸 마피아 영화

    마틴 스콜세지가 자신이 제일 많이 되풀이한 영화 장르로 돌아왔다. 이제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전설적인 배우들과 거장 영화감독이 에서 마주했다.
    그들의 만남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끝없는 울림을 자아낸다. 글 유인서 기자

    사진 네이버 영화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말하라고 하면 나는 아마 마틴 […]

  • 디베이팅데이님이 새 글을 작성했습니다. 수학귀신 7 개월, 2 주 전

    오늘의 주인공 로베르트는 수학이라면 징글징글하대. 너는 어때? 수학, 좋아해? 수학이 어렵고 쓸모없다고 믿는 사람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거든.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수학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거야. 우리 함께 로베르트와 수학귀신을 만나러 가보자! 글 이소은 기자

    수학이 어렵고 쓸모없다고 믿는 너에게

    수학이 어렵고 쓸모없 […]

  • 디베이팅데이님이 새 글을 작성했습니다. 생쥐와 인간 7 개월, 3 주 전

    대공황의 모진 바람에 땅을 잃은 일꾼들이 이 농장 저 농장을 전전하며 미래도 없는 삶을 이어간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노동을 하면서 인정조차 메말라버린 뜨내기들의 숙소에서 레니와 조지는 서로를 의지하며 소박한 꿈을 키워간다. 아이처럼 순수하고 어수룩한 거구 레니와 작지만 차돌멩이처럼 야무진 조지. 이 떠돌이 노동자들은 과연 안식을 찾을 수 있을까? 신기루처럼 레니도, 둘 […]

  • 정신질환은 흔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마치 정신 장애인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듯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한다.
    대다수 시민에게 정신질환은 유령처럼 은유적, 관념적인 무언가로 치부된다. 또 운동을 하면 몸이 탄탄해지듯 정신을 집중하면 정신질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이런 몰이해의 혼돈 속을 살아가는 고통 받는 정신 장애인과 그 가 […]

  • 친구가 된다는 것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린다는 말이다. 여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빈민가를 전전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드리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부를 지녔지만 머리 외에 신체의 다른 부분은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 ‘필립’.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두 […]

  • 디베이팅데이님이 새 글을 작성했습니다. 레몬 9 개월, 1 주 전

    삶과 죽음 사이 달콤함과 시큼함

    평온한 삶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삶의 의미를 무엇에서 찾아야 할까. 인생이란 달콤함과 시큼함을 동시에 지닌 레몬.
    이따금 레몬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란빛을 보며, 위로받는 순간으로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지 않을까, 싶은.
    글 박지니 기자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순간

    여기, 외모도 성 […]

  • discussion

    지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 기업인 신일본제철이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일본은 이미 배상을 끝났다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에 3차례에 걸쳐 협의를 요청했다(2019년 1월 9일, 5월 30일, 6월 19일).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응하지 않자 경제 보복을 시작했다(6월 29일). […]

    • 뭐 우리나라가 사실상 힘이 없는 걸 어떡하겠나. 친중한답시고 눈치보느라 뭐 일본을 견제 못한다?. 뭐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럴건데요. 10년후라고 해서 한국이 힘이 세질 거라고 봐요? 지금 오히려 조용히 대화로 해결하자고 잠잠하게 나가면. 일본 국가에서는 뭐라고 생각하실 줄 아십니까.? ‘역시 조센인들은 말만 독립이지 우리의 속국이야’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지금 이게 역사 배상판결문제에서 경제제제분야까지. 역사문제가 경제문제까지 번지고 침투한 게 이게 정상적인 도라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 기업도 타격있고 그렇죠. 그렇다고 한 발 물러설 수 없거니와 앞서 설명드린 듯이 그리고 이것 또한 위에 서술되어 잇듯이 승산없는 싸움이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 쪽이 우리 쪽보다 타격이 큰 걸로 통계결과표 나왔지요? (이미 이 정도 자료는 찾아보셨으리라 사료됩니다.)그리고 이건 자존심 싸움 또한 아닙니다. 학교청소년들 사이에서나 자존심을 찾지 국가간에 자존심이란 없습니다. 국익. 그게 전부죠. 그리고 힘의 논리에 움직이는 것이 국제정치가 맞지요. 아니. 그래 단순히 말해서요. 지지도 이길지도 모르는 싸움 해보지도 않고 지레 겁부터 먹고 황국신민의 혈을 가진 조센징이란 원숭이의 이념에 굴복할 것입니까? 아니면. 지난 날의 치욕을 교훈삼아 다시 힘의 논리로 다시 한국을 얕보려는 원숭이들에게 우리민족성의 강함을 보여주어야 합니까.

    • 이젠 멈춰야 합니다. 불매운동.

    •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해 여러 사람들의 참여로 장기간 동안 불매운동이 지속됨으로써 일본에게 타격을 준 점 정말 뿌듯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불매운동이 언제까지 지속될 거라 생각하시나요? 2019년 12월 17/2019년 12월 26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불매운동이 점점 시들고 있다고 합니다. 어차피 끝날 운동이라면 국익을 위해 지금이라도 멈추는 게 좀 더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 반드시 꼭 기억해야만 하는것이 일본은 우리의 60년대서부터 아주 오래된, 매우 친근하며 훌륭한 경제파트너이며, 매우 덕좋은 우방입니다.

      과거사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 없으며, 미국과 일본은 대한민국이 꼭 같이 가야할 끈이요, 경제는 당연하고, 안보도 매우 당연하고, 정치도 물론입니다.

      특히, 미국에 관하여서는 매우 끈끈한 동맹이며, 우리에게 미국은 엄청난 은인이요, 빛입니다. 50~60년대 현 민주당의 뿌리며 조상인 공산주의 북괴 간첩인 한민당과 공산세력이 판을 쳤을때 대한민국 건국을 결사반대한 김일성의 친구인 김구를 비롯한 많은 악인들을 쫓아내기 위해 유일무이하게 확실하고 강력하게 작동한 한미동맹을 지도한 분이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님입니다. 또한, 최고와 최대의 반공투사로서 더럽고 흉악한 죄악인 공산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 전체주의, 김씨가문우상숭배, 이북의사악한교리를 강인하게, 또한 투철하게 내쫓은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님입니다. 반드시 이것을 기억해야만이 살길이며, 명백하고 정확한 근거에 입각한 명확한 사실입니다.

      • 나  친일파이다 광고하시네요

        김구선생님을 욕보이시다니 교과서에서도 반드시 실리신이분께서

        우리나라 대한독립을 이끄신 아주 중요한위인이라고 요즘초등학생,빠르면 유치원생 도 아는 내용을 친일파 자제들은 아니 친일파니깐

        막되먹은 막말하는거겠죠 이런주장은 나초딩보다 못하다 인증하는 꼴 아닌가요??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본인 재산지키는데 일조하였고 친일파 본인의청산을  하지않고 본인들을 고용했으니 좋았겠죠

        이래서 친일파 청산은 해야정당하는데 말이죠

    • 전 세계의 문제가 된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으로서는 주변 국가들과 서로 협력하여 백신개발 및 대응 방안에 대하여 모색해야할 때이므로 현재로서 불매운동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가만히 있는것보다는 이렇게라도 대응하는게 낮죠.

      하지만 이제 불매운동 멈춰야 해야 돼요.

      계속 이럴수는 없잖아요?

      우리 미래를 위해서도 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우방국이 많다는 것은 곧 국력이다. 허나 우방국은 국가간의 확실한 협력과 이익이 갖춰졌을때 성립된다.

       

      과거를 운운하며 현재의 관계를 결정하는것은 무지한 행동이나 현재의 일본은 아베총리의 당선이후 지속적으로 한국에 실이되는 정책을 시행해왔다.

       

      이는 내부적으로 많은 결점이 있는 일본이 공공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자국의 불협화음을 통일하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중국이 한국에 부정된 정책을 시행하는데 우방국으로 여긴다는것이  불가능 하듯

       

      일본도 우방국으로 맺기엔 아직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일본의 모든 정책에 반감을 가지며 외교단절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며 60년간 우리가 얻은 이익도 많으니 단절을 시행할 경우 당연하게도 손해가 더 클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등은 이어지고 있으며 아베총리의 무리한 경재제제 정책을 무산하지 않는다면

       

      아직 우방국의 관계로 맻어지기는 힘들것이다.

       

       

      경제재재를 비롯한 우리에게 손해를 안기는 정책이 무산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일본에게 우호적으로 다가갈 이유는 없다.

       

      국가간의 관계는 엄연히 이윤관계로 성립된다.

       

      일본은 한국에 경제재재를 가하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에게 손해를 안겨주고 있으며

       

      이 정책에 반감을 가져 양국에게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때에 비로소 우방국으로 진전될수 있을 것이다.

       

      그전엔 경제재재에 한해서 불매를 하는것이 맞다고 본다.

       

       

       

       

    • 일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양국간 역사적 합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역사적 합의가 선행하지 않고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역사관에 큰 혼란이 옵니다

       

      우파의 역사관이 맞는 건지 좌파의 역사관이 맞는건지

      마음 같아서는 좌파가 하는 짓이 너무나도 싫어서 우파 역사관을 지지하는데

      우파 역사관이 솔직히 말해서 더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한일 양국간의 역사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고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 국산화 국산화 거리지만 삼성같은 대기업이 돈이 없고 바보라서 그동안 국산화를 안한게 아닙니다 국산화를 해도 일본에서 사오는 것보다 효율이 안나오니까 일본에서 사들이고

      반도체를 만들고 한거죠

       

      명분이 정당하다? 북한에 좋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고 지소미아 연장을 안하는것까지 나온 한국에 대해 안보적 이라는 명분은 정당합니다

      일본입장에서도 적국인 북한이랑 친한나라의 뭘 믿고 화이트리스트 라는 혜택을 주겠습니까

    • 일단 명분으로는 일본의 잘못이 맞고 우리도 그에 대한 대처를 하긴 해야한다.

      그러나 중요한건 이것이 국내 정치로 어떻게 사용되었느냐이다.

      보아라. 우리는 고작 불화수소 하나만 국산화하였지 다른 공정에서는 아직까지도 일본의 제품을 계속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언론들은 달랑 이것가지고 우리가 일본에게 대승을 거두었네, 국산화 자력갱생의 계기네 뭐네

      하면서 정신승리를 하고 있으니…얼마나 어리석고 미개해 보였는지 모름….

      게다가 우리나라가 불화수소 생산을 국산화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수출규제 이전에도 중소기업차원에서 거의 국산화가 완료되었기 때문임.

      뭐 이 수출규제에 자극을 받아서 뚝딱 해버린게 아니란 거임.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국의 승리니 뭐니 하면서 우물안 개구리마냥 미친듯 날뜀.

      게다가 이런 사실을 말해줘도 친일이나 토착왜구네 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일본의 승리라고 밖에 안보임.

      정치적으로 사람들을 이렇게 우매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일본인이 대한민국에 독을 풀어 놓았고, 우리는 그것을 덥썩 물어 취해버린거임.

    • 저 또한 이 부분에 반대합니다. 충분히 일본에 타격을 주었고, 우리나라 또한 불매운동이 사그라드는 추세입니다. 차피 끝날꺼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건 어떨까요? 현재 우리 기업도 피해를 많이 입은 상황에 더 이상 지속하는건 우리나라의 미래를 봐서라도 무리일 것 같습니다.

    • 국제화 시대 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남양 갑질, 현기차 쿠킹호일 등… 자국민 상대로 장난치던 회사 모두 우리나라 회사 입니다. 원류가 친일파 회사인지 알게뭐람? 제품은 그냥 품질, 가격 잘 따져 보고 사면 됩니다. 일본인도 한국 제품에 대해서는 그래 주길 바란다면 똑같이 하는게 맞죠. 그리고 위안부 사건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말도 사람하고 해야지 원숭이 하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본인이 그런게 아니라 아베정권과 그 부역자들이겠죠. 하는 짓 보세요. 한국인 대부분 아베가 더 정권을 잡아주길 바랍니다. 망하라는 의미에서요. 아베 정권이 썩은 것이지 일본에서 제품 만드는 사람이 썩은게 아닙니다. 하긴 한국은 개 먹는 나라라며 한국 제품 불매 운동 하던 프랑스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아둔한 사람들의 군중심리에 낮은 품질로도 득보는 회사도 있긴 해야죠. 세상이 그런거라 중립입니다. 다만, 제품은 가격, 품질 따져 보고 사는게 맞죠.

      • 보상금 두번 받아놓고

        고개 숙이라는 거

        국제적인 관계에서는 성립 불가능 한 거임

        국가적인 감정 이전에 국제적 관계는 생각못한

        우리가 다시는 논란 안하기로 돈 받고 약속해놓고

        재판에서 우리가 돈 주기 싫으니까,

        일본 기업보고 위안부 할머니들께 보상하라고 해서 이 사단 난거임

        근데 미국 같은 나라가 이 이야기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자기들도 식민지 가해국인데,

        이거 들으면 한국이 뒷통수치고 신뢰성 없는 나라라고 생각할 거임

        결국 우리는 여기서 부터 잘못된 거임

        트럼프는 아베가 상전대하듯 대해서

        아베를 싫어하기는 커녕, 더 좋아함

        즉, 망해버림

        미국 대통령 바뀌면 조금 달라질지 몰라도 그렇다고 힐러리 측이 희망적인 것 같지도 않음

         

        그리고 우리가 일본에게 사과바란거 솔직히 걔네들 입장에서는 이렇기도 함.

        내 조상이 잘못한게, 내 잘못이냐–이런 식으로.

         

        그래서 난 일본에게 돈 받아서 애초에 구실을 만든,

        박근혜, 박정희가 나빴다고 생각함.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히 해서 위안부 할머니 보상은 커녕

        야스쿠니 신사 얘기 이제 못 꺼내게 생겼는데

        이걸 어쩌냐고ㅡㅇㅡ

        그러니까 우리가 호구같았던 거라서 우리가 잘한 건 절대로 아님

    •  

  • discussion

    최근 수술과 관련된 많은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9년 5월 CCTV 설치를 목적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는데, 그 내용은 의료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수술의 경우, 환장의 동의를 얻은 뒤 수술 장면을 영상정보 처리기기로 촬영하여 녹화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 […]

    • 1. 최근 성적인 물결이 일렁인다. 물론 이게 일렁인다고 해서 다 따를 필요는 없지만. 이참에 모든 더러운 문화는 일괄 제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뿌리 뽑는 김에 다 뽑자는 거다.

      물론 포르노라고 불리는 것들은 비가치재에 해당하므로 인류가 어찌저찌 한다고 제어, 중재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중재 되어야 한다. 이게 포르노의 마수가 의료계까지 뻗친다는 게 말이 되기나 하나?

      뭐 개별적으로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적어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미투는 마녀사냥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다.

      2. 수술에 부정적 영향이 드는 것도, 잃는 것이 더 많다.

      뭐 물론 맞는 말이다. 그걸 부정할 순 없다.

      그걸 설치 하게되면 의료계 내에서도 감시받는 듯한 분위기 속 에서 물론 (잠이와서 글이 중구난방일 수도 있다.)

      이루어지게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설치 안함으로써 얻게되는 네거티브 사이트(sight)도 엄청날 것이다. 지금 사회적으로 물의가 일렁이고 있는 것이 이런 성적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 여성들인데. 이를 거부하게 될 시 “잃는 것이 더 많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아까 위에서 은폐하면 끝이라는 식으로 설명해놓았더군요. 그것도 제도화 시켜서 법적으로 막으면 되지 않겠어요. 아까 환자의 의사 동의 여부에 따라 이것이 결정된다고 했다면은. 그 동의 조항에도 더불어 이 영상을 은폐, 조작시 벌금 구 천만원 이하 또는 징역 3년 이런 식으로 제도화 시키면 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잠재적 범죄자로 대우한다고 했는데. 잠재적 범죄자는 이미 우리 사회에 분위기 속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즉,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라는 말도 안되는 프레임이 점점 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cctv를 설치해서 우리는 잠재적 범죄자가 아니다. 라는 이런 고정관념 타파성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미 좀 그냥 사실그대로 표현하자면 이미 한국남성의 성적 이미지는 거의 뭐 바닥이라고요. 이미 더러워진 이미지. 깨끗하게 하겠다는 건데. 그게 잘못된 것이고 잃을 것이 더 많고 수술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라 한다면. 잠재적 범죄자라는 호칭속에 사는 것을 안분지족하시면 됩니다.

    • 저는 수술실 CCTV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는 첫째, CCTV 의무화로 환자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유령수술’이라는 말을 들어보신적있나요? 이는 가짜의사가 대리수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술실 CCTV 의무화는 이런 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혹시 자신이 가짜의사에게 수술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환자의 불안감을 덜어줄 것입니다.

      둘째, CCTV 의무화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도움이 됩니다. 환자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불안감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으며 CCTV 설치로 의사가 조금의 긴장을 하게 하여 의료 사고 없이 수술을 끝낼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진위여부를 판단하는데 CCTV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이유로 수술실 CCTV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아무리 수술의 위험성과 투명함을 높일 수 있지만 수술실 안에 cctv 를 설치해놓는것은 의사에게 큰 부담을 줄 것입니다. 남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수술을 잘 해내지 못할 것이고 그럼 의사의 본분을 잃게 됩니다. 만약 수술을 잘 해내지 못한다면 큰 수술은 의사가 기피하는 것들중 하나가 될것이고 우리나라의 의료진들과 환자들은 큰 불편을 겪을 것 입니다.

    • 병원의 다른 곳(응급실 등)에는 CCTV가 잘 설치되어 있으면서, 수술실에는 안됀다는 입장은 의사들의 모순임.

       

      자기를 지키기 위한 CCTV는 되지만, 환자를 지키기 위한 CCTV는 안된다는 것과 같음.

    • 저는 수술실에 ccTV 의무화에 대한 찬성 의견 입니다.

      수술실에 CCTV가 있지 안으면  수술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의사의 개인 행동등 특히 성형외과

      같은 경우 얼굴의 형태를 의도 적으로 망치는 행동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만약 의사가 수술 도중 환자가 죽거나 실수 했을때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으로 저는 씨씨티비 의무화에 대한 찬성 의견 입니다.

    • 정책이라 함은 각 국가와 문화, 시대에 맞게 적용하면 된다고 봅니다. 아직 의협의 힘이 정치권보다 강한 바 실제로 이렇게 의사를 불편하게 하는 법이 통과될 순 없을 겁니다. 굳이 성 추행과상관 없이 직무 수행하는 의사도 CCTV 의무 설치가 되면 이권 및 개인 직무에 방해를 받는다고 여길 테고, 큰 병원의 경우 카메라 기록을 통해 자신들에게 이롭기 위해서는 어차피 자발적으로 카메라를 설치하니까요. 그러니 불가피하더라도 우선은 계속 추진을 해야 합니다. 애초에 이러한 법이 제안된 배경이 견제되지 않은 의사만의 폐쇄 공간, 혹은 의사에게 웬만해선 대들지 못할 인력들과 있는 폐쇄 공간에서 벌어진 성추행, 성폭행 문제이니… CCTV 조회에 대한 시행령을 구체적으로 정한다는 가정 하에 수술실 CCTV를 의무 설치해야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의료사고에 대해서 명백한 기록이 남는 걸 싫어하는 거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 의협과 대화를 나누어 그들이 걱정하는 이권과 예민한 부분은 지켜주되 생추행,  성폭행 문제는 막게 해주는 게 적합하다고 봅니다.

       

      치료, 수술 받으러 간 것이지 자기 돈 내고 몸을 맡기러 간 것이 아닌 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겠습니까? 소수를 처벌한다고 해서 이슈화될 정도의 문제가 자정 작용으로 사라지진 않을 거구요.

    • 1. 국내에도 수술실 마취 성폭행 사건 실제로 발생함 -> 수술실에서 범죄 위험

      2. 국내에도 10년 간 미성년 포함해서 성폭행한 의사 발생함 -> 의사 도덕성은 최근 진료 거부 사태에서도 알 수 있음.

      3. CCTV가 발명된 이유는 다수가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이 시대 과학기술의 산물 -> 사회에서 잘 쓰라고 만든 것을 왜 안씀?

      4. 의학 기술은 객관화가 어렵긴 하지만 수술하지 않고 수술용 칼로 찌르고 있는 경우 객관화가 됨 -> 의학적 지식이 없어도 사람이 해선 안 될 일이 있기 때문

      5. 의학 기술이 뛰어난 의사는 CCTV를 설치해서 소명용으로 쓰는 것이 더 이로움. -> 의료 사고가 많으니 매우 뛰어난 의사의 실수 빈도수에서 사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임.

      6. 의료라는 특수 상황? 당장 형사 처벌이 두려움? -> 그래도 환자 살리려고 했다는 변명은 최근 자기 밥그릇 챙기기 사건으로 적용할 수 없음. 수술상 높은 난이도에서도 실수 없었는데 환자가 죽었다고 해서 책임 묻지 않음.

       

  • 디베이팅데이님이 새 글을 작성했습니다. 학살자 9 개월, 2 주 전

    이 사건은 단지 외모가 학살자와 닮았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진정한 야수성을 표현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일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중에서, 글 오수경 기자

    허상과 진실 사이의 거리

    우리는 수많은 예술 작품을 소비한다. 광고를 보는 것, 영화를 보는 것, 한편의 시를 읽는 것, 한 점의 그림을 […]

  • 디베이팅데이님이 새 글을 작성했습니다. 조커 9 개월, 3 주 전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쥐가 들끓는, 희망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도시에서 광대 노릇을 하며 살아가던 ‘아서’.
    삶이 천천히 그의 위로 무너져 내리자, 그는 그 아래 깔려 죽는 대신에 다른 선택을 한다.
    아서가 점점 새로운 자아에 굴복하면서 그의 삶뿐 아니라 온 도시가 혼란의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글 유인서 기자/사진 네이버 영화

    기대보다 […]

    • 전 글에서 말끔하신 단점들이 오리려 장점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춤을 추는 순간 아서는 외부에 맞춰 약을 먹고 가면을 쓰고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 자기 내부에서 들리던 음율에 따랐죠. 처음으로 어머니나 사회적 시선 등이 아닌 자신에게 귀를 기울인 시점이라 보입니다. 또란 다른인물의 단편적인 모습에서 관객은 전지적 시점에서 아서를 평가하지 않고 스스로 아서가 되어 1인칭으로 볼 수 있게 되었죠. 만약 주변인들을 입체적으로 다뤘다면 관객들은 아서를 사람 그자체의 프레임으로 그의 행동을 평가했겠죠. 하지만 철저히 아서가 보는 모습에서 주변을 다루었기에 상황프레임으로 아서의 행동을 보게되어 그저 한 개인의 특이성이 아닌 누구든 저러한 상황에선 조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티져에 나온 장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아서의 심리를 더욱 부각 시킴으로 관객이 전지적 시점이 아닌 1인칭의 아서로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만든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타인에게 수치심을 주어 열등하게 만드는 사회가 그 모든 책임은 개인에게만 돌리고 있음을 보여주는것 같았습니다. 또한 열등감을 품고 수치심이 당연해진 현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스스로가 아닌 사회적인 기대를 만족 시키기 위해 사는지도 보여주는 듯 했고요. 또한 조커가 될 사람이었기에 조커가 된것이 아닌 사회가 만들어 가는 조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던 영화였습니다.

  • discussion

    한국에서 국회의원은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직업일 것이다. 그럼에도 강력한 특권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당리당략 때문에 민생법안조차 통과시키지 않는 ‘일하지 않는 국회’에 분노한 국민들은 꾸준히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요구하고 있다. 국민소환제란,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 동의할 경우 임기가 만료 […]

    • 박근혜 대통령님의 잘못된 탄핵 당시 대부분 국민의 정치적 입장이 단체적으로 극좌경화된 것과 같이 언젠가 또 그렇게 된다면 악용할 여지가 매우 많습니다. 그리고 해고해서 다른 사람 채용한다 하더라도 달라진다는 보장 전혀 없습니다. 이렇게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을 국민이 해고 하라! 하면 국회의원이 해고된다? 어처구니 없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해선 안될 제도입니다.

    • 아무 국민이나 소환하는게 아니라 전문가를 소환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아무래도 표심에 흔들리는 존재다 보니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얄팍한 지식과 감정에 휩쓸리기 마련이기에

      국민소환제가 아닌 전문가소환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대표민주주의가 전체 국가 대다수로 자리잡은 이유 자체가 쉽게 말해… 도떼기 시장이 되지 않게 함입니다.

      투표의 권리를 일괄적으로 각 계층 별 대표자에게 위임하는 것이죠.

      그래서 다음 투표 때까지는 사실 위임한 상태이기에 마음대로 박탈시키거나 제한하는 게 일반 시민 입장에선 어려운 게 현재 대표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니 아무나 국민의 대표를 소환해 의견을 개진하는 건 적합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나 그를 뽑은 주요 투표자들과 반대되는 이권자가 반드시 어느 분야든 있을 테니까요.

       

      특히 전문가나 청원제로 특정 표 수 이상을 받는 조건을 걸어도, 항상 정치란 것은 반대편이 있기 마련입니다. 좌우가 인구마다 어느 정도 존재하고, 중도파의 기울기가 여권을 결정하는 바… 어지로운 잡음과 불필요한 행정 낭비를 줄이려면 이런 제도는 실효성을 따졌을 때 어떤 시점의 기준이든 반대파가 악용할 경우가 많아 쓸모가 없습니다.

      대표민주주의답게 투표 주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국민 전체 투표를 통해 다음 투표 주기를 ‘반감기’로 점점 줄이는 방법 등은 적합할 것입니다.

    • 공수처를 만들거나 연금을 없애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라 국민소환제는 반대합니다.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일자리가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 돈이 아닌 꿈을 좇아 일자리를 찾는 나라. 평생 병원비와 교육비가 무료인 나라.
    초등학교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며 자전거 전용 주행규칙까지 있는 자전거의 나라. 등굣길과 출근길에 마음이 가벼운,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
    덴마크 사람들은 왜 행복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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