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지평선

[ - 디베이팅데이 ]

푸른 달 너머, 아득한 샹그리라를 찾아서

처음 보았을 때, 콘웨이에게는 그것이 모든 신체적 기능에 영향을 끼치는 산소 결핍이 가져다주는 그 단일적인 리듬에서 튀어나온 일종의 환상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정말 그것은 이상하고 거의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현란한 빛깔을 뽐내는 일군의 높은 누각이 라인 지방의 성처럼 부자연스런 굳건함이 아니라 험준한 절벽 위에 핀으로 꽂은 꽃잎 같은 우아함을 가지고 산허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화려하고도 절묘하였다.

<잃어버린 지평선> 중에서 글_민소연 객원기자

샹그릴라는 말이 생겨난 배경

샹그릴라(Shangri-La)라는 말이 있다. 보통 이상향(理想鄕) 또는 유토피아를 뜻하는 단어로 널리 쓰인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완전하고 평화로운, 그래서 모두들 살고 싶어하는 곳. 많은 사람들은 히말라야 어딘가에 실제로 샹그릴라가 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아니다. 샹그릴라는 제임스 힐튼이 1933년에 출간한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다. 소설 속 샹그릴라에서는 백 살이 돼도 40대 수준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며, 그곳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근심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이후 샹그릴라는 이상향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영어사전에 실제로 올라 있다. 힐튼의 소설 전에는 없던 말이다.

소설의 구조는 단순하다. 1930년대 초반, 인도에서 근무하던 영국 영사 콘웨이를 비롯한 네 사람이 비행기 여행 중 이유도 모른 체 티베트인에게 납치되어 히말라야 산맥 너머로 사라진다. 비행기가 닿은 곳은 험준한 산중에 감춰진 샹그릴라라는 사원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너무나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계를 발견한다. 그러나 기어코 깨야 하는 잠처럼 이상향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일장춘몽(一場春夢, )인 셈이다.

<몽유도원도>라는 그림이 있다.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은 어느 날, 기가 막힌 꿈을 꾼다. 늘 상상해왔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릉도원에 이르렀던 것. 황홀하게 그곳에서 노닐다 문득 꿈에서 깨어난 양평대군은, 그 특별한 경험을 잊지 못해 화가 인견을 불러 그림으로 남겼다. 그 그림이 <몽유도원도>이다. 이 산수화는 보통의 옛 그림을 읽는 방식과는 반대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야기가 펼쳐져 있다. 왼쪽은 현실을, 오른쪽은 꿈속 풍경을 묘사했다. 재미있는 건 이 두 세계를 바라보는 시점이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눈높이에서 그려진 그림 왼쪽의 현실에 비해, 꿈속 무릉도원은 마치 하늘에서 바라본 것과 같이 아득한 아래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일상과 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려 시점을 달리한 화가의 재치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결국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 이상향 안에서 천국을 맛보거나 지옥을 경험하는 것 역시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샹그릴라를 떠난 뒤 주인공 콘웨이는 다시 그곳을 찾아가는 것에 모든 운명을 걸었다. 한바탕 무릉도원의 꿈을 꾸고 난 후, 그 아쉬움을 후대에 길이 남을 그림으로나마 남겼던 양평대군의 마음과 거울처럼 닮아 있다.

특별했던 한 친구를 기억하다

<잃어버린 지평선>은 액자식 구성이다. 이야기를 여는 프롤로그는 소설가 러더퍼드와 대사관의 서기인 와일랜드, 그리고 학자인 ‘나’가 오랜만에 만나 나눈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창 폭동이 벌어진 인도의 바스쿨(Baskul)에서 여객기 납치 사건이 벌어졌는데, 거기에 러더포드의 학창시절 친구 콘웨이가 타고 있었다는 얘기. 콘웨이는 출중하고 존경할 만한 청년으로, 다재다능함과 빼어난 용모를 갖춘, 모두가 영웅처럼 우러러보던 사람이었다.

비행기 납치 사건에 대해 말을 아끼던 러더퍼드가 다음날 ‘나’에게 실종되었던 콘웨이를 중국에서 만났다고 털어놓는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마주쳤다는 것이다. 그가 수도원에서 기억을 잃은 채 지내고 있었고, 러더퍼드가 극진히 보살펴 서서히 기억을 되찾았다고. 그런데 기억을 되찾은 콘웨이가 자신의 기묘한 경험을 러더퍼드에게 털어놓는데, 너무나 수수께끼처럼 흥미롭고도 이상한 얘기였던 것. 더구나 콘웨이는 수수께끼처럼 사라져버렸다. 러더퍼드는 자신이 들은 콘웨이의 이상한 경험을 소설로 써서 ‘나’에게 건네주었는데, 진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독특한 프롤로그는 에필로그와 함께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얼핏 보면 액자식 구성의 흔한 도입부처럼 보이지만, 뒤에 등장할 주인공 콘웨이의 영웅적인 면모와 전쟁으로 인해 좌절되고 소모된 재능에 대해 특히 잘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콘웨이가 샹그릴라라는 이상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장소에서 발견된, 시간적으로 나중의 일을 먼저 알려줌으로써, 그동안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호기심을 유발한다. 이런 추리소설풍의 기법은 <잃어버린 지평선>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 주인공한테서 직접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건너건너 듣는 독자 입장에서는 수수께끼를 푸는 마음으로 가만히 이야기 줄기를 따라갈 수밖에.

납치된 비행기가 천국에 도착하다

영문도 모르게 납치된 비행기. 비행기 안에는 주인공이자 외교관인 콘웨이와 영사관원 맬린슨, 선교사 브린클로 여사와 미국인 바너드가 타고 있다. 이륙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나자 비행기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으며, 조종사도 낯설다. 틀림없이 승객의 몸값을 요구하는 납치 행각일 것 같은데 희안하게 별다른 압박 없이 중간에 잠깐 착륙해 기름을 채운 후, 다시 먼 길을 떠난다. 그러다 그들은 험악한 산악지대를 건너 간신히 히말라야 산중에 불시착한다.비행사는 무리한 비행 탓인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승객들에게 샹그릴라라는 라마교 사원으로 가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대체 무슨 이유로 비행기가 납치됐는지 미궁에 빠진 채 이야기는 흘러간다. 콘웨이는 불안해하는 일행을 이끌고 샹그릴라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얼마 후 한 무리 사람들이 일행을 맞이한다.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장’이라는 이름의 동양인 노인은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예절로 겁에 질린 서양 표류자들을 안심시킨다.

계곡 전체가 육지에 안겨 있는 항구 같았으며, 그 위에 카라칼이 등대가 되어 지키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는 느껴졌다. 더욱이 한참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점점 실제로 그렇게 보여졌다. 사실상 그 정상에는 불빛, 주위의 화려한 광경에 잘 조화된 냉랭한 푸른 미광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언가가 그를 재촉하여 그 산 이름의 뜻을 물어보게 만들었다. 이윽고 장노인의 대답이 그의 명상에 대한 메아리이기나 한 것처럼, 속삭임이 되어 되돌아왔다.

카라칼이란 말은 골짜기의 방언으로 ‘푸른 달’이라는 뜻입니다.

콘웨이는 장 노인이 이미 자신들 일행이 올 줄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마중을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행기 조종사 역시 이 마을의 일원이었으므고,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네 사람을 사원으로 데려왔다는 것까지. 하지만 하루빨리 고향에 가고 싶은 맬린슨은 느긋해 보이는 콘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장 노인을 닦달하여 떠날 준비를 하려 하지만 진척은 없고, 불안감과 불만은 더 커져만 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점차 샹그릴라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간다.

콘웨이는 장 노인의 박학다식함과 현명함에 이끌려 그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선교사인 브린클로 여사는 이교도들의 나라에 다다른 것이 사명을 다하라는 신의 계시라 생각하며 활기를 되찾았으며, 자신의 신분을 숨긴 도망자였던 바너드는 더 이상 쫓기지 않아도 되는 최적의 장소를 찾은 기쁨에 만족하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꼭 맞춘 듯 정답을 제시하는 이상향이 바로 샹그릴라였다. 차갑고도 따뜻한 아름다움을 가진 ‘푸른 달’아래에 있는, 모두의 천국.

콘웨이는 음악실에서 말없이 연주만 하는, 아름다운 중국 소녀 로첸을 순수하게 사랑하면서 더욱 샹그릴라에 애착을 가지게 된다. 세계의 지식이 농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훌륭한 도서관과 아름답고 우아한 예술작품들로 가득한 사원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바깥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선(善)’을 노래하고 있었다. 비밀로 둘러싸여 있지만 한편으로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 찾아오는데….

믿을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하여, 믿게 되다

콘웨이는 라마 사원의 승정으로부터 사원의 기원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1734년 페로 신부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하게 샹그릴라에 당도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스스로 개종하여 불로(不老)의 영약과 산악지대의 특별한 공기를 마시고 1789년 90세의 나이로 라마교의 교두가 되었다고. 그 이후로 페로 신부와 마찬가지로 길을 잃거나 우연하게 들어온 사람이 많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은 사원에 들어왔을 때 그 모습에서 멈춘 채 더 이상 늙지 않았다. 이 모든 얘기를 해주는 사람은, 250세가 되는 페로 신부 자신이었다.

믿을 수 없는 진실 앞에서 콘웨이는 평화를 느낀다. 페로 신부의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신의 이상을 발견한다. 단순하게 오래 살아서라기보다는 한없는 깨달음의 가능성을 예상했던 것이다. 우리는 시간에 쫓기고 상황에 쫓겨 살아간다. 만일 세상의, 현실의 시계와는 전혀 상관없이, 추구하고 싶은 것에 온 힘을 다하여 집중하고 마음껏 탐구하여,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영국 정부의 관리로 일하면서, 세계의 벽지에서 벽지로 날아다니며 기계적으로 일을 해왔던, 야만적이고 광폭한 전쟁의 얼굴에 질려버린 콘웨이에게, 샹그릴라는 온전한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구상의 단 한 곳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이 그 폭풍우를 이겨내리라 믿고 있소. 그리고 그 이후에도 긴 황폐의 시대를 통하여 당신은 살아갈 것이고 나이를 거듭할수록 더욱 현명하고 더욱 인내심이 강해질 것이오. 당신은 우리 역사의 방향(芳香)을 보존하고 또 당신의 마음에도 채색을 더해나갈 것이오. 타국 사람을 친절히 맞이하고 그에게 시간과 예지의 법칙을 가르치고, 또 그 이방인 중 하나가 당신이 너무 고령이 되었을 때 당신의 뒤를 계승할 것이오.

그로부터의 앞날에 관해서는 나의 시계(視界)가 흐려 있지만 아득히 먼 저편 폐허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잃어버린 전설의 보물을 찾아서 보기 흉하지만 희망에 불타 꿈틀거리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볼 수가 있소.
그리고 내 아들이여, 그 보물들은 모두 이곳에 있소. 산맥 깊숙이 마치 기적에 의해 보호되는 것같이 이 ‘푸른 달’의 계곡에 있어요…. 새로운 르네상스를 위하여…

페로 신부는 곧 전쟁의 태풍이 온 세계를 휩쓸 것이며, 서양문명은 무너지고 그 폐허의 중심에서 샹그리라가 새로운 세계를 시작할 것이라 예언한다. 또한 죽음을 목전에 둔 그는 콘웨이에게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더욱 현명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문화를 지켜 달라고.

잃어버린 지평선을 향해

페로 신부가 타계한 그날 밤, 맬린슨은 콘웨이에게 탈출을 권한다. 콘웨이가 샹그릴라에 남겠다며, 그 이유를 말했지만 맬린슨은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오히려 콘웨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그런데 콘웨이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사랑했던 중국인 소녀 로첸(65세이지만)이 맬린슨과 사랑에 빠져 함께 탈출하기로 했다는 것. 콘웨이는 그 사실로 인해 자신의 천국에 균열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된다. 실연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과 연결된 현실적인 문제가, 가장 이상적이라 믿었던 세계를 단숨에 뒤흔들어 버렸다. 이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과 의심을 낳고, 결국 콘웨이는 맬린슨과 함께 샹그릴라를 떠난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뒤로하고 혹독하게 추운 바람이 불고 베일 듯 날카로운 산이 있는 바깥을 향해. 로첸이 맬린슨에게 짓는, 처음으로 보는 생기 있는 표정에 아픔을 느끼면서 콘웨이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에필로그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정신을 잃은 콘웨이를 병원에 데려온 것은 동양인 노파였다고 한다. 아마도 로첸일 것이다. 사원을 벗어나 불로의 약효가 떨어져 갑자기 늙어버린 소녀. 그녀에게 사랑은 영원에 가까운 삶과도 바꿀 만큼 소중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콘웨이는 왜 이상향을 버리고 떠났을까. 사랑 때문에? 두 사람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과 욕망에 덧없이 흔들려버리는 자신이, 샹그릴라의 주인이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건 아닐까. 언제든지 꿈처럼 깨어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의 껍질뿐인 이상향은, 페로 신부가 그 긴 시간 동안 가졌던 신념이나 믿음과는 거리가 머니까. 순간 가졌던 나약한 마음으로, 장대한 만큼 분명히 외롭기도 할 샹그릴아 안에서의 삶이 두려워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콘웨이는 다시 샹그리라를 향해 떠난다. 이번에는 정말 스스로, 진심을 다해 찾아가는 여행이 될 것이다. 그러니 분명히 그는 도착했을 것이고,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제임스 힐턴(1900~1954년)

영국의 멘체스터 근처 소도시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처녀작 <캐서린>을 출간하여 재능을 인정받았고, 그 후 1931년 발표한 <그리고 이제 안녕>이 성공한 후 전업 작가의 길을 걸었다. 1933년 발표한 <잃어버린 지평선>은 당대 최고의 영상미와 패기를 담은 작품에 수여하는 호돈센 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을 통해 ‘샹그리라’라는 이상향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전에 등재되기도 했다. 대중적인 인기로 최초로 만들어진 ‘포켓북스’ 시리즈의 효시로, 페이퍼백 혁명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원작의 인기로 1937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중국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를 찾는 관광객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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