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 - 디베이팅데이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미국의 사회상을 잘 포착하여 생생한 삶의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유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톰 소여의 모험》 등을 출간하며 명성을 얻은 그는 어느 날 16세기 영국 왕실을 주제로 한 《왕자와 거지》를 발표한다. 갑자기 작품에서 다루는 시대를 확 바꾸어버린 마크 트웨인.
16세기 영국 시대상을 포착하여, 그가 전하고자 했던 말은 무얼까? 왜 그는 왕자와 거지의 처지를 뒤바꾸는 소설을 썼을까? 글_박지니 기자

시대의 현실을 조명한 작가, 마크 트웨인

윌리엄 포크너는 마크 트웨인을 기리며 이렇게 말했다.

마크 트웨인은 최초의 진정한 미국 작가였고, 우리 모두는 그의 유산으로 존재하며, 우리는 그의 자손이다.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크 트웨인. 사실 마크 트웨인은 그의 본명이 아니다. 진짜 이름은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 (Samuel Langhorne Clemens)로, 마크 트웨인은 필명이다. 그는 미국 남부에서 가난한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는데, 뱃일도 그중 하나였다. 마크 트웨인(Mark Twain: 수심 두 길, 약 3.7m)은 뱃사람들이 안전수역을 부르는 데 쓰는 말에서 따온 이름이다. 필명에서 느껴지듯 그는 서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에 주목하는 작가였다.

마크 트웨인은 남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글 정체성을 정립했다. 당시 미국 남부에는 흑인 노예를 데리고 농장을 운영하여 부를 쌓은 재산가나, 서부 개척지를 노리는 투기꾼이 많았다. 그는 자본 중심적 사회에서 인간이 소외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비판의식을 갖게 됐다. 또 어린 마크 트웨인은 《톰 소여의 모험》처럼 자연과 어울려 놀았는데, 그러면서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길렀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마크 트웨인은 동화와 모험소설 양식 하에서 사회를 풍자하는 사실주의 소설 체계를 확립했다. 문학계에서 영국 복고주의가 강세였던 시절, 그는 미국 남부 하층민들의 삶과 실제적인 사회현상에 주목하여 문학의 초점을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미시시피강의 생활》,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등에서 꾸준히 19세기 후반 미국 남부 지역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았던 그는 1882년 갑자기 16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왕자와 거지》를 집필했다. 오늘날 동화로 널리 읽히는 이 책은 사실 거의 300페이지에 육박하는 풍자소설이다. 마크 트웨인의 기질 상 이 우화를 통해 당대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었으리라 추측되는데, 그는 과연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왕자와 거지가 뒤바뀐 황당한 이야기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자!

왕자가 된 거지, 거지가 된 왕자

16세기 중반 영국의 어느 날, 두 소년이 태어난다. 같은 날 출생했지만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거지 집안에서 태어난 소년 톰 캔티는 가족들과 함께 구걸하며 근근이 살아가게 된다. 반면 다른 소년인 에드워드는 헨리 8세의 외아들로 태어나 살뜰히 보살핌 받으며 자라난다. 어느 날 궁전 구경을 나선 톰은 황금빛 빗장 사이로 왕자를 보게 된다. 놀란 톰이 빗장 가까이 다가가자 경비병이 그를 밀치며 면박을 준다. 그 모습을 목격한 왕자는 백성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며 톰을 왕궁 안으로 들여보낸다. 왕자와 만나다니, 빈민가 아이의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현장이었다!

에드워드 왕자는 톰을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와 음식을 주며 말을 시킨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톰이 어떻게 지내나 궁금했던 것이다. 톰은 자기가 사는 곳이 가난한 구역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재미난 동네인지 얘기한다. 톰이 운하와 강에서 헤엄을 치고, 모래놀이도 하고, 친구들과 소리 지르며 춤추고 논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자는 부러워하는 기색으로 말한다.

“한 번이라도 그렇게 놀 수 있다면, 이 나라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겠구나!”

톰은 말한다.

“저는 딱 한 번이라도 왕자님 옷을 입어보았으면 소원이….”

한창 장난을 좋아할 때인 두 소년은 서로 옷을 바꿔입어보기로 한다. 왕자는 톰의 누더기를, 거지 소년은 호화로운 왕자 의복을 입었다.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선 둘, 어안이 벙벙하다. 놀랍게도 두 소년은 키도, 체격도, 이목구비도 쌍둥이라 할 만큼 꼭 닮았던 것이다! 누가 왕자고 누가 거지 아이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왕자는 말한다.

“내가 장담하는데, 둘 다 발가벗고 있으면 누가 너고 누가 나인지 구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 네 옷을 걸치고 있자니, 아까 못된 병사에게 당했을 때 네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이 가는구나.”

넝마를 걸친 뒤 역지사지를 체감한 왕자는 병사에게 한 마디 해주기 위해 뛰쳐나간다. 그러나 거지 옷을 입은 왕자를 누가 왕실 가족인지 알아볼 수 있으랴? 병사는 거지 복장인 왕자를 때리고는 성문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 그리하여 졸지에 톰은 왕자로, 에드워드는 거지로 살아가게 되고 만다! 하루아침에 왕자 노릇을 하게 된 톰이나, 넝마를 입고 빈민가로 들어가게 된 왕자나 고생길이 훤해 보인다. 과연 두 사람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계급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인생

똑같은 날에 똑같은 얼굴로 태어난 두 소년. 심지어 둘 다 총명하기까지 하니 닮은 점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런데 에드워드는 왕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단 이유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자라고, 톰은 거지 집안에서 태어났단 이유로 구걸하며 살아간다. 어디서 어느 신분으로 태어날지는 자기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운수 때문에 인생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불공평하다. 두 인생이 완전히 다른 모양새니 얼떨결에 서로의 삶 속으로 뛰어들게 된 두 사람이 변해버린 일상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갑자기 왕자가 된 톰은 겁에 질려 궁 안 사람들에게 자기가 거지임을 고백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비나,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단지 왕자가 미쳤다고 생각할 뿐. 헨리 8세는 정신이 나간 아들의 상태를 염려하고 신하들은 아픈 왕자를 극진히 살핀다. 왕자의 행태가 이전과는 매우 달라 혹시 다른 사람이 아닐까 의심을 사도, ‘왕자’라는 계급적 특권이 의심하는 행위 자체를 막는다.(공공연히 의심하는 순간 불경죄로 끌려갈 것이니 당연하다) 톰은 신분을 방패삼아 점차 왕실 예법을 익히고 호화로운 생활에 익숙해진다.

반면 거지가 된 에드워드 왕자는 원래 신분이었다면 절대 겪지 않았을 온갖 수모를 당한다. 네가 왕자일 리 없다며 놀림을 당하고 개에게 물어 뜯기는가 하면, 구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톰의 아버지에게 맞기도 한다. 왕자가 지닌 학식과 기품은 그대로인데 거지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는다. 계급은 그에 속한 사람이 무언가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아도, 그 안에 포함되기만 하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왕자가 된 톰은 궁정 교육을 하나도 받지 않았지만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진짜 왕실 가족인 에드워드는 거지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처럼 계급은 개인적 특성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삶의 양상을 어느 정도 정해버린다.

계급이 나뉘면 한 계급이 공유하는 특별한 문화가 생긴다. 상류층은 고급문화를, 시민들은 대중문화를 누린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생기면 계급 간 이동이 힘들어진다. 향유하는 문화가 다르면 삶의 방식 또한 판이하기 때문이다. 왕자가 된 톰은 문화적 계급 차이에 부딪힌다. 톰은 시종을 물리는 법도 모르며, 식사 자리에서 손 씻는 물이 나오자 음료로 착각하고 쭉 들이키기도 한다. 거지가 된 에드워드는 자고 일어난 뒤 옷을 갈아입혀줄 시종을 찾는다. 빈민가에 시종이 있을 리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또한 자기에게 누가 친절하게 대해 주면 아버지인 헨리 8세가 보답을 내릴 것이라 이야기하는데, 평민이 왕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건 대단한 불경이기에 모두 조용히 하라 해도 에드워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빈민가 사람들은 하층 계급과는 어울리지 않게 행동하는 에드워드가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한다. 왕자는 평생 궁정에서 살아왔으므로 빈민가에 좀처럼 동화되지 못한다. 이와 같이 계급이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이지만, 자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전부를 지배한다. 살아가는 내내 자기 계급성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니, 조금 으스스하기도 하다.

사회연대라는 계급 간 징검다리

마크 트웨인이 왜 《왕자와 거지》를 통해 계급 간 격차를 꼬집었는지는 자명해 보인다. 도금시대 때 미국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자본과 산업이 발달하고 기계문명이 부흥했으니 모든 시민이 풍족하게 살았던 시대 같지만, 실상은 달랐다. 빈민층은 가난에 허덕였다. 노동자들은 인격체라기보다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기계 부속품처럼 여겨졌다. 제 2차 산업혁명 시기를 풍자한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에도 마치 기계처럼 나사를 반복해 조이는 노동자의 모습이 나온다. 상류층이 재산을 독식하면서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8분의 7을 벌어들일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각했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 인구가 7600만 명이었는데 극빈자만 1000만 명에 달했다. 마크 트웨인이 지적한 것처럼, 도금시대는 사회 전체의 황금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부 상류층만이 호사스런 생활을 영위하던 시기였던 셈이다.

도금시대 자본가들은 타인의 삶을 자기와는 아예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근로자의 인권이란 생각할 필요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대기업 상류층은 재산을 보다 축적하기 위해 독과점·단합 등을 통해 부를 쌓고 그들의 계급을 서민들로부터 분리했다. 이러한 계급 분리 양상은 민주주의 사회보다는 《왕자와 거지》의 배경인 16세기 영국과 비슷해 보인다. 마크 트웨인은 계급 차이 때문에 사람들이 연대하지 못해 사회가 분열하는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이야기하고자 했다. 그는 작품에서 일부 특권층만이 아닌 사회 전체가 발전해야 모두가 잘 살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주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꼬집는다.

왕자와 거지, 두 소년들은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왕자가 된 거지 소년 톰은 궁중에서 죄수들을 둘러보던 중, 억울하게 잡혀온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법을 고친다. 약자가 강자의 논리에 어떻게 휘둘리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졸지에 거지가 되어 사회적 약자의 삶을 체감한 에드워드 역시 마찬가지다. 빈민가를 떠돌며 하류층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몸소 실감한 터라 부조리한 법을 바꾸기 위해 애쓴다.

사회적 불평등이 심했던 도금시대에 살았던 마크 트웨인. 그는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우화를 들려주며 계급성에서 기인한 차별이 얼마나 헛된지 이야기한다. 《왕자와 거지》를 읽는 21세기 시민인 우리는 어떤가. 사회·경제적 계급 차이로 인해 생겨난 다양한 차별을 없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이 아직도 존재하는 사회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 5대 발전소에서 산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348명. 그들은 모두 하청근로자였다. 사회적 약자에게 유달리 가혹한 계급 차별은 여전하다. 도금시대가 끝나고 찾아온 21세기에, 진정한 사회 연대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국왕으로 즉위한 톰 혹은 에드워드(과연 누가 왕이 될까?!)가 신하에게 한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보자.

어느 고위 관료가 왕이 엄한 형벌을 본래 처벌의 의도에 맞도록 완화시키는 관대한 정책을 펴 나가는 데 반대하며, 그런 법이 사실은 그리 혹독한 게 아니라서 고통과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어린 왕은 측은한 눈길로 신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이렇게 대꾸했다.

그대는 고통과 억울함에 대해 아는가? 나도 알고 백성들도 알지만, 그대는 아닐세.

마크 트웨인과 도금시대

남북전쟁이 끝난 1895년부터 1900년까지, 미국은 제 2차 산업혁명을 거쳐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대기업이 등장했고 소비 시장이 커졌다. 인류 역사상 최대 부호 1위인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와 최대 부호 2위이자 철강왕으로 불리는 앤드류 카네기가 이 시대 인물이다. 1920년에는 전 세계 GDP의 34.6%를 미국이 생산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 시대엔 빈부격차가 심각해 공장 근로자 대부분이 하루에 10시간 이상 노동을 했다. 아동 노동자 또한 많았다. 1900년 경 아동 노동자의 수는 200만~3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미국 아동 인구가 3040만 명이었으니 아이 열 명 중 한 명은 노동으로 내몰린 셈이다. 마크 트웨인은 1873년 이러한 사회 모습을 비판하는 소설 《도금시대》를 출간해 황금시대의 이면을 고발했다.

모던타임즈 (Modern Times) 1936, 감독·주연 찰리 채플린

모던타임즈는 찰리 채플린이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무성영화로, 제 2차 산업혁명 시기 노동자들의 삶을 포착했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기계의 부품처럼 일하며 자신의 삶과 일로부터 분리된다. 인간을 위한 문명 발전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이 소외되는 현상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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