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 - 디베이팅데이 ]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받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내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도 가능한 것일까? 소설 <쇼코의 미소>를 읽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확신이 든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글_김어진 청년기자

이해하는 것, 이해 받는다는 것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사실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당장 쇼코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쇼코는 내 고용인도 아니었고,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학 동기도 아니었고, 가까운 동네 친구도 아니었다. 일상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단순한 톱니바퀴들 속에 쇼코는 끼지 못했다. 진심으로,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누군가 나를 소중한 존재로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것.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존재를 바라기 마련이야. 하지만 그런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지. 이건 소설 <쇼코의 미소>의 주인공 소유와 쇼코에게도 예외는 아니야.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지만 그 과정은 어렵기만 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도 두 사람은 나중에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게 돼.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한 걸까? 진실한 이해와 공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세 번에 걸친 두 친구의 만남을 따라가며 한 번 생각해보자.

나는 왜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쇼코는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문화 교류’ 행사를 통해 한국의 자매학교를 방문한 일본인 학생이야. 쇼코는 행사 기간 동안 자매학교의 재학생인 소유의 집에서 머물게 되지. 혹시 주변에 ‘이 친구는 정말 어른스럽다’ 싶은 친구가 있어?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으면 괜히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고 주눅이 들 때가 있지. 소유에게는 쇼코가 바로 그런 친구야. 쇼코는 영어도 잘하고, 큰 꿈을 가지고 있는 멋있는 친구야. 그러나 쇼코가 유독 어른스러워 보이는 이유는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쇼코의 미소’ 때문이야.

“할아버지에게 나는 종교이고, 하나뿐인 세계야. 그런 생각을 할 마다 죽어버리고 싶어..”
(중략)
“그럼 우리 할아버지를 너에게 줄게. 할아버지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앤 줄 알고, 볼 때마다 살 좀 빼라고 닦달인데. 옷은커녕 껌 한 통도 사준 적이 없어.”

쇼코는 나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쇼코는 왜 그런 미소를 지었을까? 소유는 왜 쇼코의 웃음을 그렇게 받아들인 걸까? 한 가지 장담할 수 있는 건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야. 쇼코는 자신의 깊은 내면에 있는 이야기를 소유에게 했어. 물론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받아주는 게 소유의 화법일 수 있지만, 듣는 쇼코의 입장에서는 와 닿지 않은듯해. 그래서 쇼코는 미소를 짓지. 이 미소는 소유가 자신을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 같아. 그러니 소유의 입장에서는 어른이 어린이를 대하는 웃음처럼 느껴질 수밖에. 소유도 할 말은 있어.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에 두 사람은 만난 지 불과 며칠밖에 되지 않은 사이거든.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되는 건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그동안 소유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해외로 교환학생도 가. 그런데 정작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던 쇼코는 거주지 인근 대학에 다니며 열정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지.

어렸을 때 쇼코가 지었던 웃음과 같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차갑고 어른스럽게보이던 그 웃음에서 나는 쇼코의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었다. 쇼코를 나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쇼코는 약했다.분명히 쇼코도 그때 느끼고 있었겠지. 내가 쇼코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마음 한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을 보며 나는 무슨 일인지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였다.

두 사람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소중한 존재이기를 바라고, 실제로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인식해. 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길은 아직도 먼 듯해. 쇼코는 막 약물 치료를 시작한 상태라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소유는 이를 알지 못해. 그렇다고 해도 소유는 쇼코의 상태가 좋지 못한 것은 알고 있었을 거야. 머리로는 쇼코의 상태를 인지하지만 마음으로는 쇼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소유는 왜 쇼코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무엇보다 소유는 첫 만남에서 느꼈던 열등감 때문에 쇼코를 친구라기보다는 경쟁자로 보는 것 같아. 그래서 누가 더 강한 사람이 되어있는지를 가늠하고 승패를 결정짓지. 이런 상황에서 쇼코의 안위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진정한 이해와 공감이란 무엇일까?

두 사람은 세 번째 만남에서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돼. 그리고 둘은 성숙한 어른이 되지. 그 사이 두 사람은 많은 일을 겪었어. 두 사람 모두 함께 살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 쇼코는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힘들어하는 소유를 위로해.

쇼코는 그런 내 손을 한 손으로 잡더니 다른 한 손까지 보태서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쇼코는 미소가 감도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할아버지의 일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 손짓과 표정에서 나는 위안을 느꼈고 쇼코로부터 위안 받았다는 사실에 당혹했다.나는 일본에 갔을 때 쇼코에게 느꼈던 우월감을 기억했다. 너의 인생보다는 나의 인생이 낫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던 때. 집에 틀어박혀서 어디로도 나갈 수 없었던 쇼코를 한심스럽게 생각했던 일. 넋이 나간 것처럼 내게 기대서 팔짱을 끼던 모습에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던 기억. 그리고 쇼코의 아픈 할아버지를 보며 나의 할아버지의 건강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던 일도.나는 쇼코의 그늘을 보지 못했다.

소유가 쇼코의 미소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쇼코가 진심으로 소유에게 공감하고 위로했기 때문이야. 소유 또한 쇼코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마음에서 이런 말을 하고 미소를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 비로소 소유는 소코의 미소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었고, 자신이 쇼코의 그늘을 보지 못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지.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고 서로를 위로하게 된 거야.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 하지만 상대방이 당시에 느꼈던 감정처럼 심리적인 부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 소설 속 두 사람이, 특히 소유가 왜 쇼코를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답을 알 것도 같아.

첫 번째 만남에서 소유는 스스로가 쇼코에 비해 정신적으로 열등하고, 쇼코는 어른스럽다고 생각해.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 소유는 자신이 쇼코에 비해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우월감을 갖지. 우열이 정해져 있는 관계에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내보이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런 관계에서 서로의 우열을 따지지 않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당연히 없겠지. 서로의 약한 부분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관계는 적어도 두 사람이 동등하다고 생각해야 가능하겠지?

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타인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나도 누군가의 이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야. 소설의 마지막에 소유가 소코의 위로에 위안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쇼코가 어떤 일들을 겪었고, 그래서 지금 어떤 감정으로 나를 위로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야. 만약 소유가 쇼코를 자신보다 나약하다고 생각했을 때 쇼코의 위로를 받았으면 그 위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쇼코가 아무리 진심으로 소유를 위로했다고 해도 소유는 이상한 말이나 하는 주제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려 든다고 여겼을지도 몰라. 그만큼 우리가 타인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는지도 중요해.

처음에도 말했듯이 우리는 소유와 쇼코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길 바라고 온전히 이해받기를 원해. 부족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존재를 말이야. 하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나를 이해해주는 것은 상대방의 몫이니까 말이야. 그러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내 주변 사람들을 나와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고, 어려움을 겪는 주변인의 마음을 이해하다 보면 내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생길 수 있겠지?

작가소개 – 최은영

1984년 경기 광명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에서 공부했다. 등단작 <쇼코의 미소>가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지금까지 10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첫 소설집임에도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다른 작품으로는 2018년 공개한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다.

읽어볼만한 다른 소설 <신짜오, 신짜오>

오늘 소개한 작품은 동명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 실린 중편 소설이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 실린 다른 단편을 하나 소개한다. 주인공의 가족은 1995년 독일 플라우엔으로 이민을 갔다. 작은 마을에서 이들을 반겨준 것은 주인공의 같은 반 친구 투이의 가족이다. 베트남 이주민 가족인 투이네와 주인공의 가족은 낯선 땅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누는 두 가족이지만 어째선지 투이네 서재는 들어가면 안 될 것만 같은 공간이다. 우연히 투이네 서재에 들어간 주인공은 서재에서 가족사진이 놓인 제단을 발견한다. 그 제단은 투이의 엄마, 응웬 아줌마의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응웬 아줌마는 어떤 일을 겪었기에 주인공의 가족에게 제단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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