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 - 디베이팅데이 ]

벤담이 고안한 원형감옥 파놉티콘에 대해

파놉티콘이란 말은 그래도 익숙하지? (판옵티콘, 패놉티콘, 팬옵티콘 등으로도 많이 써.) 파놉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벤담이 1791년 제안한 원형 감옥을 말해. ‘모든 것을 다 본다(Pan: all+Opticon: seeing/vison)’라는 뜻이야. 어떤 감옥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보자고. 대략 4~6층의 원형건물이 있어. 각 층에는 좁은 감방을 죽 이어놓았고. 당연히 감방 문은 감시하기 쉽도록 안이 들여다보이게 만들어야 해. 이 건물의 특징은 판복판에 감시탑이 있는 거야. 높은 감시탑에서 간수는 원형으로 빙 에워싸고 있는 감방 안의 죄수를 감시하지. 강력한 불빛이 감방 안을 비추는데 이 불빛 때문에 수감자들은 감시탑 안도, 간수도 볼 수 없어. 간수는 감방의 모든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반면, 수감자들은 간수의 움직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해. 파놉티콘의 핵심 구조는 바로 이 시선의 ‘비대칭성’이야. 이러한 파놉티콘의 시선의 ‘비대칭성’덕에 감시자는 죄수들을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죄수들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언제 어떻게 자기들을 보는지 알 수 없으니 항상 긴장하게 돼. 나아가 스스로를 규율하게 되고.

영국의 철학자요 법학자인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유명한 공리주의자야. 그리고 벤담은 이 파놉티콘을 실현하기 위해 거의 전 재산과 전 생애를 바쳤어. 공리주의자였던 벤담으로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감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이 파놉티콘이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거지. 그러나 영국 정보는 파놉티콘의 수용을 거부했지. 벤담은 이 파놉티콘이 국가나 지방단체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기를 원했고, 죄수의 노동을 통해 감옥을 운영하려고 했는데, 정부는 성품이 좋지 못한 사람이 감옥 주인이 됐을 때 죄수들을 악용할 가능성이 높은 점, 수감자가 너무 많을 경우 간수가 죄수를 감시할 수 있는 시각 확보가 어려운 점을 들어 벤담이 파놉티콘이 아닌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모델을 참고해 건축했어.

벤담의 파놉티콘은 그렇게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가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과 원리에 주목하게 돼. 푸코는 근대를 경험하고 자본주의의 발달을 겪으며 파놉티콘의 원리가 사회의 기본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펼쳤어. 벤담의 파놉티콘은 실제로 지어지지는 않았지만 푸코를 거치면서 인문학 담론에서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되었지. 그리고 오늘날 IT 기술혁며으로 감시와 통제의 방법이 나날이 발달하면서 정보 파놉티콘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확장하게 된 거야. 나의 이동 경로, 쇼핑 내역 등 일상의 일거수일투족이 데이터로 남는 요즘, 정보 파놉티콘은 핫테마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

정보 파놉티콘, ‘시선’에서 ‘정보’로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감시 통제 방법이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폐쇄 카메라, 신용카드와 같은 전자 결재를 통한 정보 수집 형태로 널리 사용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정부나 기업이 개인의 신상 정보를 수집하거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일들에 민감해졌다. 사람들은 정보사회가 ‘정보감옥information prison’을 낳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 정보감옥은 바로 “잠자고 있건 깨어 있건, 일하고 있건 쉬고 있건, 욕실에 있건 침대에 있건” 감시를 당한다는 조지 오웰의 《1984년》의 이미지와 동일시되었다.

조지 오웰이 발표한 소설 《1984년》에 등장하는 독재자 ‘빅브라더’는 가공의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통치하기 위해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계시다.”어딜 가든 만나는 이 프로파간다는 시민들을 압박한다. 텔레스크린에 의해 “잠자고 있건 깨어 있건, 일하고 있건 쉬고 있건, 욕실에 있건 침대에 있건” 감시당하고 사는 사람들. 1984년에 발간된 소설 속 가공인물 독재자‘빅브라더’는 죽어 있는 캐릭터가 아닌, 여전히 생생한 살아 있는 캐릭터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정보 독점을 통해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이나 사회체계를 비유하는 단어로 활개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모든 일상이 고스란히 디지털 족적으로 남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우리의 정보를 열람할지 알 수 없다! 과거의 정보 독점이 국가주도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은 기업도 소비자의 편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다양한 정보를 집적하고 있다. 특히 구글이 수집하는 개인정보는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어 빅 브라더로 변질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무엇을 검색하고 어떤 광고를 클릭하는지, 어떤 내용의 메일을 쓰고 동영상을 보는지, 어떤 앱을 이용하는지까지. 이렇게 집적된 구글의 개인정보를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구글 허가 없이 접근 가능하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는 ‘텔레스크린’의 탄생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이 책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은, 벤담의 파놉티콘이 어떻게 푸코에 의해 재조명되어 현대의 정보 파놉티콘 시대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또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우리는 과연 정보 파놉티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푸코, 벤담의 파놉티콘을 재조명하다

18세기 죄수들을 감시하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 벤담의 원형감옥 파놉티콘은 당대에 실현되지 않았고, 자연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 파놉티콘을 새롭게 재조명한 사람은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였다. 원형감옥 파놉티콘의 두드러진 특징은 죄수로 하여금‘누가 감시하는지 모르지만 항상 감시받고 있는 상태’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감시의 시선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죄수들은 24시간 간수가 감시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 언제나 감시의 시선 속에 있다는,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갖게 되며, 결국에는 감시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복종하기에 이른다. 바로 이것이 ‘자기 검열’이고 ‘감시의 내재화’이다. 18세기 등장한 벤담의 파놉티콘에 20세기의 푸코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에서 현대 사회를 규율 사회로 규정하면서 파놉티시즘이 사회의 기본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때의 파놉티시즘이란 파놉티콘이라는 감옥에서 구현된 감시의 원리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면서 만들어진 원리를 뜻한다. 산업혁명 초기, 권력자는 모든 노동자를 한눈에 감시하고자 했다. 게으르거나 부도덕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감시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꾀했다. 19세기 후반에 와서 자동차 같은 철강, 기계 산업이 부상하면서 공장 규모는 커졌고, 공정은 복잡해졌다. 대량생산을 위해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감에 따라 비숙련 노동자도 노동과정에 투입되었고, 이들을 감시하는 감독관이 급속히 늘게 된다.
자동차 회사 “포드의 공장에서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작업하고 있었고 경영자들은 이 모든 공정을 한눈에 파악하고 통제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푸코는 현대의 공장, 학교 등 모든 사회는 권력자의 시선을 통한 감시와 노동으로 통제되고 있으며, 점차 사람들은 컨베이어벨트, 꽉 짜여진 규율, 규율을 숨가쁘게 쫓아야 하는 시간의 통제를 받는다고 말한다. 통제의 ‘내면화’인 셈이다. 그리고 벤담의 파놉티콘에서는 통제를 벗어날 경우 육체적인 형벌을 받는데, 현대 사회의 파놉티콘에서는 개인의 영혼까지 규율한다. 사람들은 권력자의 시선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도 스스로 자율적으로 출근, 퇴근 시간을, 등 하교 시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알아서 규율하게 된 것이다! 결국 거칠게 정리하자면, 벤담의 파놉티콘이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의 감시 체계라면 푸코의 파놉티콘은 사회 전반에서 이뤄지는 감시 체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 파놉티콘에 갇힌 우리들

20세기의 감시는 권력자(감독관)의 ‘시선’을 통해 이뤄졌다. 예를 들어 감독관은 어떤 노동자가 게으름을 피우는지 찾아내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컴퓨터와 각종 전자기기가 발달하면서 권력자들은 직접 ‘보지 않아도’ 사람들을 규율할 수 있게 됐다. 시선을 대체한 것은 ‘정보’였다. 2001년 국내 한 자동차 회사는 직원들의 출근 체크와 식당 이용 등을 위해 버스 카드와 비슷한 RF(Radio Frequency)카드를 도입했다. 직원들이 이 카드를 사용하게 되자 회사의 운영자는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도 직원들의 출근 시각을 통제할 수 있었다. 운영자는 카드가 남긴 정보만 체크하면 된다. 더구나 이 카드는 판독기와의 거리가 50미터 이내에 있는 소지자의 움직임까지도 잡아내 운영자는 그 정보를 통해 직원들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전자 기기와 그것들이 포착해낸 여러 정보들이 권력자의 시선을 대신해 사람들을 감시하고 규율한다. 시선을 통한 파놉티콘이 전자․정보 파놉티콘으로 진화한 것이다.

시선에서 정보로 감시 수단만 바뀐 것 같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정보 파놉티콘과 기존의 파놉티콘은 어떻게 다를까?
정보 파놉티콘은 시선을 통한 파놉티콘보다 우리의 삶을 더욱 전면적으로, 강력하게 옥죈다. 왜냐하면 우리 생활의 매우 세밀한 부분에까지 미치기 때문이다. 사무실 문을 여닫을 때 스마트카드를 이용하게 할 경우 직원이 사무실을 얼마나 비우는지 모니터링할 수 있다. 따라서 직원 스스로 출입 목적에 대해 예민해지게 된다. 버스 요금 카드나 휴대전화의 위치추적 장치는 개인의 이동 경로를 추적, 어디에 얼마나 머무는지 발자취를 남긴다. 또한 권력 기관들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어떤 정보를 취하고 무엇을 하는지 감시할 수 있다. 그 예는 너무나 많아 일일이 손꼽을 수 없을 정도다.

물론 기존 파놉티콘과 정보 파놉티콘의 공통점도 있다. 둘 다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감시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기기들을 사용하지만 우리가 감시받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 책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은 벤담의 파놉티콘부터 현대의 정보 파놉티콘까지 ‘파놉티콘’의 역사와 개념을 정확하게 다루고 있는 수작이다. 다만 한 가지 초판 발행이 2002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때로부터 15년이 흐르는 동안 정보 파놉티콘의 현상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우리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언제나 인터넷에 접속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상품 생산과 소비 활동 전반에 걸쳐 전면적 변화를 겪고 있다. 구글의 개인 정보 수집에 관해서만 살펴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고 어떤 상품을 클릭했으며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떤 책 혹은 상품을 선호하는지 일상의 시시콜콜한 정보가 매순간 생산되고 집적되고 있다. 기업의 개인정보 집적도 큰 문제다. 이렇게 집적된 정보에 권력은 손쉽게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정보수집을 통해 더 편리한 삶을 살아가는 시대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을 통해 상상도 못한 경험을 하고 있다. 또한 카카오택시처럼 오히려 더욱 안전한 귀가를 돕기도 하고, 강력 범죄자를 더 쉽게 검거할 수도 있다. 정보 파놉티콘이 우리의 삶을 보다 안락하게 하고 질서 정연하게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개인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자율권을 억압하는지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
이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 마크 포스터의 경우 정보 파놉티콘이 우리 삶을 더욱 감시한다는 입장이다. 포스터는 벤담의 파놉티콘과는 달리 정보 파놉티콘이 피감시자의 ‘자발적 협조’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신용카드를 쓰든 인터넷 쇼핑을 하든 포털 사이트의 다양한 서비스를 사용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신상을 정보, 이들은 소비자 데이터베이스를 손쉽게 구축한다. 포스터는 이러한 소비자 데이터베이스를 수퍼파놉티콘이라 부르며 권력자들이 이것을 토대로 피감시자들을 감시한다고 말한다. 포스터에 따르면 “이러한 자발성 때문에 수퍼파놉티콘에서는 신중하게 설계된 건물도, 범죄학과 같은 과학도, 운영을 위한 복잡한 장치도 필요 없다.”

시놉티콘(역감시)로 우리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정보 파놉티콘이 정보감옥을 짓고 있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탈출해야 하나. 포스터의 주장을 바탕으로 방법론을 생각하면 개인의 철저한 자기 정보 관리 정도를 꼽을 수 있는데 이는 소극적인 대처일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설혹 자발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의료보험이나 각종 주민 정보 등의 형태로 국가 기관은 개인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욱은 국가의 강력한 권력으로 감시가 이뤄지는 정보 파놉티콘에서 일종의 빈틈을 발견했다. 정보 공개가 가능해지면서 다수가 권력을 감시할 수 있데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넷 사용에 주목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장면을 한 시민이 인터넷 동영상으로 올린 사건을 보자. 이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켜 집회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을 이끌어냈고 경찰은 그런 여론에 조금씩 귀 기울이게 됐다. 이처럼 국가 기관은 일반인들의 인터넷 사용을 감시하지만 일반인은 인터넷을 통해 국가 기관을 감시할 수 있다. 결국 홍성욱은 정보 파놉티콘에서는 감시가 이뤄지는 동시에 그에 대한 역감시가 가능함을 찾아내고 일반인은 역감시를 통해 정보 파놉티콘의 감시망을 좁힐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역감시를 시놉티콘, 혹은 역파놉티콘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여러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행정기관, 언론기관의 활동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일반 시민의 자율권과 행복권을 늘리고 있다. 최근 미국의 브랜던 앤더슨은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많은 흑인이 희생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대응을 생각해냈다. 그가 개발 중인 앱 ‘스왓’(SWAT)은 사용자들이 어디에서 어떤 경찰의 폭력이 발생했는지 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 올릴 수 있다. ‘감시’가 핵심기능이다. 디지털 시대의 감시가 결코 일방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내에서도 역감시가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와글어사’는 지난 총선 때 만들어진 앱이다. 이 무료 앱을 깔고 해당 지역구를 설정 ‘어사’로 가입하면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의 공약, 법안 발의 등의 활동 내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의정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감시할 수 있다. 위에서 아래만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감시도 가능한 시대다. 또한 진보네트워크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민주노총는 현재 ‘통신자료 조회 결과 수집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정원, 경찰, 검찰은 통신회사로부터 광범위하게 이용자의 통신자료를 수집한다. 통신자료란 정보통신서비스 가입자의 이름, 주민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등의 개인정보로서, KT 등 이동통신사는 국정원과 수사기관의 요청이 있으면 이 통신자료를 제공한다. ‘통신자료 조회 결과 수집 운동’은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 여부를 조회해보자는 사회운동이다. 이들이 통신자료 조회를 했는지 알아본 결과 그동안 국정원과 수시기관이 시민사회 진영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에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나날이 치밀해지는 범죄에 맞서기 위한 정보 열람은 필연적일 수 잇다. 그러나 관련 법 제도의 개선이 필수적으로 동반돼야 한다. 독립적인 사법부의 영장이나 허가, 엄격한 요건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 하고 있다. 그만큼 제기되는 문제 역시 새로운 것일 수밖에 없다. 기술은 선과 악으로 양분할 수 없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정보 파놉티콘의 시대에 제기되는 프라이버시 문제, 정보 독점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은 이 문제에 대해 예민한 촉수를 갖추는 것이 시작이다. 정보 파놉티콘이라는 새로운 사슬에 우리의 온몸과 정신을 내주지 않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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