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버드

[ - 디베이팅데이 ]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 불렀던 크리스틴

철이 든다는 건, 세상의 보이지 않는 틀과 기준에 자기 자신을 맞추는 일이다.
세상은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철 든 사람만을 자신의 품에 받아들인다.
세상은 부모와 선생의 입을 빌려 충고로 위장한 잔소리를 한다.
“수준에 맞는 꿈을 꿔라. 지금은 사랑할 때가 아니라 공부할 때다.
나는 널 사랑하고, 네가 항상 최고의 모습이길 바란다.”
그런데 철이 든다는 건 좋은 일일까?
레이디 버드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지금 이 모습이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
글 이준기

장면 1_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 새크라멘토

영화의 배경은 2002년 미국 캘리포키아 주 작은 도시, 새크라멘토.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레이디 버드의 독백이 흐른다. “캘리포니아의 쾌락주의를 논하는 자는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봐야 한다.”
무슨 의미일까? 쾌락주의에 대해 살펴보고 넘어가자. 고대 그리스 철학자이자 에피쿠로스학파의 창시자 에피쿠로스(BC 341~271)에게, 철학의 목적은 행복한 삶을 얻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는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한 쾌락주의를 설파했다. 쾌락주의의 주장은 이렇다. “만약 육체적이고 일시적인 쾌락만을 추구한다면 점점 더 강도 높은 쾌락을 원하게 되어 오히려 고통과 근심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을 위해서는 일시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을 절제해야 한다.”

이제 레이디 버드의 독백을 다시 읽어보자.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 중에 육체적인 쾌락을 절제해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면, 새크라멘토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보라.’ 정도로 해석 할 수 있겠다. 레이디 버드에게 새크라멘토는 굳이 쾌락을 절제하려 노력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재미없는 곳이니까. 이 정서는 영화 전반에 걸쳐 레이디 버드의 행동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장면 2_ 말괄량이(?) 레이디 버드

주인공의 원래 이름은 크리스틴.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바로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라니, 무슨 뜻? 그녀의 학생회장 출마 포스터를 보자. 왼쪽 포스터의 주인공은 새의 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고 있다. 오른쪽 포스터의 주인공은 레이디 버드인데 몸통은 새고 “레이디버드를 학생회장으로!”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그녀는 높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은 게 아닐까?
그녀의 성격이 드러나는 몇 가지 장면을 살펴보자.

레이디 버드는 자신감과 포부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주변에서 부유하지 않은 가정환경에 학업 성적도 별로인 그녀가 명문대를 입학하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 말하지만, 그녀의 꿈은 변함없다. 동부의 명문대학에 진학해 지겹고 조그만 작은 도시, 새크라멘토를 떠나는 것. 그런 그녀에게 엄마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악담을 퍼붓자, 참다못한 레이디 버드는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버린다.

레이디 버드는 권위에도 주눅 들지 않는다. 낙태가 부도덕한 행위라고 설교하는 성모학교 교수에게 레이디 버드는 “단지 추하다고 해서 그것이 부도덕한 건 아니에요. 생리중인 제 질을 가까이서 찍는다면, 보기에는 꽤 불편하겠지만 그게 잘못된 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 기겁하며 낙태가 도덕적이라는 거냐고 묻자, “만약 교수님의 어머님이 낙태했다면, 우리가 여기 앉아 이 멍청한 강연을 듣고 있지 않아도 됐겠죠!”라고 대답해 정학 당한다.
레이디 버드는 연애와 섹스에 능동적이다. 첫 번째 남자친구와 키스한 뒤 거리에서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남자친구와 별을 보고 누웠을 때는 “내 가슴 만져도 돼”라고 당차게 말한다. 두 번째 남자친구와 침대에 누워서는 “난 섹스 할 준비 됐어”라고 말할 정도로 주도적이다. 이처럼 레이디 버드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해 살아가기 보다는 거침없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이다.


 

장면 3_ 그건 충고가 아니라 잔소리예요!

청소년이 욕망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낼 때 부모와 선생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이. 철없는 반항아. 위험하고 반사회적인 나이.’ 이것이 세상의 잣대다.
크리스틴이 레이디 버드라는 별명으로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자, 선생님은 그녀를 교무실에 부른다. 레이디 버드는 선생님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이렇게 대답한다. “전 출마가 취미예요. 떨어져도 상관없어요.” 선생님은 세상을 장난처럼 살면 안 된다고 충고하고 싶었겠지만 필요 없는 충고다. 스스로 이름을 지어서 쓴다는 건 자신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제일 잘 알 테니까.

레이디 버드가 떨어질 게 뻔해 보이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의 선생님은 “하지만 너는 수학을 잘 못하잖니?”라고 묻는다. 레이디 버드는 대답한다. “지금으로선 그렇죠.” 레이디 버드는 해봤자 안 될 거라며 자신을 만류하는 게 아니라, 해보고 싶은 마음 자체를 존중해주길 바란다.

있는 그대로를 좋아해달라는 레이디 버드의 마음은 엄마와의 대사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에게 “난 네가,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 되기를 바라.”라고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레이디 버드는 “만약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라면?”이라고 묻는다. “나는 그냥 엄마가 날 좋아해 줬으면 좋겠어.” 그녀의 엄마는 “물론 널 사랑하지.”라고 대답하지만, 레이디 버드는 다시 한 번 묻는다. “나도 알지. 그런데 나를 좋아하는 거 맞아?”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그녀는 사랑해주는 것 말고 좋아해주기를 바란다. 그녀의 엄마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최고의 모습’으로 바꾸려 하지만, 레이디 버드가 바라는 건 지금 이 모습 그대로를 ‘최고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다.


 

장면 4_ 사랑하는 엄마, 그리고 새크라멘토

레이디 버드의 치기어린 도전은 실패하기 일쑤다. 연애를 시작할 땐 천국의 문이 열리기라도 한 듯 들뜨지만 번번이 실망하고, 그토록 기대하던 섹스를 해보니 섹스보다는 애무만 하는 게 더 낫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던 그녀는, 가장 큰 염원을 이룬다. 동부의 명문대에 입학하게 된 것. 꿈을 이루고 나니 행복해졌을까?

뉴욕에 도착한 레이디 버드는 술을 진탕 마신다. 이름을 묻는 낯선 남자에게 레이디 버드가 아니라 크리스틴이라는 진짜 이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응급실에 실려 간다. 다음 날 초췌한 모습으로 병원을 빠져 나온 그녀는 마법처럼 노랫소리에 이끌려 성당으로 향한다. 가장 큰 꿈을 이루고 나니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토록 갈망하던 뉴욕에 막상 가고 보니 고루하고 지겹게 느껴지던 어머니와 성경학교 선생님들의 잔소리가 그립고, 촌스럽게 느껴지던 고향의 풍경이 정겹게 떠오른다.

어쩌면 행복한 삶은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순간적인 행복을 절제하자, 새크라멘토와 엄마는 그녀에게 이제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다가온다. 추억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행복을 담고 있는 장소로, 추억이란 이름의 영원한 행복을 간직할 인연으로. 크리스틴은 꿈을 이루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행복하지 않았다고 느꼈던 모든 순간에 행복의 편린이 담겨 있었음을. 도전했다 실패하고 다투었다 화해하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그 자체가 행복의 또 다른 모습이었음을.


 

작품해설_ 행복의 열쇠를 찾아서

숨김없이 솔직한, 사회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한 레이디 버드. 그러나 동시에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레이디 버드. 영화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것과 주어진 현실을 거부하고 욕망을 실현하는 것 중 어떤 것이 행복한 삶일까?’

영화는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현실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행복을 찾아 끊임없이 투쟁하던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욕망이 실현되는 순간 허무해한다. 그리고 이미 지나간 추억 속에서 문득 행복을 느낀다. 쾌락주의자들의 주장은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지속적인 쾌락 상태에 이르려면 쾌락을 적당히 추구해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적당한 게 어느 정도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만약 레이디 버드가 어머니와 선생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면 그녀의 삶이 더 행복해졌을까? 만약 그녀가 타지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함께 살면, 삶이 더 행복해질까? 아마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크고 작은 말다툼은 대부분 행복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행복의 지름길이 어느 길인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서로 자기 길이 맞다고 다툰다. 그러니 가끔은, 억압적인 충고도 사랑처럼 느껴지고 사랑이 섞인 충고도 잔소리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충고는 무조건 나쁘다고도, 무조건 좋다고도 할 수 없다. 충고는 봄날 자라나는 새싹을 비추는 햇살처럼, 그저 세상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행복은, 찾으려 한다고 찾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해서,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똑같이 비가 내리는 날이라도 어떤 날은 빗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가 하면, 어떤 날은 우울해지게 마련이다. 꿈을 꾼다는 건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가?

성숙이란 무엇인가? 현실의 벽을 깨닫는 것도 성숙이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 또한 성숙이다. 성숙이란 갈팡질팡 하면서 자신만의 적당함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누군가 나서서 지도의 어느 한 곳에 압정을 꽂고 ‘여기가 가장 적당한 지점’이라 선포할 수는 없다. 적당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며,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피할 수 없는 의견 대립과 다툼 안에 조용히 숨어 있는 소중함이다.

레이디 버드의 행동에서 올바름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레이디 버드는 적당히 행복을 추구하며 성장하고 있을 뿐이니까. 바람에 잘 흔들리는 사람도, 바람에 굳세게 맞서는 사람도 사실은 모두 번민하며 성숙하는 과정에 있다. 어느 길이 더 행복한 길인지는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 세월이 흐르길 기다리는 수밖에.


깊이 보고, 다르게 보고, 제대로 보고” 생각을 키우는 첫걸음, <유레카>가 함께 합니다. 논쟁, 독서, 시사, 인문교양, 입시… 청소년에게 필요한 정보를 <유레카>로 만나보세요. <유레카>는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청소년 인문교양 매거진입니다.

  • 토론의 순수성을 신뢰합니다.
  • 서로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 소통과 공감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 지식과 지혜의 조건없는 공유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