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시맨

[ - 디베이팅데이 ]

인생의 허무와 무질서를 녹여낸 마피아 영화

마틴 스콜세지가 자신이 제일 많이 되풀이한 영화 장르로 돌아왔다. 이제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전설적인 배우들과 거장 영화감독이 <아이리시맨>에서 마주했다.
그들의 만남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끝없는 울림을 자아낸다. 글 유인서 기자


사진 네이버 영화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말하라고 하면 나는 아마 마틴 스콜세지를 꼽을 것이다. 영화감독의 일이 삶의 한 단면을 잘라 자신만의 스타일로 스크린 위에서 설득력 넘치게 구현하는 것이라면, 나는 스콜세지보다 그 일에 더 뛰어난 사람을 떠올릴 수가 없다. 그의 영화를 전부 보지는 않았지만, 본 작품 대부분이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정말로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마치 다큐멘터리같이. 그리고 전통적인 이야기 문법과는 아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통 이야기엔 중심 사건이 있고, 인물들이 그 사건에 반응하면서 줄거리가 전개된다. 하지만 스콜세지는 인물 중심으로 영화를 풀어나간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아닌 듯한, 지리멸렬한 순간까지도 한 사람의 오리지널리티가 드러나는 이야기가 된다.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마틴 스콜세지는 수십 년간 마피아 이야기를 다뤘다. 2019년 개봉한 <아이리시맨>에서 그는 지난 세월 줄곧 반복해온 익숙한 주제로 다시 돌아왔다.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나 다름없는 배우인 로버트 드 니로, 예전에 <좋은 친구들>, <성난 황소>, <카지노> 등에서 같이 작업했던 조 페시, 그리고 이번에 처음 출연하는 알 파치노가 함께했다.

실화를 배경으로 재미와 입체감을 더하다

영화는 양로원에서 시작한다. 백발이 성성하고 얼굴엔 주름이 가득한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은 휠체어에 앉아 과거를 회상한다. 젊은 시절 그는 ‘집을 페인트칠’하는(킬러라는 메타포. 아마 사람한테 총을 쏘면 벽에 피가 튀기는 데에서 온 표현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배경이 된 소설의 제목 역시 ‘So I heard you paint houses?’) 삶을 살았다. 프랭크의 나레이션을 통해 영화의 시간은 그의 청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범한 트럭 운전수였던 그는 우연히 러스(조 페시)를 만나게 된다. 러스를 통해 당시 미국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했던, 전미 트럭 노조 위원장인 지미 호파(알 파치노)와 안면을 트면서 그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원동력은 프랭크와 러스, 그리고 지미 이 셋의 관계에서 나온다. 프랭크가 트럭 운전 일을 하다가 만난 러스는 정재계에 연줄이 많은, 미국 뒷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물이다. 그는 일찍이 프랭크의 성격을 파악한다.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데다가, 감정을 배제하고 사람을 단순히 일로써 죽일 수 있는 성향을. 러스는 프랭크를 지미에게 소개해준다. 세 명은 돈독한 사이가 됐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부딪히고, 현실적인 이익 앞에서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알 파치노가 맡은 ‘지미 호파’는 실존 인물이다.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녔던 그는 1975년 갑작스레 실종되었다. 영화는 풍부한 상상으로 실종의 배후가 어떠한지 그려낸다. 게다가 미국과 쿠바 간 갈등부터 케네디 대통령의 당선 비화와 암살까지, 배경으로 하는 시대의 굵직굵직한 사건들과 영화의 중심인물들이 묘하게 맞물리면서 스토리에 입체감을 더한다.

개인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펄프 픽션>, <킬 빌>시리즈를 만든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가 이제는 고전이 된 스콜세지의 1976년 작 <택시 드라이버>를 팟캐스트에서 리뷰한 적이 있다. 타란티노는 그 영화를 일컬어 ‘영화사상 가장 성공적인 1인칭 시점 내러티브’라고 이야기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주인공 ‘트래비스’는 전쟁 이후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주변 사람들과 동떨어진 그는 영화 내내 일기를 쓴다. 그 일기는 트래비스의 로봇처럼 건조한 나레이션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중심이 된다. 타란티노는 말한다.

그의 나레이션을 통해 우리는 온전히 그의 시점으로 영화 속 세상을 보게 된다.

스콜세지의 영화에서 독백 혹은 나레이션은 항상 중요한 요소다. 주인공들은 혼잣말도 하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읊기도 하고, 때로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아이리시맨>은 세 시간 반짜리 영화다. 이 긴 여정을 묶어주는 힘 역시 늙은 프랭크의 나레이션에서 나온다. 영화 초반에는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이야기의 끝에는 과거를 회상하는 프랭크만이 남는다. 관객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프랭크만 남았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하고 자연스레 상상하게 된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1990년 스콜세지는 <좋은 친구들>로 커리어에 커다란 방점을 찍었다. 그로부터 30년가량이 지나 나온 <아이리시맨>은 그 영화와 많이 닮았다. <아이리시맨>처럼 <좋은 친구들> 역시 갱스터 세 명에 관한 이야기다. 심지어 로버트 드 니로와 조 페시가 주연을 맡았다는 점도 같다. 주인공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즐기고, 마지막에는 비루한 결말을 맞는다는 점도 유사하다. 하지만 줄거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좀 다르달까. 두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30년이란 시간은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아이리시맨>이 좀 더 느린 템포로,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이리시맨>은 스콜세지가 처음으로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다룬 영화가 아닐까 싶다. 자기 이익을 위해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고, 명예와 돈에 집착하며 온갖 풍파를 겪은 인물들이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늙어서 지팡이나 휠체어 없이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치아가 빠져 빵조차 제대로 씹지 못하게 된다. 프랭크의 친구들은 하나 둘 곁에서 떠났고, 가족들도 더 이상 그를 찾아오지 않는다. 주인공의 화려한 젊은 시절과 초라한 말년이 대비되면서 묘한 감정이 일어난다. 혹시나 <아이리시맨>을 이미 봤다면 <좋은 친구들>을 이 영화와 비교해가며 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며 초반에는 조금 어색하다 싶었다. 주연 배우들의 나이가 70을 넘어 80을 바라보니 디에이징(CG 작업으로 배우를 젊어 보이게 만드는 것) 기술을 도입했다 해도 젊은 시절을 연기하는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며 시대가 변하고, 등장인물들이 늙어가니 점점 익숙해졌다. 사실 영화 시간대의 이동 폭이 워낙 커서 스콜세지도 젊은 시절을 연기할 배우들을 따로 찾을까 생각했다고. 하지만 인물들의 사소한 습관, 그들이 서고 걷는 방식, 말할 때의 제스처 등을 다른 배우가 일일이 짚어내기 어려울 것 같아서 고민하던 중 디에이징 기술자와 만났다고 한다. 호퍼 역을 맡은 알 파치노는 촬영장에서 디에이징 작업을 마친 영상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고 한다. 진짜 젊은 시절 영상을 그대로 가져온 줄 알았다고. 나는 처음에는 ‘메이크업으로 젊어 보이게 분장했겠지’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런 촬영 신기술(?)이 쓰인 걸 알고 몹시 신기했다. 이 영화에 사용된 디에이징 기술은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정밀한 최신 기술이라 한다.

마틴 스콜세지가 보는, 그저 흘러갈 뿐인 세상

스콜세지 영화를 보면 항상 어떠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힌 감정일 테지만 나에게는 ‘허무’와 가장 가까운 것으로 와 닿는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를 따르며 살지만, 다양한 상황과 다른 이의 시선 아래서 신념과 가치를 비롯한 모든 것이 너무도 쉽게 의미를 잃는다. 그의 영화에 담긴 익살과 진지함, 아름다움과 미묘함은 모두 참을 수 없는 삶의 허무함에서 나온다. 스콜세지의 영화는 교훈적이지 않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고,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도 않다. 줄거리를 전하는 방식도 불친절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정말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로 느껴진다. 사실 삶에는 어떤 정해진 목적이나 법칙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스콜세지는 그냥 흘러가는 인생의 모습을 드러낼 따름이다. 그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의도한 무질서’는 작품과 그 안의 인물들을 유기물처럼 빚어낸다.

스콜세지는 무질서를 다듬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묵직한 이야기를 만든다. 그 점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건, 나랑 친한 친구는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영화를 싫어한다.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누군가에게는 무책임하고 재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니. 역시 뭐든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성질을 지니는 것 같다. <아이리시맨>은 스콜세지 세계관의 가장 원숙한 버전이다. <좋은 친구들>이 더 훌륭한 영화일지는 몰라도, 이 영화에는 이전에는 찾을 수 없던 새로운 매력이 있었다. 노년에 접어든 유명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들이 왜 세상에서 연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로 손꼽히는지 알 것 같다. 세 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 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의 다음 영화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넷플릭스와 아이리시맨

<아이리시맨>은 9월 27일 뉴욕 필름 페스티벌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진 뒤 몇몇 극장에서만 상영을 하고, 11월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공개 첫날에만 390만 명, 이어서 5일 동안 약 1700만 명이 봤다고 한다. 스콜세지의 작품 중 극장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본격 서비스되는 첫 영화다. 또한 주연 배우들인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 그리고 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20여 분짜리 영상 <아이리시맨에 대해 말하다>도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영화에 대한 생각은 물론 기술과 영화의 미래, 그들의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재미있다. <아이리시맨>을 봤다면 이것도 보는 것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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