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

[ - 디베이팅데이 ]

호모 데우스

인본주의에 따르면, 인간이 이 세상의 중심이고 우리의 욕망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 따르면, 인간은 단백질로 이루어진 컴퓨터나 다름없고 자유의지는 허구다. 의식은 없지만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을 눈앞에 두고, 무엇을 근거로 인간이 컴퓨터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뛰어나다고 판단했듯, 컴퓨터는 자신이 인간보다 뛰어나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현대과학으로 새로운 신을 만들어내면 우리가 신을 지배할까, 신이 우리를 지배할까?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몇 년 전 전 세계에 ‘사피엔스 신드롬’이 일었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쓴 <사피엔스>는 전 세계 45개국에서 출간, 500만부 이상이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 한국어판 서문에서 <사피엔스>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간이 가진 신, 인권, 국가 또는 돈에 대한 집단신화를 믿는 독특한 능력 덕분에 이 행성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유발 하라리는 이 책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의 주인이 되었는지 탐색합니다.

<호모 데우스>는 그의 신작입니다. 보통 두 책을 함께 아우르며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피엔스>가 인류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려준다면 <호모 데우스>는 지구를 정복한 인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고. 니체의 흠모를 받고, 릴케의 애인이었던 루 살로메의 소설 제목,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원제는 IM KAMPF UM GOTT, 신을 얻기 위한 투쟁이란 뜻 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유발 하라리 자신은 <호모 데우스> 서문에서 “우리의 오래된 신화들이 혁명적인 신기술과 짝을 이루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검토”하겠다고 밝힙니다. 역사학과 심리학, 종교, 기술공학, 생명과학 등 학문의 경계를 종횡무진하며 우리에게 제기하는 수많은 테마들은 우리의 기존의 생각들을 전복시킴과 동시에 충분히 논쟁적이지요.

호모 데우스Homo Deus란 말을 살펴보죠. ‘호모Homo’는 사람 속을 뜻하는 학명이고, ‘데우스Deus’는 라틴어에서 온 말로 ‘신God’이라는 뜻이니, 호모 데우스는 ‘신이 된 인간’이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지구상에서 ‘기아, 역병, 전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기술과 문명이 발달한 나라들은 그에 대한 걱정에서 거의 놓여났지요. 그런 다음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결국 이들은 인간이 신의 반열에 올라 어떻게 하면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연구합니다. 과연 인간은 신을 창조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될 수 있을까요? 그때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렸다 – 과학, 종교, 인본주의

중세까지 모든 권위의 원천은 신이었다. 하지만 근대에 오면서 과학은 종교를 무너뜨렸으며,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다. 중세의 신민들과 달리 근대의 시민들은 권위의 원천이 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간이 곧 세계의 중심이고 권위의 원천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굳게 믿기 시작했다. 이를 인본주의라고 한다.

인본주의가 등장하고 난 뒤, 더 이상 정치인은 신의 대리인이 아니었다. 그는 시민의 대표이기에 민주적 절차를 밟아 선출했다. 철학자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고 성경을 들여다보지 않게 됐다.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논리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졌다. 종교전쟁은 더 이상 신의 의지를 관철시하고자 펼치는 정의로운 전투가 아니었다. 중세의 예술가들은 종교전쟁을 정의로운 싸움으로 묘사했지만, 근대의 예술가들은 그 폭력 속에서 무참히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했다. 개개인의 행복과 슬픔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인본주의는 그야말로 ‘근대판 종교’가 되었고, 사람들은 더 이상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았다. 행복한 삶은 현실에서 이루어져야지, 죽은 뒤의 행복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현실 속 인간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니,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기아, 역병, 전쟁’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은 굶주림에서 해방됐고, 수많은 질병을 정복할 수 있게 됐으며,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이룩했다.

잠깐 과학과 종교에 대한 얘기를 하려 한다. 사람들은 과학과 종교가 밝음과 어둠처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과학과 종교를 서로 앙숙이거나 별개라고 믿는 것은, 종교를 지나치게 축소해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종교를 일종의 도덕법 체계라고 보고, 그것만이 인간의 사회구조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이 할 수 있는 건 사실을 진술하는 일이다.(배경지식 1) 예를 들어, 과학은, 사람이 어떨 때 죽는지 설명할 수 있지만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윤리적 판단은 과학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윤리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 일종의 ‘도덕법’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종교다. 실제로 중세에는 신의 말씀을 담아놓은 책인 성경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오늘날에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입법기관, 사법기관, 행정기관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배경지식 2) 과학이 제대로 작동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본주의는 근대 이래로 가장 유행하는 종교이다. 인본주의의 핵심 교의는 ‘인간은 다른 존재와는 달리 영혼 혹은 의식과 마음, 또는 우수한 지능을 가진 존재다’라는 사실적 진술과 ‘영혼 혹은 의식과 마음, 또는 우수한 지능을 가진 존재는 우월하다’라는 윤리적 판단으로 나눌 수 있다. 인본주의는 이 두 가지 핵심 교의에 바탕을 두고, 인간이 곧 세계의 중심이며 권위의 원천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인본주의 종교혁명이 근대를 이끌어 온 셈이다.

무엇이 인간을 영광스럽게 하는가?

사람들은 근대를 과학과 종교 사이의 투쟁 과정으로 묘사하지만 근대 이후의 과학은 사실, 껍데기만 간신히 남아 있는 중세의 종교와 투쟁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근대의 종교인 인본주의에 맞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유발 하라리의 생각은 이렇다.

“근대사를 과학과 특정 종교, 즉 인본주의 사이의 계약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관점일 것이다. 근대 이후의 사회는 인본주의 교의를 믿고, 그 교의에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교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과학을 이용한다.”

근대의 과학은 인간중심적 세계관을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중심 세계관을 강화하며 인류에게 힘을 부여한다. 근대를 과학과 인본주의의 결합과정이라 설명한 이유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인본주의를 괴롭힌다. ‘무엇이 인간만을 영광되게 하는가? 이 드넓은 세상에서 무엇이 인간만을 특별하게 하는가?’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인본주의자들은, ‘인간만이 영혼을 가졌으니까’, ‘인간만이 의식과 마음을 가졌으니까’, ‘인간만이 우수한 지능을 가졌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게 사실일까? 현대 과학은, 이런 믿음은 대부분 증명이 불가능하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인간에게 영혼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증거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명제가 진화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을 이루는 모든 구조는 끊임없이 결합하고 분리되는 작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생존에 적합한 것은 선택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도태되기 때문에 생물은 진화한다. 분리되고 변하지 않으며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진화를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기에, 변하지 않는 영혼은 진화를 통해 만들어질 수 없다. 물론 영혼이 진화된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신이 어느 날 영혼을 불어넣었다고 믿지 않는 이상(이 경우엔, 영혼을 넘어 신의 존재까지 증명해야 한다), 영혼이 없는 부모에게서 영혼이 있는 최초의 아이가 돌연 태어났을 가능성은 없다.

한편 의식과 마음은 불가사의한 영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의식과 마음은 영혼과는 달리 우리가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과 마음이 정말 존재할까 의문을 가지는 순간에조차, 우리는 자신이 의심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그렇다면 의식과 마음이라는 건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걸까?

의식과 마음이라는 주관적 경험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감각과 욕망이 그것. 우리가 로봇과 컴퓨터에 의식이 없다고 말하는 건, 그것들이 수많은 능력을 갖췄음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터리가 부족해 충전기를 찾아가는 로봇청소기는 ‘배가 고파서’ 행동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뿐이다. 그렇다면 동물은 어떨까? 개는 배가 고파서 먹이를 먹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움직이는 걸까? 사람은 배가 고파서 밥을 먹을까? 아니면 단순히 설계된 대로 움직이는 걸까?

현재로서는 확실하게 설명할 수 없다. 현대 과학이 우리의 의식과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정설은,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화학적 반응으로 의식이 생기고, 마음이 인간의 삶을 이루는 데 필수적인 데이터 처리 기능(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듯이)을 수행한다는 것 정도. 뇌 속의 전기흐름, 화학물질의 전달이 도대체 어떻게 고통이나 분노 또는 사랑 같은 주관적 경험을 만들어내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배경지식 3) 개나 로봇청소기가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무언가를 욕망하지 못한다는 주장 역시 증명되지 않았다.(배경지식 4)

또한 다른 종간에 어떤 종이 우수한 지능을 가졌는지 판단할 수 있는 공평한 기준은 없다. 사람의 달리기 지능이 치타보다 뛰어날까? 사람의 나무타기 지능이 원숭이보다 뛰어날까? 사람의 헤엄치기 지능이 물고기보다 뛰어날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능이 다른 동물이나 컴퓨터에 비해 뛰어나다고 해서, 그들보다 사람이 우월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사람보다 모든 부분에서 우월한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그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우월한 존재일까?

다시 원래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무엇이 인간만을 영광되게 하는가? 이 드넓은 세상에서 무엇이 인간만을 특별하게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답할 차례다. 방금 위에서 살펴봤듯, 현대과학의 연구결과는 인간이 특별하다는 인본주의의 기본 전제를 부정하고 있다. 인간이 곧 세계의 중심이고 권위의 원천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인본주의적 세계관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미래의 종교, ‘포스트 인본주의’가 온다!

주관적 의식과 진정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새로운 과학은 항상 종교혁명의 불씨가 됐다. 마찬가지로 과학이 인간의 특별함을 부정하는 순간 인본주의는 새로운 과학과 더 잘 어울리는 새로운 종교로 대체될 것이다. 과연 어떤 종교가 탄생할까? 저자가 제시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인 기술 인본주의와 데이터교에 대해 알아보자.
기술 인본주의는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해 신의 권능에 도전할 수 있는 초인류 즉, ‘호모 데우스’를 창조하고자 하는 종교다. 언어를 발명하여 첫 번째 인지혁명이 촉발되었듯, 현대 과학기술로 하여금 두 번째 인지혁명을 가능케 한다는 발상이다. 인류는 이제, 한계를 뛰어넘어 무한한 지능을 추구하고 그토록 신성시하던 인간의 욕망마저도 통제하려 들 것이다.(배경지식 5)

데이터교는 인간의 지식과 지혜보다 빅데이터와 컴퓨터 알고리즘을 신뢰하는 종교다.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는 것, 그리고 만물을 컴퓨터 알고리즘에 연결하는 것이 데이터교의 가르침이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데이터고, 인간은 창조의 정점이 아니라 ‘만물 인터넷’을 창조하는 존재일 뿐이다. 데이터교의 신자들은 무한한 정보의 자유를 추구한다. 이때 말하는 정보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처럼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게 주어지는 자유를 말한다. 방금 우리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정보는 우리 것이 아니다. 정보의 자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은 정보의 자유에 달려 있고, 열쇠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데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사생활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시스템에 업로드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거대 시스템이 과연 인간의 삶을 정말로 나아지게 할지는 미지수다.

데이터교는 “당신의 모든 말과 행동은 거대한 데이터 흐름의 일부이며, 알고리즘은 항상 당신을 지켜보고 신경 쓴다”라고 말한다. 만물 인터넷이 우리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리라 믿는 것이다.
미래의 종교는 뭐가 될까? 어찌 됐든 미래 세계의 중심에 인간만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과거에 기반을 둔 미래’를 예측함으로서 ‘진짜 미래’ 즉, ‘현재에 기반을 둔 미래’를 새롭고 유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예측하는 미래는 ‘과거에 기반을 둔 미래’다. 이 책을 읽으며 ‘현재에 기반을 둔 미래’를 어떻게 일구어나갈지 고민해보자. 미래는 우리 손에 달려 있으니.

작가 소개 –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태생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중세 역사와 전쟁 역사로, 거시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보는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저작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는 인류학, 사회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전작 <사피엔스>는 여러 인간 종 가운데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가 유일한 인간 종이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인간이 이 지구 전체의 주인이 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호모 데우스>에서는 마침내 세계를 정복한 사피엔스가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배경지식

[지식-1]
사실을 진술하는 건 종교는 할 수 없는, 과학만의 역할이다. 현대의 종교가 과학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현대의 종교가 윤리적 판단만 하는 게 아니라 과학을 대신해 사실을 진술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진화가 거짓이고 신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 인간의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낙태는 살인이나 다름없다는 주장, 동성 간의 성관계나 동성 간에 성욕을 느끼는 일이 자연의 질서에 위배되는 정신병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 등. 과학만이, 과학적 사실에 위배되는 종교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지식-2]
민주주의를 어떻게 종교에 비유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종교는 ‘인간이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따라야 하는 어떤 도덕법 체계’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 관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이 법 앞에 평등하고,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표가 똑같은 가치를 지닌다’라는 도덕법 체계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지식-3]
주관적 의식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여러 사람을 거대한 뇌 스캐너에 넣고 양손에 스위치를 하나씩 쥐게 했다. 그리고 아무 때나 내킬 때마다 두 스위치 중 하나를 누르게 했다. 이 때 연구자는 피실험자가 미처 행동하기도 전에, 심지어 어떤 스위치를 누를지 결정하기도 전에 어떤 스위치를 누를지 예측할 수 있었다. 자신이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닫기 영 점 몇 초 내지 몇 초 전에 뇌신경 활성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통해 선택은 뇌에서 먼저 일어나고, 그 선택을 깨닫는 의식이 그 다음에 온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우리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뇌가 미리 내린 결정’이고, 우리는 그 결정을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내 진정한 자아가 나 자신의 욕망을 선택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한 번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날 오후 8시, 당신은 치킨을 먹을지 그냥 잘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치킨을 먹고 싶다는 욕망과 다이어트라는 욕망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 치킨을 먹는 것과 다이어트를 위해 치킨을 먹지 않는 것 중 어떤 것이 진정한 자아에 의한 행동일까? 어떤 욕망이 승리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욕망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지식-4]
개나 로봇이 “내 뇌(혹은 CPU)에서 일어나는 전기활동의 결과로 나는 지금 먹이가 먹고 싶다(배터리를 충전하고 싶다)고 느낀다”라고 주장하면, 현재까지는 그걸 반박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법이 없다. 결국 우리가 의식을 뭐라고 생각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의식에 관한 케임브리지 선언을 읽어보자. “인간 이외의 동물들이 의도적인 행동을 보이는 능력과 함께, 의식적 상태를 구성하는 신경해부학적·신경화학적·신경생리학적 기질들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인간만이 의식을 생성하는 신경기질을 지닌 유일한 생물이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

[지식-5]
진보된 기술이 과연 인간을 가치 있게 여길지는 미지수. 인간을 초월한 지능을 가진 초인류는 자신을 인간과 동등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인류가 동물에게 그랬듯 인류를 미개하다고 여길까? 일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 초인류로 진화하고 대부분은 초인류에게 지배받으며 살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초인류 또는 미래의 인공지능이 인간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능력을 과연 어떻게 사용할까?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초인류의 명령에 따라, 평범한 인간을 ‘인간 톱니바퀴’로 만들거나 ‘특대형 개미’로 만들지는 않을까? 인간의 욕망을 제어한다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행동을 제어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욕망을 제어당하는 인간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나가면서 적군을 죽일 생각에 기뻐하거나, 자폭테러를 감행하면서도 웃을 수도 있다.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으며 평생을 초인류의 노예처럼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제 삶의 이유라고 믿으며 궁극의 행복을 만끽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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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s

  1. 불로장생의 프로필
    불로장생 님의 의견 - 1달 전

    좋은내용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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