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 - 디베이팅데이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그리고 너는 누구인가?

만일 잠에서 깨어났는데 갑자기 아무런 기억을 할 수 없게 된다면? 거울을 통해 본 스스로의 모습도 처음 보는 얼굴이고, 주위를 둘러싼 공간이며 사람들 모두 낯설다. 분명한 것은 지금 나의 몸은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외계인들의 장난이다. 원래 다른 A의 영혼이었던 ‘나’의 인식이 외계인의 실험으로 기억이 지워진 채 전혀 낯선 B의 몸에 넣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B에 깃든 ‘나’는 누구인가? A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B에 깃든 ‘나’를 도대체 ‘나’라 규정할 수 있을까?

인간은 기억을 한다. 기억을 하기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것 역시, 기억의 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릴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영화, 잊지 못할 만큼 즐거웠거나 슬펐던 사건 등 과거의 순간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자신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무언가 보고 배우고 느끼며 성장하는 인간에게 있어 기억이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근원적인 능력이다. 그런데 만일, 그 중요한 힘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 <메멘토>는 그러한 상황에 놓인 한 남자의 비극적 이야기이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10분이 넘으면 사라지는 기억

영화는 어떤 살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정확하게 말해 이 씬은 ‘시작’이 아니다. 시간상으로는 영화 모든 사건들 중 제일 나중에 벌어지기에, 그러니까 ‘결말’에 가깝다. 주인공 레너드는 방금 테디라는 남자를 총으로 쏴 죽였다. 그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남자의 시체를 찍는다. 마치 채증을 하는 경찰처럼 신중하게 사진을 흔드는 그. 화면 가득 사진의 이미지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그는 계속 사진을 흔든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서서히 드러나던 필름 위의 형태가 어느 순간 다시 점점 하얗게 사라지고 만다. 정말 그 사진에 기록된 것이 진실인 것일까?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하고, 레너드의 살인 장면이 역으로 편집되면서, 우리는 이 살인이 영화의 가장 마지막 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이 굉장히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은 영화 전체를 간단하게 상징한다. 영화 전체를 통해 시간이 역주행할 것이라는 것을.

레너드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보험조사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침입한 괴한이 아내를 강간하고 살해하면서, 그의 삶은 산산이 깨어져버렸다. 레너드는 사건 당시의 충격으로 10분 이상의 새로운 기억이 유지되지 않는 병에 걸린다. 그러니까 사건 이전의 자신과 아내와의 행복한 추억들은 알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누구를 만나도 어떤 일을 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레너드는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고 있다. 그게 가능하겠냐고? 레너드는 그렇다고 말한다. 모든 중요한 사항들을 메모하고, 심지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몸에 문신으로 새긴다. 10분전의 세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 부분에서는 마치 코미디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와 긴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의 시작도, 말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는 상황. 생사가 걸린 도주 중 그는 중얼거린다. “내가 지금 쫓기는 건가? 아님 쫓고 있는 건가?”라고. 기억이 사라진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인과관계가 뒤바뀐 영화의 진행 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레너드의 상황과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든다. 이것은 <메멘토>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영리함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문득문득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가 나를 아는 듯 인사를 해오는 공포와 불안. 레너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의 감정에 동요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찍어놓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로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조금씩 10분전의 세상을 보여주면서, 진상을 알려준다.

조금씩 왜곡되는 기록, 진실들

레너드는 중증 장애인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당연히 그를 이용하려는 악한 사람들도 있다. 그가 묵는 모텔의 사장은 그의 사정을 듣고 레너드에게 방을 두 개 빌려주어 두 배의 방값을 취한다. 레너드처럼 이용하기 쉬운 대상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아무리 그에게 못된 짓을 하더라도, 그 유효 시간은 10분뿐이다. 잘만 하면 원수도 친구라 속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을 안고서 부인의 복수를 행하려 동분서주하는 레너드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점점 불안해진다. 그가 믿었던 모든 진실들이, 10분간의 새로운 기억처럼 흐릿하고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레너드의 친구라 여겨지는, 하지만 우리가 맨 처음부터 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던 테디는 계속해서 레너드에게 정보를 주고 무언가를 하라고 한다. 결국 테디는 친구도 그 무엇도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는 유일하게 레너드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악하게 이용하려는 자였다.그리고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인 나탈리 역시 그렇다. 그녀는 처음에 레너드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조력자처럼 보였지만, 실상 그 자신도 개인적 복수를 위해 칼날을 휘두르는 위협자였다.

그런데 문제는 레너드가 그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을 정확하게 모두 기록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레너드는 악랄한 나탈리의 본심을 목도했음에도, 그 순간 기록할 도구가 없어서 메모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기억은 사라진다. 테디가 모든 숨겨진 진실을 말했을 때는 또 어떤가. 레너드는 이미 존.G를 찾아 복수를 했다는 것. 그렇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던 그가 또 다른 존.G를 찾아다니며 의미 없는 살인을 저지르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아내를 죽게 한 것이 존.G가 아닌 레너드 자신이었다는 끔찍한 진상. 하지만 레너드는 그 진실을 부정하고, 그것을 직접 훼손시킨다. 그토록 찾아다녔던 범인인 존.G가 테디라고, 그를 죽이라고 메모에 적어 넣는다. 그 거짓 명령은 10분 후의 레너드에게는 지상 최대의 진실이며 꼭 해내야만 하는 사명이 된다.

인간의 기억만큼 또 불확실한 것도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인식하는 순간, 당시의 심리 상태나 날씨 등의 내부적, 혹은 외부적 환경은 기억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레너드는 자신의 장애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기억이 가진 그러한 단점을 부풀린다. 그리고 메모와 기록에 매달린다. 그렇다면 그가 행하는 기록은 절대적으로 진실일까? 우리는 앞서 레너드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증거들을 조작하는 걸 보았다. 인간의 기억도 불확실하지만, 감정과 의지는 더욱 흔들리기 쉽다. 주인공인 레너드는 영화 내내 그에 대해 가졌던 우리의 믿음과 연민을 단숨에 배신해버린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거짓 정보를 자신의 기록에 추가하면서 말이다.

그는 언제부터 이 끝도 없는 복수극을 해왔던 것일까?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이면서, 자신의 살인을 합리화했던 것일까? 이 단기기억손실증을 앓는 괴물은 언제까지 또 살인을 저지르고 다닐 것인가? 그는 시지프스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커다란 바위를 온 힘껏 산꼭대기로 올리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서글픈 형벌. 그저 목적을 이루어야겠다는 의무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런데 또 그런 생각도 든다. 레너드는 그 목적이 없으면 살아있을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그가 적극적으로 삶을 살게 되는 가장 큰 동력이야말로 그 ‘무의미한 복수’가 아닐까, 그는 살기 위해 그토록 존.G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그 큰 죄책감을 덮고, 괴로운 현실에 눈감기 위해, 어쩌면 그는 일부러 모든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않는 것이 아닐지도.

기억은 그를 그이게 만든다

테디 : 넌 네가 누구인지 몰라.
레너드 : 난 레너드 셸비야. 난 샌프란시스코 출신이야.
테디 : 그건 과거의 너야

위의 대화를 통해 유추해보건데, 테드가 레너드에게 ‘과거의 너는 현재의 너와는 다른 사람이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정말 레너드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착실한 보험조사원이었던 그가 불운한 사고로 인하여 아내를 잃고 새로운 경험들을 기억으로 지속시키지 못하는 기묘한 병을 얻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는 아내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살인까지 불사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기본적으로 선량하고, 어찌 보면 바보처럼 순진해 보이는 그가 말이다.

테드의 말처럼 지금의 레너드는 그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10분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전혀 알지 못하는데. 사고 후의 레너드는 사고 전 레너드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다. 사고 후의 레너드는 기억에 따라 사고 전의 레너드와 연결되어 있으나, 사고 당시와 현재의 그 자신을 연결시켜주는 연결 고리가 없다. 그는 사고가 언제 일어난 것인지, 얼마나 범인을 찾아 돌아다녔는지, 나아가 복수를 한 것인지 하지 않은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레너드가 계속해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고 이전의 기억이 확실하다는 믿음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확실한 것인가? 그는 정말 아내를 사고로 잃었는가? 영화 중간 중간의 단서들과 테디의 이야기, 그리고 레너드의 불분명한 기억의 편린들은 그에 대한 대답을 ‘아니오’라고 말한다. 심지어 레너드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한 대사를 하기도 한다. “기억은 믿을 만한 게 못 돼… 기억은 완벽하지 못해. 그렇게 우수한 게 못 돼. 경찰에게 물어 봐. 심지어 목격자 증언도 믿을 수가 없어.”라고. 사고 전의 기억에 의존하여 자신의 삶을 던지고 있는 자가 말하기에 꽤나 모순적이지 않은가?

1) 예전의 지각이 발생해야 한다.
2) 예전의 지각이 인과적으로 현재 기억을 일깨워야 한다.
3) 현재의 기억이 예전의 지각을 정확하게 재현해야 한다.

기억이 진짜가 되려면 어떤 요건을 충족시켜야 할까? 철학자 흄은 이에 대해 위의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어떤 사람이 A라는 사람에 대하여 “기억이 나는 듯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그것만으로는 예전 A에 대한 생각과 지각을 기억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가짜 기억이 되어버린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전생을 이순신장군이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만일 개인이 그렇게 기억한다고 ‘느낀’다고 해서 그것을 진짜라고 인정한다면, 그는 정말 전생이 이순신 장군이었던 사람이 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 논리를 레너드에게 그대로 가져와 보자. 그는 10분 이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고, 그 무엇도 불명확한 상태다. 그런데 그가 사고 이전의 일에 대해 기억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일까? 매우 의심스럽다.

일반적인 기억이 믿을만한 게 못되고 흄이 주장하는 대로 어떤 기억이 정확한지 체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레너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레너드 셸비’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화 <메멘토>는 기억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그것을 빼앗겼을 때, 얼마나 무기력하고 아무런 존재가 아니게 되는지 냉정하게 보여준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기억에서 자아를 추론한다. 그런데 이 추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진짜 기억과 가짜 기억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안에서 제시되는 가상 세계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늘 진짜와도 같은 거짓들에 흔들리며 살아간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따지고 보면 현재에 결정된 것이 아니라, 과거에 내가 구성한 의도에 따라 일어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마음에도, 사회나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해당된다. 레너드는 진실을 찾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진실을 마주하는 그 순간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비극은 거기에 있었다. 매우 인간적이지만, 그래서 너무나 나약하기에, 그는 그 미친 질주를 영영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역시 단기기억손실증에 걸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잊어버리고, 또 왜곡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메멘토의 서사구조

<메멘토>는 일반적인 영화의 서사와는 다른 방법으로 진행된다. 이를테면 A-B-C의 시간적 순서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C-B-A의 순서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은 흑백 화면으로 각 사건을 연결짓는 단서들이 제공된다. 사람들은 제일 처음 레너드의 살인 장면을 목격하고, 그 다음에 이전 장면에서 죽었던 테디라는 남자가 레너드에게 찾아와, 결국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되는 장소로 함께 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장면에서는 앞서 두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생긴 일들이 연결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결말을 알기는 하지만(맨 처음 맞닥트리게 되었으므로), 레너드가 왜 테디를 죽였는지는 알지 못한다. 관객이 알 수 있는 것은 레너드가 반복해서 강박적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상황’과, 그의 몸에 가득하게 새겨진 문신들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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