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 - 디베이팅데이 ]

삶이란 중력을 견뎌내기

아이맥스 영화를 처음 본 게 언제더라. 아주 옛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63빌딩에서 본 자연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다. 당시로선 처음 보는 드넓은 화면에, 그랜드 캐니언 같은 자연의 광대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둥둥 공중에 날아가 그곳에 직접 가 있는 기분.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른, 특별한 체험이었다.

아이맥스 영화, 3D 영화는 이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입체 안경을 쓰고 앉아 있으면 손에 잡힐 듯 화면이 눈앞에 다가온다. 액션 영화를 보면, 날아오는 총알이나 폭발의 파편 때문에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다. 영화 <아바타>의 대성공 이후, 3D 영화는 또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됐다. 영화 내용에 빠지는 것에서 더 나아가, 화면이 던지는 즐거움 자체를 원하는 것이다. 마치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이것이 바로 우주의 느낌

201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래비티>가 일곱 개의 상을 휩쓸었다. <그래비티>는 3D 영화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만 칭찬하기에는 영화가 가진 내적인 힘이 만만치 않다. 또 그동안 흔하게 봐왔던 아이맥스 전용 영화들과는 명백히 다른 길을 가고 있기도 하다.

영화는 둥둥 떠 있는 우주인으로부터 시작한다. 지구가 내려다보이는 우주 공간. 허블 망원경의 통신패널을 고치고 있는 과학자 라이언, 엔지니어 샤리프, 조종사인 코왈스키, 세 명의 우주인들은 임무 완료가 끝나고 곧 귀환할 예정이다. 각자 쓰고 있는 헬멧 안에서는 올드팝이 흐르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 평화로운 분위기. 그런데 갑작스럽게 재난이 닥친다. 러시아에서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폭파시킨 여파로 우주쓰레기가 발생했고, 다시 다른 인공위성과 충돌한 연쇄 효과가 이들에게 덮친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밀려오는 파편들. 이 사고로 라이언은 홀로 우주의 텅빈 공간 속으로 빙글빙글 튕겨져 나간다.

<그래비티>는 소리마저 존재할 수 없는 무중력의 우주가 얼마나 평화로운지, 그리고 얼마나 광폭해질 수 있는지 단번에 보여준다. 홀로 어두운 우주로 밀려나가는 라이언.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무한정한 검은 우주와 점점 멀어져 가는, 유난히도 아름답고 밝게 보이는 지구뿐. 정신이 아득해지는 라이언은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코왈스키를 찾는다. 차근차근 방향을 잡고 그의 지시를 따르는 라이언. 그렇게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를 하나의 끈으로 연결한 채 우주왕복선으로 돌아가는 긴 길을 떠난다. 그리고 동료 샤리프가 파편에 맞아 죽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야말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 그것이 우주다.

영화 초반부터 <그래비티>는 관객을 압도한다. 정말 무중력의 공간에서 촬영한 것처럼 자유롭게 유영하는 카메라는 우리가 익숙한 위, 아래의 구분을 전혀 하지 않는다.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꾸로 매달려 있거나 충격으로 정신없이 회전한다. 또한 카메라는 3인칭으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주인공의 시점으로 바뀌기도 한다. 혼자 떨어져나간 라이언을 바라보던 카메라는 라이언의 헬멧 안으로 쑤욱 들어가, 그녀가 바라보는 우주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고독과 공포감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아마도 우주를 표현한 많은 영화 중에서, 가장 ‘체험적인’ 순간이 아닐까.

무중력에서 깨닫는 삶의 의미

<그래비티>는 고집스럽다. 이쯤해서 관제탑이 등장해 지구의 사람들이 표류하고 있는 우주인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이 나와 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구와의 통신마저 두절되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 혹독한 우주 위에는 코왈스키와 라이언 둘 뿐이다. 코왈스키는 자신의 우주 유영 시간이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며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라이언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라이언은 속마음을 그에게 내비친다. 그녀는 목숨 같은 아이를 잃고 늘 고독했다. 하루의 유일한 낙은 이리저리 운전을 하며 돌아다니는 것. 우주에서의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그다지 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곧 라이언은 반드시 살아내야만 하는 의무와 만난다.

둘의 상황은 점점 나빠진다. 코왈스키와 라이온은 우주왕복선과 가까이 있는 ISS로 이동해 소유즈를 활용해 지구로 귀환하기로 한다. 하지만 탈출용 소유즈에서 분리된 낙하산이 ISS에 얽혀 있고 그것을 풀려고 애쓰다 코왈스키가 밀려 나간다. 케이블로 연결된 라이언 역시 코왈스키와 함께 우주로 다시 튕겨나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코왈스키는 케이블을 끊어 라이언에게 살라고 한다. 그리고 아마도 ‘우주 최장의 유영 시간을 기록하게 될ʼ 여행을 떠난다. 떠나지 말라고 절박하게 매달리는 라이언을 뒤로 한 채.

이제 라이언 혼자 남았다. 지구에서조차 희박했던 삶의 의지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라이언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는다. 그것만이 코왈스키를 위한 마지막 인사니까. 그리고 영화는 라이언이 처절하게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말했지만 <그래비티>는 우리가 익숙한 우주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일단 배우가 두 명밖에는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우주 전쟁이 나면 나옴직한 스펙터클한 효과음이나 웅장한 음악도 없다. 대신 적막한 우주를 묘사하는 데 힘쓴다.

이렇게 <그래비티>는 우주를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막연히 우주 공간에 존재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했던 우리에게, ‘리얼한 우주’를 제공하는 것이다. 만일 이 영화를 아이맥스 3D로 보았다면, 더욱 구체적인 우주의 공간감을 맛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래비티>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주인공의 행동과 선택을 끈질기게 바라보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성찰한다. 어둡고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우주는 죽음과 동의어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이른다. 죽음은 우주 쓰레기처럼 불현듯 우리에게 다가오니까. 굳이 우주에까지 나가지 않아도 삶이란 늘 예측불허다. 그래서 라이언이, 자신 앞에 닥친 죽음과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은 무척이나 감동을 준다. 우리는 그녀의 운명을 자신에게 투영할 수밖에 없다.

중력을 견뎌내기

무중력의 공간을 상상해본다. 스스로의 몸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아, 둥실둥실 떠다닐 수 있는. 중력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그 무엇과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중력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지만, 동시에 중력이 주는 압박감을 감수하고 살아가야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중력은, 삶을 일궈가는 사람들 모두 겪어야 하는 일종의 숙제다. 우주는 이 숙제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중력 상태가 행복하거나 즐겁지 않다는 것을, <그래비티>는 여실히 보여준다. 라이언이 우주에 홀로 떠돌다가 코왈스키와 만나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된 순간, 우리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 작은 중력, 서로의 끌어당김이 인간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끔 우주에 오직 나 혼자뿐이라는 느낌이 든다. 내가 여기서 아무리 힘들고 괴롭다고 느껴도,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공간에 홀로 떠 있는 기분. 그럴 때 <그래비티>를 보자. 라이언, 그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구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 커다란 용기가 솟을 테니. 우리는 지구가 끌어당기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일어나 걸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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