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터처블 : 1퍼센트의 우정

[ - 디베이팅데이 ]

친구가 된다는 것

‘끼리끼리 논다’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린다는 말이다. 여기,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빈민가를 전전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 같은 ‘드리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큰 부를 지녔지만 머리 외에 신체의 다른 부분은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 ‘필립’.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두 사람에게도 닮은 점은 있었다. 그들은 같은 종류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글 유인서 객원기자

드리스와 필립의 첫 만남

파리 한가운데에 있는, 다른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자택. 필립은 전신마비인 자신의 일상생활을 지원할 사람을 뽑기 위해 면접을 보는 중이다. 뻔하고 지루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지원자들을 보며 필립이 지친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순간, 얼룩말처럼 커다란 사내 한 명이 자기 차례도 아닌데 대뜸 들어온다. 무슨 문서를 들이밀며 필립에게 사인을 요구한다. 그의 이름은 드리스. 드리스는 면접을 봐서 이곳에 채용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기초생활지원금을 받기 위해 그냥 자신이 구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인을 받고 싶은 것뿐이다. 이 새로운 사람의 등장에 필립은 신선함을 느꼈는지, 다음날 사인을 해줄 테니 다시 찾아오라며 일단 돌려보낸다. 다음날 집을 찾아온 드리스에게 자택의 집사는 대뜸 그에게 하루 일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영문을 모른 채 드리스는 집 안을 두리번댄다. 얼떨결에 취직을 하게 된 드리스. 필립은 드리스에게 “너는 어차피 이주일도 못가서 관둘걸”이라고 말한다.

드리스는 천천히 일을 배워가기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필립은 하루에 정해진 시간 동안 누군가가 직접 몸을 움직여 주어야 한다. 하지만 드리스는 그전까지 일했던 사람들과는 뭔가 다르다. 글을 읽지 못하는 그는 족욕용 비누를 샴푸로 착각하고 필립의 머리를 감긴다. 뜨거운 물로 마사지를 하던 도중 실수로 다리에 뜨거운 물을 흘렸는데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필립을 신기해하며 아예 주전자 채로 다리에 물을 부어대며 말한다.

“아저씨, 감각이 없어요? ”

자신이 알지 못하는 모든 일에 그는 아이처럼 천진하게 반응한다. 모르는 걸 숨기려고 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누가 사람을 짐짝처럼 뒤에다 싣느냐”며 평소 외출할 때 타는 봉고차가 불편해서 싫다는 필립을 번쩍 들어서 승용차 앞좌석에 앉힌다. 장애인주차구역임에도 버젓이 차를 세워놓고 통화하는 운전수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멱살을 잡고 얼른 차를 치우라며 호통 친다. 폭풍 같은 인간 드리스는 자연스레 필립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산다. 필립의 안위를 염려하는 그의 사촌에게, 필립은 이야기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해.

인간을 인간으로 대한다는 것

우리 안에는 무수히 많은 편견이 존재한다. 편견이란 것은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와 대면할 때 생겨난다. 마치 오랫동안 닦지 않은, 먼지가 뿌옇게 앉은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우리 안의 편견은 우리가 대면하는 인간을 인간으로 보기 힘들게 만든다. 장애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궁금한 게 있을 때면, 당사자에게 직접 묻는 것이 아니라 꼭 자신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는 것이다. 발달장애인과 같이 식당에 가면, ‘물 좀 더 드릴까요?’같은 질문을 당사자가 아닌 그와 함께 있는 사람에게 던진다.

신체 장애인들에게도 이런 일들은 빈번히 일어난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휠체어 가격을, 그것도 본인이 아니라 휠체어 뒤에 있는 사람에게 묻는다.

이거 얼마예요?

얼마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인가. 세상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격리되어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늘상 마주하고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이 보이면 우리는 불편한 눈길을 던지고, 무시하고 또 경계한다. 우리는 장애인을 만날 때 사람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이 가진 장애를 본다. 그렇게 우리가 지금 막 만난 인간의 모든 것을 장애라는 좁은 프리즘을 통해 독단적으로 규정해버리는 순간, 장애인과는 결코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필립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도 대부분 그런 이들이었을 것이다. 그가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대놓고 동정하거나, 안쓰럽다는 듯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 혹은 일을 하러 온 사람들처럼 철저히 기능적으로, 일로만 그를 바라봐온 사람들. 하지만 드리스는 달랐다. 드리스에게 필립의 장애는 기피하거나 어려워해야 할 대상도, 동정의 대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필립이라는 한 인간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특질 중 하나일 뿐이었다 마치 우리가 친한 친구들의 말투를 흉내내거나 장난스럽게 놀리듯, 드리스는 초콜릿을 달라는 필립에게 “먹고 싶으면 와서 뺏어보라”고 하고 면도를 해주다가 필립의 콧수염을 히틀러 모양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 그가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드리스는 필립을 만날 때 장애인이자 고용주로서가 아니라 인간 ‘필립’을 만난다. 필립이 자칫 위험하고 선을 넘는 듯한 드리스의 행동을 불쾌해하지 않고 즐기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그것은 그 둘이 서로를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 아닌, 그저 인간이기에 존중하며 관계를 맺어나가기 때문이다.

한국의 활동지원서비스

사실 내가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다. 혹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엔 중증장애인의 일상 활동을 지원하는 사람들인 ‘활동지원사’들을 장애인 당사자들과 매칭시켜주는 센터들이 있다. 40시간의 수업을 이수하고, 10시간의 실습 시간을 모두 채우면 활동지원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나는 5월이 시작되고 일주일 동안 이 과정을 이수했다. 수업의 커리큘럼엔 기본적인 인권 교육과 장애인 투쟁의 짤막한 역사, 휠체어나 지팡이 등 활동지원 기구 사용법, 그리고 활동지원사의 직업윤리 같은 것에대한 강연이 포함되어 있다. 강연을 듣는 내내 나는 한국 사회에서 ‘돌봄’이라는 것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산업 사회의 주인은 다른 무엇도 아닌 ‘돈’이다. 자본 아래에서 인간은 무력하다. 인간의 존엄을 판단하는 기준은 ‘생산력’, 즉 ‘얼마나 큰 이윤을 남길수 있는가’가 된다. 상대적으로 남보다 적은 생산력을 가진 민권 집단들, 즉 장애인, 여성, 노인, 이민자 등은 나머지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마치 우리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처럼, 인간 역시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한다. 물론 대놓고 그렇게 광고하지는 않는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2007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로 최초 시행되었다. 그러다 최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용자와 지원사를 1대1로 매칭해주는 이 서비스는 여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한계 역시 많다. 우선 65세 이상의 장애인은 노인요양서비스 이용자가 되므로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가가 활동지원시간을 장애인 이용자들마다 할당하는 방식 역시 문제로 꼽힌다. 심사 기준이 불명확하고, 심사과정 자체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 진행된다는 사실도 지적된다. 최저임금에 준하는 적은 임금, 자격증을 취득하기가 너무 쉽다는 것에서 오는 지원사의 전문성 부족 등도 문제로 꼽힌다.

겉으로 우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같은 말을 듣고 자란다. 하지만 그 달콤한 상식 이면에는 온갖 종류의 혐오와 배제, 차별로 얼룩진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남을 돌본다는 것은 가치 없는 일로 치부된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이미 자본의 관점에서는 ‘마이너스 인간’ 이다. 국가는 그저 겉치레를 하기 위해 최소한의 예산으로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시늉만 한다. 복지예산은 턱없이 모자라고 당연히 돌봄을 전담하는 돌봄 노동자의 일은 폄훼당하기 일쑤다
.
가부장제 아래에서 우리 사회가 여성을 어떤 방식으로 취급하는지 보라. 가계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은 언제나 사회적 강자인 남자에게 돌아간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는 돌봄 노동이 돌아간다. 아이를 키우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건 한국 사회에서 전적으로 여자의 몫이다. 그동안 사회는 무엇을 하는가? ‘맘충’ 같은 혐오 발언으로 그들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여성(엄마)을 ‘끊임없이 희생하는 존재’ ‘감사한 존재’로 동정하고 또 미화한다.

이처럼, 약자를 돌보는 일은 별 가치가 없는 일로 여겨지기에 가치 있는 일거리를 줄 필요가 없는 다른 사회적 약자에게 떠넘겨진다. 실제로 나와 같이 활동지원사 강의를 들었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60대 이상의 경력 단절 여성이었다. 누구도 이런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존엄하다. 이 말에는 그 어떠한 수식도 필요 없고, 수식이 붙어서도 안 된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탈 수 있게 휠체어 리프트,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버스를 탈 수 있게 저상버스를 도입하는 건 국가가 장애인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니다. 그것은 엄연히 국가의 ‘의무’다.

마찬가지로 일상의 모든 순간에 활동지원사가 필요한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예산의 편의를 따져서 결정할 부차적인 일이 아니라 가장 먼저 국가가 이행해야 할 의무다. 사회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것’을 제1가치로 두고 작동해야 한다. 혜택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늙고, 병들고, 약해지게 되어 있다.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는, 활동지원사와 장애인 이용자가 맺을 수있는 이상적인 관계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드리스는 자신이 이 장애인을 자신이 ‘돕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필립과의 관계는 그에게 단순히 노동자-고용자 관계에 있는 ‘일’도 아니다. 그들은 친구가 된다. 어느 한쪽의 선의에서 출발한 우정이 아니라, 그냥 어쩌다 보니 생겨난 우정이다. 세상의 다른 많은 우정들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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