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 디베이팅데이 ]

젊음과 아름다움의 가치는 무엇인가

수많은 시인들이 젊음의 아름다움을 찬미합니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린 청춘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비탄에 잠기게 하죠. 헨리 워튼 경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친구이며 화가인 바질 홀워드의 그림 모델 도리언 그레이에게 이러한 청춘의 비밀을 속삭입니다.

“그레이 씨. 당신, 장미 봉오리 같은 청춘과 백장미와 같은 순결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당신. 하지만 당신에게는 당신으로 하여금 두려워하게 만드는 정열이 있으며,
당신을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만드는 생각들이 있고, 기억하기만 해도 당신의 뺨을 수치심으로 물들게 하는 백일몽과 꿈이 있을 겁니다.”

해리(헨리 워튼 경)의 말을 들은 도리언은 자신의 내면에서 새로운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낍니다. 자신의 타고난 아름다움, 자신의 순수한 젊음에서 움튼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기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해리는 세월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이 덧없이 사라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도리언은 아름다운 자신의 초상화를 보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늙어 무섭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겠지. 그런데 이 그림은 항상 젊은 상태로 남을 것이 아닌가. (…)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 간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다 줄 텐데! 내 영혼이라도 내줄 용의가 있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도리언의 이런 소원은 현실이 됩니다. 도리언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는 대신 그의 초상화와 영혼이 늙고 추해져가기 시작하지요.
여기서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왜 우리는 젊음을, 아름다움을 칭송할까요? 젊음과 아름다움의 가치는 무엇일까요? 해리의 말에서 그 이유를 추측해 봅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고 다양한 본능을 느낍니다. 그러한 본능의 유혹에 굴복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일까요? 세상을 모두 깨닫고 난 뒤, 늙고 추해진 다음일까요? 세상 물정을 몰라 순수한, 젊고 아름다운 청춘의 한순간일까요? 흔히 철이 없다고 표현하는 시기, 복잡한 도덕률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시기, 그 시기에만 좇을 수 있는 유혹들이 있지 않은가요?

도리언, 예술 속에만 머물고자 한

도리언은 청춘이라는 시기에 몰입해 욕망이 이끄는 대로 쾌락을 좇으며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매일같이 밤거리를 떠돌던 그는 어느 날 지저분한 극장에서 아름다운 연기를 선보이던 시빌 베인과 사랑에 빠지고 이내 혼인을 약속하지요. 그러나 영원히 함께하리라는 다짐도 잠시, 혼인을 약속한 뒤 돌연 무능한 연기자처럼 변해버린 시빌의 모습에 도리언은 크게 실망하고 맙니다. 하지만 시빌로서는 연기가 형편없어질 수밖에 없던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연기가 제 삶의 유일한 현실이었어요. 저는 극장에서만 살았던 거예요. 그게 전부고 진실인 줄 알았어요. (…) 그런데 당신이 나타나셨어요. (…)
당신은 저에게 실제 현실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어요.”

시빌에게는 이제 도리언과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고 도리언과의 삶만이 진정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이었는데 혼인을 약속한 뒤에는 지금까지 잘 해온 연기가 거짓처럼 공허하게 느껴져서 제대로 연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도리언은 매몰차게 말합니다.

“당신은 내 사랑을 죽였어. (…)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은 (…) 당신이 위대한 시인의 꿈을 실현시키고 예술이라는 환영에 형태와 실체를 부여하기 때문이었다고.”

도리언은 그녀를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가 사랑했던 것은 시빌이 아니라 그녀가 연기하는 모습뿐이었던 겁니다. 그는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꿈속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죠. 사랑하는 이가 자신의 인생을 내팽개친 채 평생 내가 원하는 모습만을 연기하며 살아가는 일은 꿈속에서나 가능하니까요. 젊음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유지하는 일 역시 오직 꿈속에서만 가능하듯.

도리언 그레이, 환상 속에서 살았던

도리언의 초상화 속 얼굴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표정에는 은근한 잔인함이 묻어나면서 조금씩 늙어가고 아름다움도 시들기 시작합니다.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원한 젊음을 위해서 영혼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 한 도리언의 말처럼 그의 영혼은 점점 추악해지기 시작했고 초상화에는 영혼의 타락성이 점차 드러납니다. 집에 돌아가 변해버린 초상화를 목도한 도리언은 다시 시빌과 사랑하리라 마음 먹지만,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시빌은 하루 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죠. 해리는 시빌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보기에 그녀의 죽음엔 아름다운 무엇이 있다네. (…) 자네가 그랬지, 시빌 베인은 낭만적 사랑의 모든 여주인공들을 대표하는 여자라고. (…)
그 여자는 진정한 삶을 살았던 게 아니야. 그래서 진짜 죽은 것도 아니지. 자네에게 적어도 그 여자는 한 편의 꿈이었어.”

도리언과 시빌은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둘의 사랑은 정말 달랐습니다. 시빌은 예술이 환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에 도리언을 사랑했던 반면, 도리언은 시빌이 예술이라는 환영에 실체를 부여하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입니다. 그런 도리언의 사랑은 상대방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죠. 도리언은 점점 더 괴물로 변해갑니다. 초상화는 추해질 대로 추해졌습니다. 도리언은 추해져버린 초상화를 찢어 없애리라 다짐하고, 칼로 초상을 찌릅니다. 그러자 그 칼은 자신의 가슴에 꽂히고, 쓰러진 도리언의 얼굴은 추하게 늙어버린 모습입니다. 하지만 초상은 전처럼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입니다. 도리언 그레이, 그는 예술이라는 환상 속에 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결말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가가 본연의 개성을 작품 속에 드러내는 것은 이상적인 사회, 유토피아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처럼 산업화된 자본주의 하에서는 예술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 균열이 일어나 예술과 예술가가 분리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죠. 실제로 이 작품이 발표된 시대의 현실이 그랬습니다.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부르주아 계층이 권력을 등에 업고 도덕을 이야기하며 예술을 교육이나 도덕적 계몽의 도구로 생각하던 시대였으니까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현실의 복잡성을 무시한 채 현실에서 무작정 예술적 이상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작중 도리언은 마치 자신의 삶이 꿈이고 자신이 예술작품의 주인공인 양 행동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영혼을 빼앗기며 인간성을 상실하고 결국에는 죽음에 이릅니다. 이는 예술작품인 자신의 초상과 자신의 실제 삶을 동일시하면서 생겨난 비극이지요.

그는 왜 도리언 그레이가 되고 싶었을까?

저자는 이 작품에 부쳐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

도리언 그레이는 내가 되고 싶었던 존재이고,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고, 바질 홀워드는 실제 나의 모습이다.

어떤 의미일까요? 먼저 바질 홀워드가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는 말부터 생각해 봅시다. 바질은 예술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합니다. 작품 속에 자신의 비밀이 담겼다는 이유로 일생일대의 작품을 출품조차 하지 않고 도리언에게 준 바질은, 그 비밀을 찾아낸 도리언에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작품의 비밀이란 도리언의 영혼을 비추어 죄악을 드러낸다는 점이었죠. 비틀린 세상에서, 작품 속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했던 와일드. 그의 두려움이 진짜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성애 사실이 드러나자마자 구속되고 비참해졌던 그의 삶. 바질의 인생과 겹치는 점이 많습니다.

다음으로 헨리 워튼 경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작중 해리는 도리언의 타락과 죽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순진했던 도리언을 유혹에 빠뜨려 죄의식 없이 쾌락을 탐닉하게 만들지요. 해리는 온갖 달콤한 말로 도리언을 유혹해 그를 엉뚱한 역할의 배우로 만든 다음 그를 관찰하는 존재입니다. 창세기에서 달콤한 말로 이브를 유혹해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도록 꼬드기던 뱀과 같은 존재지요. 와일드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마녀사냥처럼 그를 처벌하던 당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말의 의미도 이해가 갑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존재가 도리언 그레이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이 작품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도리언의 삶이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와일드는 도리언 그레이가 되고 싶다고 했을까요? 도리언은 복잡하고 지저분한 현실 따위를 모두 외면한 채 살았기에 도덕적으로 훌륭한 삶을 살지는 못했지요. 하지만 선악을 깨우치지 못한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살았기에 오히려 아름다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도리언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여겼듯 자기 자신의 삶조차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여기며 살지는 않았을까요? 와일드 역시 도리언처럼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살아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해석의 여지도, 감상의 여지도 많고, 아름답고 명쾌한 문장도 많았던 작품입니다.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이상과 현실, 예술에 대해 갖가지 생각을 떠올려보았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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