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 - 디베이팅데이 ]

300만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전 세계의 인류가 겪으며 일궈온 다양한 경험과 유산에 깃든 소중한 의미를 우리는 인류학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인류학적 상상력은 우리 생활을 훨씬 풍요롭게 만들고 인간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보도록 해준다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

부시맨? 레비스트로스? 인류학?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라니 이 책의 제목은 어디서 온 것일까? 사실 두 단어는 특별한 연관이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두 말을 단순히 연결해 놓았다고나 할까. 부시맨은 현대 문명에 찌들지 않은 원시 부족의 대표격으로 사용한 단어다. <부시맨>이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부족이라 제목에 쓰였던 것 같다. 그럼 레비스트로스는?

레비스트로스(Levi-Srauss, 1908~2009)는 사르트르 이후 프랑스 최대의 지성으로 꼽히는 인류학자다. 그는 구조주의를 인류학에 도입, 인류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통찰 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구조주의라니 꽤 어려운 단어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구조주의 인류학에 대한 설명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구조주의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화와 동인을 찾기보다 현 시점에서 사회의 구조와 원인을 파악하는 것을 중시하는 학파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구조주의 인류학에 따르면 문명은 발전하지 않는다. 원시 사회도 나름의 구조와 의미가 존재한다. 현대사회가 과거 원시 사회보다 우월하다고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다.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는 조금 생소한 학문 분야로 인식되는 인류학에 대한 대중적인 교양서다.

석기시대 사람에게 쇠도끼를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축구 경기에 열광하는 것은 경쟁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일까?
키스는 이 세상 어디서나, 어느 종족에게나 사랑의 표현일까?
자동차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자동차를 버리지 못할까?

다양한 영역의 흥미로운 질문들이다. 이 책에서는 인류학적 관점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인류학은 인간사회의 문제이기만 하면 아무 주제나 다루는 것일까? 물론 인류학은 인간의 진화와 관련된 생물학적 영역에서부터 현대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러 민족의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를 매우 폭넓게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인류학에는 다양한 영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통적인 맥락도 없이 무분별하게 연구되는 학문은 아니다. 인류학의 다양한 영역들은 모두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왜 항상 ‘문화’와 연관시키는 것일가?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를 따라 그 해답을 찾아보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책을 통해 인류학을 접해보면 사람들은 모두 이 세상에 퍼져 있는 4000여 개가 넘는 부족이나 사회의 한 성원일 뿐 그다지 특별한 존재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석기시대 사람에게 쇠도끼를 준다면?

석기시대는 인류가 돌도끼를 주요 도구로 사용했던 시대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문명사회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석기시대의 한 부족 사회에 쇠도끼를 선물해 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쇠도끼는 돌도끼보다 나은 대체재로만 쓰일까? 아니면 사회 전반에 걸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하게 될까? 이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가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에 소개돼 있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일요론트 부족에 관한 인류학자 샤프의 연구 결과다. 연구 결과를 살펴보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자. 그 부족 사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눈치 빠른 학생은 아마도 그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쇠도끼가 가져온 혁명적인 변화

일요론트 부족은 19세기 말 백인들과 접촉하기 전까지는 수렵과 채집에 의존하는 등 석기시대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인 선교단이 근처에 정착해 살면서 쇠도끼를 선물하자 엄청난 문화 해체를 경험해야 했다. 왜냐하면 돌도끼를 제작하고 사용하는 것이 그 부족 사회의 생계 활동에 매우 중요한 기초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일요론트 부족의 성인 남성들은 돌도끼 제작에 큰 공을 들였다. 돌도끼를 제작하는 데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고 돌도끼 재료를 구하기 위해 먼 거리 교역망을 활용했다. 돌도끼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다양하게 쓰여서 여성이나 아동들은 성인 남성들에게 이를 빌려 써야 했다. 상황이 이러니 돌도끼는 남성다움의 상징이자 남성이 누린 권위의 원천이었다. 돌도끼는 남녀의 역할, 남성의 우월한 지위, 부족 사회의 위계질서를 뒷받침하는 배경이었고, 종교나 정치적 의사결정 기구에 권위를 부여한 근간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요론트 부족에 쇠도끼가, 그것도 여성이나 아이들에게 유입되자 혼란이 생겼다. 쇠도끼의 성능이 돌도끼보다 우월함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일요론트 부족의 남성들이 여성이나 아이들에게 쇠도끼를 빌려 쓰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결국 남녀의 역할에 혼동이 오고 연령에 따른 권위도 무너졌다. 가정에서 남성의 통제가 약화됨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가치의 혼란이 발생했다. 돌도끼 재료를 얻기 위한 교역이 필요없게 되자 교역 상대집단과 하던 축제행사도 기능을 잃었다. 백인 선교사가 선의로 선물한 쇠도끼는 단순히 돌도끼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인간사회의 문화현상은 총체적으로 다뤄야

쇠도끼의 등장은 결국 일요론트 부족의 소유 관념까지 흔들어 절도 범죄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전통적 축제가 사라지면서 문화의 쇠퇴와 변질도 급속도로 진행됐다. 이러한 일요론트 부족의 사례는 한 사회의 문화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제공한다. 이는 인간사회의 문화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쇠도끼의 사례처럼 특정 물질의 유입에 불과한 작은 사건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예술 활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인류학은 이처럼 하나의 문화현상과 그것이 미치는 영향 및 다양한 영역 간의 상관관계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학문이다. 인류학자 최협 교수의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인류학의 접근 방법을 토대로 미개사회에서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집중 해부한다.

인류학이 발전시킨 총체적 접근방법은 결코 미개사회를 연구하는 데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60년대 한국사회의 한 농촌에 공장이 들어섰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이것은 또 다른 유형의 일자리가 생긴 것에 불과한 걸까? 구체적인 자료가 더 필요하겠지만, 인류학이 말하는 총체적 접근방법에 기초할 때 어떤 변화가 있을지 추론해보면 인류학이 무엇을 다루는 학문이며 인간 사회에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근래의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유선전화만 존재했던 사회에 어느 날 누군가 휴대전화를 가져다주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사건은 단순히 통신수단의 교체에 불과할까? 유선전화에서 스마트폰으로 대체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게 됐는지 분석해보자.

다른 문화는 우리 문화를 비추어보는 거울

일요론트 부족에 쇠도끼의 유입이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다른 데 있다. ‘자립과 자조의 생활’이 ‘외부 의존의 생활’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일요론트 부족은 스스로 경제활동을 영위하지 못한다. 외부 세계에 의존해야 겨우 유지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양상을 근현대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식민지 지배에 따른 외부 문화 이식과 그에 따른 변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대부분의 민족들은 주체적으로 문물을 받아들여 창조적으로 수용하기보다 외부의 힘에 의해 변화를 강요받았고, 식민지 지배를 종식시킨 후에도 이러한 경향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사회의 경우는 어떤가? 일제강점기와 미국의 대외원조가 이어지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외 의존적 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천박한 것으로 여기고 강대국의 문화를 우월하게 느끼던 때도 있었다. 이처럼 인류학적 연구의 목적은 단순히 다른 지역이나 다른 민족의 독특함을 발견하는 재미 추구에 있지 않다. 다른 문화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사회의 문제를 되돌아보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다른 문화는 우리 문화를 올바로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는 그런 관점으로 다양한 부족과 사회의 문화현상을 다룬다.

인류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

앞서 살펴본 사례는 인류학적 연구의 구체적 실례로 인류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분명한 것은 인류학은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이며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가? 다음의 항목 중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을 찾아보자.

① 본능보다 학습에 의존한다.
②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한다.
③ 문화가 존재한다.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으로 자주 거론되는 항목들이다. 전부 정답 같지만 정답은 하나다. 유인원과 원숭이들 역시 인간처럼 학습된 행동에 상당히 의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침팬지가 개미를 잡아먹기 위해 나뭇가지를 사용하거나 타조 알을 먹는 새가 돌을 활용하는 등 도구의 제작과 사용이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님은 이미 밝혀졌다. 양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①이나 ②를 인간과 동물의 질적인 차이라 보긴 힘들다.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는 이에 대한 답을 ③이라 제시한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사회에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만 문화가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상징체계로서의 언어를 만들고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류학이 인간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매우 폭넓게 다루고 여러 하위 영역을 포괄하고 있지만 모두 ‘문화’와 연관시켜 문제에 접근하는 공통점이 있는 이유다.

하지만 간과해선 안 될 부분이 있다. 동물들이 상징으로의 언어를 만들어내진 못하지만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 사용이 없진 않고, 침팬지에 수화를 가르쳐주면 이를 수용해 의사표현을 한다는 점이다. 침팬지는 이러한 훈련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 사례는 인간이 보다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20세기 들어 인간은 각종 생체실험에 동물을 사용한다. 하지만 감정이 있고 이를 표출할 수 있는 동물에 이 같은 실험을 행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한 것일까?

야만과 문명은 종이 한 장 차이

흔히 사람들은 인류가 야만의 상태에서 문명으로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만물의 영장으로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인식뿐 아니라 인간사회 내에서도 ‘야만’과 ‘문명’을 구별하는 인식이 퍼져 있다. 과연 원시 미개사회는 야만적인 사회고 현대사회는 문명을 이룬 사회인가?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하는 다음의 두 상황을 비교해보자.

사례1. 야노마뫼족의 여아 살해 풍습
아마존 강 유역 열대우림 지역에 사는 야노마뫼족은 여아 살해 풍습이 있다. 이 풍습은 인구의 증가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 동물성 단백질의 결핍현상을 크게 악화시키고 생태계의 파괴를 가져와 결국 모든 집단의 존속 자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사례2. 한국의 남아선호사상
1988년 한국의 남녀 성비는 113으로 다소 불균형한 상태다. 여자가 100명에 남자가 113명인 셈이다. 이를 출생순서별로 살펴보면 셋째 아이의 출생성비는 173, 넷째 아이의 출생성비는 199.5에 달한다. 이는 인공유산이 광범위하게 퍼져있음을 의미한다.

이 두 사례 중 어느 쪽이 더 야만적인가? 야노마뫼족은 공공연하게 여아를 살해하고, 외견상 잔인하게 보인다. 반면 한국의 사례는 의학기술을 동원해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방법으로 여아를 살해한다. 그러나 야노마뫼족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던 반면에 한국사회는 권위주의적 가부장제의 남아선호사상이 야기한 여아 살해가 아닌가? 한국의 사례가 과학기술을 이용해 합리적인 듯 포장하고 있으나 실상 야노마뫼족이 더 ‘이성적’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사례는 우리가 얘기하는 ‘야만’과 ‘문명’은 실상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원시 사회를 미개하고 야만적인 사회로 보는 것은 현대사회의 편견에 불과하다.

8억의 인구가 굶주리는 현대사회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는 이밖에 다양한 사례를 언급하며 현대 문명사회의 야만적 모습을 폭로한다. 8억의 인구가 기아와 만성적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도 그중 하나다. 20세기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류사상 가장 풍요로운 산업사회가 이룩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이토록 많은 인구가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인가? 지구상의 인구수에 비하여 식량 생산량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인류 역사의 99퍼센트를 차지했던 수렵·채집 사회는 굶주림이 없었고 풍족했던 사회였다고 한다. 필요에 따라 행했던 노동시간도 현대인에 비해 매우 짧았고 여가시간은 넉넉했다. 오늘날 굶주리고 있는 8억 인구의 생활수준은 오랜 옛날 원시부족들보다 못하다. 장시간 노동하면서도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에 의하면 현대사회에서 발견되는 만성적 기근은 인구과밀이나 식량의 부족에 있지 않다.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불평등과 국가 간의 불평등에 기인한다. 또한 식량을 하나의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자본주의적 관행도 그 원인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현재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는 과거 넉넉한 식량 생산으로 굶주림에 처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농업은 현재 서구인들이 좋아하는 기호식품인 커피나 담배, 코코아, 사탕수수 등과 같은 작물로 대체되어 있다. 서구인들과 결탁한 식민주의자들이나 상인들 때문에 농업의 성격이 뒤바뀐 것이다.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전체 곡물 중 40% 정도가 선진국의 소비자들에게 공급되는 양질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사료로 사용되는 것도 만성적 기아의 이유다.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을 아는가? <부시맨과 레비스트로스>에 소개되어 있는 쿵족의 생활상은 다음과 같다.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은 여전히 수렵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하는 종족이다. 쿵족은 필요할 때만 일하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 일단 육체적인 욕구가 만족되면 사회적, 정신적인 만족에 중점을 둔다. 친척과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과의 관계를 즐기면서 윤택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다양한 사회의식과 종료적 의례를 수행하여 영혼 세계와 더불어 평화스럽게 지낸다.”

문명사회인들은 쿵족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주 게으르고 비효율적인 사회로군.

최협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대학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문화인류학회 회장, 하버드-옌칭 연구소 방문학자,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과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풀브라이트 선임연구원, 대통령자문 21세기위원회 위원,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은 책 《다민족사회, 소수민족, 코리안 아메리칸》, 《판자촌 일기》, Representing the Cultural ‘Other’: Japanese Anthropological Works on Korea 등. 말리노브스키의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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