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가

[ - 디베이팅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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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ussion

최근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역대 비지상파 드라마 부분 시청률 1위를 돌파하는 등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기존에도 많았지만, <부부의 세계>는 단순한 권선징악의 구조를 넘어, 복잡하게 얽힌 부부 관계를 묘사해서 더 공감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핵심이기도 한 ‘복잡한 사실’은 불륜이 들통나 이혼한 주인공 부부가 여전히 서로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상대를 사랑하지 않아서 불륜을 저지르고 결국 헤어지게 된다는 기존 공식과 달리,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불륜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한 관점이다.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남자 주인공은 “두 사람에 대한 마음이 모두 사랑”이라며 ‘진심으로’ 하소연하기도 했다. 과연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

 

pros opinion

a. 사랑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사랑이 1:1 관계에서만 성립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령,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회가 일부다처제였는데, 그 안에서 문제없이 사랑했다. 또한, 현재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소수지만 존재한다. 여성을 소유물로 봤던 과거 일부다처제 시대에 사랑이 불가능했다고 말하려면, 서로를 소유하려 하는 1:1 독점 관계도 사랑으로 볼 수 없다. 그렇게 사랑을 정의하려면, 폴리아모리야말로 가장 사랑에 가깝다. 당연히 두 명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폴리아모리가 정답이고 현재의 방식이 틀렸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사랑을 부정할 순 없다.

b.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사랑이 상대만 생각하는 감정이라면,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다. 문제는 그 전제에서는 한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불탔던 관계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시들게 된다. 또한, 감정은 늘 수동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의 유일한 기준이라고 할 순 없다. 사랑은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용이다. 감정, 지성, 취미, 비전 등 다양한 것을 공유하며 사랑할 수 있다. 한 명의 상대와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없다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과도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법과 문화는 1:1 관계만 인정하기에, 상대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지만, 법과 문화가 용납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존재한다.

 

cons opinion

a. 상대를 속이며 사랑할 순 없다.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한다면, 최소한 한 명이나 두 명을 모두 속여야 한다. 그런 특별한 관계를 모두에게 오픈한 케이스가 예외적으로 있을지 모르겠지만(폴리아모리 등),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두 명을 사랑하려면 상대를 속여야 한다. 사랑하는 사이에도 모든 것을 말할 순 없겠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숨기고 “너만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직접적이고 고의적인 거짓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것이 사랑이 아님은 물론이고, 오히려 악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 두 명에 대한 사랑은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각 사람이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각각 충족할 수 있기에 두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이렇게 내 마음에 드는 부분만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물건을 고르는 것과 같다. 사랑은 좋은 면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까지도 포함한다. 어려움, 위기, 희생, 고통까지도 사랑의 한 부분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만 얻으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국 두 번째, 세 번째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더 얻을 게 없다면 얼마든지 현재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아직 사랑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최초입장 결과 (45명 투표)
13 7 9 11
토론댓글 현황 (26개 주장)
73 27

  Opinions

  1. jshock000의 프로필
    Lv1 jshock000 님의 찬성 의견 - 5달 전

    가능 하다고 봅니다.

     

    반대 입장을 읽어 보았는데, 불가능하다는말을 썼는데 일단 반례가 있는시점에서 그말은 틀렸다고 볼수있고 반대입장의 전체적인 입장은 안된다기 보다는

     

    도덕적으로 안된다는 입장같은데 정조나 책임에 관한 이야기라면 당연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는 또 다른 이야기죠.

     

    애초에 생물학적으로 1부1처제는 부자연스러운 행위라고도 하죠. 게다가 그런 책임문제를 제쳐 놓고 서라도

     

    서구 유럽권에선 불륜이나 외도가 전혀 아닌 예로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3인커플이 꽤 존재 합니다. 영화와 책으로도 있는거로 알고 있고요.

     

    동성의 사랑으로 가면 더 복잡해 지는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두명이상의 사랑이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고 살고있는 시대 입니다.

     

    결론 배려가 없는 외도적인 사랑은 잘못 돼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다인커플은 존재한다.

    1 0 답글
  2. 자유, 평등, 진실의 프로필
    자유, 평등, 진실 님의 찬성 의견 - 4달 전

    오히려 한 명만을 사랑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이를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인 사랑이 다수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인간은 오직 한 사람만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사회체제에서는 일부일처제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효율성의 문제입니다. 일부일처제가 당연시 되면서 오직 한 명만을 사랑해야한다는 불문율이 생겼습니다. 사랑의 대상에 제한은 없습니다. 단지 현대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입니다.

     

     

     

    결론: 한 명을 사랑해야한다는 것은 일부일처제로 인한 편견이다. 사랑의 대상은 여럿이 되여함이 당연하다.

    1 0 답글
    • johnleo5588의 프로필
      Lv1 johnleo5588 님의 반대 의견 - 3달 전

      일부일처제가 비효율적이라고 하셨는데요, 근거가 있나요?

       

      일부다처제는 가정내에서의 권력을 생기게 합니다 당연한 사실이지요 그리고 이 권력을 폐해는 예로부터 잘 알려져 있지요

       

      질투가 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뇌에 질투를 느끼게하는 부분이 손상이 되었다면 몰라도 생물학적으로 당연히 질투를 느끼도록 진화되었습니다

       

      이런 권력이 존재하고 계속해서 경쟁해야하는 가정이 진정한 가정일까요? 저는 비정상적이라고 봅니다

       

      다름을 존중하자는 명목 아래에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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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L.F.EYES의 프로필
    Lv2 L.F.EYES 님의 반대 의견 - 4달 전

    사랑이란. 사랑은 감정의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잘 압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죠. 양심이 그러하듯이 말이죠?

    그러니까 사랑이란 마음대로 절제-조정되는 것이 아니긴 합니다만.

    그래도 도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지듯이

    이 사랑에 있어서도 도덕이라는 것이 무너진다면.

    즉 난 ‘너만을 사랑해’ 이렇게 말한다면.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가 허용되기도 어렵습니다.

    도덕이 무너진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가 존재하려면. 이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사랑과 양심은 양립가능한 것이여야하지 않습니까?

    만약 메이스톤이라는 남성이 엘리스라는 여자를 공중정원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서 한 눈에 반했다고 봅시다.

    그래서 메이스톤이라는 남성은 엘리스라는 여성에게 다가가 “제 구혼의 반지를 받아주십시오. 당신은 제게 충분한 매력을 지니신 여성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여성이 나타납니다. 베아트리체라는 여성이.

    그러고는 메이스톤에게 말합니다. “오빠, 여기서 뭐해?” “설마, 지금 이 여자한테 내가 준 반지 이 여자에게 주려는 거야?”

    자. 그럼 여기서 메이스톤은 도덕성을 상실하고 두 여성모두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게 됩니다. 두 여성이 모두 둘다 폴리아모리에 찬성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죠.

    아뇨 그것이라 할지라도 이 사랑은 유지-전위되기 어렵고 결국엔 상실-소멸의 길을 저벅저벅 걸어가고 말테지요.

    여기서 도덕은 상실이 이루어지고.

    사랑은 무너지고 맙니다.

    사랑이란 여러 형태가 있긴 마련입니다만.

    그것은 이상적인 형태의 사랑이고.

    현실계로 넘어와 물질계로 넘어와

    판단하게, 겪게된다면,

    결론적으로.

    폴리아모리는 지극히 유아론적인, 이상적인, 유토피아적인 이론이라고 결정지을 수 있게됩니다.

    0 0 답글
  4. zkftpfm의 프로필
    Lv2 zkftpfm 님의 중재 의견 - 4달 전

    사랑이 사람의 행복의 필수인가 아닌가 하는점을 생각해보면 절대로 필수가 아닙니다. 실제로 밥을 못먹으면 굶어죽겠지만 잠시 사랑을 못한다고 갑자기 급사하지 않지요. 만약 그렇다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연애를 안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다 병원에 집단으로 실려가서 코로나사태마냥 정부에서 발표도 하고 했겠죠…

    연애는 삶이 안정되고 그 위에 이루어지는 상위의 행위입니다. 요컨데 그것을 지탱하는 삶이 탄탄하다면 1억명을 동시에 만나든 말든 개인의 자유겠지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자기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이 도대체 비율적으로나 몇이나 될까요? 애초에 사랑할 자격도 없고 사랑해서도 안되는 비성숙한 남녀들이 그저 조금 외롭다고 한심한 자기 인생에 타인을 끌어들이는 그 행위를 ‘사랑’이라고 표현하는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애초에 사회에서 말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인가요 아니면 ‘기생충’인가요?

    세상에 나돌아다니는 수많은 연애소설, 연애드라마 등등등이 사랑이 아니라 기생을 그저 아름답게 포장했을뿐이라고 봅니다.

    진짜 사랑이라면 타인이 뭐하러 관여하나요. 그들의 문제고 그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면 말그대로 사회적 문제지 사랑문제는 아니니까요.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상하고 비건전한 관계까지 사랑이라 억지로 인정하는 가식된 현대인들의 대범함이 변해야 해결될 문제입니다.

    1 0 답글
    • L.F.EYES의 프로필
      Lv2 L.F.EYES 님의 반대 의견 - 4달 전

      제가보기에 zkftpfm 님은 중재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찬성인지 반대인지 의견방향성조차 알 수 없는 글이라 보여지네요.

      그저 사랑에 대한 개인적인 ‘사견’을 펼친 꼴 밖에 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에 대한 해결책 없는 대안같지도 않은 대안 내놓으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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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99.leejaebeom의 프로필
    Lv1 99.leejaebeom 님의 찬성 의견 - 4달 전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이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보다 나은 dna를 우선하며, 판단 하에 사랑이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겠죠. 만약, 판단으로 사랑이 가능하다 해도 둘

    이상을 동시에 사랑할 순 없겠습니다. 제시된 것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판단이니까요.

    때문에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 0 답글
  6. sudo-kas의 프로필
    Lv1 sudo-kas 님의 중재 의견 - 4달 전

    이런 문제는 아무래도 확실한 답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일반론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일단, 저는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일단 ‘사랑’이라는 것은 비단 사람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고, 인상깊게 읽은 책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고, 자신이 즐겨하는 게임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이며, 영화 HER에서 볼 수 있듯 실재하는 지 알 수 없는 인공지능을 사랑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깐, 이 토론의 주제는 이런 포괄적 의미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또한 그들의 애인이 자신보다 일을 더 사랑하는 것에 질투를 느끼는 것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질투 가능성’ 만으로도 이 토론 주제에 위 사실을 끌어오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중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딱히 뭐라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정에 좀 더 충실하라는 말을 하지만, 지금 이 토론에서 행해지는 것처럼 강도 높은 비판은 이루어지지 않는 편입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을 향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와 크게 다른 것입니까? “너는 나 대신 일에 그렇게 에너지를 쓰고 감정을 소비하는데, 나는 그 대상이 일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다. 너랑 나랑 다른가?”

     

    다만 여기에서 제가 따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게 줄 체력과 감정을 소비하는 제 애인은 일단은, 어쨌든, 제가 일을 좋아하고 에너지 쏟는 걸 떠나서 제겐 나쁜 사람 아닙니까?

     

    나쁜 사람이라고 충분히 사료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게 너무도 큰 상처가 된다면 저는 그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고백하는 사람을 차는 사람은 그 사람의 고백을 왜 거절했을까요? 그 사람과 사귀고 싶지 않은 어떤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위 일은 충분히 결격 사유가 되어 헤어질 수 있습니다. 즉, 두 사람을 좋아하는 내 애인을 내가 헤어지자고 해도 이는 정당화된다는 것입니다. “일이 아니라 사람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 감정 쏟는 건 쫌…” 그게 정말 마음에 안든다면 헤어져야죠.

     

    정리하자면,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임의의 본인 행동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 한가득이라 농도 진한 커피에 물을 타는 듯합니다. 하지만 순해져 아메리카노가 된다면 많은 사람이 마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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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atter의 프로필
    Lv1 Matter 님의 중재 의견 - 4달 전

    윗 분의 말씀대로 사랑의 방식은 어떤 형태이든 존중받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윗 분들이 폴리아모리 성향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과연 섞일 수 있을까에 대해 적어주신 것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두 집단이 서로 분리되어 섞이지 않은 것이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한 폴리아모리스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방식을 내려놓아야할지, 고수할지에 관한 것일텐데 서로가 아무리 성향을 억제한다 해도 두 성향의 충돌은 현실의 도덕적 문제에 의해 사랑의 쾌락이 아닌 고통으로 더 많이 다가올테니 상식으로, 사회적 통념으로써 두 집단을 분리시키는 것이 도덕적으로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혹은 추후에 과학기술의 발달로 두 연인중 한 사람의 성향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건 또 다른 인권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보류하는게 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토론의 방향은 폴리아모리스트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것인지로 나아가야 마땅할 것입니다. 어떤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야하는지, 또는 두 성향이 최소한의 도덕적 문제로 섞일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통념은 어떤 것이 있을지, 어떻게 발달시켜야할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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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qudals7214의 프로필추천댓글
    Lv1 qudals7214 님의 찬성 의견 - 4달 전

    관계를 갖는 사람들의 합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

     

    남이 뭐라고 하던 합의한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만얀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관계를 끊어내고 자신과 취향이 맞는 사람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면 될것이다.

     

    내 성향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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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루트의 프로필
    Lv2 그루트 님의 찬성 의견 - 3달 전

    가능은 하다. 다만 사랑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기존 상대에게 공개는 물론 허락을 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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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kmjw0502의 프로필
    Lv1 kmjw0502 님의 찬성 의견 - 3달 전

    두명을 사랑하는건 가능하지만 상대방을 속여가면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건 잘못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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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arrogantness의 프로필
    Lv1 arrogantness 님의 찬성 의견 - 2달 전

    사랑이란 서로를 존중해주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2명 이상의 사랑은 서로 존중하지 못하면 불륜이지만, 존중해줄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라 믿습니다. 무엇이든 서로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사랑의 깨어짐은 불가피 할 것입니다. 서로 맞는 상대를 찾아가 행복한 관계를 맺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라 생각하며, 혹은 피할 수 없다면 설득을 하거나 자신을 의견을 바꿀 마음이 없다면 사랑을 이어 나가기 힘들다는 징조이므로 서로의 이익을 위해 헤어지는게 올바른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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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문고원의 프로필
    Lv1 문고원 님의 찬성 의견 - 2달 전

    이 문제는 찬성/반대로 결론날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명 이상의 배우자를 갖는 제도를 합법화시킬 것인가? 라는 주제라면 모를까, 인간의 감정에 대한 문제에 찬반대를 해봤자 그 감정이 생겨나거나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게 가능한가, 그것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가능할 수 있고 누구는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개인이 누구를, 몇 명이나 사랑하는지는 개인의 자유입니다. 개인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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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kmj582400의 프로필
    Lv1 kmj582400 님의 반대 의견 - 2달 전

    부모, 가족, 친구와의 관계 속 생기는 감정과 연인과의 감정은 다릅니다.

     

    연인은 부모, 가족, 친구와 다르게 서로의 인생을 약속하며 함께 재산, 자식을 꾸려나가는 것이 가능한 암묵적 존재입니다.

     

    서로의 성생활을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며, 친구, 부모, 선생 다양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연인의 존재는 신뢰, 공유, 아낌을 베이스로 단단하게 이뤄집니다.

     

     

    두 사람을 연인의 기준으로 동시에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분명 둘 중 한 상대는 사랑이 아닌 의지, 편함, 익숙함와 같은 감정으로 함께하는 것이며, 다른 한 상대로만으로는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의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아니면, 사랑의 무게를 제대로 짊어질 자신이 없어 늘어놓는 변명일 뿐입니다.

     

    0 1 답글
    • 문고원의 프로필
      Lv1 문고원 님의 찬성 의견 - 2달 전

      사랑에는 여러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무조건 이 방식이어야 한다’고 한 개인이 규제할 수 없습니다. 국가도 마찬가지고요. 단지 이것을 합법화했을 때 누군가 악이용할 수 있고, 성차별 문제가 심해질 수 있다는 잠재적 문제점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반대하는 거면 몰라도 그런 사랑이 존재할 수 없다고 못박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일입니다. 어떤 개인/집단이 내린 사랑의 정의를 다른 개인/집단에게 강요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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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cooler의 프로필
    Lv3 cooler 님의 중재 의견 - 1달 전

    우선,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 주고 받는 사랑의 양이 비슷하다면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총량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가진 사랑의 총량이 무한 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없고 수치로 표현 가능하다면 100으로 볼 수 있겠지요.

    똑같이 사랑한다면 50:50 으로 분배가 가능합니다.

    50이라는 사랑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처럼 똑같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면 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가 50:50 이라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50이라는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서로 죽을 만큼 100이라야 사랑이라고 표현한다면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사랑의 기준은 최소 80 이상은 되어야 해서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한 사람은 정신적 사랑의 대상으로 보고,

    다른 한 사람은 범죄와의 전쟁 하정우 대사 “그 여사장이 니 좆집이가?”처럼 완전한 육체적 대상으로 보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퉁 쳐 버린다면 두 명을 사랑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엔조이”라는 성인 사이 널리 보편화된 용어도 때로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바뀔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는게 사랑이었는데, 사랑만 할 뿐인데 사랑하는 사이라는 착각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굳이 용어의 명확화를 안 해도 사랑 구분이 될 것 같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가치가 요즘 시대에 많이 무뎌지긴 했기에 경험상 난봉꾼도 사랑이라고 표현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는 있지만,

    소설이 허구이긴 해도 괜히 로미오와 줄리엣이 시대를 뛰어넘는 오랜 명작은 아니겠지요.

    아마 로미오에게 2명의 줄리엣이 있었던지 아니면 그 반대라도 고전이 되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에, 사랑에도 class가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차가 2대가 있는데 둘 다 사랑한다고 해서 동시에 2개의 차를 몰 수는 없 듯, 본인이 그 사람을 사랑하거나 생각하는 시간 분배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2대면 관리가 어렵죠. 적당히 관리해도 사랑이라면 사랑인 것 입니다.

     

    전 일부 다처제는 지지하는 편입니다. 혼자 놀 것 다 놀고 돈 펑펑 쓰다가 결혼할 때 되어서 갑자기 착한 사람 코스프레하며 너만을 사랑해라고 운운하며, 본인이 짊어져야 할 경제적 어려움을 나누며,

    그것도 나중에 능력이 안되어 경찰 센싱도 안되는 가정 폭력으로 번지는 뻔 한 순환 고리 때문에 능력 되는 사람이 여러 처를 두는 것은 이해를 합니다. 제가 아는 일부 다처제 국가의 남편은 한 사람만

    서운하게 할 수 없게 끔 문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선물을 하면 모두 똑같이 해야 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능력 있는 사람만 일부다처제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경제적 부분이 아니라 너무 잘 생겼고 여자들도

    거기에 만족하면 돈이 없더라도 서로 win-win 하는 것이겠죠.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은 class가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본인이 경제적으로 부족하면 진심으로 채우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컴퓨터에 3D 게임 2개 동시에 돌리기 힘듭니다. 사랑이라는 용어를 다양하게 쓰며 변명해도 되겠지만 이런 주제는 사실 용어를 명확하게 하고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죠. 거의 안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사람 사랑에 대한 생각을 왈가불가 할 것은 아니라는 판단에 중립입니다. 다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0 1 답글
    • lil의 프로필
      Lv3 lil 님의 찬성 의견 - 1달 전

      사랑이 상대적으로 절대 질량이 커지게 된다고 가정하면 다른 가정이 되죠

      논리적으로 부족한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생겼다 없어지는데

      우리가 사랑을 소유하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소유하지 못했기에 제어를 못하고

      이성으로 제어를 못합니다.

      사랑에는 아마 발산하는 조건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스스로 알 수도 없다가 갑자기 생기고,

      이 후에 알았다해도 소유를 안해 조절이 불가능합니다.

      이중인격처럼 성격을 바꿀수 없는 뿐더러 다인커플은 보통 사람들의 시선을 빌리면,

      상황이 이질적이라 생각이 어려울 뿐이지 상식적으로는 안되는 것 “같으면서” 해버린, 비극적인 사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약한 버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말 상황이 이질적이라 그렇지, 상식과 자신이 반대로 나가면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보세요.

      이런 상황은 정말 역지사지가 필요한 것입니다.

      비난은 옳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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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joseph35533553의 프로필
    Lv4 joseph35533553 님의 반대 의견 - 1달 전

    사랑의 정의란 무엇인가

     

     

    저차원적인 사랑을 말하자면, 이성에게 느끼는 성욕에 기반한 관심과 호감 (동성애, they 소수성애자들도 비슷한 원리)일 건데, 고대시대부터 인간이 느끼는 성욕이나 소유욕이 딱 하나의 대상에게만 있지 않고 취향이 다양한 바 권력이 있되 도덕적 기준은 약했던 상황에서 보면 모계사회에선 여왕이 여러 남자를 거느렸고, 부계 사회에선 마초적인 리더가 여러 여자를 거느렸습니다. 하지만 특히 권력자가 매력적인 이성을 승자독식하고, 그로 인해 우수한 자녀도 여러 갈래로 나와 분파 싸움이 끊이질 않으므로 사회 통념적으로 봐도 일처일부, 일부일처가 적합할 겁니다. 현대인이 이렇듯 여러 이성에 관심 있어하는 건, 고대 시대 때부터 흔히 있었던 얘도 가지고 싶고 쟤도 가지고 싶은 다양한 취향과 성욕, 호감 충족에 대한 원시적인 욕구에 순응하는 겁니다. 고대 시대에는 가진 자나 권력 있는 자가 그랬다면, 지금은 자유로움과 각자 개개인의 매력에 기반해서 그러는 성향이 더 강하죠.

     

    고차원적인 사랑을 말하면, 동물적인 짝찟기나 그저 호감이나 느낌에 끌려 여기저기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진정 인격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까워져 서로에게 단계별 암묵적 계약을 충족하는 걸 말합니다. 연애라 함은 충성과 일편단심, 애정과 관심, 그리고 의리 등이 가정되고 가족을 형성하는 결혼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죠. 그게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구태연한 구식이자 형식이 아니라 가장 집단지성적으로 볼 때 인간에게 적합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잡은 거죠. 애초에 유혹을 받아도 한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진짜 사랑일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헤어지거나 이별해야하는 거지, 적절히 타협해서 2번째 사랑을 키울 명분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잘 맞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짜 고차원적인 사랑이라면 애초에 여러가지 우수한 이유로 인해 몰래든 당당하게든 2번째 짝을 만들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20년이 지나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한 개인인데, 지속적으로 깊어지고 이해를 더해가는 게 아니라 그저 동물적인 끌림으로 한 눈을 파는 건 자극적인 인스턴트 음식만 찾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고로 포스트 모더니즘 및 가족의 가치가 무너진 유럽에서 미완성적으로 수입해온 폴리가미, 사랑은 2개 이상일 수 있다-등은 진보의 가치 아래에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고차원적 사랑과 가족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욕구 정당화이자 저차원적인 사랑이 인간의 전부라 가정하는 행위입니다. 예로부터 여성편력, 남성편력이 있어온 사람들은 윤리에 상관없이 여러 이성들을 거느리며 그걸 자랑처럼, 트로피처럼 주변 친구나 지인들에게 자랑해왔습니다. 자신의 매력을 공증 받았다는 자랑 같은 것이죠. 단지 그 때는 적어도 들키지 않으려 하거나, 나쁜 남자/여자 행세를 하며 강제 합의를 구했다면, 이제는 합리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에 기반해서 저차원적 사랑도 존중 받을 사랑이다-라고 주장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정당화하려 하지말고 저차원의 욕구라는 걸 인정하고, 마치 진보적인 의식인 거라는 냥 포장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1 1 답글
    • lil의 프로필
      Lv3 lil 님의 찬성 의견 - 1달 전

      고대가 이성이 있는지 현대가 이성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성이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성이 만약 존재하는 거라면 우리가 이해하려 애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념을 만들어 내서 이해를 해내야 했던 것 뿐입니다.
      이성은 그런데 왜 만들어졌냐면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함이죠.
      하지만 3T이론에서는 동성애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오히려 재능있는 인재가 몰려 산업이 발달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되었습니다.
      즉, 개방적인 곳으로 인재가 몰린다는 것이죠.
      만약 두가지 선택지를 극단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가난하고 도덕적인 것- 혹은 -부자이고 본능에 치우치는 것-
      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보통 후자를 선택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향은 이것이기 때문에
      개방적인 것이 더더욱 사회의 유지에는 더 옳은 것 일지도 모르는 것 입니다.
      개방적인 것은 당연히 일인 커플과 다인 커플 중 다인 커플일 것이고요.
      왜냐하면 동성애자들처럼 개방적인 극소수가 인재를 이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외에 도덕적인 측면에서 또 이유를 반박하자면 있습니다.
      다인 커플은 사회에 민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서로 자기들 끼리 사랑할 뿐이지 사회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극소수 입니다.

      그리고 보통 극소수를 -비정상-이라고 칭하고 -정신병자-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다인 커플도 “굳히” 말하자면 -정신병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신병은 사실 소수로 존재할 뿐이고, 소수이기에 탄압받는 것이지 본질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범죄로 이어질 때 이지만,
      일반커플과 다른 위험도를 가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신병자-는 이름만 정신병자일 뿐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문제가 없고,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기에
      ‘정신병자’라는 용어는 분류하는 용어에 가깝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 속에서 우리는 그들은 -비정상자-, -정신병자-가 아닌
      -소수-지만 -정상적인-으로 다시 재정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존중받고 이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다름없이 하나의 살아있는 -정상적인- 사람일 뿐인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다인커플을 비난할 여지는 없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없으며,
      만약 불편을 갖는다면, 예로부터 없는데도 정의해 왔던,
      -비정상자-, -정신병자- 등의 용어에 얽매일 뿐입니다.
      얽매인 생각은 딱딱하기에 수용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동적이고 사실적인 생각만이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발전에 도움이 되고,
      그것이 인류에 큰 이바지가 되어서 현실에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반대 의견은 고정 관념에 의한 편견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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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l의 프로필
      Lv3 lil 님의 찬성 의견 - 1달 전

      제가 두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가정입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전체 사랑 A만큼이 있습니다. (단, A는 상대적 크기, 상황과 때에 따라 실제적 크기는 계속 변함)

      누군가에게 사랑을 A만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다음날 이 사람에게 A/2만큼의 사랑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자신이 다른 더 사랑할 수 있는 A/2는 어디로 증발했을까요?

      그런데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A/2는 증발하고 없습니다. 따라서 제 사랑 전체 A는 제가 소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제가 조절할 수 있는게 아님을 의미합니다.

      물론, 제가 의도적으로 더 좋게 바라볼려고 노력해서 사랑을 증가시킬 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 등에 의해 의도치 않게 어떤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이해쉽게 예를 들자면,

      제가 X,Y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A만큼의 사랑의 크기만을 전체로 할 수 있는데

      A/2의 사랑을 X에게, A/2의 사랑은 Y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크기는 적어도, A의 상대적 크기는 계속 커져 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증발해버렸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그건, 우리가 이유가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손안에 사랑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존재하지 않았다가 어느 조건에 의해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우리의 경험에서 파생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이성”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자신의 조건을 몰랐다가 발산하는데 어떻게 제어합니까?

      자신이 조절을 할 수 없는 일로 인해 하게 된 사람을 –저차원–이라는 비하를 사용하시는 것은

      잔인한 발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극의 사랑에서 동정을 느끼며 수긍합니다.

      그렇듯이 상황만 어색하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이 사람 입장에서는 비극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사랑은 절대 조절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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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l의 프로필
      Lv3 lil 님의 찬성 의견 - 1달 전

      제가 두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데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가정입니다.
      만약 제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전체 사랑 A만큼이 있습니다. (단, A는 상대적 크기, 상황과 때에 따라 실제적 크기는 계속 변함)
      누군가에게 사랑을 A만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다음날 이 사람에게 A/2만큼의 사랑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자신이 다른 더 사랑할 수 있는 A/2는 어디로 증발했을까요?
      그런데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A/2는 증발하고 없습니다. 따라서 제 사랑 전체 A는 제가 소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제가 조절할 수 있는게 아님을 의미합니다.
      물론, 제가 의도적으로 더 좋게 바라볼려고 노력해서 사랑을 증가시킬 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 등에 의해 의도치 않게 어떤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다시 이해쉽게 예를 들자면,
      제가 X,Y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가 A만큼의 사랑의 크기만을 전체로 할 수 있는데
      A/2의 사랑을 X에게, A/2의 사랑은 Y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크기는 적어도, A의 상대적 크기는 계속 커져 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증발해버렸습니다.
      어째서 일까요?

      그건, 우리가 이유가 알 수 없다는 것은 우리 손안에 사랑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존재하지 않았다가 어느 조건에 의해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건은 우리의 경험에서 파생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이성”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자신의 조건을 몰랐다가 발산하는데 어떻게 제어합니까?
      자신이 조절을 할 수 없는 일로 인해 하게 된 사람을 –저차원–이라는 비하를 사용하시는 것은
      잔인한 발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비극의 사랑에서 동정을 느끼며 수긍합니다.
      그렇듯이 상황만 어색하지 두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이 사람 입장에서는 비극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사랑은 절대 조절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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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l의 프로필
      Lv3 lil 님의 찬성 의견 - 1달 전

      같은데 두개가 올려졌네요

      보셨다면 두 가지 모두 답변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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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seph35533553의 프로필
      Lv4 joseph35533553 님의 반대 의견 - 1달 전

      1. 개방과 산업의 발전이 당연히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가정을 3T이론만으로 두기에는 굉장히 통계학적 거리가 멉니다. 마치 습도가 높으면 전기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굉장히 거리가 먼 주장과 동일한 선상이라고 봅니다. 반대로 산업이 발달하고, 문명이 고도화되었기에 마침내 소수자도 말을 꺼낼 ‘여유’가 생겨난 거 아닐까요? 해당 논리로 따지면 현대 사회에 나타난 온갖 문제와 폐해도 동일하게 ‘산업 발달, 문명 진척’과 상관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당연히 그 덕은 아니겠죠?

       

      2. 극단적으로 문명이 발달했을 시기인 1차~4차 중에 소수성애자가 직접 산업 발전, 문명 발전에 기여한 경우(발명자, 기업가, 정치인 등 진짜 기여공로가 있는 사람) 중 대부분은 은폐한 게 아닌이상 일반 이성애자였습니다. 오히려 극소수 중의 극소수가 소수성애자면 관심을 받아 해당 커뮤니티에서 추앙을 받았죠. 희소성이 있으니까요.

       

      3. 본 토론은 폴리아모리에 대한 논의이며, 소수성애자 중에서도 얼마든지 (동성애자 they성애자 양성애자) 충성스러운 1대1 관계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소수성애자 중에서도 소수성애자인 겁니까, 말씀하신 이성이란 허구에 빠졌지만 동시에 개방적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겁니까? 이렇듯 혼란을 야기하는 이유는 소수성애자로 한 그룹을 묶어버려 PC나 진보적 자유생각론으로 끌고 가기에 그 내부에서도 무조건 모순이 생기는 겁니다. 애초에 진보자유진영이면, 그 내부에서 어떻게 정의하든 뭐가 맞고 그르고를 어떻게 정하겠습니까?

       

      4. 보수적인 기준과 최소한의 윤리, 그리고 인간 간의 상호 존중이 있었기에 자유로운 행위와 사상이 활동할 만한 기본적인 생태계가 확보된 겁니다. 의견에 대한 상호 존중이라는 기본가치가 없었으면, 자연스럽거나 대중적인 반응으로 인해 (예: 러시아) 혐오 받던 소수성애자가 어떻게 처음 발언을 하고 커밍아웃을 했을까요? 이성이란 것을 허구로 만들고, 가치라는 것을 허구로 만들면 애초에 그런 자유로운 발언과 사상이 등장할 기반마저 부정하는 겁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가치와 기준만 수용하는 것도 매우 편협한 행위입니다.

       

      5. 동성애자, 소수성애자 전체를 논하는 토론이 아닙니다. 추가로 예를 들어드리면, 조선 시대에 왕들이 여러 혈통을 낳은 결과 유산상속에 관하여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려졌습니까? 소수성애자로 존중 받기에는, 폴리아모리는 지나치게 사회파괴적입니다.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동물적 쾌락주의를 추구하기에, 또 나아가 그걸 정당화하기에 나온 이론일 뿐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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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Marx의 프로필
      Lv5 K.Marx 님의 중재 의견 - 1달 전

      한가지 궁금한게 있어서 묻겠습니다. 고차원적 사랑과 저차원적 사랑을 구분하는 척도는 정확히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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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joseph35533553의 프로필
    Lv4 joseph35533553 님의 반대 의견 - 1달 전

    두 번째 의견에 대해 답변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토론의 장에서 마음껏 의견 개진을 하는 것이지, 제 권한을 넘어서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직접 정죄하거나 핍박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수용을 강조할 수 없듯, 저도 개인의 책임에 추구할 순 없죠. 하지만 저 개인이나 사회에 끼칠 영향에 대해선 의견을 넘어서서 주장할 수 있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1/2의 사랑을 공급하는 묘사는 사랑총량제란 가정이 깔려 있습니다. 개인의 내부 환경 (심리, 건강) 외부환경 (재산, 컨디션, 하루의 경과 등)이 전부 다른데 하루하루 어차피 다른 총량을 어떻게 쪼개서 공급합니까? 더불어서 사랑해주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의 완성 조건이 아닙니다. 바라지 않고 준다고 하는 것이 가까운데, 아무런 기대 없이 친구를 위로하고 친구를 돕는 것, 혹은 귀여운 아이를 보호하고 엄마를 찾아주는 것 등은 본 토론에서 얘기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본 토론은 기본적으로 이성관계의 사랑을 논의하며, 연인, 부부 등을 논할 때 거론하는 그 사랑을 말합니다.

     

    말하신 원리 대로 당연히 엄마가 딸 이뻐했다가 아들 이뻐했다가 할 수 있죠… 그건 보편적 사랑 및 애정이라고 하는 겁니다. 본 토론에서 논의되는 사랑은 본질적 고차원 사랑을 애기하는 것이라고 보며, 그렇다면 사랑의 표현이나 사랑을 주는 그런 행위나 실적이 아니라 본질적인 정신과 마음, 측량할 수 없는 고차원의 에너지 등을 얘기하는 것이라 봅니다. 단지 신체 반응, 뇌 반응이라고 보기엔 긴 역사 동안 인류는 수없이 사랑에 특별한 반응이나 결과를 드러냈으니 그저 뇌의 생화학 장난이다-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그런 도파민 분비는 과학적으로 2년이 최대임에도 충분히 인간은 그 몇십배의 기간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내가 유혹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어 증발하지 않던 그것이 내가 원래 충분히 고차원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면 자제하고 교정할 수 있는 수준이 진짜 사랑의 기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 0 답글
    • lil의 프로필
      Lv3 lil 님의 찬성 의견 - 1달 전

      저는 사랑총량제를 긍정한 적이 없습니다.

      0이 될 수도 1이 될수도 100이될 수도 있습니다.

      A=0=1=1=100=1000=무한대 이런식으로 작아질수도 커질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의논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가정한 사랑 총량제를 부정하신다면,

      사랑의 전체 양은 0도, 1도 -1도 되지 못한다.

      즉, 사랑 자체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니 존재 못하는 거라고 하시게 되는 꼴입니다.

      따라서 사랑의 총량을 상대적 크기로 지정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확히 나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나누지 않아도 아무렇게나 나누어져도 상관없습니다.

      나누어진 양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랑이 A와 B와의 사이, 즉, 이인 커플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다인커플이여도 아니여도 사랑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지적한 것 뿐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마음대로”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힘들지도 모를 사람들을,

      비난하고 반대하는게 도리적으로 옳은가, 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실, 다인커플에 대한 이야기는 도덕으로도 정의되어 있지 않은

      도덕적 본질을 넘어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다수가 소수를 이해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이야기 해본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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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il의 프로필
      Lv3 lil 님의 찬성 의견 - 1달 전

      그리고 저는 3T이론에서 소수성애자가 이익을 이끌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소수성애자가 개방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다.->타인보다 매우 수용도가 높았다->천재들은 또라이적인 성향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잘 수용했다.->결과적으로 소수성애자의 개방적인 성격이 천재들의 적응을 이끌었다.->소수성애자가 많이 분포한 지역은 발전했다.

       

      통계학적으로 이야기한 것이 아닌, 상관관계를 중점으로 이야기한 것 입니다.

      그리고 통계학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상관관계를 부정한다면, 그런 식으로라면 모든 심리학을 부정하려고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심리학을 이미 수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통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통계는 과학적이고 사실입니다.

      이런 경우는 오히려 사람을 두고 하는 실험이나 설문이 아니라 더욱 정확합니다.

      사람에게 직접 시키면 더 잘 보이려는 사람의 습성 때문에 신뢰성이 살짝 낮아집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이 3T이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편견을 버리고 “개방적인”을 수용하면 더욱 발전하는 이점이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있지도 않은 도덕을 우리를 “지키는” “규칙” 이상으로 쌓고,

      어른들이 어릴 적 알려준 어른들의 사고방식이 잔재해 그것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틀렸습니다.

      그리고 소수성애자에 대한 내용도 그런 것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인커플이 될 수가 없다고 해도, 그들을 핍박하거나 비난할 이유, 경멸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 이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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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hwon2242의 프로필
    Lv3 hwon2242 님의 찬성 의견 - 1달 전

    두명을 동싯에 사랑하여 간통을 하지 않는다면 역시 두명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 무엇도 부술수없다’

    1 0 답글
  18. T.D.Core의 프로필
    Lv4 T.D.Core 님의 중재 의견 - 1달 전

    전 지구사람들이 유난히 집착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할때 사랑이 부족한 여자나 남자라면 애인의 관심을 더 받고 싶어할 것이고

    이미 사랑이 가득한 여자나 남자라면 오히려 사랑을 베푸는걸 좋아할 것입니다.

     

     

    이런건 자료가 될 순 없지만

     

    어머니같은 여자>누나같은여자>여동생같은여자>친구같은여자>원수같은여자>도둑같은여자

     

    이런여자의 등급이 있고.

     

    남자는 a~z까지의 조건이 있어 마음에드는 조건이 있는 남자를 골라 연애하게됩니다.

     

     

    연애를 한다면 서로를 알아가는건 맞습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사이중 가장 장벽을 허문사이일겁니다.

     

    서로 사랑한다면 서로를 위해주는것도 맞지만

     

    서로 싸우는것도 당연하고 서로 좋아해주는것도 당연한거지만

     

    하나의 나로 생각하고 그 배우자나 연인의 판단을 응원해줄 수 있는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판단이 판단을 내린 사람이 위험할 수 있거나 혼란이 오면 같이 도와주기도 하며 또는 거부할 수도 있겠지만

     

     

    배우자의 관심을 넘어서서 이젠 그것이 당연한듯 집착이 되어 관행이 된다면 그것만큼 피곤한게 어디있을까요.

     

    당연히 장벽을 많이 허물었지만 거기에 대한 댓가는 바라지 않아야 하는사이입니다.

     

    연애시절은 몰라도 결혼을 하고 난 후라면 이제 안심하고  언제나 사랑을 밥상에 차리고 기다리고 있다.

     

    라는 분위기로 서로를 맞아주면 내게 관심을 주기를 기대안해도 사랑했다면 충분히 그리합니다.

     

    서로에게 험한 욕은 쓰지 않고 싸우긴하더라도 발전적인 싸움이 좋지요.

     

     

    1.배우자의 의견을 존중할 것.

    2.배우자와 어깨동무 할것.

    3.사랑을 바라거나 속박하지말고 차려놓고 기다릴 것.

    4.배우자와의 문제해결은 서로를 나의 일부라 생각하며 진행할 것.

     

    애초에 그런 가까운관계에서 이런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살인한 배우자를 싫어할 순 있지요.

     

    그런 배우자라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배우자가 어떤선택을 하였든 아무리 비열해도 ‘이해’부터 해준다음

     

    피드백을 해야하는것이 맞다고 봅니다.

     

    지구에선 바람이 안좋은 문화로 인식되지만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면 – 아 더 큰 사랑이 필요했구나. –

    라고 생각하며 더 잘해주든지 알아도 모른척 덮어주고

     

    “당신이 요새 한 선택을 난 존중해요.”

     

    이정도 말만해주어도 죄책감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는법이죠.

     

    이런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배우자는 하나의 ‘나’와 같은 자이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는 사명이었던게 배우자라면, 아무리 비인간적이어도

     

    난 당신의 사랑으로써 아직 상을 차리고 있어. //또는//이게 마지막 상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되든, 존중하고 같이 발이 묶인사이이기 때문에 올바른쪽으로 이끄는데 있지요.

     

     

     

    배우자가 두명의 여자를 사귀든 두명의 남자를 사귀든간에

     

    일단 이해라도 해보는것이 우선이라 생각되고요.

     

    나에게 말하듯이 말하는것도 좋은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서로의 관계가 이대로 지속되기를 바란다며 이들을 집착하며 결속하는것은 옳지 않지만

     

    최대한 배우자옆에서 남자든여자든 잘 지탱해주고 보필하는것이 원래의 사명이었다고 봅니다.

     

    만약 집착하려 한다 결속하려 한다면 그만한 믿음을 주면되고,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려하는데 서로 발맞추다보면 우애깊은 부부로 자리잡을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한사람을 사랑하는걸 로맨틱하게 보지만

     

    여러사람을 사랑하는 나라라면 그럼에도 서로간의 덕을 실천할 수 있다면 그 관계는 무겁고도 넓은 사랑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책임질 수 있다면 몇까지 사랑해도 좋다.

     

    이런거?

     

     

     

    제 논점은 솔직히 우리의 사랑이든 서로의 사랑이든 배우자를 집착하고 결속하는 ‘병’을 가져선 안되며

     

    하나의 나처럼 이해하고 존중하며 지탱하고 보필하는것 밖에는 배우자로써 할 것이 없다는 말이지요.

     

    사랑이 풍부한 사람일 수록 이해는 더 잘한다고 봅니다.

     

    배우자에 따라서 결정해야겠지요.

     

     

    둘이서 사랑하든 여러명이서사랑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만큼의 짐을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면 되지요.

     

    그렇게 형성된 사랑이라면 많든 적든

     

    사랑의 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부부간 얽혀있던 실을 풀어나갈 수 있겠지요.

     

     

     

    서로 나의 일부처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댓가를 바라지 않는 사랑이 되고 충분히 앞에 있어준 사람이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

     

    사랑이 부족해도 사랑을 주는법을 알게되는 것이죠.

     

    사랑이 풍만하다면 부족한 아이가 애틋해보일지도 모르죠.

     

    사랑을 지탱하는데 가장 기본기라 할 수 있는

     

     

    서로간의 이해와 존중은 정말 둘이 사랑할때도 지키지 못하는것이라 봅니다.

     

    이걸 꾸준히 실현해 낼 사랑이라면 지켜낼 우리라면, 수많은 남자와 여자는 깔려있습니다. 가서 점령하세요.

     

    근데 내 앞의 한명의 배우자 하나 존중,이해,나의 일부, 발 맞춰가는 사이로 지켜갈 수 없다면 다른 여자,남자는 거들떠 보지 마시고 더욱 사랑하셔야 된다고 봅니다.

     

     

    능력있으면 당연히 많이 해봐야죠.

     

    없으면 소박하게라도 해보면 되고.

     

    예의,덕만 지켜져도 가벼운 사이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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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공다빈의 프로필
    공다빈 님의 찬성 의견 - 2주 전

    이런 문제는 사랑이란것에 대해 먼저 정의하고 찬반을 나눠야한다고생각하네요

    사랑, 감정적인 개념들은 애초에 사람마다 다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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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covid20의 프로필
    Lv2 covid20 님의 찬성 의견 - 4일 전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알려지지 않은 일입니다. 알려진 일은 상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알려진 일은 존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존재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현재 텍스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존재할 수 있는 일입니다. 존재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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