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 - 디베이팅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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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

discussion

소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대표되는 사상적 기조는 꽤 오래전부터 우리의 사회의 가장 신뢰받는 선택 공식으로 여겨져왔다. 공리주의 따위의 어렵고 고루한 철학 이야기를 들고 나오지 않아도, 우리 삶 대부분의 윤리적인 선택과 결정은 자연스럽게 이러한 기본 발상에서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또 그것이 옳은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에 정당함을 부여하는 ‘다수의 이익’이라는 선택은 과연 옳은지에 대한 반론이나 의구심 또한 끊임없이 제기되왔다. 비단 마이클센델이 들고 나왔던 기차 운전수의 선택 같은 극단적 상황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민주사회에서의 모든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투표’의 결과가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포기와 희생은 과연 정당한가.

 

data

공리주의(위키백과)

하버드 특강, Michael J. Sandel (EBS 신년기획, 유투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네이버지식백과)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인터넷교보문고)

 

news

전차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2016.07.19, 전남일보)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꽃인가? 함정인가?(2014.09.02, 충청매일)

공리주의 비판많지만 ‘선택’에 직면하면 결국 공리적 판단에 의존(2010.10.22, 한국경제)

 

pros opinion

a.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그 선택의 기준으로 가장 적합하다.

모두가 공리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적하지만, 결국은 그 수가 많든, 행복의 질이 높든, 조금이라도 더 행복의 크기가 큰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모든 선택에는 필연적으로 선택받지 못 한 쪽이 생기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이러한 필연적 선택에 있어 가장 부작용이 적은 방식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b. ‘비윤리적’이라는 손가락질은 가혹한 비판이다.

그렇다면, 본 명제의 반대개념으로,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라는 명제는 어떠한지 묻고자한다. 인류가 현재 건설해놓은 민주주의 사상은 권력을 가진 소수가 독점하던 행복을 힘 없는 다수가 합리적으로 투쟁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선거를 통해 다수의 선택을 존중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어주었다.

 

cons opinion

a. 심각하게 비인간적인 선택이다.

민주사회에 있어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뜻하는 긍정적 의미의 개념은 이미 변질된지 오래이다. 이 시대의 민주주의는 ‘권력을 가진 소수’를 공격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소수’를 도태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원리는 차별이라는 개념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가장 핵심적 원리로 적용되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

b. 가장 조작되기 쉬운 방식의 사회원리이다.

내가 속한 사회의 안녕과 성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저 문장의 앞에 ‘누군가가 희생되고’ 라는 전제가 붙는다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상태에서 철저하게 공정한 선택을 통해-이를테면 가위바위보- 희생할 이를 뽑지 않는 한, 이미 그 ‘희생할 누군가’는 정해져있거나, 적어도 그 ‘희생할 누군가’에 들지않을 사람들이 정해져있기 마련이다.

 

reference

님비(not in my back yard)


최초입장 결과 (133명 투표)
13 35 37 35
토론댓글 현황 (66개 주장)
54 46

  Opinions

  1. 들라코거스의 프로필
    Lv4 들라코거스 님의 중재 의견 - 4달 전

    연관된 사람의 양만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 사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 사람의 양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단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은 프레임이라 여기저기서 입에 오르내릴 뿐입니다.
     
    사형수 100명과 대학생 10명 중 어느 쪽을 죽일 것인가, 불임 70억명과 임산부 7명 중 어느 쪽을 살릴 것인가, 단순한 예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미사여구는 명분이 받쳐줄 때나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걸.
     
    예시가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실은 이보다 복잡합니다. 두 가지 선택지만 놓고 고르기만 하라는 친절한 중재자는 존재하지 않죠. 만 명을 살리는 길, 천 명을 살리는 길, 백 명을 살리는 길이 다 다르고 그로 인한 결과도 모두 다릅니다. 사람 수에 얽매이면 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우리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현실에서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심지어는 숭고하게까지 느껴지는 상황을 많이 봐서 실제로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똑같은 사안이라도 누가 다수가 되고 누가 소수가 될 것인가, 단순 인구 수, 가진 권력이나 부의 크기, 미래에 대한 창창한 가능성, 프레임은 씌우기 나름이죠. 희생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자원의 피해, 인명, 환경, 사회의 관습 및 도덕,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달리 보입니다. 결국에는 거지같은 상황에 연출된 그럴듯한 구도에 열광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의 양도 물론 고려 대상이죠. 기왕이면 덜 죽는 쪽이 낫겠죠.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 사실 그 드높은 위명에 비해 실제 판단에 끼치는 영향은 작습니다. 단지 지지자들과 패배자들의 선동과 자기 위로에 딱 좋은 표어에 불과할 뿐이죠.
     

    저는 그저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자리에도 누가 서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질 것이며 여러 가치가 얽힌 상황에서 어떤 가치가 다른 가치보다 낫다고 말할 도덕적 근거는 빈약하기만 합니다. 설령 적은 사람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그 중에 나도 희생된다고 해도, 내가 분노할 대상은 선택의 결정권자가 아니라 개인이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저울질할 수 있는 그때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문득 떠오른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논리에 비약이나 오류가 있을지 모르니 주의해서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0 0 답글
  2. 박민찬의 프로필
    Lv4 박민찬 님의 중재 의견 - 2달 전

    들라코거스님, 왜 중재이신지….

    0 0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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