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Doctor Strange, 2016)

[ - 디베이팅데이 ]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벌어진 스트레인지한 일들 사고에 의해 두 손을 못 쓰게 된 천재 외과의. 손을 되찾기 위한 여정 속에그는 상상조차 못한 거대한 세상과 조우한다.
글_ 유인서 객원기자

나는 스스로 히어로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평소에도 그렇게 떠들고 다니지만 사실 웬만한 마블 영화들은 거의 다 챙겨봤다.(내 무의식은 사실 마블의 팬 인지도 모른다..) 나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하기 전부터 많은 기대를 했다. 마블 영화가 개봉하기를 기다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트레일러를 처음 봤을 때 뇌리에 굉장히 강렬하게 박혔던 기억이 난다. <인셉션> 에서 그랬듯 온 도시가 종잇장처럼 접히는 장면, 틸다 스윈튼의 강렬한 눈빛과 손동작, 마법, 강한 어둠의 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들어있었다. 개봉 직후 친구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몇 달 전 갑자기 이 영화가 생각이 나 한 번 더 봤다. 처음에도 재밌다고 생각하며 봤지만, 다시 보니 왠지 더 재미있는 것 같았다. 아찔하게 화려한 그래픽 효과와 우주적 힘과의 전쟁이라는 커다란 스케일 속에서도, 닥터 스트레인지는 캐릭터들의 힘을 잃지 않고 이것이 결국엔 한 인간의 이야기라는 점을 망각하지 않는다.

잘나가던 외과의사 스트레인지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닉트 컴버배치)는 잘나가는 외과의사다.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몰고, 일,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미쳐있다.험준한 지형에서 엄청나게 속도를 내며 운전을 하던 그는 전화로 수술 일정을 듣는다. 회생률이 적거나 간단하게 끝날만한 수술은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거침없이 거절한다. 운전 중 통화 상대방이 보내준 환자의 MRI를 확인하던 그는 그만 옆 차와 부딪히고, 차는 뱅뱅 돌다가 그만 전복하고 만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스트레인지는 금세 수술실로 옮겨진다. 수술이 끝나고 전 애인이자 간호사인 크리스틴 팔머(레이첼 맥아담스) 옆에서 눈을 뜬 그는 자신의 손에 수없이 많이 박혀있는 철심을 본다. 손의 신경이 모두 끊어져 철심으로 연결해야 했던 것.

긴 회복기간이 지나고 손에 박힌 철심은 모두 뺐지만, 사정없이 떨리고 자기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두 손을 보며 그는 절망한다. 그에게 전부였던, 그가 모든 것을 동원해 쌓아올린 외과의사로서의 삶이 무너진 것이다. 그는 재활 치료, 수술 등 모든 방면으로 손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방법을 찾아보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 사고 이후 그를 돌봐주던 크리스틴은 스트레인지가 절망하던 모습을 보다 못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런 그녀에게 스트레인지는 외과의사로서 일을 할 수 없는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소리를 지른다. 수술 외에도 삶을 채울만한 다른 것들도 있다는 크리스틴에 말에 스트레인지는 한껏 빈정댄다. “뭐가 있는데? 너?” 말싸움 끝에 크리스틴은 떠나버린다.

도저히 그가 아는 선에서 자신의 손을 고칠 방법을 찾지 못하던 중, 그는 척추 신경이 끊어졌음에도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환자 조나단 팽본의 이야기를 듣는다. 조나단을 찾아간 그는 ‘카마르 타지’라는 곳에 대해 듣는다. 스트레인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카마르 타지’가 있는 네팔의 카르만두를 찾아간다.

네팔 현지에서 강도를 만나는 등 고생 끝에 그는 절 같은 느낌의 사원 ‘카마르 타지’에 도착하고, 그곳의 수장인 에인션트 원 (틸다 스윈튼)을 만난다. 에인션트 원을 실험적인 의학 요법을 시행하는 의사쯤으로 생각하는 스트레인지는 그에게 온갖 의학적 용어를 들이대며 어떻게 조나단 팽본의 척추를 고쳤냐고 묻는다. 그런 그에게 에인션트 원이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이비 종교에서나 쓸 법한 고서를 펼쳐보이자 스트레인지는 분노한다. 오직 보이는 것,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식 범위 안에 있는 것만을 믿고 살아가는 스트레인지에게 에인션트 원 같은 사람은 멸시의 대상이다. 마지막 남은 모든 걸 털어 도착한 네팔에서조차 자기가 사이비한테 속았다고 생각하여 머리끝까지 분노한 그가 에인션트 원에게 손가락질하며 몸에 손을 대자, 에인션트 원은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쳐 몸으로부터 영혼을 분리시킨다.

에인션트 원이 그의 영혼을 멀티버스 (에인션트 원과 같은 마법사들이 힘을 가져오는, 여러 개의 우주가 함께 존재하는 곳) 로 보내 온갖 해괴한 장면들을 보고 나서 다시 육체로 돌아온 다음에야 스트레인지는 에인션트 원에게 말한다.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Teach me, master!) “

카마르 타지에서 수련을 시작한 그는 점점 그곳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그곳의 마법사들은 지구를 노리는 다른 우주들의 사악한 힘에 맞서 지구를 지킨다. 에인션트 원은 그들의 대장, ‘소서러 수프림’이다. 스트레인지는 그를 외과의 분야에서 정상을 달리게 만든 특출난 머리로, 엄청난 속도로 마법을 하나 둘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위험은 더 자주, 더 강하게 그의 곁에 찾아온다.

이 모든 건 너에 관한 게 아니야 (it’s not about you)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 한 줄을 꼽으라면 이 말을 꼽고 싶다. 영화 종반, 에인션트 원이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건네는 말이다.
“넌 언제나 훌륭했지. 하지만 성공을 욕망해서라기 보단 실패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야.” 스트레인지는 대답한다. “네. 그렇기에 전 훌륭한 의사가 됐죠.”
“하지만 그게 널 위대함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지. 자만심과 두려움은 아직도 네가 가장 간단하고 중요한 교훈을 얻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어.” 스트레인지는 묻는다. “그게 뭔데요?”
그리고 에인션트 원은 대답한다. “이 모든 건 너에 관한 게 아니야 (it’s not about you).”

그것은 스트레인지의 삶을 관통하는 말이었다. 오직 자신만을 믿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스트레인지의 삶은 카마르 타지에 와서 에인션트 원을 만나고 바뀌어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어두운 힘의 존재와 급작스럽게 맞닥뜨리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른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에인션트 원은 스트레인지에게 말했다. “너는 열쇠 구멍을 통해 세상을 보면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자신보다 더 큰 존재와 만난 스트레인지는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그는 더 이상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인 양 생각하며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후에 그는 조나단 팽본의 척추가 ‘고쳐진’ 것이 아니고 그가 끊임없이 마법을 써서 걷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트레인지 역시 원하기만 하면 외과의사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도르마무’와 그의 추종자들은 지구를 손에 넣기 위한 계획을 점차 실행해간다.

케실리우스와 도르마무

영화의 가장 큰 안타고니스트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 는 바로 이 ‘도르마무’라는 신이다. 그는 ‘다크 디멘션’이라고 불리는, 오직 고통만이 존재하는 세계의 주인이다. 도르마무는 에인션트 원의 밑에서 수행하던 마법사들을 “시간이 없는 세계에서 영원한 삶을 주겠다”고 꽤서 자기편으로 만든다. 에인션트 원의 밑에서 수행하던 마법사 ‘케실리우스’는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배움이 빠르고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에인션트 원의 무한에 가까운 수명을 옆에서 지켜보며 의구심을 품게 된다. 곧 그는 에인션트 원이 자기 스스로 적이라고 가르친 ‘다크 디멘션’으로부터 힘을 끌어다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배신감을 느낀다.

케실리우스는 곧 도르마무를 신봉하기 시작한다. 그는 에인션트 원의 곁을 떠나 추종자를 모은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도르마무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도록 도르마무를 불러들이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영화 중반 스트레인지와의 첫 대면에서 케실리우스가 던지는 대사는 그의 사상을 잘 드러낸다. “시간은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그는 자신, 그리고 다른 이들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도르마무의 세계에는 시간이 없다. 그는 도르마무가 인류에게 영원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마법을 써서 평범한 외과 의사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된 닥터 스트레인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영원을 소유하고자 하는 케실리우스의 욕망은 이루어졌을까? 도르마무는 지구에 영원을 선사했을까? 닥터 스트레인지는 여러모로 재미있는 영화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를 펼치고, 그래픽은 압도적이다. 스트레인지의 여정을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어느 면을 보나 현실에서는 살면서 한 번 마주치기도 힘든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는 지독히 인간적이었다. 이 영화가 나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는 건 아무래도 그 점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한 배우는 ‘배네딕트 컴버배치’로,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얼굴과 이름이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리마 <셜록> 에서 셜록을 맡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길고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이름과 생김새(?) 때문에 자주 인터넷 밈(meme)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함께 <셜록>에서 왓슨 역으로 호흡을 맞췄던 ‘마틴 프리만’이 주연을 맡은 호빗 시리즈에 목소리로 출연하기도 했다. ‘스마우그’라고 하는 무자비하고 거대한 용 역할을 맡았다. 시리즈 2편인 ‘스마우그의 폐허’에서 둘이 마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왠지 셜록이 겹쳐져서 더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난다.

닥터 스트레인지

‘닥터 스트레인지’는 1963년 스탠 리와 스티브 딧코가 그린 만화책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거의 호러 컨셉으로, 영화화 된 버전보다 훨씬 더 미치광이, 사이코스러운 느낌이었다고. <이상한 이야기>라는 시리즈의 등장인물로써 나왔으나 큰 인기를 얻어 곧 독자적인 시리즈로 발간되었다. 영화화 된 건 처음이다. 얼마 전 개봉하여 화제를 모은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에서 비중이 큰 역할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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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s

  1. zkftpfm의 프로필
    Lv2 zkftpfm 님의 의견 - 1달 전

    시간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의미인가, 자아란 어느정도의 중요성을 가지는가 정도로 내용을 정리해볼수 있겠네요. 머리로만 이야기하는 글은 아니보여서 그냥 드는 감정정도만 이야기해봅니다. 솔직히 굉장히 불편한 영화였고, 이 글을 보면서 다시금 그 불편함이 드러나네요. 다른글들과는 다르게 자기자신에 대한 불편함이지요. 내가 아는것 너머의 지식과 경험을 부정하고 싶은 아집. 시간이란 혹은 영원이란, 그리고 자아란, 세계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그저 우리보다 거대하고 우리가 배워야할 그 무언가라고 막연히 알수있는게 고작이겠지요. 그러한 자유란 너무나도 거대해서 때로는 속편한 지식이라는 족쇄가 사랑스럽기도 하니까요. 우리의 지식을 뛰어넘는 마음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초인, 영웅. 스크린에서 벗어나 현실속에서는 어떤모습을 그릴지 상상해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나도 혐오스러워하는 인물들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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