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하나

[ - 디베이팅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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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ussion

삶을 스스로 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관한 논쟁 중 하나가 바로 자살에 대한 정당성 문제이다. 인간의 선택은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존중 되어야 하며, 인권으로부터 도출되는 선택권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자살은 일종의 선택권이자 개인의 권리 차원으로 기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살은 결국 일종의 살인과 다르지 않으며, 인간에게 살인을 할 선택권은 어떠한 차원에서도 긍정될 수 없다는 반대 주장도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한국, 그리고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자살률, 과연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

 

data

자살(이진홍 저, 네이버지식백과)

대한민국의 자살(위키백과)

2014년 사망원인통계(통계청, 2015.09.13)

자살 예방 커뮤니케이션(김호경 저, 네이버지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의 경우, 하위링크를 통해 다양한 부가정보의 참고 가능

 

news

선택이라는 이름의 절망(2015.10.21, 함께걸음)

죽음을 배우는 시대 “웰빙 만큼 중요한 ‘웰다잉'”(2015.09.11, 오마이뉴스)

조용한 자살이라는 항변(2016.05.15, 미디어스)

 

pros opinion

a.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자살은 개인의 선택권 차원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몫이다.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고, 개인은 언제나 더 나은 방향을 향해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것이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b.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만한 고통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 필요에 의한 산물이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면서 삶에서 얻는 기쁨이나 만족보다 불만족, 고통이 크다면 스스로 삶을 포기해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불과하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누구도 책임져 줄 수 없으면서 힘겨운 삶을 강요하는 것은 개인에게 고통을 감수하도록 하는 행위이다.

 

cons opinion

a.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며, 2차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살은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버린다는 선택 자체가 사회적으로 크든 작든 윤리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받게 되는 심리적, 감정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죽음 이후의 처분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살은 타인과 사회에게 2차적인 문제를 남기고 가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b. 생명의 존엄성은 처음부터 인간의 선택적 차원이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탄생을 처음부터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죽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은 개인의 선택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 맞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은 개인의 권한 밖 문제이다. 생명의 존엄성은 스스로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된다.

 

reference

한국생명의전화

중앙자살예방센터

안락사는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최초입장 결과 (247명 투표)
70 63 46 38
토론댓글 현황 (137개 주장)
56 44

  Opinions

  1. kdy의 프로필
    kdy 님의 찬성 의견 - 10달 전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죽음을 택할 권리마저 뺏는 건 잔인한 처사 아닐까요? 그리고 항상 삶은 소중한 거라며 자살을 나쁘게 묘사하는데, 글쎄요. 과연 삶이 소중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노예가 죽으면 주인이 손해보기 때문일까요? 전 자살이 나쁘다고 가르치면서 정작 민영환, 박승횐, 황현이 자살했다고 비난하는 경우는 본 적 없습니다. 오히려 셋의 자살을 예찬하는 건 많이 봤지요.

    1 0 답글
    • mgwon605의 프로필
      Lv2 mgwon605 님의 반대 의견 - 4달 전

      Kdy 님의 말씀처럼 꼭 자살을 비난 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가 자살을 존중해 주는 분위기라면 자살은 어쩌면 힘든 상황에서의 당연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무조건 더 버티고 남는 것이 이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 또한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 또한 자살자들을  비관자로 보거나, 부정적이게만 보지않습니다, 다만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했을 때의 결과가 우려되는 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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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자유, 평등, 진실의 프로필
    자유, 평등, 진실 님의 찬성 의견 - 10달 전

    세상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소유인 것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뿐입니다.(유물론이나 관념론과 관련된 토론이 아니니 이 부분은 넘어가주시길 바랍니다.)

     

    어떠한 물질도 진정으로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사호적으로 그 사람의 소유로 인정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왜 유일하게 진정 자신의 것인 자신의 생명을 끊는 것은 허용될 수가 없는 것입니까?

     

    물론 가족이나 친구들은 큰 상실감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자살한 사람이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그의 의견을 존중하여 주며 그의 자유의 수행을 인정하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0 0 답글
    • L.F.EYES의 프로필
      Lv2 L.F.EYES 님의 중재 의견 - 10달 전

      개인의 자살은 찬성입니다.

       

      물론 자살을 함으로써 또 다른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개인이 느끼는 고통을 감내하기 힘들고 또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된다면.

       

      자살을 감행해도 뭐라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짐이 크다면.

       

      앞으로의 생이 지옥이라는 것이.

       

      확실하다면.

       

      생을 끝내는 것이 확실하게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런 경우를 적용하면

       

      자살 할 사람은 실은 거~의 없죠.

       

      네.

       

      이런 뜻(앞으로의 생에서 고통이 행복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면)에의 자살이라면 찬성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의 슬픔 또한 측정불가능한 정도이기에

       

      반대의 입장 또한 대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그리 쉽게 결정지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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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샤코의 프로필
    샤코 님의 찬성 의견 - 7달 전

    전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물론 반대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자살은 주변인들에게 간접적인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왜 자살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말하나고요?

     

     

    전 “남에게 피해를 입힌다”라는 말에서 간접적인 행위들은

    베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남에게 수많은 간접적 피해들을 입힙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가 전기를 많이 소비한다.

     

     

    발전 과정에서 발생한 환경 파괴들로 남에게 간접적 피해를 끼칩니다.

     

     

    우리가 축구를 한다

     

     

    축구공을 생산하는 업체 중에는 아동애게 노동을 시키는 곳도 있다.

     

    즉, 축구공을 소비해 줌으로써 아동 학대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이런식으로 우리의 모든 행위는 남에게 피해를 끼칩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우리가 잘 못 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는 우리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과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으로 구분해야 합니다.

     

     

    간접적인 피해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직접적인 피해는 우리가 미리 알 수도 있고 막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하다면 자살로 인한 간접적 피해또한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존중 받아야 한다”

    라는 현대 사회의 도덕적 관념에 따라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서 존중 받아야 할 것입니다.

    0 0 답글
    • K.Marx의 프로필
      K.Marx 님의 반대 의견 - 7달 전

      현대 도덕적 관념에 따라 결론을 내셨는데요, 위에서 “이런식으로 우리의 모든 행위는 남에게 피해를 끼칩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우리가 잘 못 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라고 물으시고, ‘아니다’라는 답을 내셨습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근거로 드셨구요. 그러면 현대 도덕관념의 관점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어떤 답을 내리시겠습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그 정도에 따라 타인이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본질적인 생명권까지 침해할수 있기에 올바르지 않은것이다.’ 라는 명제가 저는 이 문제에 대한 현대도덕관념적인 답으로서 적합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당신이 결론내린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들을 저지르는 우리들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것인가?’ 라는 물음에 방금 내린 현대도덕관념적인 전제를 적용시킨다면, 개인이 기여하고있는 특정문제에 대한 영향력은 우리들의 도덕성과 비도덕성과는 관련이 없는 요소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2차대전에서 나치의 말단 관료였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신은 유대인 학살을 위해 상부에서 할당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역활을 수행합니다. 당신은 이 일이 도덕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조직내에서의 당신의 빈약한 영향력으로 인해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르고 있습니다. 어제도 당신은 유대인 수백명을 수용소로 보냈고, 오늘도 명령을 받아 유대인들을 수송하려고 준비하고있습니다. 당신의 논리에 따라 이 상황에 대해 결론을 내보자면, 말단 관료인 당신은 이 대학살을 막을 수 없기에 당신의 이러한 간접적인 전범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이렇게 유대인 학살에 기여한 당신이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민간인들을 수용소로 내몰아 고통받게 한 당신이? 당신이 그 근거로 말씀하신 현대도덕관념에 따르면 한 특정문제에 대한 당신의 영향력이 적은 것이 당신의 비도덕성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주지않습니다. 이를 근거로 나치부역자들은 모조리 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처벌받았고, 현대도덕은 이들의 죄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 로 규정하였습니다. 당신의 행동이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누군가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당사자의 존중받을 권리와 인권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는 일을 야기한다면, 당신은 비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이 도덕적인 일이고, 만약에 나치독일의 대학살같은 예 처럼 사회나 국가같은 거대규모의 사회가 이러한 비도덕적인 일을 모두에게 강요하고 이를 당연시한다면, 사회적인 차원에서 도덕에 결함이 있는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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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K.Marx의 프로필
    K.Marx 님의 반대 의견 - 7달 전

    자살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복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못함과 동시에 자신의 불행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 라는 사람을 지칭할때, 여러분은 ‘나’라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실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종교적이거나 신비주의적인 대답을 하신다면 저는 할 말이 없어지겠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 ‘너’ , ‘문재인’ 과 같은 실체는 그저 우리가 무엇인가를 지칭할때 편의를 위해 가정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들과 물질일반은 ‘불변하는 절대적인 실체’가 아닌 ‘유동적이고 다변적이고 상대적인 물체’ 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닷가에 펼쳐져 있는 모래사장과 자갈밭을 보고 ‘해변’이라는 단어로 이를 지칭합니다. 그러나 이 해변에서 자갈 한개를 집어들어 이 자갈들의 배치를 조금 바꾸어 놓으면, 처음에 우리가 가정했던 ‘해변’이라는 실체와 우리가 현재 지켜보는’ 해변’이라는 실체는 다른것을 지칭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 자신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엄밀히 말해 어느 순간이나 타자로서의 변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 는 매우 큰 공통점을 가진 각기 다른 인격입니다. 정치인 문재인을 예로 들어보자면 과거:인권변호사 시절 문재인 현재:대통령 문재인 미래의 문재인은 굉장히 큰 공통점을 가진 ‘타자’입니다. 이 전제를 들고 본론으로 돌아가봅시다.

     

    자살을 하기를 원하는 인격은 ‘현재’의 인격입니다. ‘현재’의 인격은 ‘과거’의 인격이 쌓아놓은 경험과 직관을 토대로 형성된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자살을 결심합니다. 여기에서 ‘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토대로 자살을 찬성하시는 분은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자유의지를 근거로 개인의 자살을 옹호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와 반대주장을 하시는 분들은 개인과 인연으로 연결된 주변인들의 정신적피해를 근거로 자살을 반대하실 것 같습니다. 먼저 전자의 의견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개인의 자기결정권은 물론 유효합니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은 어느 상황이나 존중받아야 하고 이는 이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앞서 전제 해두었듯이, 개인의 자살을 결정한는 인격은 ‘현재의 나’ 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현재의 나’의 선택은 굉장히 불합리합니다. 우선,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근거하여 자살을 결정한다고 한다는 의견에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이는 ‘미래의 나’ 가 형성되고 자기결정권이 생길 가능성조차 말살해버리는, 오히려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일 입니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의 효력이 유지되는 근거 중 하나는, 자신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됨과 동시에, 타인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상황에서는 ‘현재의 나’가 자신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미래의 나’ 의 자기결정권이 생길 가능성조차 말살해버리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육체는 여러가지 인격이 거쳐가는 공유지라고 할 수있습니다. 위에서 ‘현재의 나’가 한 일은, 마치 공유지가 마음에 들지 않은 개인이 타인들과 공유하고 있는 공유지를 멋대로 소멸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자기결정권을 그 근거로 하는 ‘현재의 나’의 자살이 오히려 반자기결정권적인 것임이 들어났습니다. 이것과는 또 다른관점으로 이를 바라본다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행에 대한 확신을 근거로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신적인 지식 또는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 없는 한 평범한 인간이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만한 근거를 정립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자신의 불행이 지속될 가능성은 물론 농후하지만, 자신의 무지함으로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행운과 행복이 찾아올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과연 자살을 원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숨이 끊어지길 바랄까? 라는 물음을 던져봅시다. 자살을 원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살을 원하면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기를 바래야 합니다. 그러나 자살을 바라는 사람은 자신이 자살을 하길 바라고 있는 자신이 존재하기를 현재 바라고 있기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살을 바라는 것과 모순됩니다. 그렇다면 자살을 바라는 개인이 자살을 하는것은 오히려 자신의 바람과 상반됩니다. 자기결정권에 근거한 자살옹호론은 이정도로 다루어보고, 다음으로 앞에서 언급한 주변인의 정신적 피해에 근거해 자살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반대론자들이 빈약한 논리를 근거로 하고있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의 자살에 대해 타인이 느끼는 감정은 개인의 자살의 정당성과는 거리가 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타인이 개인의 특정행위에 느끼는 감정이 행위의 정당성의 척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자신이 혐오했던 A가 자살하자 B가 기뻐한다면, A가 B의 행복에 기여했기에 A의 자살이 반대론자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정당화될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큰 논리적 결점을 지닌 이 주장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여태까지 논했던 주장들을 토대로 제 주장을 펼쳐보자면, 자살을 하는 것은 굉장히 맹목적인 자기확신과 감정적이고 격정적인, 매우 불합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소유지가 아닌 공유지인 자신의 신체의 생명에 멋대로 종말을 불러오는 것은 본인의 자기결정권의 효력을 발휘하기에 적절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인 ‘미래의 나’의 자기결정권이 형성될 가능성조차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에 근거하여 제거하는 반자기결정권적인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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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joseph35533553의 프로필
    Lv4 joseph35533553 님의 반대 의견 - 7달 전

    순수하게 철학적이고 자기 딴에는 숭고한 이유로 자살하는 경우를 보지 못한 바,

    대부분은 감정적 고립과 절망, 그리고 외부 환경에 대한 무기력함과 지속적인 고통, 고민, 혹은 박모 정치인처럼 압도적인 상황 앞에서의 도피 등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숭고한 자살이란 없고, 결국 간단하게 말하자면 긴급한 고통의 중지를 자발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바 정도로 요약될 겁니다.

     

    하지만 자살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 중, 자살이란 개념을 정말 폭넓고 깊게 신중하게 이해하고 이행할 만한 상태인 사람은 아이러니하게 한 명도 없을 겁니다.

    물론 자살을 생각하지 않을 만큼의 상태라면 자살보단 다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아둥바둥했을 겁니다. 비록 타고난 성격과 오기, 끈기, 인내, 목표, 꿈 등은

    다르다지만 역사상 가장 처절하고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죄다 당연히 자살을 한 게 아니고, 일부는 극적인 반전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살이란 개념이 구체화될 때부터 이미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이고, 가능하다면 자살 희망자는 외부의 도움을 찾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유일한 서브셋이 안락사일 것인데, 안락사의 경우는 저도 중재의 입장이라 별도 코멘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자살이 아니면 해결이 안 되는 상황을 보지 못했기에, 그리고 숭고한 자살이나,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자살이란 없기에 그저 그 자살하고자 하는 힘든 마음이나 감정, 상황을 존중하고자 자살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좀 더 인생의 변수나 나비 효과에 대해 고려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지지가, 다른 경우의 수에는 살아남아 생존하고 극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생명에 대해 죽음에 투표하는 간접적 살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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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토론쟁이의 프로필
    토론쟁이 님의 찬성 의견 - 5달 전

    자살은 옳지 않습니다.

    생명윤리의식에 대한 결여가 현대사회의 문제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윤리의식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다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결국엔 생명이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며, 삶과죽음 역시 고대로부터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사람들은 짐승들과 달리 이성이 존재하고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의미없는 일에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현대사회 인류의 문제점은 바로 이러한 “삶의 의미”를 찾지못하고 본인의 가치를 찾지 못한 불쌍한 이웃에게 무관심하였던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의미와 본인의 가치를 사람들은 어디서 찾으려고 할까요?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직업적 성공과 부의 축적, 외모지상주의으로 인한 성형강국 등 겉으로 보여지는 껍데기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부의 축적도 성형도 스펙쌓기도 결국 공허함을 채울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는 다 알고 있으면서 애써 외면하고 있습니다. 바로 내 생명의 근원과 가치는 나의 외적인 부분이 아닌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면을 마주하고 스스로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회사도 직업도 ‘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취업을 해서, 결혼을 해서, 출산을 해서, 성형을 해서, 대학을 가서 행복해지는 것은 잠시일 뿐입니다. 인생은 고통이며 우리는 끊임없이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외적인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 되었습니다. 그 고통은 사실 외적인 부분이 아닌 내면에서 나온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나 자신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면 세상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선조들이 말씀하시길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야 한다 가르치고, ‘하늘사상’을 가르치며 뜨거운 한민족의 정신을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유교사상에 대한 젊은세대와 기성세대의 부딪힘과 신에 대한 부정적인 대립과 무신론이 판치는 세상속에서 젊은이들은 “나”의 존재가 단순히 우연히 발생한 우주의 알수없는 폭발로 인하여 생긴 먼지일 뿐이라는 잘못된 가치관이 확립되었고,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유’로 우연히 발생하였으므로 그 의미 또한 없음에 극도로 가깝다고 생각하므로 당연히 개인의 삶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찾지 못하는 것이 어찌보면 공감이 가는 바입니다. 그러한 가치관으로 사는 인류는 허무주의와 퇴폐주의, 우울함과 공허함, 쾌락주의로 살아갈 수 밖에 없으며 나이 들어 병들고 죽을 때가 되면 그 공허함은 이루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십시오. 스스로 생명의 근원을 찾아보십시오. 그 정답을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종교에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의식적으로 계속 삶의 의미를 찾고 있을 것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곳은 나의 외적인 껍데기가 아닌 내면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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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leesk9615의 프로필
    Lv1 leesk9615 님의 찬성 의견 - 4달 전

    애초에 태어날때부터 거창하고 신성한 계약같은 뭐 그런거 단 하나도 해본적도 없으며 태어난 죄따위나 원죄론같은걸 부정하는 저로써는 찬성입니다.

     

    도와주는것도 영적인 정신적인 것일 뿐 실질적인 도움은 존재하지 않아요.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곧 빚이요 을이되는 길이겠죠.

     

    자살지옥을 외치는 이세계에선 자살은 하는게 아닙니다. 당하는겁니다.

     

    그리고 당하는 자살은 억울한 사회적 타살입니다.

     

    이모양인 사회에서 자살 방지를 시도하고자 하는 자들이 하는 짓거리들이랍시고 존재하는 짓거리들은 내눈에는 그저 자살안하고 더~ 고통스러워하도록 관찰하는 실험체를 다루는 실험같아요. 얼마나 버티나는 종종 궁금할 뿐 돕고싶진 않고 일부는 오히려 자살자, 자살희망자들을 헐뜯는 사디스트새끼들이거나요. 아니면 방관자일뿐이겠죠.

     

    억울한 사람은 혼자만 억울하고 슬프고 분노하다가 조용히 뒤지면 되는겁니다. 그 당사자의 심정이~ 사연이~ 어떻든, 인과관계가 어떻든 상관없구요.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른 심정, 사연 인과관계따위 알바 아니잖아요? 경위마저도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 실용적인 부분만 추출해서 기록하잖아요.

     

    억울하지 않는 사람은 억울한 사람을 이해 못해요. 그러기도 싫어하구요.

     

    이게 지금까지의 세상이네요. 이딴 세상이 계속 유지되는데, 그것때문에 살기 싫은 사람이 자살하면 패배자취급당할 뿐입니다.

     

    누군가에게 있어서는 지금도 죽어서도 모욕당하는 자살자들중 자살하기 전까지 그저 다수들의 거대한 때쟁이 흐름에 군말없이 휘둘리며 버텨주는 아량을 내주던 고마운 사람들 중 끝끝내 못버틴 ‘고마웠던’ 사람들일 뿐이기에 배신감, 괘씸함도 느낄 수도 있겠지요.

     

    남겨진 사람은 어떡할거냐는 말도 듣고보다보면… 끝끝내 못버티고 먼저 가버린 사람이 남겨진 사람보다 더 나약했을테니 똑같은 환경과 상황이라도 상대적으로 더 힘들었을거란 생각을 인정하기 싫다는 걸 강하게 느끼곤 합니다.

     

    끝까지 못버텨서 비겁하다고 하는건 마치 양아치가 괴롭히는 대상에게 하는 소리같아요? 거기까지라도 티내고 힘들어도 버티며 괴로워도 달려와준 것을 충분히 애썼다는 고마움와 묵념을 표하는게 그렇게도 극혐일까요? 티라도 내면 전력을 다해 제거하려는 느낌이에요. 마치 상처가 나면 그것을 매꾸려는 것처럼요.

     

    범죄자가 사회의 구멍 또는 암세포라면 자살자들은 마치 죽은 암세포와같달까요.

     

    왜 관용과 자비심, 이타심을 누릴대로 다 누리는 강자나 높은 사람에게만 보이고 아랫사람, 약자에게는 그것도 사치다. 뭐 아깝다 이런걸까요?

     

    태어나고보니 ‘거대한 다수를 휘두르는 소수의 권력’이라는 갓난아기의 생때라는 재앙에 퍼주고 먹여주고 달래주는 대비에 온 사력을 다하는 것이 인간이다!라고 외치는듯한 인간으로 낳음당해 못버티겠어서 그만두는 것도 죄고~ 자살은 죽어서도 죽을 죄인듯한 세상에 태어났네요.

     

    전 지금도 가끔씩 권력자들, 재벌가들이 갓난아기처럼 느껴져요. 다만, 가진힘이 너무나도 막강해서 쿵!! 하면 땅이 꺼지고 쾅!! 하면 많이들 죽어나가기 때문에 그게 무서워서 우쭈쭈해야하는게 당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별 차이없는 옆사람부터가 나서서 입막음, 또는 조용히 매장시켜서 아무렇지 않은척 없없던 척 할 수 있게 수습하는 꼬라지같거든요. 이런 갑을 관계까 유지될 수박에 없느냐 아니면 언제든 뒤바뀌거나 못해도 공멸이라도 할 만하다. 등으로 갈리는 것은 단지, 갑의 힘에 따라 갈릴 뿐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갓난아기야 뭐 집어던지면 쉽게 죽이겠지만 막강한 권력자한테서의 그짓을 한다는것은 깃털로 바위베기일 뿐만 아니라 깃털로 베려던 바위보다 더 강력한 철덩어리로 찍어 사람 터뜨려버릴정도의 힘으로 돌아오는 셈이니 엄두를 못내죠. 그 힘이 더군다나 대상뿐만 아니라 위로 3대이상 아래로 3대이상 멸하거나 없으면 가까운 지인들에게 스플래쉬 대미지도 찍어내는 그런거죠. 비유하자면 그런겁니다. 빚에 이자가 붙고 이자가 빚보다 커지는 그러니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이런걸 한순간에 압축된걸 받게되는게 쿠데타, 혁명, 하극상, 내부고발 등이 실패할 경우인거죠.

     

    못버티면 임병장 견디면 윤일병같은 피해자가 군인이나 병사가 아니라 일반사회의 일반인일 뿐인데 그 누구도 이러한 구멍을 오히려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마치 자기가 싼 똥을 에잇 드러워 하고 얼른 변기에 내리는것처럼요. 여기에 그 어떤 이도 똥이 나아지려는, 좋아지려는, 강해지려는 낌새를 그대로 두고보진 않잖아요? 아마 유전자 레벨에서부터 이게 있을지도 몰라요!

     

    이런 사회를 그래도 견디고 버텨야한다… 마치 삶을 주는 갑의 고마움을 표하며 괴로워도 살아가는 영광과 기쁨을 누려라… 목숨이 아깝다면 응당 그래야하고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겁없는 사람들은 나가리고. 물론 용기도 필요하지만 그 용기로 살아가라는 말도 나는 와닿지 않은게 죽을 용기를 살아가면서 세상 비위 맞추라는 말같거든요. 죽을 용기를 죽을때나 쓰겠지… 세상과 사회때문에 살기싫은 사람에게 통할 말이 아닐거란거죠. 기껏 자살을 안해드렸다. 진짜 자살자들이 자살을 안해줬다. 자살희망자들에겐 그게 사회에게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이번에야말로 마지막으로 배풀 수 있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밑바닥이 드러나도 계속 파고 없는 땅도 계속 파서 한계를 넘어서 쥐어짜며 베푼 또는 지금도 베풀고 있는 유일무이한 관용일텐데.(물론 이것마저도 주제넘은 걸 수도 있지.) 그럴 수록 우습게 볼 수 있는 자신감만 키워주는 꼴이죠. 그러다보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여유도 생겨납니다.

     

    자살자는 지옥을간다? 자살은 비겁하다? 자살의 반대말은 살자? 패배자? 아니야아니야… 뭔가 부족해. 이건 이제 질렸어.

     

    자살자들을 표현할 획기적인 기발한 아이디어가 뭘까???

     

    맛들림.

     

    힘없는 구멍 하나 존나 무서워서 바퀴벌레 잡을 기세로 전력을 다해 매꾸려는듯한 힘.

     

    그러고나서도 당분간 찡찡거릴테니 또 우쭈쭈해줘야하고.

     

    이럴땐 꼭 마치 세상이 연극같네요.

     

     

    0 1 답글
    • K.Marx의 프로필
      K.Marx 님의 중재 의견 - 4달 전

      자살에 대해 반대의 입장에 서 있지만, 당신이 자살존중을 긍정하고 옹호하는 배경과 근거들에 대해서는 깊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자살의 찬반을 논하기 이전에, 그 구성원이 자살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회구조와 환경에 대해서는 이야기 한적이 없는것 같은데 오히려 이것이 더 핵심적인 내용이겠죠.

      인간일반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회와 국가가 인간일반의 자살을 유발하고 이를 단순히 사회적 손실/피해 와 같은 단순히 기계적인 면들을 부각시키는 것은 국가와 사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모순이죠. 인도주의를 내세우면서 실질적으로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비기득권층을 기계취급하여 자살을 유발하는 국가나 사회는 해체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민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기득권의 국가는 인민일반을 위한 도구가 아닌 소수의 기득권의 쾌락충족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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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gwon605의 프로필
    Lv2 mgwon605 님의 반대 의견 - 4달 전

    저는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사회가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하는 분위기에 반대합니다. 자살. 자살은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생명을 끊는 것입니다. 주로  힘든 사람들이 고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곤 합니다. 때문에 이또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잉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자살을 존중해 주는 것도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명시하고 싶은 것은 자살 그 자체가 갖는 의미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무시한 채 자살을 긍정적이게 생각하는 것은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에게 좋지않다는 것입니다. 자살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을 배제하면 자살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강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 이 사실 자체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안타깝고 슬픈 현상입니다. 이렇듯 자살은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선택이라는 게 스스로를 목숨을 끊는 것이라는 것이 안타깝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어찌 됐든 자살이 행복한 선택은 아닌 것 입니다. 그런데 민약 사회가 자살을 개인의 선택이리는 이유로 긍정적이게 바라본다면, 사람들은 힘들 때 마다 자살을 당연한 선택으로 여길 것 입니다. 이것은 분명 건강한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삶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저는 자살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긍정적인 시각으로 비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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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학생의 프로필
    학생 님의 반대 의견 - 1달 전

    자살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부분은 동의하지만,  존중되어야 할 행위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살 하는 사람들은 인지적으로 굉장히 시야가 좁아진 상태이고, 자신이 겪고있는 고통의 해결책이 자살 뿐이라는 인지적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개인적으로 올바른 정신 상태에서 한 것인지, 그런 판단을 제대로 내릴 수 없는 상태에서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으로 인해 자살했다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당장 중요한건 이런 토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논점이탈이라고 하시면 할말은 없지만, 주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 안부라도 한번 더 물어보는게 훨씬 더 가치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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