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

[ - 디베이팅데이 ]

고양이와 함께 떠도는 음악가

세상에 있는 수많은 음악에 관한 서사들 중, 이 영화만큼 내게 가깝게 느껴지는 영화는 없다.
코엔 형제의 손끝에서 태어난 인물 르윈 데이비스, 그리고 1960년대 미국의 풍경과 음악 씬은 살아 숨 쉬는 듯 입체적이다. 글_유인서 기자

종종 영화를 같이 보는 친구가 있는데, 우리는 영화 취향이 많이 다르다. 내가 엄청 재미있다고 생각한 영화를 그 친구는 재미없어하고, 그 친구가 인생 영화라고 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내가 별로 안 좋아한다. 그나마 일치점을 찾을 수 있는 건 판타지 정도. 왜 이렇게 다를까 생각해 보았는데, 애초에 영화에서 기대하는 것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영화 속 인물이 아무런 의미 없이 죽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그럼 나는 말한다. “현실 세계에서도 사람은 그냥 아무 때나 아무 이유 없이 죽잖아?” 그럼 친구는 그건 비겁한 이유라고 대답한다. 나는 암울하거나 비정한 영화를 보는 것에 별 거리낌이 없지만, 친구는 나보다 훨씬 더 마음의 동요를 심하게 겪는다. 이미 뉴스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암울한데, 가상의 이야기를 보며 왜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천 명의 사람이 영화를 본다면, 천 개의 감상이 발생한다. 우리의 감상이 다른 건 아마 우리가 살아온 삶이 너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예술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감상엔 옳고 그름이나 우열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영화가 해야 할 역할 같은 것도 없고,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는 데 일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영화를 볼 때 생각하는 건, 그 영화 속에서 내가 삶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밖에 없다. 그것이 꼭 영화가 다큐멘터리처럼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가장 비현실적인 순간에서 가장 치열한 삶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영화의 완성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책임지는 건 감독이고, 결국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건 그가 해석한 세상의 단면이다. 그리고 가끔은 그렇게 옮겨진 세상이 나의 마음 내밀한 곳에 있는 무언가와 만나서 설명할 수 없는 작용을 일으킬 때가 있다. 내가 ‘이건 진짜 좋은 영화다!’라고 느끼게 되는 건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인사이드 르윈>을 얼마 전에 이 친구와 같이 봤는데, 역시 이번에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처럼) 감상이 확 갈렸다. 친구는 도대체 이런 걸 왜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하지만, 나에겐 인생 최고의 영화 중 하나다. 3년 전쯤 처음 이 영화를 본 뒤로 이 영화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포크 가수 르윈 데이비스

영화는 한 라이브 카페에서 시작한다. 배경은 1960년대 뉴욕.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어두운 조명이 빛나는 낡은 무대 위에서 르윈은 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노래한다. 공연이 끝나고 그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공연장 주인의 말에 계단을 올라 뒷골목으로 가자 양복을 입은 사내가 대뜸 그에게 주먹질을 해댄다. 도통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포크 뮤지션인 르윈은 집도 절도 없는 신세다. 그와 친한 한 대학 교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다음날 길을 떠나려던 참에, 잠깐 열린 문틈으로 그들이 키우던 치즈색 고양이가 빠져나가고, 설상가상으로 문까지 철컹 닫혀 잠겨버린다. 고양이를 건물 안 누군가에게 맡겨보려 하지만 실패한 르윈은 결국 고양이와 함께 지하철에 오른다.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친구 짐의 여자친구인 ‘진’의 집. 진은 르윈을 보자마자 혐오감 가득한 표정으로 화를 낸다.

알고 보니 르윈과 진은 짐 모르게 같이 잔 적이 있었고 진은 임신을 하게 된 것. 당장 가진 건 기타랑 고양이밖에 없는 마당에 임신중절 수술을 위한 돈까지 모아야 하게 생겼다. 그 사이 고양이는 또 다시 사라진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그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일단 고양이를 찾아야 한다. ‘시간을 죽이듯 존재하는 것’이 싫어 선원 일을 때려치우고 음악을 시작한 르윈. 그는 대중가수가 아닌 ‘아티스트’다. 음악을 사랑하는 그는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까? 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음악이 과연 그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있을까? 영화는 르윈의 떠도는 고민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간다.

떠도는 사람의 이야기

사실 르윈은 그렇게 본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영웅하고는 아주 거리가 멀다. 매사에 냉소적이고, 게으르고, 자기 인생이 꼬여서 받는 스트레스를 라이브 카페 무대에 올라간 늙은 여자 가수의 공연에 훼방을 놓으며 푸는 등 한심한 면이 많다. 그의 행동을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왠지 이상하게 그를 미워할 수는 없다. 그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어찌되었든 순수하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에겐 성공을 위해서, 혹은 더 안락한 삶을 위해서 스스로를 꾸미거나 과장하는 능력이 없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로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나는 잘 미워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매일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잠자리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배도 안 곯고 길에 나앉을 걱정도 하지 않으며 살고 있지만, 영화 속 일주일 동안 르윈이 내내 떠도는 걸 보면서 내 마음의 어딘가는 그에게 정말 가까이 이입해 있었다. 다른 영화를 보면서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영화 초반부에, 르윈이 고양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진의 집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담은 약 3분짜리 뮤직비디오 같은 시퀀스가 있다.

배경음악으로는 영화의 타이틀곡인 ‘Fare thee well’이 깔리고 고양이의 시선에 따라 지하철 차창으로 플랫폼들이 스치며 지나간다. 아무것도 아닌 듯 스쳐가는 순간에 왜 이토록 몰입하게 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법 같은 느낌이다.

코엔 형제의 영화

지금까지 본 코엔 형제의 영화가 네다섯 편 정도 되는 것 같은데,(한편도 빠짐없이 모두 엄청 재미있게 보았다) 그들의 영화는 볼 때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인사이드 르윈> 역시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영화 안에서 두 감독이 르윈을 표현해내는 방식은 거의 무자비하게까지 느껴진다.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뭐라도 해보려고 하면 상황은 매번 꼬인다. 일이 너무 안 풀려서 만화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르윈을 동정하거나 딱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를 보는 시선은 바싹 마른 나뭇잎처럼 건조하고 덤덤하다. 이런 상황에서 생기는 아이러니가 웃음을 자아낸다. 르윈이 삶에 치여 툴툴대는 걸 보고 있으면 딱하다는 느낌보다 웃긴다는 감정이 먼저 드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코엔 형제의 영화에는 항상 욕을 잘 하는 사람이 한 명 씩 나온다. 각본과 감독을 모두 도맡아 하는 만큼 그들이 창조해낸 캐릭터들과 대사에는 항상 그들의 색깔이 잔뜩 묻어있다. <인사이드 르윈>에서 욕쟁이의 역할을 맡은 건 르윈의 친구 진. 진이 르윈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며 속사포로 욕을 쏟아내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은 장면들 중 하나다!

멋진 영화의 멋진 사운드트랙

음악 영화인 만큼, 멋진 사운드트랙도 영화의 감정을 형성하는데 아주 큰 몫을 했다. 주인공인 르윈 데이비스 역을 맡은 오스카 아이작의 목소리는 그의 연기만큼이나 영화와 잘 맞아떨어진다.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배우들은 영화를 찍을 때 모두 라이브로 노래를 소화했다고 한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으로 실린 르윈의 노래들도 모두 좋고, 팝 클래식인 ‘500 hundred miles’,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밥 딜런의 초기 음악 ‘Farewell’도 좋다. 빼놓을 것이 없는 사운드트랙이다. 영화를 본 뒤에 감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한동안 계속 찾아들었다.

언뜻 보면 비극적이고 무척 쓸쓸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해학으로 가득한 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내가 본 최고의 음악 영화다. 앞으로 살면서 나는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더 찾아보게 될까?

코엔 형제의 영화 몇 편

시리어스 맨 | 2010.03.25.
래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친다. 평범할 줄 알았던 그의 삶에 갑자기 악재가 겹친다. 아내는 친구와 바람이 나고, 아들은 말썽이고, 딸은 아빠 지갑에까지 손을 댄다. 설상가상으로 대학 종신재직권 심사에서 낙마할 위기에까지 처한 그.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신을 대신할 세 명의 랍비를 찾은 래리. 래리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2008.02.21.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는 현장. 르웰린 모스는 우연히 200만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가방을 찾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살인마 안톤 시거. 살인마의 뒤를 쫓는 보안관 벨이 그의 뒤를 함께 쫓으며 추격전이 펼쳐진다.

더 브레이브 | 2011.02.24.
14세 소녀 매티는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 톰 채니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은퇴한 연방보안관 카그번을 고용해 톰 채니를 쫓기 시작했지만, 카그번은 번번이 매티를 실망시킨다. 톰 채니에게 걸린 현상금을 얻으려 특수경비대원 라 뷔프도 매티와 카그번에게 가세한다.

위대한 레보스키 | 1998.10.24.
건달 제프 레보스키. 직업도 삶의 목표도 없이 살아간다. 어느 날 그의 집에 강도가 침입해 돈을 요구한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동명이인과 헷갈려 벌어진 해프닝. 제프는 재벌 제프를 찾아간다. 강도가 찾아와 더럽혀진 카펫을 변상받기 위해서다. 재벌 제프는 건달 제프에게 강도들이 납치해간 자기의 아내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강도들과 협상하기 위해 100만 달러가 든 가방을 가지고 가던 그는 돈가방을 잃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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