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 - 디베이팅데이 ]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는 사랑이 행복할 수 있을까?

지난 12월, <브로크백 마운틴>이 재개봉했다. 미국의 한 영화평론가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멜로 영화 가운데 <타이타닉> 이후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고 이 영화를 격찬했다.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는 사랑이 행복할 수 있을까? 작품을 보며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글_ 오수경 기자

사랑을 부정할 수 있을까?

얼핏 보기에도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어느 산자락. 일자리를 구하러 온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길렌홀이 만난다. 에니스는 트레일러를 얻어 타고 왔고, 잭은 고물 자동차를 손수 몰고 왔다. 관리인이 가혹한 일의 조건에 대해 설명하고, 둘은 군말 없이 일거리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들의 일은 수백 마리의 양떼들을 관리하는 것이다.에니스와 잭은 대자연의 품 안에서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하지만 대자연이 그들을 쉽게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변변한 이부자리도 없는 그들에게 밤마다 몰아치는 추위, 산짐승의 습격을 당해 식량을 잃어버린 그들이 견뎌야 하는 배고픔, 그리고 그 한없이 무료한 시간들은 그 아름다운 자연 위에 황량함을 덧칠한다.

에니스는 결혼을 앞둔 보수적인 청년이다. 과묵하고 용감하며 원칙적이다. 반면 잭은 수다스럽고 자유분방하며 술을 즐겨 마신다. 그들은 처음에 티격태격하지만, 그 다름에 조금씩 이끌린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 무의식중에 어떤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밤마다 찾아드는 대자연의 공격이 그들의 간극을 더욱 좁혀놓았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관습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에서 그들은 어느 날 금기의 선을 넘는다. 그들의 관계는 추위에 떠밀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튿날 에니스는 “난 게이가 아니야!”라고 강력하게 부정한다. 그의 말투엔 수치스러움과 분노, 나아가 공포심이 묻어 있다. 에니스는 9살 때 끔찍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농장에서 일하던 두 남자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실제로는 아니었다고 하나, 어느 날 그 가운데 한 남자가 성기가 잘린 채 시체로 발견됐고, 에니스의 아버지는 9살짜리 아들에게 살해 현장을 목격시켰다. 에니스는 그 일을 저지른 장본인이 아버지라고 믿고 있다.

에니스의 강력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랑은 깊어간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둘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관리인이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이안 감독은 아무렇지도 않게 동네의 보수적인 시선을 드러낸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펼쳐놓을 뿐이다.그들의 미래를 상징하듯, 브로크백 산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그들은 예정보다 빨리 산을 내려오게 된다. 둘의 사랑을 강하게 부정했던 에니스가 이번엔 산을 내려가지 않으려 한다. 그는 알고 있을 터이다. 이 산에서 내려가면 다시는 그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잭을 보낸 뒤 에니스는 구토하며 오열한다. 짧고 낯선 사랑이 멀어지는 순간을 견디기 어려워서였을까. 아니면 경계를 넘어버린 자신에 대한 혼란과 부정 때문이었을까.

아름답고 슬픈 사랑

기약 없이 이별한 그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에니스는 알마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잭도 로데오 경기장에서 만난 그 지역 로데오 퀸과 결혼한다. 에니스의 삶은 무척 평범해 보인다. 시내에 나가서 살자는 아내의 투정도 정겹다. 겉으로 보기엔 여느 가정처럼 행복해 보이지만, 과묵한 이 사내의 표정엔 어딘지 모르게 결핍감이 느껴진다.비교적 부유한 집의 딸인 로린과 결혼한 잭 역시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여기저기를 겉돈다. 아내는 돈 버는 일에 열중하고 잭은 아내로 인하여 생긴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약간 풍족해졌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잭이 브로크백 산을 다시 찾는다. 그들은 4년 만에 재회한다. 그리고 그들은 평범한 듯 살아갔지만 그들에게 결핍돼 있던 게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둘은 만나자 마자 격렬한 키스를 한다. 섬뜩하게도 이 장면을 에니스의 아내 알마가 목격한다. 에니스와 알마의 관계는 악화되고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된다. 잭은 에니스와 같이 살 궁리를 한다. 이혼한 뒤 위자료를 받아 농장 하나 사서 둘이 행복하게 살자고 한다. 그럴 듯한 제안이다. 하지만 에니스는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9살 때의 악몽도 악몽이려니와, 에니스에게 삶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것이다. 이혼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잭에게 에니스는 말한다.

“오늘은 아이들을 만나는 날이라서 함께 있을 수 없어.”

사랑하는 방식을 둘러싼 두 사람의 갈등이 더욱 깊어진다. 잭이 소리친다.

“왜 우리는 이 빌어먹게 추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만 만나야 하는 거야?”

하지만 에니스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 삶의 굴레란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그 사회적 편견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잭이 멕시코에 있는 게이 사창가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알고 다그치는 에니스의 분노는 세상의 많은 짐을 짊어진 한 사내의 깊은 넋두리처럼 들린다. 거기엔 질투심과 함께 잭을 염려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에니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잭은 교통사고로 위장된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잭의 제안대로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잭이 죽은 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뒤에야 에니스는 진정한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에니스가 잭의 사망 소식을 듣고, 아내 로린에게 전화하는 장면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을 정도로 슬프다. 그는 잭의 고향집에서 잭이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입었던 피묻은 셔츠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에니스가 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분명한 것은 이처럼 슬픈 드라마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어떤 태도가 더 현명한 것이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여러분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을 것인가. 진정한 사랑이 사회적 터부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그것을 무릅쓰고 사랑을 선택할 것인가, 관습에 순응할 것인가. 이와 더불어 두 아내의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만하다. 에니스의 아내 알마는 에니스가 잭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혼을 선택한다. 잭의 아내 로린은 어렴풋이 잭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만 결혼생활을 유지한 채 돈 버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관계를 지속시킨다. 누구의 선택이 현명한 것일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순수한 사랑의 거처, 브로크백 마운틴

이안 감독의 카메라는 냉정하다. 등장인물 그 누구에게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얼핏 이 영화의 전개방식이 한없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보아오던 장르영화의 공식을 완벽하게 거부하기 때문이다. 영웅도 없고 비약도 없다. 이안 감독은 서부영화와 멜로영화를 뒤섞으며, 언젠간 행복해지기를 기대하는 관객들의 기대를 매몰차게 배반한다. 에니스의 삶은 처음에도 그랬고 영화가 끝나갈 때에도 힙겹다. 잭은 유목민처럼 떠돌다가 사회적 편견에 의해 희생된다. 에니스의 아내 알마는 소시민적 삶을 꿈꾸지만 에니스의 성적 취향 때문에 이혼의 아픔을 겪는다. 잭의 부인 로린은 첫눈에 반해 잭과 결혼하지만 늘 겉돌기만 하는 잭의 마음에 지쳐 돈 버는 데만 열중한다.

사람은 작고 보잘것없다. 산은 높고 자연은 위대하다. 사랑은 어렵고 길은 멀다. 관계는 어긋나고 햇살은 반짝거린다. 이 대조법은 이안 감독의 쓸쓸한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냉정하게 삶을 응시하고 그 여백에 흐릿하지만 깊은 의미들을 깔아놓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안 감독은 사랑을 폄훼하지 않는다. 희망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결혼을 앞두고 브로크백 산에 찾아온 딸에게 에니스는 영화를 통틀어 처음으로 마음을 열어놓는다. 일을 미루고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죽은 잭의 셔츠를 보며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맹세해!

그를 짓누르고 있는 삶과, 사회적 관습을 넘어 그가 맹세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안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이룰 수 없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단순한 동성애 영화로 규정되는 것에 대해 반대한 것이다. 한 가지 질문이 떠나지 않는다. “사회적 편견을 뛰어넘는 사랑이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랑과 행복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차례다.

원작 <클로즈 레인지>

영화의 원작은 애니 프루가 199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애니 프루는 <쉬핑 뉴스>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명한 여성작가다. 이 영화의 무대인 와이오밍 주는 목축업으로 먹고 사는 가난한 동네이다. 남성 중심주의적 가치관과 아름다운 풍광이 충돌하는 묘한 지역이기도 하다. 작가 애니 프루는 와이오밍의 한 바에서 6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한 농부를 목격한다. 말쑥하게 차려입으려고 했으나, 옷은 좀 낡았고 부츠도 헤졌다.애니 프루가 회상한다.

“그는 마르고 구부정했지만 단단한 근육질의 남자다운 타입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뭔가 비통한 갈망 비슷한 것이 있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혹시 그는 게이가 아닐까. 나는 호모포비아적인 시골 와이오밍에서 성장하면서 자신의 정확한 느낌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혼란에 휩싸인, 자신의 느낌에 대해서는 더듬거릴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람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안 감독

1954년 태어난 대만 출신 감독으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조감독을 하면서 연출에 대한 감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른바 ‘아버지 삼부작’으로 불리는 <쿵푸선생> <결혼 피로연> <음식남녀>로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제인 오스틴 원작 <센스 앤 센스빌리티>로 아카데미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각색상을 수상했다. 철학적인 무협액션 영화인 <와호장룡>으로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브로크백 마운틴> 바로 직전에는 <헐크>를 연출한 바 있다.


  Opinions

  1. zkftpfm의 프로필
    Lv2 zkftpfm 님의 의견 - 1달 전

    처음 전제였던 ‘사회적 편견’이 있는 사랑에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으로 갑자기 논리가 비약하는 것으로 보아 이 글쓴이가 동성애자라는것은 잘 알겠습니다만, 진짜 물건, 진짜 사물은 존재하는 개념이라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질수 있겠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것을 어떻게 정의내리나요? 테스토스테론 몇mg에 옥시토신 몇mg이면 진짜 사랑이죠? 사실과 개념의 혼동이 오가는 글이라 토론할내용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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