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되면

[ - 디베이팅데이 ]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재작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생애 처음으로 장편 다큐멘터리 작업의 일부로 참여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들 중 하나였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느낀 것들과 새롭게 하게 된 생각들을 정리하여 글로 써 보았습니다.
글_유인서 객원기자 사진_네이버 영화

몇 년 전, 나는 혜영과 둘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날 처음으로 그녀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누었다. 중증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혜영의 동생 혜정은 어린 시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당시까지 여주에 있는 한 이름 없는 산 속의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살고 있었다. 난 당시 혜정을 만나본 적도 없었고, ‘장애인수용시설’이 뭔지도 몰랐으며 발달장애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시 혜영은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살고 싶은데, 현실적인 문제로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동생은 거의 항시 돌봄이 필요한데, 한국은 그런 돌봄을 사회적으로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같이 살면서 일을 하고 생활을 꾸려나가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혜영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다른 무엇보다, 자신이 아무리 같이 살 준비가 되어있어도 동생이 시설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 가장 걱정이라고. 이야기를 듣던 나는 뭐가 그렇게 어렵냐는 듯 말했다. “그냥 살고 싶은 곳에서 계속 살면 안돼요?” 그 말을 하는 순간 혜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날의 대화는 별로 좋게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재작년 5월, 혜영은 결국 혜정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긴 설득의 과정 끝에 동생이 자신과 함께 사는 것에 동의해 주었다고 혜영은 말했다. 그녀의 예상대로 서울시는 그녀와 혜정을 위해 거의 아무런 복지서비스도 제공해 주지 않았다. 어떤 프로그램은 단순히 신청을 하기 위해서 ‘서울시에서 6개월 이상 거주’라는 자격을 요구했다. 동생과 함께 살면서 원래 하던 대로 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한 혜영은 이 6개월의 시간동안 일을 관두고, 동생과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을 다큐멘터리로 찍을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혜영은 다큐멘터리 제작비를 모으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 소개글을 내게 보여주었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어른이 되면>. 펀딩 목표 금액은 5000만 원이었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펀딩이 모이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하며 마음을 졸이던 기억이 난다. 결국 천명이 넘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펀딩은 성공했고 혜영, 혜정의 삶도 그렇게 새로운 장을 맞이했다.

혜영이 감독하는 다큐멘터리에 나는 음악감독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단순히 작품을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자매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작품보다 삶이 먼저다’는 혜영이 항상 고수했던 단 하나의 원칙이었다. 야간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혜정을 따라가고, 광화문에서 열리던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 현장에도 다녀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혜영을 옆에서 보았고, 18년 만에 시설 밖 세상으로 나와 하루하루를 좌충우돌 살아가는 혜정을 보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오래 전에 혜영에게 던졌던 질문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냥 살고 싶은 곳에서 계속 살면 안돼요?” 처음 그 말을 던졌던 순간과 전혀 다른 온도로.

자유란 뭘까?

오랜 시간동안 나는 ‘개념으로서의 자유’에 대해 집착했다. 자신의 온 삶을 통해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 사강. 국가에 종속되지 않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연결된 세계시민주의에 대해 이야기한 칸트. ‘인간은 스스로를 국적, 성별, 나이 등 무수히 많은 사회적 관념들로 규정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자기기만이다. 인간은 없음이다. 우리는 자유라는 형벌에 쳐해져 있다’고 이야기하던 사르트르. 나는 이들의 말이 좋았다. 그리고 삶의 가치와 경건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권위 혹은 사랑으로 남을 조금이라도 구속하려는 사람들을 마음 어딘가에서 진심으로 경멸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자유, 그리고 혜정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집에서부터 쫓겨나서, 시설에 갇혀 20년 가까운 시간을 살아온 사람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일까.혹은 시설에서 태어나서 시설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에게, 세상이 탄생부터 한 건물 안으로 한정되어있는 사람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일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의 일부를 비하의 언어로 사용하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회적 단죄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일까. 왜 내가 ‘나는 다른 무엇도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는지, ‘자신을 마음대로 규정할 수 있는 자유’는 주류에게만 주어진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자유를 이야기하기 전에 평등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혜영이 말했던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보편적인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 앞에서 인간이 어떻느니 자유가 어떻느니 하는 말들은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처음 읽었을 땐 이해할 수 없었던, ‘세계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여 있다’는 아렌트의 말이 또렷이 들리기 시작했다.

혜정과 함께 지내는 것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혜정은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 나는 살면서 무언가를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 경험이 거의 없다. 매일매일 혜정은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당연히 몸에 좋지 않다. 그리고 혜정은 커피를 마시면 마실수록 더 많이 원하고, 무드도 엄청나게 올라간다. 우리가 함께 지키기로 한 원칙은 ‘커피는 하루에 한잔’이었다. 하지만 혜정은 매번 한잔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커피를 더 달라고 할 때마다 멈칫하게 된다. 매번 ‘내가 무슨 권리로 지금 커피를 주지 않을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다 몸에 안 좋은 걸 하면서 살지 않나? 담배도 피고 술도 먹고. 왜 누나는 하루에 커피를 5잔씩 먹을 수 없지?’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머리는 더 복잡해지고 한 단어를 무한히 반복할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겠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큐에는 들어가지 않은 촬영 분 중에, 촬영감독이 혜영에게 질문을 하고 혜영이 대답하는 영상이 있었다.

그 날 우리는 다 같이 극장에서 다큐팀 중 한명인 은경의 단편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 상영 중 극장에서 혜정은 영화를 관람하는 대다수의 관객들과 다른 포인트에서 웃음을 터뜨린다거나, 특유의 ‘음’ 하는 소리를 내곤 했다. 그런 조용함을 요구받는 장소에서 조용히 있기 힘들어하는 혜정을 대할 때 혜영의 특별한 원칙이 있냐는 질문에 혜영은 ‘무원칙의 원칙’이라고 이야기했다. 다른 사람들, 혹은 친구들을 만날 때 ‘어떻게 행동해야겠다’고 특별히 생각하지 않고 기분과 분위기에 따라 행동하듯, 혜정을 대할 때도 같다는 말이었다.

다큐멘터리의 여정에 함께하면서, ‘약자는 강자에게 규정된다’는 것을 그 어느 때 보다 많이 느꼈다. 사회적 약자들은 너무 쉽게 개별적으로 존재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장애에 먼저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으로 약자일수록 사람은 상대방을 같은 인격체가 아닌 대상으로 대하려는 경향이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것, 인간을 대하는 하나의 통일된 원칙은 없다는 것, 다만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예의에 대한 끝없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세상과 만난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은 6개월간의 촬영 기간을 거쳐 작년 2월 크라우드 펀딩 리워드 상영회에서 관객들과 처음 만났다. 관객석에서 처음 완성된 영화를 보던 때가 기억이 난다. 말로 정리하기 힘든 여러 기분이 동시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정말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플롯을 정해놓고 찍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멋진 하나의 이야기가 영상에 담겼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다시 한 번 혜영이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워드 상영회가 끝난 뒤 6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장편 경쟁 부문으로 영화가 선정되었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배급사 <시네마 달>에서 영화를 배급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고, 영화는 12월 13일에 정식으로 개봉했다.

동생은 어느새 서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아이처럼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들은 동생이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동생은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나이만 훌쩍 먹어버린 ‘몸만 어른인 아이’가 아니라, 세상 속에 자립하는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른이 되면> 크라우드 펀딩 소개글 중

<어른이 되면>은 내가 본 가장 멋진 다큐멘터리다. 끝없는 슬픔 속에서도 희망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은 혜정의 성장을 기대하며 극장에 온다. 분명 혜정은 처음 시설에서 나왔을 때 보다 많이 변했다. 중요한 것은 변한 건 혜정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도, 혜영도, 다큐멘터리에 참여한 사람들, 주변의 친구들, 그리고 희망컨대 다큐멘터리를 보러 온 관객들도, 우리는 모두 변했다. 혜정이 ‘세상 속에 자립하는 어른’이 될 때 우리가 얻게 될 것은 한 명의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 된 세상이 아닐까.

박스#1* 유튜버 ‘생각많은 둘째언니’

영화 <어른이 되면>의 감독 혜영은 2016년도부터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유튜브 채널은 운영 중이다.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세상을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하는 둘째언니의 채널’이라는 채널 설명답게 둘째언니의 유튜브 채널은 페미니즘, 성소수자, 장애인 인권, 가난 등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현재 약 4만 1천 명의 사람들이 둘째언니의 채널을 구독중이다.

박스#2*책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프로젝트는 다큐멘터리 뿐 아니라 동명의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혜영이 직접 쓴 책 <어른이 되면>에서는 스크린으로 옮길 수 없었던 혜영·혜정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 그리고 혜영의 깊은 생각들과 고민들을 여과 없이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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