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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제에 대해 계보학식의 접근을 해봅시다. 왜 사강은 법정에 서서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부르짖었을까요? 이것을 이해해야 “권리”라는 광범위한 단어를 쓴 사강의 의도를 짚을 수 있습니다. 사강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입니다 : “자신에 의한 자신의 파괴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걸 한번 더 뒤집으면 “당신들에게는 나를 처벌한 근거가 없다.”가 되겠죠. 제가 볼때는 이 명제는 지록위마적인 논증의 전제로 쓰인것 뿐인거 같습니다.
얼핏 보면 굉장히 우아하지만 이 말은 그저 궤변일 뿐입니다. 표면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사강의 행동이 고결하고 강인한 정신의 자아추구로 보일 수 있지만 사강은 쾌락을 추구하고 그 부가적 작용으로 자신의 파괴가 따라왔고, 1995년 법정에서 그녀는 “나의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니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자신을 방어했습니다. 하지만 사강은 저 명제와 상관없이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저것이 사실이라고 쳐도 이미 마약사범은 현행법상 범죄니까요. 사강은 불법행위를 억지 논리로 덮으려고 한 것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솔제니친 이래로… 세계 전체가 하나의 인권이 되었고, 모든 것이 권리로 바뀌었다. 사랑의욕구는 사랑의 권리로, …, 과속으로 달리고 싶은 욕구는 과속으로 달릴 권리로, …, 야밤에 길거리에서 소리치고 싶은 욕구는 야밤에 길거리에서 소리칠 권리로 바뀌었던 것이다.” 사강은 자신의 욕구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권리라는 단어로 치환했을 뿐입니다.
자신을 파괴할 권리는 문법적인 환상을 보여줍니다. 문장에 주어와 목적어가 있듯이,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듯한 환상을 말이죠. “자기 파괴”란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에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며, 현실은 그게 아닙니다. 현실에는 그저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욕구”를 시행에 옮기면서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주창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죠.
요는 이것입니다. 자신을 파괴할 권리라는 것은 허구입니다. 현실에는 사람, 욕구, 그리고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욕구를 행동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이것이 사회가 합의한 틀을 벗어나 있는가 아닌가입니다. 물론 그 틀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타인을 설득하고 타인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그 틀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