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 - 디베이팅데이 ]

삶과 죽음 사이 달콤함과 시큼함

평온한 삶이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삶의 의미를 무엇에서 찾아야 할까. 인생이란 달콤함과 시큼함을 동시에 지닌 레몬.
이따금 레몬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란빛을 보며, 위로받는 순간으로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지 않을까, 싶은.
글 박지니 기자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순간

여기, 외모도 성격도 모두 다른 해언과 다언 자매가 있다. 언니 해언은 눈에 띄는 미인이지만 사교성이 없어 다가가기 힘든 학생, 동생 다언은 평범한 외모인데 활달하고 밝은 학생이다. 동생인 다언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아이 같은 언니 해언을 어릴 적부터 보살펴왔다.
그런데 어느 날, 해언이 공원에서 살해당한 채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다언의 인생은 그때부터 송두리째 바뀌기 시작한다. 다언은 자기 얼굴을 바라보며 아름답던 언니의 얼굴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서글픈 시선을 느낀다. 다언은 성형을 거듭하여 언니와 비슷해 보이는 외모로 변한다. 성격도 바뀌었다. 활발하고 잘 웃던 예전의 다언은 사라졌다. 매일 언니가 왜 살인이 일어난 공원으로 갔을지, 언니를 죽인 범인이 누구일지 조용히 골몰할 뿐이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비극이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순간과 마주하면 당황한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자신만의 세계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와르르 무너지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죽은 이를 보내고 살아남은 사람은 수습 불가능한 고통 앞에서 도대체 무얼 해야 할까?

고통스럽지만 애도를 시작하는 남겨진 사람들

언니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다언. 심지어 언니 살인사건은 미제로 끝난다. 해결되지 않은 언니의 죽음과 마주한 다언은 혼란에 빠진다. 언니가 죽었는데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언은 언니의 죽음에 압도된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이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죽음은 우리를 잡동사니 허섭스레기로 만들어요. 순식간에 나머지 존재로 만들어버려요.

죽음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니 죽어서 떠나버린 사람에게 더 잘해줄걸 아쉬워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죽음이란 미지의 존재가 남기고 간 오싹한 감정과, 죽은 이와 살아생전 함께했던 추억이 남아 살아남은 사람을 짓누른다. 죽음이 휩쓸고 간 자리는 한순간에 바뀌어버린다. 일견 평온해보이지만 너무나 많은 것이 달라진 일상이 어떻게 평소와 같이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삶이란 참 덧없구나 싶다.

가까운 사이였던 누군가가 영영 내 곁에서 떠나갔다는 고통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모른 체하고 아무렇지 않은 양 행동하거나, 죽음에 매몰된 채 현실을 흘려보낸다. 혹은 죽은 자를 버젓이 살아있는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다언의 경우 자기 자신을 매개로 언니를 살려낸다. 언니와 닮아 보이게끔 성형을 하고, 언니가 죽은 날 입고 있던 것과 비슷한 노란색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닌다. 그래야만 언니가 살아있고 모든 것이 흐트러지지 않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혹은 이렇게라도 언니에게 관심을 두어 언니의 죽음을 더 슬퍼하지 못한 걸 사과하는 걸지도, 아니면 자기의 삶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린 그날을 일종의 의식처럼 기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영 제대로 된 애도를 할 수 없다. 애도란 죽음이 찾아온 걸 인정하고, 죽음이 나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과정이다. 남겨진 자는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고통스럽지만 애도를 시작해야 한다.

삶의 의미

죽음 앞에서 한 인간의 생애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어 무의 존재로 돌아가야 하는데, 대체 삶의 의미란 무얼까? 이 질문 앞에서 인간은 모두 방황한다. 우리도 잠시 생각해보자. 갑자기 삶을 뒤흔드는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고통을 이겨내고자 삶의 의미를 찾아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게 최선일 것 같다.
그런데 삶에 꼭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할까?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이루어야 할 과업을 향해 나아가야만 인생을 알차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는가? 삶의 의미를 콕 집어 정하지 못하면 그저 그런 평범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인가? 아니, 애초에 평범한 삶이란 존재할까. 평범한 삶이란 무얼까. 모든 사람은 지문처럼 각기 다른 인생의 굴곡을 지니고 살아간다. 때로는 굴곡들이 저마다 다른 게 불합리하게 느껴진다. 내가 선택한 적 없는 일이 삶에 끼어들 때면 답답해진다.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스스로 알 수도 없는데, 대체 삶의 의미란 무얼까?

소설은 거듭 이 질문을 되풀이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명쾌하고 시원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오히려 안개 저 너머에서 일렁이는 형체와 같이, 모호한 묘사가 계속된다. 마치 이렇게 의아하고 무어라 확답을 내릴 수가 없는 것이 삶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고난과 힘겨움 속에서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 모든 존재들이 서로 울림을 주고받는 것 그 자체로도 삶은 한번 살아볼 만한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

아름다운 생의 노란빛, 레몬

소설에는 노란색이 자주 등장한다. 갑자기 죽어버린 해언, 그로 인해 방황하는 다언의 삶의 중요한 대목마다 노란 빛이 나온다. 그 밖에도 주요 소재인 레몬, 달걀 노른자, 참외, 맥주 모두 노란빛을 띤다. 노랑은 애도다.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의 희생자를 기리는 색이다. 갑자기 죽어버린 학생, 남겨진 자의 고통, 노란색으로 대표되는 애도…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세월호 사건 당시, 우리는 자연재해처럼 찾아와 삶을 뒤흔들어놓는 죽음을 목격했다. 유족을 비롯한 시민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를 안다. 노란 리본. 노랑은, 진정한 애도를 시작하고 스스로를 보듬어 주자는 메시지를 담은 상징이다. 노랑은 우리 모두를 위한 색이다. 하지만 동시에 노랑은 행복이다. 노란색이 등장할 때마다 글로부터 늦은 오후 햇살같이 노란빛 따뜻한 온기가 퍼지는 듯하다. 노란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노랑이란 참 예쁜 색이구나 느끼게 만든다.

책을 읽노라면, 삶이란 노란 레몬과 같아서, 달큼함과 시큼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충분히 한 입 먹어볼 만한 것이구나 싶단 생각이 든다. 우리는 살면서 방황할 테고, 부당한 사건 때문에 괴롭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이따금, 노랗게 빛나는 인생의 순간을 여럿 맞이할 것이다. 그 행복한 순간만큼은 분명 평생 두고두고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권여선

1965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출생했다. 1996년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받아 등단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사랑을 믿다>로 이상문학상, 2012년 <레가토>로 한국일보문학상, 2016년 <안녕 주정뱅이>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이외에도 수상경력이 다수 있다. 권여선의 작품에는 일상과 평범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권여선이 그리는 일상의 모습은 결코 평온하지 않다. 사람들이 삶을 버티기 위해 묻어두었던 진득한 감정 응어리를 주목하여 응시한다. 권여선의 소설은 인간의 좌절도 들여다보지만, 무슨 일이 벌어져도 다시 일어나 웃을 수 있다는 희망 또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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