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 디베이팅데이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일자리가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 돈이 아닌 꿈을 좇아 일자리를 찾는 나라. 평생 병원비와 교육비가 무료인 나라.
초등학교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며 자전거 전용 주행규칙까지 있는 자전거의 나라. 등굣길과 출근길에 마음이 가벼운,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덴마크.
덴마크 사람들은 왜 행복할까? 덴마크는 어떻게 행복한 나라가 되었을까? 우리나라도 덴마크처럼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글_이준기 기자

이 책은 2014년에 발행된 책이다. 유엔은 2012년부터 세계행복보고서를 통해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 책과 본문에서 사용된 통계는 2012년과 2013년 자료를 기준으로 한다. 2019년 현재 행복지수 순위는 조사대상 156개국 중 핀란드 1위, 덴마크 2위, 한국 54위.

행복사회 덴마크의 역사

많은 것을 잃었지만 행복만은 지켜낸 나라

덴마크는 북유럽에 위치한 스칸디나비아의 작은 나라다. 인구는 약 560만 명이며 국토는 한반도의 5분의 1 크기다. 그러나 불과 150년 전만 해도 현 덴마크 국경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200km 정도까지가 모두 덴마크 땅이었다. 17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은 독립 국가인 노르웨이도 덴마크의 땅이었다. 이 커다랗던 영토를 덴마크는 19세기 초반부터 조금씩 빼앗기기 시작한다. 덴마크는 1814년에 스웨덴에 노르웨이를 빼앗겼으며 그로부터 50년 후인 1864년에는 나머지 영토의 3분의 1을 당시 프로이센이었던 독일에 강탈당했다. 그때부터 덴마크는 큰 나라를 이루려는 미련을 접고 행복한 작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기 위한 세 가지 운동

독일에게 국토의 3분의 1을 빼앗기고 난 뒤 덴마크에는 농작물을 심을만한 땅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덴마크군 장교 출신이자 엔지니어였던 달가스는 잡초만 무성하고 쓸모없는 해변 습지에 배수 시설을 설치하고 나무를 심은 뒤 개간해 곡식을 생산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드는 사업을 떠올리는데, 그 아이디어를 정부에 제안했지만 거절당한다. 그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사설 기업을 만들어 주민 모금을 통해 불도저처럼 일을 추진해 나갔고 처음에는 그를 의심하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그의 진심을 믿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됐다. 결국 그와 그의 아들이 주도하고 농민들이 참여하여 1870년대에 본격화된 국토 개간 운동으로 덴마크의 황무지는 30년 만에 6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고, 그만큼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늘어났다.

협동조합 운동도 주요했다. 1882년 최초의 협동조합인 낙농 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이때 협동조합을 만들자고 동네 농민들을 설득한 이는 스틸링 아네르센이라는 청년으로, 그는 각 농가가 개별적으로 버터와 치즈를 만드는 것보다 공장을 차려 함께 만들면 훨씬 쉽게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처음에는 의문을 가지던 농민들도 함께하면 득이 된다는 사실을 체험한 뒤에는 적극적으로 협동조합에 참여했다. 이후 우후죽순처럼 협동조합이 설립되어 1900년에는 10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생겼고 작은 협동조합끼리 연대해 더 큰 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하면서 함께 살 길을 모색했다. 그들의 구호는 이것이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왜 덴마크의 농민들은 국토 개간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에 이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했을까? 이들의 협동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콜라스 그룬트비라는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한다. 목사이자 시인이자 정치가였던 그는 당시 시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농민이 깨어나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1844년 그는 국가주도의 정규 교육과정과 별개로 뢰딩에 농민이 주도하는 농민학교를 만들어서 농사일은 물론 덴마크의 역사와 문학 등을 교육했다. 그야말로 ‘깨어 있는 농민 되기’ 운동이었다. 이 성인용 자유학교에는 시험도, 졸업장도 없었다. 그곳에서 농민들은 토론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평등, 연대와 협동, 이웃사랑의 정신을 배웠다.

이 세 가지 운동의 공통점은 모든 운동이 국가나 군대 등 권력의 주도가 아니라 시민의 주도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덴마크의 시민들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시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인 사회를 일군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급여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게 되었을까?

경쟁하지 않는 학교

덴마크의 초등교육기관인 폴케스콜레는 총 9년 과정으로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해당한다. 폴케스콜레에서 학생들은 경쟁하기보다는 협동하고 대화하고 연대하는 기술을 배운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니 학교에서부터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시험이다. 7학년까지는 점수를 매기는 시험을 아예 치르지 않고 8학년 때는 점수를 매기지만 등수는 매기지 않으며 9학년 때 등수를 매기는 시험을 치르지만 그것을 진로 조언에 참고할 뿐이다.

이처럼 덴마크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단순히 공부를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고민하게 하며 각자가 사회의 주인이 되는 법을 가르친다. 덴마크의 학생회는 학교 이사회에 학생 대표를 참여시킨다. 이사회에 참여한 학생 대표는 학부모나 교사와 완전히 동등한 한 명의 이사로서 존중받으며 회의에서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진정한 민주적 참여를 훈련하는 셈이다. 학생을 미성숙하고 다스려야 할 존재로만 바라보는 우리나라 교육기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덴마크의 고등교육은 10학년이 아니라 11학년부터 시작한다. 중간에 1년이 비는 셈이다. 덴마크에서 이 기간은 의무교육 기간이 아니어서 학교를 다닐지 말지는 학생과 부모가 결정한다. 이때 만약 학교를 다니기로 결정한다면 집과 가깝고 9학년까지 다녔던 기존 학교에서 10학년을 보낼 수도 있고 에프터스콜레라고 부르는 기숙학교에 다닐 수도 있다. 에프터스콜레는 말하자면 인생 설계 학교다. 덴마크에는 250여개의 에프터스콜레가 있고 전체 학생의 약 40%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에프터스콜레에 다닌다. 개중에는 종합교육을 하는 곳도 있지만 체육이나 음악처럼 특별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곳도 있다. 이처럼 가지각색인 에프터스콜레지만 모든 에프터스콜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공부보다 인생 설계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인생 설계를 위해 모든 학생이 1년을 쉬는 선택은 어느 한 학생과 부모의 결단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덴마크 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1년간의 쉬는 시간이 가치 있고 꼭 필요하다는 믿음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교육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10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학업에 치여 삶을 잊고 사는 동안 덴마크의 학생들은 삶을 배우는 것이다.

덴마크는 국가에서 학비를 100퍼센트 지원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독립해서 사는 대학생의 경우 매달 약 6000크로네(약 120만 원)의 생활비를 지원받고 부모님과 함께 살아도 이 금액의 반절 정도를 지원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덴마크 학생들은 꼭 대학에 가야만 배울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전체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2년제 교사 전문학교, 목수 전문학교, 요리사 전문학교 등 각종 직업학교를 선택하는 이들도 4년제 종합대학에 진학하는 사람들만큼 많다. 그리고 누구도 그것을 천시하지 않는다. 덴마크 학생들이 여유를 가지고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이유다.

노동하기 좋은 나라, 기업하기 좋은 나라

우리나라 뉴스를 틀면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 측과 사업자 측이 대립한다. 덴마크는 그렇지 않을뿐더러 조금 특이하다. 사업자들은 덴마크를 사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하는데 노동자들은 덴마크를 노동하기 좋은 나라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업하기 좋은 나라가 노동하기 좋은 나라일 수 있을까?

19세기 후반 덴마크에는 급격한 산업화로 노동자들이 대거 등장했고 그들의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노동조건 개선을 목표로 짧은 시간에 전국단위의 노조를 결성했고 1899년 5월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경영자들은 직장 폐쇄로 맞섰다. 100일이 넘게 지속된 이와 같은 충돌이 대타협을 만들어냈다.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과 파업의 권리를 갖고 경영자는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다는 것이 대타협의 골자였다. 물론 해고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무차별한 해고가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차별에 의한 해고는 엄격히 금지되며 경영상 부득이할 때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이 대타협의 정신은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대타협은 신뢰받는 정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는 실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업 후 2년까지 월급의 90%에 이르는 실업보조금을 지급하고 그 이후에는 사회보장기금에서 실업보조금의 70%에 이르는 사회보장기금을 지급한다. 덴마크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품위를 잃지 않도록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또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공립학교가 잘 운영되고 있어서 직장을 잃은 노동자가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까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기초 지자체 마다 직업센터를 두고 실직자들의 구직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래서 실업보조금과 사회보장기금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의 실직자들은 1년 안에 50%, 2년 안에 80%가 재취업에 성공한다. 이처럼 튼튼한 고용안정성 덕분에 덴마크의 노동자들은 한 직장에 오래 머무르려는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여서 더 좋은 직장으로 가야겠다는 공세적인 생각을 하고(매년 덴마크 전체 노동자의 삼분의 일 가량이 직장을 옮기며, 덴마크의 노동자는 살면서 평균 6번 정도 이직한다) 경영자들은 유능한 노동자들이 떠나지 않도록 대우를 개선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

덴마크에서는 기차를 같이 타고 내릴 때까지 함께 이동하며 이야기하는 4~50여분의 시간 동안 하나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낼 정도로 협동조합 문화가 잘 정착돼 있다. 시민들이 협동조합으로 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할 정도니 말이다. 협동조합에 100만 원을 투자했든지 1000만 원을 투자했든지 협동조합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투표권은 1인당 한 표로 동일하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협동조합이 잘 정착되어 운영되는 나라에 별도의 협동조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평등, 협동의식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기 때문에 협동조합을 설립할 때 토론을 통해 정립하는 정관만으로도 협동조합을 평등하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룬트비에게 평등과 연대·이웃사랑 정신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사회의 주체가 되니 세부적인 법을 만들기 위해 시간과 돈을 쏟아 붇지 않아도 연대할 수 있고, 불필요한 마찰로 인한 에너지 소비 없이도 토론이 결론에 이른다. 교육으로 쌓아올린 서로 간의 신뢰가 엄청난 사회적 자산인 셈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엄청난 실업보조금과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복지 선진국 덴마크에서는 엄청난 복지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자신이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 그럼에도 그 세금을 아까워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그렇게 돈을 벌기까지 국가의 덕을 봤으며 자신도 언제든 그 복지서비스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은 세금을 내며 자신의 돈으로 누군가가 덕을 보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이 중요하고, 삶의 여유와 즐거움,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세금을 아까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덴마크 사람들은 정부를 신뢰하고 서로를 평등하게 생각한다. 오늘날 이처럼 굳건한 신뢰와 평등은 그 자체로 돈이나 다름없다. 불평등이나 불신 때문에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 개인으로서는 손해일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득이고 그 결과 개인도 이득을 본다는 사실을 덴마크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다. 덴마크라는 나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협동조합이나 다름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들은 구성원 간의 끈끈한 결속을 다진 채 살아간다. 어렸을 때부터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운 시민 하나하나가, 복지사회 덴마크를 지탱하는 튼튼한 기둥으로 자라난 것이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자. 이 책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쟁보다는 협력이, 불평등보다는 평등이 중요하다는 것. 그러려면 시민 스스로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 정부주도의 교육이 아닌 시민 스스로가 행복한 삶을 위한 바른 교육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

덴마크가 공산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선택한 것은 공산주의를 완전히 거부하고 완전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신뢰받는 정부와 평등이라는 공산주의의 긍정적인 가치는 유지하면서도 시민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독재로 치닫는 것을 막았다. 튼튼한 정부가 존재하는데 어떻게 시민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덴마크가 다당제의 나라라는 사실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1901년 이후 지금까지 어떤 당도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해본 적이 없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 스스로 깨어나 권력의 독과점을 견제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와 우리의 후손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지금처럼 끝 모르는 경쟁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연대와 협력을 통해 평등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토론할 것인가? 선택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덴마크의 노동 요모조모

■ 덴마크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70%에 달하며 노동조합에서 지정하는 최저임금이 사실상 표준으로 적용된다.
■ 덴마크 노동법은 연간 5주의 유급휴가를 보장하며 주간 최대 노동가능시간은 48시간이다.
■ 덴마크에는 기존 법원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노동법원이 있는데, 노-사-정이 공동으로 운영하며 대법원도 노동법원의 재판결과에 개입하지 못한다.
■ 회사법에 의해 평사원의 이사회 참여가 보장돼 있다. 이사회에 참여할 평사원은 사원의 직선투표로 결정한다. 평사원은 다른 이사들과 동등한 한 표의 권리를 가진다.
■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는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샤워시설을 설치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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