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

[ - 디베이팅데이 ]

나는 침묵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항상 ‘믿음’과 관련된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 마틴 스콜세지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자마자 영화가 어떨지 궁금했다. 수많은 사람이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17세기 일본, 포르투갈 선교사 두 명이 일본 땅에서 사라진 신부 ‘페레이라’를 찾으러 떠난다. 이들의 고난한 여정을 통해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믿음으로 인해 죽어가는 걸까?’ 그리고 ‘왜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신은 침묵하는가?’ 글_유인서 기자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캐나다에서 보냈다. 새벽이 되면,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친구와 페이스북 메시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주로 이야기를 나누던 주제 중 하나는 종교였다. 내 기억으론 당시 그 친구는 모든 종교, 특히 기독교에 적대적이었다. 그는 실제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종의 ‘환영’을 여럿이 믿고, 그 잘못된 믿음 때문에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며 분노했다. 나는 신을 믿어본 적 없고, 그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지만, 순수한 믿음 자체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믿음 자체를 부정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외할아버지, 할머니가 기도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조부모님과 함께 살던 어린 시절, 그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았다. 늦은 밤 방 안의 어둠 속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손에 십자가를 쥔 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며 성호를 그었다. 그럴 때면 밤의 고요가 몇 배로 깊어지는 듯 했다.

가끔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성당에 따라가는 일이 좋았다. 사람들이 들어서기 전의 빈 성당이 좋았다. 하늘만큼 높아 보이는 천장 아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색색으로 그려진 창문 안으로 햇빛이 비쳐 들어왔다. 곧 사람들이 들어오고 성당이 꽉 차면 다 같이 노래를 불렀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는 커다란 홀 안을 가득 채우며 하나가 되었다. 신이나 인간을 초월한 어떤 존재를 믿지 않는 내게 믿음이란 몹시 신비로운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평생 그러했듯,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신을 섬기고 하늘에 기도를 올린다. 그들은 모두 어떤 마음일까? 누군가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믿음을 지키다 죽어가는 사람들

영화 <사일런스>의 배경은 17세기이다. 포르투갈 예수회의 신부 ‘페레이라’가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 뒤 행방이 묘연해진다. 향간에는 그가 종교를 버린 채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 페레이라의 제자인 신부 ‘가루페’와 ‘로드리게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그의 행방을 찾아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다. 가루페와 로드리게스가 일본에서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다. 지속적인 종교 박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남아있는 크리스천들은 믿음을 숨긴 채 죽은 듯 살고 있었다. 가루페와 로드리게스가 일본의 한 시골 마을인 토모기에 상륙하자, 몰래 천주교를 믿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마을의 신자들을 위해 미사를 열고, 기도를 하고, 고해성사를 들어준다. 마을 사람들은 간절하게 신부들을, 그들을 천당으로 이끌어줄 인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루페와 로드리게스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최대한 조심조심 신앙생활을 이어나갔지만, 박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나가사키의 고관 이노우에는 토모기 마을에서 크리스천으로 의심되는 주민 네 명을 잡아들인다. 크리스천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예수가 그려진 석판을 발로 밟으라는 말에 주민 넷은 그대로 행한다. 하지만 십자가에 침을 뱉고 성모 마리아는 창녀라고 외칠 것을 요구받자,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부한다. 거절한 사람들은 전부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바닷가의 십자가에 사람들을 묶어놓고 죽을 때까지 그대로 두는 형벌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멀리서 지켜보며, 로드리게스는 절규한다. 마을에 가해지는 종교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가루페와 로드리게스는 각자 다른 길로 떠나게 된다.

사방으로 도망치다 허기와 공포에 질린 로드리게스는 결국 관료들에게 붙잡힌다. 그는 악명 높은 이노우에 앞으로 끌려간다. 하지만 이노우에는 그를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매 끼니마다 음식을 주고 인간적으로 대해준다. 신부들을 죽이면 그들이 순교자로 남아 사망한 뒤에도 종교적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노우에는 일본 내에서 천주교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신부들을 배교시켜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신부들이 아닌 신자들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었다.

이노우에는 로드리게스를 설득하려고 시도한다. ‘일본 땅에선 천주교가 자리할 수 없다’ ‘우리에겐 우리의 종교가 있다’ ‘포르투갈에선 천주교가 진리일 수 있어도 여기서는 아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진리란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참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불리우는 것입니다.’ 로드리게스가 꿋꿋하게 신념을 지킬 동안 신도들은 계속 잡혀 와서 고문당한다. 그는 신도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기를 반복하지만 신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느 날 이노우에와 수하들은 로드리게스를 이끌고 바닷가로 향한다. 해안에서 그는 다른 지역에서 붙잡힌 가루페와 신도들이 관료들에게 끌려오는 장면을 본다. 이노우에는 가루페에게 배교할 것을 요구하나 그는 응하지 않는다. 그러자 이노우에의 수하들이 신도들을 짚으로 싸서 바다로 집어던지기 시작한다. 가루페는 “그들 말고 나를 벌하라!”라고 외치며 바다로 뛰어들고, 신도들과 함께 수장되어 목숨을 잃는다. 로드리게스는 먼 발치에서 이 모든 것을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기도해, 하지만 눈을 뜨고 기도하게

모든 회유와 협박을 동원해도 로드리게스가 굴하지 않자 이노우에는 한 사람을 데려온다. 그는 실종되었던 신부, 페레이라였다. 그는 소문대로 배교한 채 일본인 이름을 얻고 일본인 여자와 결혼하여 살고 있었다. 심지어는 천주교의 논리를 반박하는 책까지 쓴 상태였다. 로드리게스는 그를 증오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페레이라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내가 그렇게 달라 보이나?

페레이라는 그에게 배교하라고 회유한다. 그것만이 그를 따르는 신도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며. 로드리게스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에 빠진다. 배교함으로써 모두를 살릴지, 아니면 믿음을 지키고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넣을지 선택해야 했다. 이 무거운 결정 앞에서 기도하는 로드리게스에게 페레이라는 한 마디를 던진다. ‘기도해. 하지만 눈을 뜨고 기도하게.’

It’s not about you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자 예전에 본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가 떠올랐다.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천재 외과의사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사고로 손을 다쳐 더 이상 수술을 집도할 수 없게 되어 절망하자, 소서러 수프림은 이렇게 말한다. ‘It’s not about you.’ 너에 관한 것이 아냐. 페레이라가 로드리게스에게 한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로드리게스는 숨어서 일본의 촌락을 떠돌고, 선교하고, 불행한 신도들을 만났다. 그는 주민들을 연민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지만 그가 한 모든 행위는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당장 눈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보다 자신이 믿는 진리가 더욱 중요했다. 자신이 섬기는 신이 옳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믿음보다 ‘믿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로드리게스는 어느 순간부터 예수가 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순교자가 되기를. 예수가 만약 그 순간에 존재했다면 가장 하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들을,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하고 있었다.

‘순수한 믿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만약 순수한 믿음이 존재한다면, 그건 온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가능한 게 아닐까. 믿음이 비슷한 사람들이 종교라는 이름 아래 모이면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과 규칙이 생긴다. 규칙 아래 생각이 갇히지 않게 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 규칙과 믿음이 당신의 핵심을 형성하는 무언가라면 더더욱. 그래서 로드리게스는 예수의 얼굴을 발로 밟을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을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메시지는 나에게 항상 자유에 관한 말처럼 들린다.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라는 건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하라는 뜻이고, 그건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똑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모든 인간의 믿음은 모두 다른 형상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 똑같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너무나 단순한 이유 때문에. 나는 신성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어렸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자기 내면 깊숙한 곳을 탐험하는 인간을 보았다. 그들이 그 안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신을 찾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곳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가장 깊은 심연 안, 타인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침묵. 그리하여 자유와 믿음에 관한 모든 의문은 침묵 속에 남아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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