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 - 디베이팅데이 ]

복잡한 사회적 맥락이 섞인 <배틀 로얄> 같았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이후로 가장 유명한 판타지 연작을 꼽으라면 <헝거 게임>이 아닐까? <헝거 게임 : 판엠의 불꽃>, <헝거 게임 : 캣칭 파이어>, <헝거 게임 : 모킹제이>, <헝거 게임 : 더 파이널>까지 네 편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속에선 서로를 죽고 죽이는 야만적인 게임이 펼쳐진다. 더불어 그보다 더 야만적인 독재와 혁명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글_유인서 기자 / 사진 네이버 영화

초등학생 때 나는 판타지를 좋아했다.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처럼, 일상을 뒤흔드는 경험과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에 관한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가상의 세상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항상 하는 그런 고민들을 한다. 현실과 아주 먼 이야기인데도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문제들은 항상 비슷하다. 마법 지팡이의 온갖 주문들로 물건들을 공중에 붕붕 떠다니게 하고, 또 마법 지팡이로 서로를 죽이고, 고문하는 등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해서 인간이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랑은 항상 고민투성이다. 우리는 그런 판타지 속 인물을 보며 그들의 마음과 결정에 공감도 하고 대립도 하면서 그 세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 세계를 이루는 요소들이 더 정교할수록, 사람들의 마음의 흐름이 더 자연스러울수록 더 쉽게 그 안으로 들어간다.

<헝거게임 시리즈>를 처음 본 건 고등학생 때였다. 아마 개봉한 지 얼마 안 돼서였을 것이다. 좋아하는 류의 영화는 아닌데, 영화 내내 흐르는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그리고 주인공 ‘캣니스’ 캐릭터가 기억에 오래 남았다. 좀 더 순화된, 그리고 복잡한 사회적 맥락이 들어간 <배틀 로얄>(2000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수학여행을 떠난 중학생들이 섬에 갇힌다. 이들이 서로를 죽이고 최후의 사람만 살아남는 게임을 진행한다)을 보는 느낌이었다.
<힝거게임>의 배경은 전지구적 재앙이 덮치고 난 뒤의 미래. 부유한 중심국 ‘캐피톨’이 지배하는 세계 판엠에서는 일 년에 한번씩 헝거게임이 열린다. 변방의 지역을 12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마다 남자, 여자 한 명씩 무작위로 추첨해서 뽑는다. 추첨된 사람들은 거대한 경기장에서 서로를 죽여 최후의 1인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헝거 게임’이 벌어지는데…. 힝거게임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캐피톨의 독재로 황폐해진 다른 구역에 오락거리를 제공하고, 동시에 공포심을 조장, 반란을 꿈꾸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

추첨에 걸린 사람이 게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대신 지원하거나. 12구역에 사는 주인공 ‘캣니스’는 가족과 애인과 다른 사람들처럼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다 74번째 헝거 게임의 ‘조공인’(Tributers, 헝거게임에 참여하는 사람을 이른다)로 여동생 ‘프림’이 뽑히자 그녀를 대신해 게임에 자원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딘가 남다른 캣니스

판타지에는 항상 스토리를 끌어가는 영웅적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은 대게 평범하면서도 비범하다.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몰입하려면 동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경외감도 느껴야 한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언뜻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 같아 보인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이모네 집 다락에서 구박을 받으며 자라는 해리 포터,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호빗 프로도, 옷장의 뒷문으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나니아 연대기의 형제자매. 평범한 이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뭘까? 용기가 아닐까? 판타지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동료나 가족, 친구가 위험에 처하는 순간, 그들은 특별해진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사랑하는 이들을 구하러 행동한다.

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판엠에서 빈민층은 헝거 게임에 뽑힐 확률을 스스로 높인다. 언뜻 보면 공평한 확률의 투표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추첨 대상은 캣피톨 시민 외에 모든 주변국 시민들이다. 이들은 일단 한표씩 모두 넣어야 하는데, 필요한 사람은 추첨함에 자기 이름을 더 넣을 수 있다. 이름을 적어내는 사람에게 곡물을 주기 때문이다. 74번째 헝거게임의 추첨이 진행될 때, 캣니스 에버딘의 이름이 적힌 종이는 무려 42장이나 들어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단 한 장 들어 있던 그녀의 여동생 프림의 이름이 호명됐고 캣니스는 주저없이 그녀 대신 자원한다. 12구역의 남자 조공인은 피타 말라크. 빵집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일전에 온 가족이 배고픔을 겪는 와중에도 캣니스에게 빵 한 조각을 건넨 적이 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경기가 열리는 캐피톨로 출발한다.

대국민 오락 방송 ‘헝거 게임’

‘헝거 게임’은 게임 시작 전부터 대대적으로 조공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사연을 듣는다. 과거 로마의 콜로세움이 그랬듯 게임은 단순한 게임 이상의 의미가 있다. 판엠의 국민들로 하여금 현실을 잊게 하는 오락이다. 캣니스와 피타는 함께 스크린 위에 오른다. 언제나와 같은 뻔한 인터뷰 중 피타가 돌발적인 행동을 한다. 오래 전부터 캣니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한 것. 그 순간 청중은 안타까움을 토해낸다. 캣니스와 피타는 순식간에 판엠 전체가 주목하는 비운의 연인이 된다. 게임에서 살아남는 건 결국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피타와 캣니스에게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맡은 전 헝거게임 우승자 ‘헤이미치’는 캣니스에게 피터와 연인 행세를 하라고 권한다. 이 게임의 참가자들에게 부유한 투자자들이 배팅을 하고, 배팅을 할 경우 게임에 유리한 아이템들을 얻기 훨씬 쉽기 때문에 인기를 끌라는 조언이었다.

각 구역에서 추첨된 열두 명은 드디어 게임을 시작한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졌고, 드디어 캣니스와 피타 둘이 남게 된다. 캣니스는 독이 든 딸기를 피타에게 건네며, 유일한 승자가 되느니 차라리 동시에 죽자고 제안한다. 피타가 캣니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둘이 동시에 딸기를 삼키려는 순간, 규칙이 바뀐다. 게임을 기획한 ‘게임메이커’(헝거게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들이 두 사람의 인기를 감안, 앞으로의 흥행성을 위해 규칙을 바꿔 두 사람 모두 승자가 되도록해서 살리기로 한 것이다.

캣니스의 용기, 혁명의 씨앗

캣니스와 피타는 일약 스타가 되지만 그와 동시에 캣니스는 캐피톨의 요주의 인물이 됐다. 캣니스의 행동은 캐피톨에 대한 반항이었던 것. 더구나 그녀의 반항이 70년 넘게 깨지지 않았던 게임의 규칙을 바꾸기에 이르렀다. 캣니스의 행동은 끔찍한 가난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내던 열두 구역 시민들에게 중요한 생각을 불어넣었다. 세상이, 자신이 처해 있는 부당한 상황이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것. 용기 있는 행동으로 상황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 그리하여 실제로 혁명을 위한 세력이 조직되고, 전국적으로 반란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대통령 스노우는 전 구역의 규제를 강화하고, 반동의 씨앗을 더욱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한편 혁명군의 상징이 된 캣니스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정치와 프로파간다

내가 본 다른 판타지 영화들과 <헝거 게임>이 가장 달랐던 부분은 바로 정치가 영화에 개입하는 맥락이었다. 애초에 ‘헝거 게임’이란 시스템은 캐피톨에서 만든 거대한 프로파간다였다. 후에 혁명이 본격화되고, 캣니스가 혁명군에 합류하면서 프로파간다 전쟁은 더 극심해진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의 경우에는 세계의 운명을 건 싸움에서 개인적인 측면이 굉장히 중요하게 묘사된다. 샘과 함께 반지를 파괴하러 모르도르로 향하는 프로도나 볼드모트와 결투 끝에 그를 격퇴하는 해리 포터는 자신들이 필요한 지지를 얻기 위해 어떤 상황을 과장하거나 연출하기보다는 다른 이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헝거 게임>은 캐피톨과 혁명군으로 대표되는 커다란 세력들의 대결이다. 두 세력은 대중의 마음을 얻기 위해 선전 활동에 힘쓴다. 힝거 게임 스토리의 특성 때문에 주인공들은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수뇌부가 결정한 상황 안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영화의 주요 인물들, 특히 가장 중요한 캣니스조차 체스 판의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 <헝거게임 : 캣칭 파이어>까지는 혁명의 씨앗이 자라나고, 캣니스를 둘러싼 음모와 술책들이 흥미롭게 전개되면서 캣니스도 주도적으로 자기 상황을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혁명이 본격화되는 나머지 두 편에서는 캣니스도 그저 운명의 바람 앞에 놓인 다른 군인들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흥미가 떨어졌다. 남자 주인공 피타 캐릭터도 아쉬웠다. 캣니스를 빛내려고 일부러 그랬는지는 몰라도 시종일관 답답하다. 하는 일이라고는 감상적인 표정이거나 캣니스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2편부터 혁명군의 일부로 등장하면서 캣니스의 동료가 되는 다른 이들도 모두 그저 그랬다. 행동에 일관성도 없고 입체적이지도 않고 그냥 캐릭터를 위한 캐릭터 같은 느낌이었다.

딱 2편까지 봤을 때가 제일 좋았다. 그때까지는 이런 기분이었다. 어렸을 때 만화방에서 엄청 재미있는 만화를 빌려봤는데 아직 완결까지 반이나 남았을 때의 기분. 딱 2편까지만 보기를 추천한다. 하지만 사람의 취향이 모두 다르니,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보고 싶어질 수도 있다. 아직 한 편도 본 적 없다면 분명 한 번 시도해 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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