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 - 디베이팅데이 ]

인간적인 삶을 위한 선택, 기회는 지금뿐이야!

불과 150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에선 사람을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다. 그때가 지금처럼 개인의 시간이나 노동이 아니라 한 인간의 온전한 존재가 재화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노예 시장에서 흑인들은 쇠사슬에 묶인 채 물건처럼 경매에 부쳐졌다. 그들은 백인들과 동일한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법이 엄연히 그들을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했다. 어쩌다 보니 미국의 노예제도와 인종 차별에 관련한 영화를 연달아 보게 됐다. 노예 신분이었던 흑인이 백인 현상금 사냥꾼과 함께 다른 농장으로 팔려간 아내를 되찾는 이야기인 <장고 : 분노의 추적자>를 5년 만에 다시 보았다. <헬프>도 재차 보았다. <헬프>는 노예제도가 법적으로 폐지된 지 100년이 지난 1960년대에도 여전히 백인들과 화장실조차 같이 쓰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흑인 가정부들의 이야기다.

가장 마지막에 본 것이 <링컨>이다. 앞선 두 편과 달리 <링컨>은 첫 관람이었다. 사실 링컨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노예제를 폐지한 미국의 대통령이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을 남겼다는 정도. 그렇지만, 스필버그가 감독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연기하는 영화라니! 포스터 한 장만으로도 나는 이미 매혹되어 있었다. 그래서 <링컨>을 보았고, 예상대로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앞선 두 영화보다 훨씬 마음에 깊이 남았다. 정의를 향한 인물들의 고군분투와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정치공방이 완벽한 연기와 연출로 스크린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전쟁의 시작과 끝, 노예제도

영화의 배경은 1865년 미국. 길었던 남북전쟁도 점점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대통령 링컨의 얼굴엔 여전히 고민이 가득하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이 다시 하나의 연방 아래 모이면, 그가 이제껏 신념으로 밀어붙이던 헌법 개정을 통한 노예제 폐지가 불투명해질 거란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많은 북부의 시민들은 노예제 폐지가 인간적인 당위 혹은 사회에 꼭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해서 지지했다기보다는, 그것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기에 지지했다. 그렇기에 만약 노예제가 경제의 주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남부에서 노예제 존속을 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제안한다면, 북부의 민심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움직일 확률이 높았다. 북부군에서 수많은 흑인들이 연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남부군 지도부에서 종전을 이야기하기 위해 북으로 사절단을 보낸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자 링컨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남부군이 전쟁을 끝내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노예제 폐지를 명시한 13번째 헌법 수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야당인 민주당에선 대다수가 법안에 반대할 게 뻔했고, 공화당의 지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법안이 가결되려면 전체 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했다. 링컨은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팀을 꾸려 뇌물을 건네 의원들을 매수하기 시작한다.

공화당의 급진파, 새디어스 스티븐스

링컨의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도 성향에 따라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었다. 온건파는 ‘일단 전쟁을 끝내는 것이 우선이다.’ 혹은 ‘이렇게 급작스럽게 수백만의 흑인들이 자유 신분이 되면 다가올 혼란을 생각해야 한다.’ ‘나중엔 흑인들한테 투표권이라도 줄거냐.’라고 생각했던 반면 급진파쪽에서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정신에 입각해 사람을 소유물 취급하는 노예제도를 오랫동안 비판해 왔다. 공화당 급진파의 대표 인물인 하원의원 새디어스 스티븐스는 영화에서 링컨 다음으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타협하기를 거부하는 독불장군 노인인 그는 자신만큼 급진적으로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는 링컨이 영 못마땅하다.

“남부를 자유로운 남녀노소와 자유의 땅으로 건설하는 거지. 그런 계획을 국민에게 알려야 하오.” 그는 링컨에게 말한다.

링컨은 대답한다. “그건 다듬어지지 않은 재건 계획이죠.”

이어서 링컨은 말한다.

“의원님의 열의를 진정 존경하오. 그걸 본받으려고도 했고요, 그런데 의원님 말을 따랐다면 첫 포탄이 포트 섬터에 떨어진 순간 모든 노예의 자유를 선언했을 거요.
그럼 경계 주들은 남부 연합으로 갔을 거고 우리와 연방은 전쟁에서 패해 2주 후에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노예제도가 미국 남부에서 남미까지 번지는 걸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을 거요.”

13번째 수정안이 제안되고, 의회에서는 정기적으로 법안을 둘러싼 토론이 열린다. 새디어스의 성격을 아는 민주당 의원들은 그를 이용하기로 작정한다. 토론장에서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 다른 의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급진적인 그의 생각을 드러내 다른 이들로 하여금 법안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하려는 것이었다. ‘수정안의 목적이 흑인과 백인이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는 민주당 의원의 공격적인 질문에 새디어스는 고민 끝에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대답한다.

“난 모든 것에 있어 평등을 믿진 않소. 단지 법 앞에서의 평등을 믿을 뿐이오.”

그의 자제력에 민주당 의원들은 당황한다. 의회에서의 토론이 끝나고 회장 밖으로 나온 새디어스에게 다른 의원이 접근한다.

“스티븐스 씨, 저는 놀랐습니다. 인종 평등을 위해서 30년간 싸워오셨죠. 이 나라 장래의 희망이 이 수정안에 담겨있는데 당신은 흑인의 평등을 부인했어요. 구역질납니다. 모든 인간은 인간이라고 말하길 거부했죠.”

새디어스는 대답한다.

“구역질난다니 미안하군. 기분 나쁘겠어. 난 수정안이 통과되길 바라. 그래야 헌법에서 노예제도가 언급되는 경우는 그게 절대 금지라는 걸 얘기할 때밖엔 없게 되거든.
이 수정안을 위해 난 평생 일했고 수많은 흑인 남성과 여성이 이를 위해 싸우다 죽었소. 수십만 명의 군인들도 말이오.”

의회에서 발언대에 선 순간 그의 마음을 지배했던 것은 그가 마음속에 품은 이상이 아닌, 그 이상으로 세계를 한 발짝이라도 더 가깝게 할 현실적인 수단이었다. 어느 순간 새디어스는 링컨을 닮아 있었다.

살아있는 정치 드라마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인상이 강해서일까, 영화를 보기 전에 나는 이 영화가 남북전쟁 자체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첫번째 장면도 전쟁 씬에서 시작한다.(그 이후로는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링컨>은 철저한 정치드라마였다. 링컨을 중심으로 공화당, 내각의 주요 인물들, 그의 가족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와 살아있는 대사들로 입체적인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한다. 정치에 관한 서사들 중 이 영화만큼 몰입해서 본 작품이 없다. 13번째 수정안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았다. 법적으로 ‘흑인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할 뿐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인간임을 보장하진 않았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링컨은 주도적으로 의원들을 매수했다. 민주주의 원칙에 대놓고 반하는 일이다. 누군가는 의회를, 그리고 의회가 대표하는 국민을 기만했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링컨에겐 신념이 있었다. 노예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은 그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무였다. 영화 내내 링컨은 피로하고, 고민에 휩싸여 있고, 무엇보다 고독해 보였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해내기 위해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걸 걸었다. 영화 막바지, 남쪽에서 평화 제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링컨의 측근들은 분개하여 링컨에게 ‘노예제 폐지 같은 건 필요 없다’, ‘헌법을 가만히 놔둬라’라는 둥 불평을 늘어놓는다. 링컨은 대답한다.

“인간 존엄성의 운명이 우리 손 안에 있어. 사슬에 묶인 수백만의 삶,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수백만의 삶을 결정지을 기회가 우리 눈앞에 있소. 지금, 지금, 지금. 지금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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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s

  1. zkftpfm의 프로필
    Lv2 zkftpfm 님의 의견 - 3달 전

    어느시대든 어떤 사람이든 순수 개인의 이득을 주장하는 사람보단, 보다 넓고 다양한 범위를 포함하는 이득을 주장하는 사람이 사람에게 깊은 영감을 주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지구 환경문제, 난민문제, 전쟁, 기아등등 보다 깊고 넓은 주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져야 할것같지만, 실상 살아가다보면 그런것은 여전히 허무해보입니다.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에, 혹은 존재하지만 너무 어렵기에 그런것이 아니라, 분명히 존재하고 분명히 쉬운길이지만 그로인해 얻는것이 없다는 생각이지요.

    명예가 의미가 없는 시대이고, 있다한들 굳이 바라지 않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행복이라는것이 꼭 ‘선악’이라는 명제와 연결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이 요즘시대의 상식이기도 하지요.

    그러면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과연 깊은 영감을 주는 작품, 글이 사회에 필수요소가 될수있는가? 하구요. 말 그대로 지금만이 중요하니 나중의 인류가 어찌되어도 상관없이 타락적으로 산다한들 이 글에서 보이는 링컨의 마지막 대답이 무슨의미를 가질수 있을까요. “나는 오로지 지금의 쾌락과 타인을 조종하는 권력, 그리고 그로인한 금전만이 나의 모든것이요.”라고 살아있는 마음으로 이야기하는사람이 나타난다면? 이 칼럼을 보면 마치 링컨과 같은 전체를 생각하는 그러한 마음이 늘 거대한 힘을 가지기에 항상 승리하는것처럼 오해할수있는 여지가 있지만, 결국 승자가 과정을 합리화하게 되는 무수한 다른이야기들과 다를게 없어보인다는게 제 생각이네요. 영화는 보지않고 저 또한 링컨의 인생은 알지못하지만, 최소한 이 칼럼만 읽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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