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 디베이팅데이 ]

아버지가 된다. 가족을 발견한다.

가족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의 가족에 만족하고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다. 좀 더 좋은 가족을 갖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생길 것이다. 마치 좋은 학벌, 직업을 얻기 위해 그러하듯.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것은 가장 편하면서도 소홀할 수 있는 대상이다. 별 노력 없이도 주어지고, 큰 고생 없이 유지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서로를 감싸준다. 가족은 우리에게 언제부턴가 ‘당연한 존재’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료타는 성공한 남자다. 세상에 남부러울 것 없다. 사회에서는 촉망받는 건축가로 커다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다. 후배들은 그를 존경하고, 상사는 그를 믿는다. 가정은 어떤가. 아름답고 순종적이며 이해심 많은 아내, 착하고 귀여운 아들이 하나 있다. 그들 역시 남편이자 아버지인 료타를 사랑한다. 즉 료타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그는, 그러한 축복과도 같은 현실이 당연하다. 자신이 잘나서, 혹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그러한 행운을 성취해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그는 솔로몬도 풀어내지 못할, 가장 큰 시험에 들고 만다.

아이가 뒤바뀌다

료타는 집에서 엄한 아버지다. 아들을 사랑하지만, 응석받이로 키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최선의 환경을 마련해주고, 노력하도록 돕는다. 아들 케이타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쓴다. 료타는 케이타를 사립학교에 보내려고 한다. 특별한 아이들만 뽑는, 자신 역시 다녔던 특별한 학교. 그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았으면 한다. 그래서 순하기만 하고 성취욕이 별로 없는 케이타가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엉뚱한 소식을 듣는다. 아니 벼락같은 말이다. 6년을 키워온 케이타가 실은 진짜 아들이 아니라고 한다. 무슨 말이냐고? 6년 전 아들이 태어났을 때, 병원의 실수로 아이가 뒤바뀐 일이 이제야 드러난 것이다. 료타와 아내 미도리는 병원으로 가서 그들의 사과를 받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당연하다. 친아들로 알고 소중하게 키워온 아이가 실은 다른 사람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피가 흐르는 아이는 어디에선가 전혀 낯선 이름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병원에서는 우선 친 자식을 만나보는 것을 권한다. 보통의 경우 그렇게 한다고.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제대로 된 자리를 찾아야 되지 않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낳은 정만큼 키운 정도 깊다고 하는데,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해서, 마치 물건을 바꾸듯이 교환(?)하고 아무 일 없이 다시 살아갈 수는 없을 터.

여기서 문득, 갑자기 오래된 드라마 하나가 생각난다. 송혜교와 송승헌의 안타까운 사랑으로 장안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가을동화> 말이다. 비슷한 설정이 나온다. 병원에서 아기가 바뀐 것이 뒤늦게 밝혀지고, 부잣집에서 크던 여주인공 아주 가난한 친 엄마네 가서 살게 된다. 남달리 우애가 좋았던 남매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이 아님을 알게 되고, 그 아프고 애틋한 감정은 곧 남녀 간의 사랑으로 바뀐다. 그만큼 가족으로 살았던 기억과 추억은 특별하다. 그것을 생으로 찢어버려야 하는 상황은 가혹해질 수밖에 없다. ‘알고 보니 친남매가 아니더라’라는 설정은, ‘알고 보니 친남매’라는 *클리셰(주석 – 진부하고 익숙한 설정이나 표현) 만큼이나 극적이고 충격적이다.
그래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역시 비슷한 길을 걷느냐고? 그건 아니다. 이 영화는 익히 모두가 알고 있는 상황을, 다시 덤덤하면서도 세밀하게 바라본다. 그 응시로 인해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서서히 떠오른다.

되찾은 아이, 그런데 낯설다

아이가 바뀌었으니 어찌됐건 친자식이 궁금한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료타와 미도리는 병원의 소개로 친아들을 키우고 있던 유다이와 유카리 부부를 만난다. 그들은 료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한적한 동네에서 전파상을 하며 아이들을 잔뜩 낳아 기르는. 아이가 바뀐 충격보다 보상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궁금함이 더 커 보이는 사람들. 료타는 그들이 한눈에 껄끄럽다. 한심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자신의 친아들에게 그들이 나쁜 영향을 끼친 것을 분명해 보인다. 료타의 생물학적인 친아들 류세이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눈치다. 그 애는 빨대를 질겅질겅 무는 버릇이 있고 다리도 떤다. 료타에게는 없고 유다이에게는 있는 버릇이다. 료타는 그런 것들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일단 두 가족은 서로의 친 자식을 집에 데리고 오기로 한다. ‘핏줄이 땡긴다.’라는 속된 말이 있긴 하지만, 너무나 상이한 환경에서 커온 두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한다. 같이 있는 사람들이 진짜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원래 있던 집과 가족에게 돌아가고만 싶어 한다.

어쩌면 좋을까? 료타는 두 아이를 모두 데려오려고 한다. 유다이와 유카리는 다른 아이들도 있으니, 돈을 주거나 하면 허락할 것 같다. 지금까지 친자식으로 키웠던 케이타도, 친자식인 류세이도 포기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둘 다 자신처럼 훌륭하게 키워낼 자신도 있으니까.

하지만 만만치 않다. 료타는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가 유다이에게 얻어맞는다. 어수룩하고 대충 사는, 인생의 낙오자처럼 보이는 그였지만, 아버지로서의 소질은 료타 보다 더 훌륭하다. 유다이는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게 시간을 함께 보내자고 한다. 서로 익숙해질 수 있도록. 료타는 자신만의 입장에서 생각할 뿐, 다른 부모의 입장은 어떨지 가늠하지 못했다. 물론 아이들의 마음도.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늘 우수한 료타는 지금까지 아버지로 살아온 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진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행복한 이 남자, 료타에게도 실은 아픔이 있다. 그는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는 도박중독이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어머니를 버렸다. 아버지가 새로 들인 새어머니에게는 한번도 ‘어머니’라는 말을 해본 적 없다. 아마도 료타는 어릴 때부터 투쟁해왔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것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해 매달리는 방식으로.

그렇게 아버지가 되다

친아들을 데리고 오고, 친아들 같던 아이를 멀리 보낸 료타는 이제 정말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료타는 아이들이 태어난 병원에서 일했던 간호사를 찾아간다. 그녀는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아기를 바꿔치기 했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왜 갑자기 그 사실을 고백했을까. 료타는 묻는다. 왜 그랬냐고. 간호사는 질투심 때문이었다고 했다. 자기는 남편이 데리고 온 아이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괴로운데, 료타와 미도리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고. 그것이 화가 나서,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하지만 남편의 아이들과 사이가 회복되고 진짜 부모의 마음을 갖게 되면서, 과거에 저지른 일이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료타는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들으며 분노가 치민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잔인한 짓 아닌가? 한때의 스치는 감정으로 두 가족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이다. 그런데 료타는 분노하지 못했다. 간호사의 어린 아들이, 자신의 (의붓)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무섭게 노려본다. 그 필사적인 아이의 눈빛에 료타는 화도, 분노도 사그라진다. 터무니없이 부도덕했던 간호사도, 한 아이의 소중한 어머니였다. 거기엔 핏줄이나 유전자와 상관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료타가 그때까지 결코 알지 못했던 것.

료타는 한 번도 어머니라 부르지 않았던 새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철없던 자신을 바라보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제 헤아릴 수 있어서다. 그는 자신을 무서워하면서도 항상 지켜보았던 케이타의 마음도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가족의 마음을 발견한다는 의미다. 참 어려운 일이다. 결코 ‘당연할’ 수가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났고 1987년 와세다 대학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영화로 전향하여 독립 TV 프로덕션인 ‘TV Man Union’에서 일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환상의 빛>(1995)으로 베를린영화제 골든오셀라상을 수상했으며, 네 번째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원더풀라이프>(1998), <디스턴스>(2001), <하나>(2006), <걸어도 걸어도>(2008), <공기인형>(2009)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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