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 아다다

[ - 디베이팅데이 ]


 

백치 아다다를 내세워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다

소설의 배경은 순박한 농촌. 그러나 백치인 주인공 아다다를 둘러싼 인물들은 매우 합리적인 듯 보이는데, 다분히 계산적이다. 조선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한 자본주의는 금세 황금만능의 세태를 초래하고, 결국엔 천진한 주인공 아다다의 목숨을 앗아가기에 이른다.

돈이 어느새 가치의 영역을 밀어내고 버젓이 주인공 자리를 꿰찬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종종 벌어지는 대참사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돈’이다. 돈을 추구하는 일이 원칙, 도덕, 정의, 나아가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우선시되는, 그야말로 황금만능의 사회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현재 우리들의 이러한 맨얼굴을, 시간을 거슬러 1930년대 조선에 사는 노총각 수롱에게서 발견하는 일은 새삼스럽고 흥미롭다.

<백치 아다다>는 1935년 5월 <조선문단>에 발표된 계용묵의 단편소설로 순박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겨우 자본주의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 일제시대.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행보는 빈틈이 없다. 벙어리요 백치인 주인공 아다다 외에는 모두 하나같이 모든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머리를 굴린다.’

아다다의 어머니는 가문의 골칫거리인 딸을 땅 한 마지기에 얹어보내 해결하려 했고, 아다다의 첫 남편과 시댁식구들은 아다다의 육체적, 정신적 결함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다. 이들의 선택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이익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근대적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노총각 수롱은 어떤가? 그는 욕과 매, 조롱에 시달리는 아다다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요, 아다다는 수롱이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수롱 역시 셈이 있었다. 돈으로 사지 않고는 아내를 얻을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돈을 치르지 않고 얻을 수 있다면 벙어리여도 괜찮다고 ‘판단ʼ한 것이다. 물론 십여 년 동안 하루같이 품을 팔아 모아둔 돈이 있지만, 아내를 거저 얻음으로써 이 돈을 살림의 밑천으로 만들어 가정을 이룰 계산이다. 수롱의 셈은 이해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수롱 역시 건실하게 살아가는, 전형적인 근대의 인간이다. 우리의 불운한 주인공 아다다가 기댈 법한 인물이요, 마침내 아다다에게도 행복이 깃들 것만 같다.
하지만 아다다를 위해 준비된 결말은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은 아다다에게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런지 소설을 읽어보자.


 

천덕꾸러기 아다다

아다다는 벙어리에 백치다. 말을 한다고 하는 게 ‘아다다’ 소리만 연거푸 나와서 확실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모두들 조롱삼아 ‘아다다’라고 부른다. 아다다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몸을 아끼지 않고 하고, 고된 일도 도맡아 하는데, 그래도 어머니 박씨에게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지혜가 모자라니 실수도 많고, 그릇도 거의 날마다 깨먹는다. 집안 형편이 괜찮아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는 아다다 때문에 속이 터질 지경이다. 하지만 벙어리에 천지에 가까우니 열아홉이 넘도록 시집갈 곳을 못 찾았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논 한 섬지기라는 지참금을 얹어 시집을 보냈다.

한편 아다다의 남편은 아내를 돈으로 사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으리만치 가난해서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도 장가를 못 들었다. 논 한 섬지기는 평생 가족을 먹일 지참금이라 냉큼 혼례를 치렀고, 아다다 덕에 먹고 살게 되어 남편과 시댁에서는 아다다를 위해 주었다. 꿈같은 결혼생활이었다. 시집오기 전 어머니 아버지에게 온갖 박대를 받아오던 터라, 그 행복은 더 달콤했다. 하지만 아다다의 행복은 오 년 만에 깨져버렸다. 형편이 나아지자 남편은 제대로 된 아내를 얻으려 했고, 이렇게 저렇게 돈을 벌자 새 아내를 얻어 집으로 돌아와 아다다를 학대했다.

그리하여 이 투기적(投機的)인 도시에서 뒹굴며 노동의 힘으로 밑천을 얻어선 ‘양화’와 ‘은떼루’에 투기하여 황금을 꿈꾸어오던 것이 기적적으로 맞아나기 시작하여 이태 만에는 이만 원에 가까운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하여 언제나 불만이던 완전한 아내로서의 알뜰한 사랑에 주렸던 그는 돈에 따르는 무수한 여자 가운데서 마음대로 흡족히 골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아다다는 남편의 매를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집으로 돌아온 아다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어머니 박씨의 매였다. 아다다는 이제 갈 곳이라곤 수롱이네 집밖에 없었다. 집에 있으면 어머니의 욕과 매, 밖에 나오면 뭇사람들의 놀림…. 노총각 수롱은, 그런 아다다의 유일한 피난처였다.

삼십이 넘은 노총각 수롱은 그런 아다다를 일 년 전부터 꾀어왔고, 마침내 두 사람은 마을을 떠나 새 보금자리를 찾아나선다. 아름다운 사랑의 도피행각으로 보이지만, 수롱의 계산은 정확한 것이었다. 벙어리라는 흠이 있지만 아내를 거저 얻었으니, 모아둔 돈으로 땅을 사고 가정을 이루겠다는 생각이었다. 수롱은 아다다에게 자신의 결심을 밝힌다. 돈뭉치를 꺼내 보이며 밭을 한 뙈기 살 작정이라고.


 

자본주의가 도래한 조선을 비판하다

하지만 웬걸. 수롱의 표정이 한껏 들떠 있는 반면에 아다다의 표정은 깊은 수심에 잠긴다. 아다다가 행복의 길에 들어선 것 같은 그 정점에서 드러나는 묘한 대비는 비극적 결말을 예고한다. 첫 결혼의 파국이 돈에서부터 비롯되었으니, 아다다에게 돈은 명백히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리하여 아다다는 돈뭉치를 꺼내들고 바닷가로 나선다.

돈으로 인해 그렇게 행복할 수 있던 자기의 신세는 남편(전남편)의 마음을 악하게 만들므로, 그리고 시부모의 눈까지 가리는 것이 되어, 필야엔 쫓겨나지 아니치 못하게 되던 일을 생각하면, 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은 좋지 않던 것인데, 이제 한푼 없는 알몸인 줄 알았던 수롱이에게도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 그것으로 밭을 산다고 기꺼워하는 것을 볼 때, 그 돈의 밑천은 장래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리람보다는 몽둥이를 가져다주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밭에다 조를 심는다는 것은 불행의 씨를 심는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백치에 가까운 아다다였지만, 돈의 본질에 대한 인식만큼은 가장 탁월하다.

아다다는 주저없이 종이돈을 바다에 흩뿌린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실려 돈이 떠내려가는 때, 수롱이 헐레벌떡 달려와 돈더미를 따라 허우적거리고, 마침내 둔덕에 서 있던 아다다에게 달려가 사정없이 발길질을 날린다. 잠시 쓰러져 있다 무언가 얘기를 하려고 입을 움직이는 아다다에게 수롱은 다시 일격을 가하고, 급기야 아다다는 가파른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물속에 잠기고 만다.

참으로 비감한 장면이다. 잠깐 영화감독이 되어 이 장면을 영상을 옮겨보자. 아침 해가 붉게 솟아오른 바닷가. 짝을 찾아 도는 갈매기 떼는 ‘끼약끼약’ 하며 훨훨 날아다닌다.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 아다다는 수롱의 목숨과도 같은 돈을 던진다. 물결 위에 흩어진 돈들. 수롱이 첨벙 몸을 던져보지만 돈을 되찾을 수는 없다.

분노한, 비통한, 처참한 수롱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잠시 후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다다를 향해 달려간다. 순식간에 수롱의 발길질에 걷어차인 아다다의 일그러진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리곤 뒤 이은 수롱의 발길질에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진 아다다. 물결은 담담히 아다다를 삼켜버린다. 줌아웃!

작가 계용묵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자본주의가 도래한 조선사회를 백치였지만 순수한 정신을 가진 아다다를 등장시켜 비판하고 있다. 아다다의 어머니는 가문의 골칫거리인 딸을 땅 한 마지기에 실어 해결하려 했고, 아다다의 첫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아다다의 육체적, 정신적 결함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돈을 받는다. 그런 다음 그 돈이 밑천이 되어 재산이 늘자 아다다를 내쫓는다. 아다다가 유일하게 의지한 수롱 역시 아다다를 받아들이는 이유가 돈으로 아내를 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 모든 관계가 돈과 그로 인한 이익에 대한 약삭빠른 판단에서 비롯된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다다 한 사람뿐이다. 계용묵은 아다다를 내세워 인간이 돈 때문에 어떻게 추악하게 타락해가는지 원색적으로 보여준다. 계용묵의 눈에 보이는 조선 말기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소박한 농촌사회를 밀어내고 ‘돈의 가치’가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어가는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작, 그리고 백치이며 벙어리인 아다다는 그 황금만능주의에 휩쓸려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다.

 

같이 보면 좋은 작품

<별을 헨다>
계용묵의 단편소설. 계용묵 문학의 후기시대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로, 광복 후 월남하여 온 사람들의 애환을 잘 보여준다. 특히 여기서는 주인공이 의분이나 정의감 또는 고발정신을 발동시키는 인물로 그려져 있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계용묵이 유지해오던 관조적 자세를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에 밀착하여 시대적 혼란상을 표현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현실의 총체적인 인식에는 도달하지 못함으로써 계용묵 문학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다.


 

계용묵 (1904~1961)

평안북도 선천 출생.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동양대학 동양학과에서 수학했다. 1927년 <조선문단>에 <최서방>이 당선되어 등단한 뒤, <인두지주> <백치 아다다> <별을 헨다> <캉가루의 조 상이> 등의 단편을 발표했다. 인간의 선량함과 순수성을 옹호하면서도 현실과 적극적인 대결은 꾀하지 않았고, 정치적으로는 중간파적 입장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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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s

  1. 의 프로필
    익명 님의 의견 - 3달 전

    주인공이외에 자신이 유리하도록 머리를 굴린다고 하셨는데 아다다가 돈을 버린것은 머리굴린것이 아닌가요?

    마치 아다다만 순수한 것이고 나머지 조연은 돈에 물든것으로  치부하시는데 실은 시집살이 하는것도 돈이없어 그런것이고 돈벌 능력이 안되는 몸이라 그런것 같습니다.  몸이라도 이뻤다면 아마 더  좋은 조건으로 결혼할 수 있었겠죠

    사람사이는 이득이라는 이해관계로 얽히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여자는 보는사람 마다 사귀고 만인과 결혼해야겠죠   정신지체아닌이상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따집니다.  그건 매맞기 싫어하는 아다다도 매한가지 입니다. 아다다가 남자고 배경이 현대라면 고등학생 친모 살인사건이 떠오릅니다. 공부하라고 패는 어머니가 무서워 살인했다고 진술했죠.  그럼 그 고등학생만 순수한 걸까요?

    주변 학생들이나 선생들의 무관심이 바로 현대의 물질자본주의같은 풍조고 말이죠.   최근이슈와 비교해보자면 페미가 떠오릅니다.  여자라서 당했다.  앞뒤문맥이 맞다고 보시나요?   그건 이 글  서두와  정확히 같다고 봅니다. 아다다는 자본의의에 당했다.  죄송하지만 본질의 논점을 흐리는 마치 한국의 페미같은  발언같습니다.    제 주관적인 생각은

    아다다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왜냐 장애인이고

    외모또한 형편없는  밥버러지였기 때문이다.  이게 정확한 팩트라고 봅니다.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여 리뷰하신건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소신것 적어주시면 읽는 사람으로써 참신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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