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의 영혼의 지도

[ - 디베이팅데이 ]

칼 구스타프 융과 정신분석학의 시작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심리적인 문제가 생기면 정신의학과를 찾는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에도 심리적인 요인을 고려한다. “학교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게 무의식중에 계속 드러나는 게 아닐까?” “직장에서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행동하다 보니 피곤한 것 같아.” 이런 접근법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자기 자신을 보다 깊이 알게끔 돕는 정신분석학은 21세기 시민인 우리에겐 익숙한 분야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신분석 접근법이 사용된 건 불과 한 세기밖에 되지 않았다.

20세기에 정신분석학을 최초로 정립한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융이다. 그는 ‘콤플렉스’를 명명하고 ‘페르소나 이론’을 정립했다. 융이 정신분석 연구를 시작한 20세기 초는 과학의 시대였다. 뉴턴의 뒤를 이어 아인슈타인이 활동했고, 비행기와 컴퓨터가 발명됐다. 우주의 모든 이치가 곧 과학으로 밝혀질 것 같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인간의 삶을 더욱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심리치료를 요하는 환자가 급증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 급격하게 바뀐 시대상과, 엄청난 규모로 발발한 세계 1,2차대전은 많은 사람들을 정신의학병원으로 향하게 만들었다.과학적 사고방식이 힘을 얻고 심리치료 환자가 급증하며 정신분석학이 태동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이 있었다. 병원에서 일하던 융은 환자들이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고통 받아서’ 병을 얻었다고 보았다.

그는 ‘무의식’ 가설을 세우고 환자들을 관찰하던 중 1900년 출간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무의식과 꿈에 대해 다룬 정신분석학서의 시초을 읽고, 그와 자신의 사상이 비슷함을 깨닫고 흥분한다. 이후 두 사람은 왕성히 교류하며 정신분석 이론을 정립해나간다. 무의식과 꿈의 연관성, 히스테리, 트라우마 등의 정신분석 이론이 이때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무의식의 기원을 성(性)적인 것으로 해석한 프로이트의 의견에 융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1913년 프로이트와 사상적인 결별을 한 후, 융은 생애 말미까지 콤플렉스, 페르소나, 집단무의식 등 무의식과 자아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하며 정신분석 세계를 넓혔다.

작품해설 : 나를 향한 나침반

우리는 스스로를 생각보다 잘 알지 못한다. 간혹 타인이 나를 평가할 때, 내가 인지하는 모습과 달라 깜짝 놀란다. 혹은 이따금 스스로에게서 낯선 모습을 발견하곤 의아해한다. 이러한 괴리는 무의식 속의 내 모습과 사회적인 내 모습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융은 이 괴리를 ‘콤플렉스’, ‘페르소나’, ‘그림자’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스스로를 더욱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신대륙을 찾아, 융이 펼쳐놓은 지도를 따라가 보자.

단어실험으로 세상에 등장한 ‘콤플렉스

우리는 종종 콤플렉스를 느낀다. 콤플렉스는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콤플렉스를 정확히 알면 내가 어느 지점에서 불안해하는지 깨달아 성장의 밑받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신이라는 깊은 바다 속에 숨어있어 도통 찾기 어려운 콤플렉스. 콤플렉스가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언제 밝혀졌을까?
20세기 초, 융은 심리 상담자들을 대상으로 단어 연상 실험을 진행했다. 탁자, 잉크, 바늘, 빵과 같이 일상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단어를 상담자에게 제시하는 실험이었다. 그중에는 전쟁, 충실한, 때리다처럼 도발적인 단어도 섞여 있었다. 환자들은 단어를 들었을 때 연관하여 생각나는 단어를 재빨리 말해야 했다. 실험을 진행하며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이 드러났다. 환자들은 비슷한 뉘앙스의 단어들이나 공통된 어휘 일군을 들었을 때 빨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단어를 말하거나, 심지어 화를 내기도 했다. 융은 그러한 단어들이 개인의 특정 기억과 무의식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리라는 가설을 세웠다. 무의식 아래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흔들던 콤플렉스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고래, 콤플렉스

콤플렉스는 무의식에 위치해 있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그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특정 단어, 행동, 상황이 수면 아래 잠들어 있는 거대한 고래인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순간, 고래는 바다를 헤집고 다니며 엄청난 파동을 일으킨다. 평소에 콤플렉스를 잘 다스리더라도, 한번 콤플렉스가 발현되면 자아는 힘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평상시처럼 안온하게 지낼 수 없다. 콤플렉스의 지배 아래 있는 동안에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다.

콤플렉스는 주로 개인의 역사에서 생성된다. 공부를 할 때마다 크게 꾸중을 들으며 자란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도 공부할 때마다 예민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집단적으로 형성된 콤플렉스도 있다. 개인은 사회 전반에 퍼진 콤플렉스에 사로잡힌다. IMF 당시 직접적인 실업 위기를 겪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IMF 세대라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트라우마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집단적인 콤플렉스다. 콤플렉스의 힘은 너무 강력해서 자아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아는 콤플렉스가 원하는 쪽으로 행동하는데, 그러면서도 그 이유를 인식하지 못한다. 자아는 스스로가 자유롭게 행동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상 콤플렉스의 지배 아래 놓인 자아는 평소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자아가 흔들리니 ‘사회적으로 보이는 자아’페르소나 또한 예측 불가능하게 행동하고, 자기 자신과 타인 모두 혼란을 느낀다.

사회 데뷔 필수품, ‘페르소나’

‘사회적으로 보이는 자아’란 뭘까? 모든 사람은 사회와 타인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다. 더 발랄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혼자 있을 때보다 활기찬 태도를 유지하거나, 유쾌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재미없는 농담에도 깔깔거리며 웃는다. 혹은 소심한 성격을 감추기 위해 무섭고 냉정한 사람인 척 연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교적인 세계에 직면할 때 우리가 연기하는 사회적 인격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부른다. 라틴어로 배우가 연기할 때 쓰는 가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모든 사람에게는 페르소나가 있다. 페르소나가 생기는 원인을 융은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 원인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물이 되고 집단의 사회적 관습에 맞춰 행동하라는 압력이다. 두 번째 원인은 개인이 사회에서 이루고자 하는 야망에 기인한다. 페르소나는 생애에 걸쳐 여러 번 변경될 수 있고, 실제로 변화한다. 사회적인 환경이 변하면 완전히 다른 태도나 역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엄한 호랑이 선생님이 집에서는 자상한 부모가 되는 것도 각기 다른 환경에서 별도의 페르소나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페르소나=자아가 된다면?

페르소나는 사회적인 상황에서 통용되는 인격이기 때문에 자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자아와 동일시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동일시 과정은 대개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요구받은 역할은 본질적인 자아와는 다르기 때문에 괴리가 생긴다. 일반적으로 명망 있는 역할일수록 동일시는 더 강해진다. 유명 회사의 CEO들이 평상시에도 권위적이며 근엄하고 리더십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동일시가 심해지면 페르소나가 자아를 집어삼킨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본질을 영영 잃어버린 채 자긍심이나 자기 정체성을 오직 페르소나가 발현되는 상황에서만 느낄 수 있다. 나라는 인간의 삶은 사라지고, 어느 특정한 사회적 상황에서만 자기가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고 느끼는 것이다. 페르소나에 자기를 의탁하지 않으려면 자아가 새로운 태도를 갖게끔 노력해야 한다. 현재 처한 상황과 내가 맡은 역할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지 말고, 세계는 내가 인지하는 것보다 훨씬 넓으며 다양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내가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 역할을 맡고 있을지라도, 나중엔 산을 탐험하는 등산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럴 경우 자아는 변화하는 상황에 보다 쉽게 적응하고, 우리의 페르소나는 유연해질 수 있다.

자아의 어두운 일면, 그림자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이 페르소나라면, 반대로 타인이나 사회에 의해 제지되어서 자기의 어두운 일면으로 남는 정신 요소를 그림자라고 한다. 자아가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의 정신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그림자다. 보통 자아는 그림자의 존재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그림자는 도덕적이지 않은 가치와 연관되어 있다. 야비함, 이기적임, 냉혹함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종종 ‘그림자’에 해당하는 면모를 페르소나로 지닌 사람들이 있다. 악행을 거리낌 없이 전시하는 범죄자가 그렇다. 이들은 자신의 비정함이나 냉철함, 잔인함을 과시하곤 하는데, 페르소나 전략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공포심을 유발하는 페르소나를 사용하여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한다. 이런 경우 그들의 그림자는 자기들이 추구하는 페르소나와 반대되는 나약하고 감성적이며 인간적인 면모다. 즉, 그림자는 자기가 추구하는 페르소나와 대극을 이룬다.

모든 자아가 페르소나와 함께하듯이, 모든 자아는 그림자를 갖는다. 그림자와 페르소나는 상호보완적이다. 페르소나가 세계에 적응하면서 남들에게 긍정적인 면모를 보일 때, 자아는 내면의 부정적인 면모를 그림자를 통해 은밀히 처리한다. 도덕적 갈등이 생기는 상황에서 그림자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이기적인 결정을 망설임 없이 내린다. 사소한 예시이지만, 여럿이 피자를 나눠 먹을 경우 피자 조각을 집을 때 본능적으로 토핑이 더 많이 올라간 것을 골라 드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런 과정은 자아가 눈치재지 못하도록 무의식 아래에서 재빨리 수행된다.우리는 자기반성과 내적인 성찰을 통해 그림자의 이기적인 면모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자의 활동을 저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림자는 자아의 자기 방어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내는 정신 요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희생하고 살 수는 없으며, 냉혹할지언정 이따금 자기 이익만을 추구해야 한다. 그림자는 이기적인 욕구를 해소한다. 자아와 그림자는 공생 관계이다. 그렇기에 자아는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림자를 명확히 꼬집지 못한다. 자기 그림자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스스로 성찰하기보다는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물어보는 편이 낫다.

그림자는 사악한 존재가 아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림자는 정신 아래 은밀히 숨어있는 악독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림자는 절대악이 아니다. 자아가 원했지만 사회의 시선을 의식해서 억눌러왔던 활동들을 추구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림자의 욕구 발산이 없다면 사람들은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과 페르소나를 이용하여 사회에서 수용 가능할 정도로만 그림자를 조종하므로, 그림자의 행동은 사회의 도덕 마지노선을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림자는 잘못 다루면 분명히 위험하다. 특히 그림자가 타인에게 투영될 때 그러하다. 우리는 자기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덮어씌운다. 자기가 싫어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발견했을 때 사람들이 더 잔혹하게 비난하는 이유다. 이럴 경우 그림자와 자기를 분리하기 위해, 자아는 스스로를 무고한 희생자나 단순한 관찰자로 설정하고 타인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융은 우리가 정신세계라는 신비롭고도 매혹적인 우주를 탐험할 때, 길을 잃지 않도록 나침반을 제시해준다. 콤플렉스, 페르소나, 그림자를 인지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더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추구하는 인간상이 무엇인지, 나의 심리적인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할 때 우리는 원하는 인생을 효과적으로 꾸려갈 수 있다.

융의 지도는 길을 보여줄 수 있고 대체로 윤곽을 알려주지만, 특별한 내용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이것은 본인 스스로를 위한 발견이 되어야 한다.

나침반이 선원들에게 보물처럼 여겨지는 건 그 자체로 귀중한 물건이어서가 아니라,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콤플렉스, 페르소나, 그림자를 비롯한 융의 정신분석학 내용도 마찬가지다. 나침반을 활용하여 내면의 다양한 자기 모습을 알아갈 때, 우리는 인생이라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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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s

  1. zkftpfm의 프로필
    Lv2 zkftpfm 님의 의견 - 2주 전

    근거야 뭐 1도 없이 논리만으로 논리를 이어보자면, 그렇기때문에 학교수업, 특히 어린시절 의무교육에는 반드시, 심리학과 도덕에 대한 좀더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와 수업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는 최소한 자기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꾸려나가야한다는 독립되고 성숙한 어른의 교육을 받고 또 그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요?

    자기자신의 그 자그마한 그림자하나 인지하지 못해서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고 또한 자기자신의 삶마저 파멸로 이끌곤 합니다.

    자기자신이 실패했을때 사람들은 누구를 찾지요? 부모를 찾습니다. 과거 학교의 은사를 찾습니다. 책을 찾고, 멘토를 찾고 또 뭔가를 찾습니다.

    필사적으로 자기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투사하지요.

    그럼 두가지중 하나입니다. 그런 사회적 페르소나에 자아가 먹혀버린 껍데기들이 그런 타인의 그림자를 대신 짊어지게 되거나, 혹은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서로 아파할뿐이지요.

    물론 두가지 이외에 다른 건설적인 선택지도 무수히 많겠지만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것은 부정하기 힘들것입니다.

    흔히들 헬조선이라고 말하고 쓰레기같은 나라라고 말하지요. 또 쓰레기같은 세상이라고도 말합니다.

    맞습니다. 참으로 더럽고 치사하고 부조리한 세상이지요.

    성숙이란 그런 세상을 일방적으로 탓하고 욕하는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 그런사람이기에, 그런사람이 모였기에 세상이 이러함을 이해하는데서 시작되어야겠지요.

    우리는 더럽고 치졸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수있지요.

    자기자신이 더러움을 모르는사람은 평생 잘 씻질않습니다. 그래서 늘 몸에 때가끼고 더럽고 면역력도 떨어져서 병치례를 달고살지요.

    아름답고 행복해지려면 아름답고 행복함에만 집중할것이 아니라, 그것을 방해하는 각자 마음속의 혐오스러운 자각이 필요합니다.

    마음속 더러움을 필연적으로 받아들이는 좀더 성숙한 문화가 오면 어떨지 한번쯤은 상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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