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위험하다

[ - 디베이팅데이 ]

디지털 네이티브 전혀 다른 그들이 만드는, 전혀 다른 세상

‘디지털’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우리 생활 안으로 들어온 때를 기억하는가? 그 시점이 가늠되지 않고 개인용 PC와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당신은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 ’라 할 수 있다. 도서관보다는 인터넷 검색이, 공중전화보다는 스마트폰이 익숙한 세대. 인류 역사상 가장 고도의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진 디지털 시대, 그리고 그 혜택을 온몸으로 받아온 디지털 네이티브가 만드는 또 다른 미래는 어떠한 모습일까? 글 민소연 객원기자

디지털 네이티브,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위험하다>는 ‘왜 하버드는 디지털 세대를 걱정하는가?’라는 긴 부제를 달고 있다. 다소 자극적인 이 책의 제목과 부제는 이제 막 책을 펼치기 직전인 이들에게 여러 생각을 안길 것이다. 일단 디지털 세대에 속하지 않은 기성세대일 경우, 디지털로 가득 찬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과 그로 인한 박탈감 혹은 거부감이 함께 떠오를 것이다. 디지털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게 변화의 속도는 벅차고 그로 인한 불안감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전해줄 것 같은, 미래에 대한 적색 경고에 심술 섞인 고약한 기대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반대로 디지털 세대가 이 제목을 본다면 의아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대체 뭐가 위험하다는 거지?”라고 말이다.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 그리고 그 무한한 가능성에 이미 몸과 마음이 익숙한 그들. 이 새로운 인류는 신기술로 무장된 자신들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지겨울 정도로 겪어왔다. 그러므로 이런 제목, 혹은 물음은 기성세대들의 지겹고 고루한 이야기로 비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은 디지털 세대의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는 묵시록도, 시시콜콜 비난하는 설교도 아니다. <그들이 위험하다>의 공동저자인 존 팰프리(하버드 로스쿨 교수·부총장)와 우르스 가서(스위스 세인트 갤런 법대 교수)는 하버드 대학교의 버크먼 인터넷·사회 연구소에서 오랫동안 IT와 사회 변화의 관계를 연구해왔고, 디지털 네이티브를 자녀로 둔 부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연구와 관찰에는 학자로서의 냉철한 분석과 함께 새로운 세대를 향한 애정, 그리고 전망과 고민이 담겨 있다. 제목이 주는 인상처럼 살벌하기보다는 친절하고 다정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디지털 네이티브와 그들의 부모이자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거쳐 온 이전 세대와의 만남과 대화를 도모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와 이전 세대의 간극은 생각보다 꽤 깊을지 모른다. 이번 독서로 그 사이를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다면, 그것이 이번 ‘독서토론’의 가장 좋은 수확이 아닐까.

** 디지털 네이티브
개인용 컴퓨터, 휴대전화, 인터넷, MP3 등의 디지털 환경을 태어나면서부터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세대Generation를 말한다. 이 표현은 2001년 미국의 교육학자인 마크 프렌스키 (Marc Prensky) 가 그의 논문 ‘Digital Native, Digital Immigrants’를 통해 처음 사용했는데,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 1990년대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확산에 따른 디지털 혁명기의 한복판에서 성장기를 보낸 30세 미만의 세대를 지칭한다. 이들을 지칭하는 다른 표현에는 ‘인스턴트 메신저 세대’, ‘디지털 키드’, ‘키보드 세대’, ‘Millennial’ 등이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변화의 속도를 주도하는 정체성

하룻밤이 지나면 더 혁신적인 기술이 속속 튀어나와 생활을 바꾸는 지금. 그 아찔할 정도로 빠른 변화의 속도를 줄곧 따라가려면 지치고 만다. 하지만 이러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아날로그적 삶의 경험이 인생의 일정 부분을 차지하는 기성세대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에게 가속으로 달려가는 이 시대의 변화는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일상이기 때문이다. 맹렬하게 돌아가는 지구의 속도를 체감할 수 없는 것처럼.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새로운 것을 금방 받아들이고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것을 금방 버린다. 그들의 정체성은 확실히 이전의 어떤 세대와도 다르다.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손 글씨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본 적 있는 이는 극히 드물 것이다. 여러분에게 있어 편지가 가지는 이미지는 곧 이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한 인스턴트 메시지, 또는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 정도가 아닐까? 손에 잡히는 실체에 집착한 과거의 인류와 결정적으로 다른 인식 구조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온라인 가상공간은 오프라인의 실재와 나란하게, 동등하게 중요하다. 그 둘 사이의 경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 안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정체성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곳에서 함께 만들어진다. 과거 세대가 학교나 직장, 지역공동체 등 실제 자신이 속한 사회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정립하는 과정을 가졌다면, 디지털 네이티브는 두 배는 더 바쁘다. 온라인에서 전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관계를 맺고 자신의 정체성을 관리해야 하니까.

여러분들이 즐겨하는 인스타그램을 생각해보자. 처음 인스타그램의 프로필을 꾸밀 때, 그리고 고만고만한 일상을 포스팅할 때, 나름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어떤 이미지와 내용을 넣느냐에 따라 자신의 첫 인상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마치 실제 세계에서 어떤 옷차림을 하고 어떻게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신경 쓰는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엔 가능한 한 더욱 멋지게 보였으면 하는 욕구가 크게 작용한다. 온라인에서는 그 바람이 멋지게 실현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얼굴보다 훨씬 예쁘게 나온 셀카를 SNS에 올리기도 하고, 멋진 곳에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 꼭 인증 사진을 남긴다. 그것이 온라인에서는 이상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단지 욕망에 충실한 것뿐이니까. 그리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니까.

심각한 개인 정보 유출과 프라이버시 침해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벌어질 수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과도한 개인 정보의 유출이다.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삶은 수많은 ‘정보’들로 기록된다. 태어난 병원의 출생 기록부터 시작하여 학교 성적표, 의료보험 자료, 친구 연락망, 인터넷 검색 기록 등등 마치 유전자처럼 모든 기록이 남는다. 하지만 이 많은 개인 자료들을 관리하는 것은 관련 기관이나 기업이다. 정작 정보의 주체인 개인은 자신의 정보를 컨트롤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접근이 제한되기도 한다.

그런데 관련 기관이나 기업이 철저하게 정보를 관리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의 소중한 개인 정보가 해킹이나 부당한 암거래로 줄줄 새고 있다. 전혀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자꾸만 오는 스팸 메일, 전화를 보아도 그렇다. 이러한 위험을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설상가상, 개인적인 정보를 인터넷의 바다에 마구 던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이나 신상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일기 쓰듯 개인 SNS 계정에 올린다. 내가 허용한 친구들에게만 공개되는, 친구보기가 있지만 이것이 안전을 보장할 리가? 무심코 올려놓은 사진 한 장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자신의 정체성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과거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욕설이나 행동이 나도 모르게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인격을 재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생각할수록 무시무시한 일이 아닌가?

이런 예를 들어보자. 공인인 누군가가 커다란 과오를 저질렀다는 소문이 돈다. 그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언론에서 발표하지 않았다. 대중들은 호기심이 점점 커지고, 이니셜로만 표현되는 그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고자 안달이다. 그리고 보통, 비밀은 단 몇 시간 만에 풀린다.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하면 그 사람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니까. 공인뿐 아니다. 개인 역시 몰래 촬영을 당하거나 해서 유튜브와 같은 사이트에 올라가고,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 아이돌 스타들이 어떤 식으로 과거의 철없던 행동들을 현재에 다시 맞닥트렸는지 떠올려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런데 타인의 정보를 드러내고 비난하여 단죄하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었던가? 이것은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이지메이며 심각한 폭력이다.
이처럼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개인 정보 유출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등에 관한 문제에 둔감한 경향을 보인다. 이는 그들이 개인 정보가 줄줄 흐르는 상황에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서,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에 주목하느라 그 이면의 얼굴을 미처 발견치 못한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영 모르는 상태라면 곤란하다. 물론 점점 나이가 들면서 경험에 의해 그런 위험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직접 곤란한 상황을 겪어가며 피해를 감수할 이유는 없다.

새로운 위험들은 하나의 새로운 상식으로 교육, 이해되어야 한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개인 정보를 스스로 조정할 주도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개인 정보를 다루는 기관이나 기업, 국가 역시 보다 철저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 디지털 정체성?
디지털 네이티브의 정체성은 사이버스페이스에 투영된 자신들의 이미지를 나타내며 이 이미지가 다시 다른 사람 눈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을 만들어내게 된다. 디지털 정체성은 복잡한 합성물이자, 개인적 정체성과 관련된 정보, 즉 사용자 이름, 나이, 취미, 음악적 취향 같은 명시적인 정보도 이에 포함된다. 디지털 정체성은 한 개인의 정체성 중 한 가지 측면에 불과하며 정체성의 다른 요소들과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상호작용함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책 속에서
우리는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사이좋게 지내라”, “여동생 괴롭히지 마”, “어른에게 인사해야지” 등 각종 사회 규범을 가르치며 따르게 한다. 아이들은 정식으로 법과 부딪칠 일이 별로 없다 보니 그들의 행동에는 사회 규범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며 법적 규범에 우선하기도 한다. 파일 공유 문제에도 이 논리가 적용된다. ‘공유는 좋은 것’이라는 사회 규범이 추상적인 저작권법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것. 2003년에 음악을 다운로드한 미국인 3500만명 중 67퍼센트가 다운로드한 음악이 저작권 보호를 받는지 여부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 답했다. 18세에서 29세 사이의 젊은 층은, 72퍼센트가 그렇게 답했다. 같은 해에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연맹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미국 대학생의 76퍼센트가 음악이나 영화에 대한 해적 행위가 일부 혹은 모두 용인될 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디지털 세대에 맞는 사회 규범의 확립


앞서 말한 개인 정보의 유출이나 프라이버시 침해 등의 문제를 강조하면 디지털 세대가 상대적으로 도덕적 인식이 취약하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새로운 세대의 정체성이나 약점으로만 보아서는 곤란하다. 디지털이 이끄는 세계는 그 변화의 추이가 너무나 가파르다. 그래서 각각의 상황에 맞는 규범적 가치가 정립되기 힘들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거대한 익명의 바다인 인터넷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잘 알지 못한다. 장난삼아 다는 악플이 폭력인지도, 노래를 공짜로 다운로드 받는 게 도둑질인지도 잘 모른다. <그들이 위험하다>에서는 문화콘텐츠 사업을 뒤흔드는 불법파일공유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사서 들어보니 너무나 좋았다. 그래서 보다 많은 친구들과 듣고 싶어졌고, MP3 파일을 추출하여 사람들과 공유했다. 얼핏 보면 도덕적으로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좋은 마음으로 한 것이고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적은 돈으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졌다. 여기에 “그러면 된 거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음반을 만든 창작자, 즉 저작권자는 피눈물을 흘릴 이야기이다. 저작권자가 ‘공유하는 마음’으로 비용을 들여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고 녹음하여 앨범을 만든 것은 분명히 아니니까 말이다. 그들은 이익 창출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당연히 시장에서 음반이 유통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불법적으로 음악이 돌아다닌다면, 마우스 몇 번 클릭하면 쉽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조건까지 갖췄다면, 대중들은 어떤 길을 선택할까? 모두가 예상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음악이나 영화를 공유하게 됐다. 음반가게에서 음반을 훔치는 것을 절도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들이, 온라인에서 노래 파일을 공짜로 얻는 것은 도둑질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왜일까? 저작권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과 앞서 제시된 ‘사회 규범’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다.

‘냅스터’나 ‘소리바다’ 등의 p2p 사이트들이 등장하던 초창기에, 이러한 현상은 음반이나 영화 산업 등 문화콘텐츠 사업을 온통 흔들어댈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그리하여 한때는 불법 다운로드를 받은 개인들이 끝도 없는 소송에 휘말려드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 세계를 휩쓸었던 이 소동은 ‘저작권’이라는 것이 물적 재산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교육적 의미를 적지 않은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남겼다. 물론 그들은 적지 않은 보상금을 내야 하기도 했다.

불법 공유가 공짜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은 아니다. 거기엔 무엇보다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점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 애플사가 만든 아이튠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은 매력적이면서 합법적인 대안을 처음으로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제시하면서 저작권 문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 결과, 아이튠즈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음반 소매 업체가 되었고, 어느 음반 가게보다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고루한 과거의 시장논리를 강요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애플은 영리했다. 그들의 성공은 새로운 세대에게 잘 맞는 형태의 유연한 대응으로 얻어낸 당연한 수확이다.

위험하다. 그러나 무한하다


디지털이 이끄는 세계는 빠르고 새롭다. 누구나 자신의 예술적인 재능을 전 세계에 뽐낼 수 있고, 작은 아이디어나 발상을 이용하여 천문학적인 숫자의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다. 가능성은 보다 더 많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정보를 취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디지털 네이티브의 공부 방법이나 사고방식은 이전 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이제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 인정받는 시대는 지났다. 백과사전은 손바닥 위에 늘 존재한다. 정보는 이미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이러한 흐름은 그들을 가르치는 교육 방식에 변화를 요구한다. 더욱 많은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학습의 목표였던 이전 세대의 방식은 현재의 아이들에게 맞지 않는다. 저급 정보와 고급 정보를 가려내는 현명함, 가치 있는 정보를 빠르게 파악하여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키는 유연함, 그리고 그것을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창의성이 이른바 차세대 디지털 네이티브 인재들에게 필요하다.

한편 인터넷 시대는 오래 지속되었던 정치체제 역시 근본적으로 도발한다. 디지털 기술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미디어 사이에 더 많은 상호 작용이 이뤄질 수 있게 해 준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비롯한 사용자들은 인터넷 기술 덕분에 정보와 좀 더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시민의 참여는 보다 쉬워져, 이상적으로 여겨지던 직접민주주의가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 가능한 기술적 성과를 이루었다. 물론 대중들의 무관심이나 독재 정권의 인터넷 독점과 통제 등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그것들을 따돌릴만한 또 다른 혁신이 등장할 것이다. 기술과 삶이 하나가 되어 때론 실수하고 때론 절망하며, 점점 발전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이 위험하다>가 제시하는 디지털 세계, 디지털 네이티브와 그로인한 변화의 다양한 양상에 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의 어깨가 무거운 것은 당연하다. 이전 세대의 누구도 첨단의 세계를 생의 시작부터 겪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러분은 그렇다. 그리고 계속 걸어야 한다. 그 길은 쓸쓸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앞서 말한 개인 정보의 유출과 도덕적 아노미 상태, 익명으로 자행되는 폭력, 인터넷의 권력화 등 아직도 풀리지 않은 여러 문제들이 곳곳에서 불거질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축복과 가능성이 여러분 곁에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부럽고 기특하다. 그렇기에, 열렬히 응원한다.

패닉 어택!! ? 35만 원짜리 작은 꿈이 350억짜리 영화로 태어나다
2009년 우루과이 출신의 영화 프로듀서 페데 알바레즈는 유튜브에 <패닉 어택>이라는 5분짜리 동영상을 올렸다. 혼자서 제작한 SF물로, 거대한 괴수와 외계 비행체가 평화로운 우루과이의 수도를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내용이다. 완벽한 컴퓨터 그래픽과 흥미로운 설정으로 네티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제작비가 단돈 35만 원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됐다.
그리고 이런 인재를 헐리우드가 놓칠 리 없다.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 감독이 이 영상을 영화화하자고 알바레즈에게 손을 내민 것. 그가 제시한 액수는 우리나라 돈으로 350억원이었다. 그야말로 꿈이 이루어지는 흐뭇한 순간이다. 그런데 만일, 유튜브같은 전 세계를 향한 창구가 없었다면 이 기적이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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