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하나

[ - 디베이팅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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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ussion

삶을 스스로 버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에 관한 논쟁 중 하나가 바로 자살에 대한 정당성 문제이다. 인간의 선택은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언제나 존중 되어야 하며, 인권으로부터 도출되는 선택권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자살은 일종의 선택권이자 개인의 권리 차원으로 기능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살은 결국 일종의 살인과 다르지 않으며, 인간에게 살인을 할 선택권은 어떠한 차원에서도 긍정될 수 없다는 반대 주장도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한국, 그리고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자살률, 과연 자살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

 

data

자살(이진홍 저, 네이버지식백과)

대한민국의 자살(위키백과)

2014년 사망원인통계(통계청, 2015.09.13)

자살 예방 커뮤니케이션(김호경 저, 네이버지식백과)

*네이버 지식백과의 경우, 하위링크를 통해 다양한 부가정보의 참고 가능

 

news

선택이라는 이름의 절망(2015.10.21, 함께걸음)

죽음을 배우는 시대 “웰빙 만큼 중요한 ‘웰다잉'”(2015.09.11, 오마이뉴스)

조용한 자살이라는 항변(2016.05.15, 미디어스)

 

pros opinion

a.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한, 자살은 개인의 선택권 차원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몫이다.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고, 개인은 언제나 더 나은 방향을 향해서 선택을 하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적어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것이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b.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만한 고통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인간 필요에 의한 산물이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면서 삶에서 얻는 기쁨이나 만족보다 불만족, 고통이 크다면 스스로 삶을 포기해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불과하다.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누구도 책임져 줄 수 없으면서 힘겨운 삶을 강요하는 것은 개인에게 고통을 감수하도록 하는 행위이다.

 

cons opinion

a. 자살은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며, 2차적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살은 존재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버린다는 선택 자체가 사회적으로 크든 작든 윤리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받게 되는 심리적, 감정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죽음 이후의 처분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살은 타인과 사회에게 2차적인 문제를 남기고 가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b. 생명의 존엄성은 처음부터 인간의 선택적 차원이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탄생을 처음부터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죽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생명의 존엄성은 개인의 선택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 맞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는 것은 개인의 권한 밖 문제이다. 생명의 존엄성은 스스로 포기할 수도, 포기해서도 안된다.

 

reference

한국생명의전화

중앙자살예방센터

안락사는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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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댓글 현황 (116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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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inions

  1. 차호의 프로필
    Lv1 차호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이 토론에 의견을 내놓기 전 작성자는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인걸 감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갔을 수 도 있습니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하나’ 저는 이 주제에 대해 함부로 반대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찬성도 할 수 없고요.
    세계 보건기구의 자살의 대한 정의는 “자살이라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의지를 지니고 자신의 생명을 해쳐서 죽음이라는 결과에 이르는 자멸행위.” 라고 합니다. ‘내’가 ‘자신’의 ‘의지’로 생명을 해치는 ‘자멸’행위, 그렇다면.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강제’로 해치는 ‘살인’행위와 무언가가 다른걸까요? 두가지 모두 생명을 해친다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하지만 자살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자멸하는 것이고, 살인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생명을 잃는 것이겠죠. 여기서 어떠한 사람들은 자살든 타살이던 같은 살인이라고 합니다. 생명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살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어떠한 죽음이던 어떠한 살인이던 이유가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교통사고, 병에 걸려서, 복수를 하고싶어서, 잠재적인 분노, 정신질환, 사소한 이유 등등이 있겠죠. 하지만 어떠한 일이라도 살인이 정당한 일이라고 볼수 있을까요? (정당방위등은 제외 하겠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선 잘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살은 어떨까요. 이유 없는 자살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미래의 대한 두려움, 학업의 인한 스트레스, 사회의 대한 반항, 도움요청 등등 많은 이유가 있을겁니다. 타인에 인해 자살을 했을 경우는 그 타인이 살인범이 되는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결과가 어찌되었던 살인이란 결과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원인인 사람의 죄가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어찌 되었던 이 이야기는 넘어가고, 그렇다면 자살에 이유를 더한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표적으로 3가지로 나뉩니다(이것또한 제 생각입니다.). 불쌍하다고 동정을 하거나,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무시하거나, 너무 나약하다고 비난하거나 (하지만 저의 생각으론 자살하는 사람들이 결고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살은 자신 자멸하는 행위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않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자살시도를 했었습니다. 이유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평소에는 별로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죽음이 코 앞에 닥치면 두려움은 엄청나게 커집니다. 죽음에 대한 경험은 어디서나 느낄수 있습니다. 물에 빠지거나, 교통사고를 당할 뻔하거나, 등등.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알면서도 그런 행위를 하는 건 지금의 상황은 죽음의 대한 두려움보다 삶의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일겁니다.(이건 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거기 때문에 의문형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의 자살이 구원으로 느껴집니다. 그러한 것을 알기때문에 저는 반대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흔한 이야기로 지금의 상황을 이겨 낸다면 방법을 찾을수도 있기때문에 저는 찬성 하지도 않겠습니다. 저는 그렇기에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주제는 반대도 찬성도 하지 않겠습니다.

    5 2 답글
    • 반대의견의 프로필
      반대의견 님의 반대 의견 - 1년 전

      저또한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차호님의 의견과는 좀 다른데요, 타살은 누군가에 의해서 내가 의도치 않게 피해를 당하는 것이고, 자살은 자신의 의동 의해 스스로 죽는것인데 과연 두가지를 비교하는것이 맞는걸까요???

      0 0
  2. 헌뤼의 프로필
    Lv1 헌뤼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될 수도, 존중해서도 안됩니다.
    자살의 원인이 오로지 개인에게서만 비롯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자살의 애석한 결과를 그 행위자 본인만이 끌어안을 수 있는 것일까요? 처형대 앞에 선 억울한 사형수는 할 말이 많으나, 시체는 말이 없습니다.
    적어도 유사 이래로는 우리의 삶이 개인적이며, 독단적인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역사는 관계 속의 사건을 서술하였고, 우리 네 삶은 치열한 관계 속 희노애락을 품고 있습니다. 자살은 온전한 개인의 독단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상황이 이끌어낸 슬프고, 비참한 최후의 사투인 셈이죠. 어떻게 그것을 보고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라고 말을 하며, 존중이라는 말로 애써 포장할 수 있습니까. 인간관계 속의 우리의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6 1 답글
  3. 다덤벼라의 프로필추천댓글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써 존중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 자살은 엄밀히 따져서 사회나, 병으로인한 타살이다.
    사회에서 실패하고, 고난을 겪으며 우울증등에 걸려서 결국 결정하는게 자살이다. 즉 사회가 죽인것이다.
    혹은 난치병에 걸려서 (존엄사) 더이상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자살을 선택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그 사람을 내몬것은 고통이다. (존엄사는 아래에서 다루지 않겠다.)

    그런데 왜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써 존중을 해야하는지 묻는사람들이 있을것이다.
    내가 보건데 살해를 당한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 아니면 살해를 가한사람을 존중해야 하는가?
    살해를 가한 사회따위는 멀쩡히 존중받으며 잘 남아있는데 왜 그로부터 살해당한 사람은 존중받을수 없는가?
    자살한 사람을 존중해야 비로서 사회를 처벌하고 사회를 바로잡아 사회로부터 살해당하는 사람들을 막을수 있다.

    사회로부터 살해당한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들은 사회로부터 살해당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사회 낙오자’ 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뿐이다.
    그들의 비극적 살해당함은 ‘자살’ 이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결국 스스로를 죽였다고 폄하할수 있지만 따져보면 그들은 사회로부터 살해를 당한것이기에 비난할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그들을 죽인 그 살해자다.

    7 2 답글
    • 헌뤼의 프로필
      Lv1 헌뤼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예 물론 개인의 자살이 집단과 사회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동의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자살한 사람을 존중하는 게 집단과 사회를 처벌하는 걸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죠?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한다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원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귀결될 여지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무관심이 결코 처벌이 될 수는 없죠.
      최근에도 한 검사가 조직 내에서 상사의 폭행과 폭언 그리고 과도한 업무량으로 자살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과연 언론과 여론이 그의 자살을 선택으로 존중해서 조직 내의 비인간적인 상사를 비판하고 잘못된 조직문화와 시스템을 고쳐야한다고 이야기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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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헌뤼

      뭔가 오해가 있으신것 같습니다. 제가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써 존중해야 한다는것이 ‘자살은 존중될 행동이기에 다같이 자살하자’ 이런게 아닙니다.

      이미 제 글이도 썼지만, 제가 보는 자살은 개인의 선택 이전에 사회로부터 살해를 당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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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아 중간에 글쓰다가 잘못하고 댓글달기 눌렀네요.. 윗글에 이어서 씁니다..

      그 개인이 자살을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그것을 존중하여야 그 사람이 처했던 환경에대해 비판을 할수 있는것입니다.

      만약 그 자살한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사람의 선택이 잘못되었고,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일해서 죽었다고 생각할수 있게 되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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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obnj93의 프로필
    Lv6 obnj93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을 존중한다’ 이 문장이 굉장히 저를 혼란스럽게 만드네요. 우선 자살이란 행위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사회적으로 발생해선 안되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생명이라는 가치의 귀중함을 져버리는 행위이기도 할 뿐더러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무책임함을 나타내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자살을 존중한다’는 표현은 자살을 찬성한다는 뜻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살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인 것이죠. 즉 자살이 갖는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저보다 먼저 글을 쓰신 분들을 보니 저와 생각은 비슷하신 것 같습니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개인이 ‘그 사회에서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되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자살이라는 행위를 ‘존중’해야합니다.

    이 존중의 의미는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자살의 조장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삶을 포기할 정도로 힘든 삶을 살았고, 그 삶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지를 파악하는 태도입니다. 자살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아래와 같은 태도를 보여줍니다. ‘아니 아무리 사는게 힘들었어도 자살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죽을 힘이 있었으면 그 힘으로 살아보지…’라는 한탄 섞인 비판을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자살이란 것이 가지는 사회성을 희석시키는 태도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정말 자살이란 행위를 끊고 싶다면 그 첫 걸음은 자살에 대한 ‘존중’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4 1 답글
  5. 미나미의 프로필
    Lv3 미나미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저는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아 우리에게 생명의 존엄성의 선택이 없다 한들 한 번 태어난 인생은 그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기에 그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부모에게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자기의 의견을 뚜렷이 말하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록 우리에게 소중한 생명을 주신 분들이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리 각자의 인생입니다. 자신의 인생이기에 타인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더 중요시 해야합니다. 자살로 인해 2차적인 피해가 생겨 이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자살을 하지 않으면 더 고통스러울 인생을 살아가야 할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요? 자살은 결국 이렇게 살 바에야 나아 질 것이 없기에 선택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2차적인 피해를 주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그 전부터 관심을 가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줬더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안하지 않았을까요? 자살을 택한 사람도 결국엔 의지할 곳이 없어 무기력해져서 죽음을 택한 것일텐데 과연 그 사람들에게 갈 피해를 생각해 줘야할 필요가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3 0 답글
  6. hje2013의 프로필
    Lv5 hje2013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누구도 자신만의 힘으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선택은 나뿐 아니라 내 주변의 모두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을 상기하면, 결코 윤리적인 인정과 존중을 해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단지, 본 주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 망각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됩니다. 그 망각의 원인은 개인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는 것이죠. 극단적 선택에는 이유가 있고, 보통 그 이유는 그를 둘러싼 사회에 원인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0 0 답글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저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것에 동의하고 타인들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사실에도 동의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한가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떤사람이 실직하고 돈도 못벌고 있습니다. 처자식들도 돌봐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당장 먹고살 형편이 안됩니다. 몇일 막노동 뛰면서 근근히 먹고 살았지만 요즘 몇일째 일도 없어서 몇일을 굶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굶어죽을 판이죠.
      그래서 이 사람은 하는수없이 먹을것을 가게에서 훔쳤습니다. 왜냐면 처자식이 굶어죽는꼴을 볼수 없었기 때문이죠.

      이럴때 이사람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까 해주면 안됩니까?
      결국 본인이 ‘선택’해서 물건 훔친거니까 존중따위는 필요없는지요?

      자살이 타인에게 해를 끼칠수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살 하는 사람은 그냥 심심해서 죽고 싶다고 선택한게 아닙니다.
      사회에서 압력을 받다 받다 못해서 어쩔수 없이 ‘선택’ 하는게 자살입니다.
      결국 ‘선택’ 해서 자살했으니까 존중이고 뭐고 필요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압력을 가한 사회는 잘만 있는데 자살한 사람은 자신이 ‘선택’ 해서 죽은거라 존중해주면 안되는지요?

      학교폭력, 왕따 엄청 시달려서 자살했는데 그래도 존중같은거 없는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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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일단 자살을 단순히 ‘현실에 직면해서 선택한 자기 파괴적 자살’의 개념으로만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되었던 자살 외에 전태일의 분신 자살, 그 밖에 이야기되는 충신의 자살 등, ‘자기 신념에 따른 자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찬성측 분들의 논리를 보자면, ‘자연사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등의 말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현실에 직면해서 선택한 자기 파괴적 자살’이 사회의 압력으로 인해 당연히 생기는 것이라면, 자살자의 선택은 주체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주체적 선택이 아닌데, 어쩌면 선택을 가장한 당연한 결과라 볼 수도 있는데 존중을 어떻게 하죠? 물론 이런 선택에 대해 자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 생각하지만, 자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당연히 존중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비약이라 생각합니다. 천안함 사건 당시 산화자들에게 거의 아무도 책임을 안 물었습니다. 이것이 산화자들을 존중해서 책임을 안 물은 것입니까?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살을 존중하는 선택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몇가지 질문을 통해 그 선택이 완고한지, 아니면 주체적인지부터 확인하고나서 행동을 결정하는 것, 그것이 자살을 존중하는 자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참고할만한 토론을 밑에 소개합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4 1 답글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말씀하신데로 자살자의 선택이 주체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압력을 받아 죽었기 때문이죠. 다르게보면 사회로부터 살해를 당했다고 말할수 있는것입니다.

      자살자에게 책임을 묻는것은 과도하다고 생각하시면서, 왜 존중으로 이어지는것은 거부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님께서는 피해자가 존중될만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하물며 범죄를 행한 가해자도 인권이니 뭐니 하면서 존중 어쩌고 말하던데 왜 살해당한 피해자는 존중되면 안되는건지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존중을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으나, 선택에대한 존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선택을 이해해 줄수 있느냐 이런거죠.

      강압적 선택의 한 예를 보여드리죠.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는데, 강도가 그사람한테 말하길 돈을 안내놓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강도한테 돈을 줬죠.
      여기서 볼때 그사람의 선택이 잘못됬나요? 결국 선택해서 돈준건 당신이니까 니 책임이다.. 뭐 이런건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실테고.. 이런 강도 따위에게 돈받친 행위나 선택은 존중될수 없다.. 뭐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대충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살하는 사람 볼때 결국 지가 선택해서 죽는거지 하며 존중같은걸 왜 해줘야되? 이렇게 생각하실지는 몰라도 직접 죽는 당사자의 상황에서는 사회와 환경으로 고난을 받다 받다 더이상 받아낼 도량이 없어서 결국 떠밀린건데 결국 ‘선택’ 이라는 굴레로 싸잡아서 그 선택에대한 존중을 할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시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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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저는 왜 주체적으로 행한 일만이 존중받을수있고 그렇지 않은것은 존중받지 못하는것이지부터가 의문입니다.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로써 존경받아 마땅한 일을 예시로 들어주십시요. 뭐가 그렇게 주체적이여서 존경받을만한지 궁금합니다.

      임진왜란당시 조정으로부터 내몰려 죽음을 택했다 할수있는 이순신장군의 행동도 조정의 강압때문이였기에 존경받지 못할일입니까?

      일제의 탄압과 생활고에 못이겨 들고 일어난 독립운동가와 의병들도 일제가 강압한거라서 존경받지 못할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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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존중: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나 네이버 어학사전에 나오는 뜻입니다. 예시로 ‘인권 존중’,’인간 존중’,’개성 존중의 시대’ 등이 나옵니다. 연민이 존중이 될 수는 없겠죠.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가 존중에 필수적이기는 하나, 모든 이해가 존중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모 독립운동가가 고문에 못 이겨 변절을 했다고 한다면, 그 변절을 이해할 수는 있겠죠. 허나, 우리 입장에서 그 변절을 존중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존중한다는 것은 변절 후 매국 행위까지 아무 잘못 없다고 하는 것일텐데요?

    이처럼 존중은 이해를 넘어선 행위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살을 주체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살을 존중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살에서 자살자를 배제하고 판단을 한다면, 자살을 존중할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1 1 답글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가 고문에 별절했다고 해봅시다.
      그 변절을 이해할수 있다고 하셨죠?
      그런데 그건 어떠한 관점에서의 이해입니까?
      그 고문당한 개인의 관점에서의 이해입니까? 아니면 독립을 바라는 사회의 관점입니까?
      당연히 그 개인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그 개인의 선택이 존중될수 있는것이죠.

      한가지 혼동하시는것이 있으신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될수 있느냐고 묻고있죠.
      즉 사회적 윤리관으로 자살이 정당화되고 행해져야할 당위성이나 당위로써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의 그 고문을 이해할수 있기에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민족에대한 변절이기에 민족적 측면에서는 이해되어서는 안되는것이죠.

      한 개인의 선택이 이해될수 있다고해서, 혹은 존중될수 있다고 해서 그사람이 정당화될수는 없는것입니다.
      앞서 hje2013 님에게한 답변에 있는 예시를 읽어보십시요.
      처자식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음식을 훔친것은 개인의 선택으로써 존중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법을 어긴것으로써 법의 관점에서는 그것을 처벌할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여기서 개인의 선택으로써의 자살을 과연 존중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그것이 사회적인 보편윤리에서 어긋나므로 자살이 권장되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 개인의 환경과 고초를 이해하기에 그 선택이 비록 사회적으로 잘못됬다 하더라도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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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다덤벼라님의 의견을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다덤벼라님 역시 제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컴퓨터에 출처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들 많이 다운 받아서 바이러스에 걸려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다덤벼라님은 그 컴퓨터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 바이러스에 걸려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죠. 그렇다면, 다덤벼라님은 이 컴퓨터의 행동을 존중할 수 있습니까? 컴퓨터가 주체적이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습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자살을 주체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살을 존중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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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저는 왜 주체적으로 행한 일만이 존중받을수있고 그렇지 않은것은 존중받지 못하는것이지부터가 의문입니다.

      인간이 주체적인 존재로써 존경받아 마땅한 일을 예시로 들어주십시요. 뭐가 그렇게 주체적이여서 존경받을만한지 궁금합니다.

      임진왜란당시 조정으로부터 내몰려 죽음을 택했다 할수있는 이순신장군의 행동도 조정의 강압때문이였기에 존경받지 못할일입니까?

      일제의 탄압과 생활고에 못이겨 들고 일어난 독립운동가와 의병들도 일제가 강압한거라서 존경받지 못할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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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가후의 프로필
    Lv1 가후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자살이 물론 개인의 선택일 수 있으나, 그것이 하나의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할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오늘 아침에 빵을 먹었다면 저는 그 선택을 존중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봐도 빵을 선택한 그 개인에게는 아침에 빵을 먹는게 가장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 시키는 선택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자살을 했다면 저는 그 선택을 존중하지 않을 겁니다. 비합리적 선택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존엄성과 그 값어치를 감히 측정할 수 없다는 철학적 생각을 보자면 자살은 다른 어떤 선택보다는 본인의 효용을 극대화 시키는 선택은 아닐겁니다. 생명을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이죠. 자살이 개인적 선택으로 존중받을 수 있으려면 자기 스스로 태어난 ‘신’만이 존중받을 수 있을 겁니다.(신이 존재한다라는 가정하에서) 인간 한명 한명의 존재는 억겁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우주 빅뱅의 먼지부터 지금 이 시대에 오기까지 상상할 수 없는 확률을 뚫고 나온 생존에 대한 쟁취의 역사였습니다.
    고로, 생물의 원초적 본능인 생존본능을 저버린다는 것은 인간의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뤄온 모든 산물들을
    부정하는 것과도 다름이 없죠. 고로, 자살을 존중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개인의 비이성적 취향일 뿐이죠.

    2 1 답글
  10. 깨어있는국민의 프로필
    Lv3 깨어있는국민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했을때 이주제를 뛰어넘어 본다면 자살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사회가 어둡고 단면이 그렇기에 그런것이라고 봅니다. 주제와 벗어나지만 현실을 아는것이 우선이라고봅니다.
    그런 사회적약자에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우리스스로의 무지와 무시 그두가지가 그들을 불행하게 아니 더욱더 자살하고 싶게하지요.
    아이들은 학교라는 감옥에 직장인은 상사라는 벽과 회사일이라는 과업에 그들은 불행하게 일합니다.
    자살을 존중하고 안하고의 문제가아닌 우리사회의 어두운단면에 그 어리석은 의지라는것이 부족하고 개인의 선택이 그런불행을 계속 낳겠지요.
    이것은 지극히 저자신의 개인적 의견입니다.
    틀린논리가 있을수도있지만 저는 이논리가 맞다고 생각드네요.자살1위라는 오명은 결코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만든것이 아닙니다.

    1 1 답글
  11. 중도보수의 프로필
    Lv5 중도보수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삶이 힘들고 사회가 힘들게 하여 자살하신 분들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각자 개인의 선택이니 그 또한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존중’이라는 단어가 상당히 거슬리기까지 하여 반대하겠습니다. 존중이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를 떠나서도 사회 통념상 아니, 제 개인의 통념상 무언가 본받을 만한 것이 있을 때 존중이라는 단어를 쓰지요.

    개인의 선택이라 존중받아야 한다? 굳이 대체단어를 찾는다면 개인의 선택이라 보장받아야 한다가 되겠지요. 자유로운 사회라 개인의 선택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그 단어의 쓰임새가 굉장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모든 행위들은 선택에 의해 이뤄집니다. 여러 선택지 중에서 각자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받아야 하겠습니다만 그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은 쓰임새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이라는 행위는 존중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윗 분들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일제의 만행에 굴하지 않고 자살을 택한 열사 분들은 존중받아야 하지요. 하지만 자살이라는 행위가 아닌 애국이라는 행위를 존중하는 것 입니다.

    아마 누구나 자살을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것 입니다. 혹자는 시도까지 해 본 적도 있으시겠지요. 제 인생은 험난하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살을 꿈 꿔 본 적도 없습니다. 다만 장교로 있을 적에 맡은 임무 상 유서를 써 놓고 다니기는 했습니다. – 태양의 후예 같은 특수부대 아닙니다… – 그래도 스스로 죽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살하신 분들의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윗 분 중에 사회가 죽였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던데 어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 처럼 살아가는게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하고 보고 느끼는 살아있는 동안에 이뤄지는 행위와 삶의 과정들이 항상은 아니지만 신기하고 기묘하게 느껴지지요.

    이런 저런 얘기를 했지만 저는 자살이라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해할 뿐 입니다. 그 분이 겪은 고통이 감히 제가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이기에 그런 선택을 하셨던 것이라 이해할 뿐입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6.25 전쟁 때 남침하는 북한 탱크들을 향해서 수류탄을 뽑아 들고 달려가셨던 분들은 ‘자살공격’을 하신 것이지요. 전 그 분들을 존경합니다.- 사실이라면 말입니다. – ‘자살’이라는 행위를 존중 혹은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본인의 목숨을 스스로 버린 애국의 한 행위이기에 존중하는 것 입니다.

    자살이 개인의 선택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도 앞에서 얘기했듯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선택은 보장받아야 하는 것이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이지요.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기에 선택의 책임 또한 개인이 집니다. 죽으면 다 편해진다고 하지만 그 누구도 모릅니다. 죽음 뒤에 사후세계가 어떨지 말이죠. 천국일 수도 있지만 여기보다 더 한 지옥일수도 있고 완전한 무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죽게 마련인데 지금이 힘들다고 굳이 그 시기를 당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존재이니까요. 어제와 오늘이 힘들면 내일도 힘듭니다. 내일의 삶이 어떨지 예상하는 바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내일이 1년 뒤 10년 뒤라고 한다면 그 결과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아질 가능성은 있겠지요. 죽지말고 버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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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을 존중하지 않는 이유가 ‘본받을만한게 아니라서’ 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보장’ 은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제가 볼때는 오히려 자살을 보장해줘야 한다는게 말이 더 안됩니다. 아니.. 자살을 본받을만한게 아니라고 하시면서 자살하는것을 권리로써 보장하고 보호하자는게 앞뒤가 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보장: 어떤 일이 어려움 없이 이루어지도록 조건을 마련하여 보증하거나 보호함.

      이라고 국어사전에 써있습니다.
      자살이 잘 이루어지게 조건을 마련해서 보증해주거나, 보호해줘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자살을 존중은 합니다만, 그걸 보장해줘야 한다는것은 사회적 시각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자살을 존중도 안하시면서, 그걸 보장해줘야 한다는것은 그저 ‘선택’ 이기 때문이라는것은 잘못됬다고 봅니다.
      자살하는것을 최대한 막아야지, 어떻게 자살을 보장시킬수 있는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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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707의 프로필
    707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태어나자마자 죽고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행복한데 죽고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이가진감정중 오직 부정적인 감정만이 자살의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죽을만큼 행복한사람도 죽고싶진않을겁니다.
    찬성의 일면에는 어느정도의 방종이 깔려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나 죽고싶어 라고했을때, 그래 너의선택이니존중할게 죽으렴, 너는 나와상관없는 타인 너의선택이니 나는 어떠한 개입도하지않겠다는 태도입니다. 하지만 나와 관련이 깊은 대상이라면 얘기가달라지겠죠. 자살을 선택하게된 원인을 해결하려 들것입니다. 때문에 모르는 행인1의 자살에 찬성을하더라도 내가족이나 지인에대해서는 섣불리 찬반을 선택하긴 어려울겁니다.
    자살이라는 결과적 원인이 논리가아닌 인간의감정에서 비롯된 사안이기때문에 모든경우에 찬성혹은반대입장을 고수할수없는 선택적문제라고생각이드네요.
    하지만 토론이니 반대입장에서 마무리합니다. 별핵심적근거가 없는듯..
    의견을 피력하면서 한참더 공부해야겠다는생각이드네요.

    2 2 답글
  13. 중도보수의 프로필
    Lv5 중도보수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다덤벼라

    위에 써 놓으신 글들을 보니 자살도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존중하신다는 입장이신 거 같은데 전 자살이라는 선택이 존중될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굳이 자살을 개인의 선택이라는 형용사로 존중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개인의 선택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지 자살을 보장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이 토론의 화두는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흔히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존중에 자살이라는 행위도 포함이 되느냐, 개인의 선택은 어떤 선택을 막론하고 존중받아야 되는가 입니다. 저는 개인의 선택에는 존중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고 보장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으며 자살이라는 행위에 한정짓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나 ‘자살은 개인적 선택이라 보장받아야 한다’ 라고 물으시면 ‘보장받아야 한다’라고 답하겠습니다. 저는 안락사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뇌사상태에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디테일하게 물어보신다면 ‘보장할 수 없다’라고 답하겠지요. 뇌사상태에서는 본인이 선택할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그 이전에 문서나 비디오 등으로 의사를 표명해 놓았다면 본인이 미리 선택을 한 것이기 때문에 보장할 수 있다고 하겠지요.

    존중이라는 단어는 앞에 분도 말씀해드렸지만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님께서는 자살을 높이어 귀중하게 대하고 계십니까? 아니 왜 그럼 자살을 막아야 합니까? 자살할 사람들은 높이어 귀중하게 대할 존재들인데 굳이 막을 필요가 없지요.

    저는 앞에서 님이 써 놓으신 글 중에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맞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토론의 화두는 자살이 아니고 개인의 선택이 주 입니다. 자살은 토론을 격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한 것이지요. 자살이라는 건 대부분 하지 말아야 할 행위라는 것과 개인의 선택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일반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반과 정 두개를 충돌시키기 위해 사용된 것입니다.

    어쨋든 나중에 님께서 자살을 존중한다고 말씀하셔서 좀 혼란스럽기는 합니다만 뭐 어쨋든 제가 이어서 써 놓아 의도와 다르게 전달될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럼 나눠서 쓰지요.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라 존중받아야 하는가? -> 아니다. 자살은 존중받을 수 없다. 다만, 개인의 선택은 보장받아야 한다.

    저는 자살은 존중받을 수 없는 행위라고 분명히 나눠서 썼습니다. 좀 더 디테일하게 말씀드린다면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은 개인이 선택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말씀드리지요. 선택이라는 행위는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택과 결과는 틀린 단어이지요? 선택은 보장받아야 하고 그 결과는 막아야 한다가 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 자살을 보장해 줘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드리지요. 저도 이 내용에 대해서는 님이 말씀해주셔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안락사는 보장, 그 외 형태의 자살은 안됨. 이 말에 대해 토론하고 싶으시면 밑에 이어서 달아주세요.

    님께서 제 글에 달아주신 내용이지요.

    제가 자살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만..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님은 자살을 존중을 하시는데 왜 그걸 보장해 줄 수 없으시다는 건지 그 이유가 궁금하네요. 존중은 제가 앞에 써 놓았듯이 높이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것인데 그 높이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자살이라는 행위를왜 보장해 줄 수 없으신지 궁금하네요. 자살이 높이 여기고 귀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라면 자살한 사람은 높아지고 귀해진다고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은데 말이죠.

    그럼 제가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왜 자살을 존중하시나요? 저처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신다는 것이 아니고 자살이라는 행위를 존중하시는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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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Blueracer의 프로필
    Lv1 Blueracer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일단 저는 지금까지 자살한사람들의 선택 자체는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통 자살하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환경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대인관계, 금전적 어려움, 불치병 등)에서 충동적 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후회할 행동을 선택하는거 일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살아가다 가끔들리는 소식에 수능을 망해 자살한 학생이나 애인에게 차여 자살한 사람이나 또 이것 이외에도 당사자 이외 그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죽을만큼의 일이 아닌것에도 안타깝게 목숨을 끊는 일들이 많죠.. 물론 그 사람들이 당시에는 정말 힘들어 죽고싶어 자살할 수도 있겠지만 한 고비만 거치면 멀쩡히 살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않나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할 것은 자살을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방치되어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도와주는 것이 사회의 올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그러고도 미처 발견하지 못하거나 케어를 받아도 참을수 없어 죽음을 선택한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 0 답글
    • minerlock1854의 프로필
      Lv2 minerlock1854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아무리 자신이 살기가 힘들어도 자살은 자신의 소중한 한 생명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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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검은색신발의 프로필
    Lv1 검은색신발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은 저 또한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하는 행위에 대해선 동의하고 찬성합니다.

    자살을 하는 이유는 개개인의 문제겠죠.
    인간관계, 사회적인 문제, 정신적 문제 등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을 견디지 못 하고 자살을 선택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생명은 존중받아야 하며 생명은 존엄하다. 맞는 말이죠. 근데 그 생명 자체가 고통이라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은
    생명의 무게가 죽음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들에겐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며 이 고통은 감당할 수 없이 아프고 쓰라립니다.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고
    그래서 선택한 게 자살이죠.

    태어날 땐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죠.
    근데 죽음마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건가요?

    생명은 존엄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을 벼랑 끝까지 고통 속으로 내몰아야 하나요?
    그 사람에겐 죽음을 선택하는 것보다 삶을 살아가는 게 더 힘든데.

    자신의 몸무게 보다 훨씬 더 무거운 짐을 계속 들고 있으면
    근육이 버티기 힘들어 끊어집니다.

    자살이 이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감당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릅니다.
    버텼어요. 이런 방법도 써보고 저런 방법도 써봤지만 결국 끊어진 겁니다.
    삶의 의지가.

    의지와 목적이 없는 삶을 가진 사람이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까요?
    그건 그냥 빈 껍데기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정신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죠.

    그 사람에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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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Veritas의 프로필
    Lv2 Veritas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이라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끊음으로써 자신의 삶을 존엄하게 끝맺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정녕 힘들다면 이를 받아들여주는 것도 존엄성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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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맞는말기계의 프로필
    맞는말기계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이미 자살한 사람은 존중할수있습니다. 그의 선택이었고 불가역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개인의 선택으로 자살을 하였고, 저도 개인의 선택으로 그를 존중하도록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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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햇빛구슬의 프로필
    Lv3 햇빛구슬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반대합니다.

    일단 위에서도 많이 언급되었고 디베이팅 데이에서 제시한 cons opinion에도 쓰여져 있듯이
    자살이라는 행위는 타인에게 분명히 좋지 못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존중해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 그 행위를 개인의 정당한 권리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생명이라는 중대한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는 점에서 사회 전체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위에 찬성하시는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살을 존중한다는 것은 자살에 찬성하는 것도, 자살을 조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살한 사람들이 왜 자살을 하게 되었는지, 해결해야 하는 사회 문제는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일단 첫째로, 자살을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를 잘못 파악하시는 것 같은데,
    자살을 ‘존중’한다는 것은 이미 자살을 ‘이해’한다는 개념을 넘어선 말입니다.
    토론자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자살을 ‘이해’하는 것이지 ‘존중’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개념은 엄연히 다른 것이지요.
    ‘이해’는 말 그대로 사람이 특정 행위를 하게 된 배경과 원인을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manymaster님께서 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존중’은 ‘높이어 귀중하게 대함’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살에 반대한다고 하시면서 어찌 자살을 높이어 귀중하게 대한다고 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이런 자살을 존중하는 것이 자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사회적으로 자살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된다고 합시다.
    자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단순히 “조금만 더 참지…”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간 문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는 물론 자살 존중의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사회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버틸 힘이 없을 때 희망을 찾지 않고 대신 자살을 찾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살로 내가 처한 사회적 문제들을 세상에 알릴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살은 절대 선택되어선 안 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자살로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에 귀기울여 준다는 기대가 있다면,
    이는 자살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자살이 존중받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자살은 전보다 가벼운 것이 되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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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킬라의 프로필
      데킬라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은 개인의 자유이고 개인의 선택입니다. 그 본인이 도덕적, 사회적 책임을 감수할 수 있다면 위법적 행위를 저지르는 것 조차 개인의 판단이고 개인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그 위법적 행위들을 막고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의 본질적으로 깃들어있는 스스로 선택할려는 의사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막고, 노력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듣는 것은 그 개인의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자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의 생명을 담보로 세상을 도피하는 선택입니다. 무려 생명입니다. 자살하려는 개인 본인의 선택이기에 노력은 하돼 막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햇빛구슬 님께서 자살이 존중받게 된다면 사람들에게 자살은 전보다 가벼운 것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생명은 너무나도 존귀합니다. 그 생명을 스스로 꺼트리는 행위를 존중한다고 해서 자살이 가벼워 지지는 않다고 봅니다. 자살이 존중되어도 자살은 여전히 무거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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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Magnet의 프로필
    Lv1 Magnet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옳고 그름의 절대적 잣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주제에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 자체가 그것을 증명해주고있는 한 사례지요.

    다만 사회의 질서를 위해 법과 윤리라는 것이 존재합니다만 이 또한 어떤 사회에서의 법과 윤리인가에 따라 각각이 성향이 다르니 이것들을 잣대로 내새우는것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만사에대한 잣대는 각자의 철학에따라 천차만별이니 타인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것은 사실은 의미가 없습니다.

    요컨데, 옳은 행위 그른 행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 질서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통제할 필요 또한 없습니다.

    따라서 일개 개인의 자살행위가 사회 질서에 혼란을 가중시킬 요소가 다분하다는 명확한 통계가 없는한 자살 행위를 부정적으로 정의내릴 수는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개인의 자살행위가 사회 질서에 긍적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근거가 없는 한 긍정적 행위로 정의내리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에초에 찬반을 따질 수 없는 주제라는 예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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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3인의 프로필
    23인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해야합니다 사람은 엄연한 인격체로써 누구도표현할수없는 가지각색의 개개인의 인격이있습니다 그 인격을표현할 수없는것처럼 자살에 대한 정의또한 아무도 낼수없으므로토론주제조차 될수없다 생각합니다 자살이라는 선택지도 다양하고 자살동기 자살충동 이런것은 사람으로써 생각가능한 우리도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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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불꽃의 프로필
      Lv1 맑은불꽃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자실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해야합니다.”라는 입장에 대해 반대합니다. 자살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개인의 선택이기에 존중해야한다면 개인의 선택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존중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어떤 원인과 이유에서건 자살이 살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없으며 존중 받아야 될 자명한 이유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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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모자장수의 프로필
    Lv5 모자장수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자살은 선택입니다. 당연한 말이죠.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니, 자살은 선택입니다, 개인의 선택. 그렇다면 그러한 개인의 선택으로써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존중받아야 하는가?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인생이라는 여정에 있어서 유효한가?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는가?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살은 한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던가,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던가, 그런 원론적인 차원의 입장에서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살은 ‘실질적’으로 선택지로써 존중할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우선 토론의 주제 속에서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하자면, 자살의 존중에 대한 찬반의 토론에서 의견을 개진한다는 건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노출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행위며, 이는 직간접적으로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행위입니다. 즉,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찬성을 표한다면, 이는 자살이라는 선택지가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범주의 일임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극히 비상식적이거나 반인륜적인 행위나 가치에 존중을 논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즉, 제가 보기엔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써 존중한다는 건, 어떤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유를 막론하고 자살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한다면, 이는 누군가가 내일 자장면을 먹는다던가, 오늘 밤엔 운동을 하러 나간다던가 하는 결심이나 계획을 세우고, 선택하는 것과 같은 선상의 일로 치부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과연 자살이 그러한 ‘개인의 선택들’과 같은 범주의 것으로 봐도 되는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이는 결과적으로 ‘자살을 정당화 하는 사회’를 조장하게 되진 않을까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정상적인 사회일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사회의 분위기를 조장하기만을 위해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린 단순히 사회적 가치 형성의 수단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속에 자칫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가치를 조장하는데 선뜻 동의할 사람은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논쟁에 참여하는 입장에서 반대합니다.

    다음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유효한가, 라는 부분을 따져보고 싶습니다.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1초, 1분, 1시간 등의 온갖 세부적인 시간 단위들이 한 치도 쉬지 않고 쌓여가며 인생이 형성됩니다. 지금의 우리는 ‘현재’의 1분 1초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린 과거에도 똑같은 시간 단위들을 겪어왔으며, 아마 앞으로도 겪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머리라는 게 그러한 모든 시간들, 이를테면 일주일 전의 저녁을, ‘7개월 3일 전의 오후 5시 30분’을 지나가는 순간의 1초를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과연 그 모든 시간들이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도, 그 찰나의 순간들 사이사이에, 기억엔 남아있지 않더라도, 회상 속에 감상으로 느껴지지 않더라도 당시에 느꼈던 삶의 고동, 의지, 어쩌면 즐거움이었을 그 순간은 과거의 시간 속에 새겨져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살을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그 모든 시간을 헤아리고, 자신의 인생에 숨어있는 모든 변수를 파악하고, 합리적인 결론으로써 미래의 불행을 점치고, 어쩔 수 없이 자살을 선택하는 걸까요? 과연 그 사람들이 느끼는 실질적인 불행의 총량이 본인이 느껴왔던 모든 삶의 고동보다 크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미래의 시간까지 모두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요? 자살 욕구가 얼마나 많은 순간들이 쌓여 형성되었던 간에, 그러한 순간들 이면에 분명 살만한 가치를 느낀 순간들이 있었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살이라는 선택지를 선택한다는 것은 그 모든 ‘나’의 것들을 외면하고 오로지 남은 시간의 종식을 위해 극단적인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게 과연 진정으로 ‘개인’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 선택을 하는 자아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일까요? 그 자아는 온전히 그 사람의 인생을 대변하는 본질적인 ‘개인’일까요? 전 단언컨데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고려될 수 없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조절하는 건 호르몬입니다. 우울증은 일종의 호르몬 장애로써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약물 치료를 동반한 치료법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겠죠. 가끔 그렇게 생각하면 참 허무해집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경우엔 우울이, 드물게도 느껴지는 자살 욕구가 단지 호르몬의 농간인 건 아닐까? 기껏해야 그 정도의 화학 작용으로 일어난 결과는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들 때면 나라는 존재가 허무하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겨우 그 정도’ 일지도 모르기에 일상적 우울도, 자살 욕구도 ‘한낱’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남아 있는 이상, 자살을 거부함으로써 행해지는 인간의 내적 투쟁은 멈춰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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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해오름달의 프로필
    Lv2 해오름달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일단 찬성 쪽에 글을 적겠습니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맞긴하나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면서 까지 자살할 필요는 없다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자살하는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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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조해성의 프로필
    조해성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저는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기본적, 원초적 본능은 그 어떤것들보다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사고가 가장 우선순위이며 타인과 사회는 고려할 여러 가치 중 하나일 뿐입니다. 라고 간단하게 얘기하며 반대입장이신 분들에게 역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 반대하시는 모든 분들의 주장의 근원은 자살은 사회 혹은 타인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 라고 하십니다. 그럼 역으로 삶 자체가 타인과 사회에 좋지 못한 영향이 확실시 된다면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대해 질문의 원론적인 의미만 두고 봤을때는 동의하셔야 전자의 논리가 성립됩니다. 좋지 못한 영향을 세분화 한다면 범죄자와 장애인으로 일단 가정해 두겠습니다. 범죄자는 이견이 없으니 생략하고 장애인의 경우 정상인의 사회 인프라형성 비용에 비해 비정상적인 비율의 금액이 투입됩니다. 해당 비용이 더욱 필요한 기아 해결이나 의료비용, 자살문제 해결 등 으로 돌린다면 장애인의 사회 인프라 구축이 안되더라도 생명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니 그것이 상대적으로 더 값어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일반 시민들도 이 같은 메커니즘의 상황이 분명 발생합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사회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고 있다 라는것입니다. 정리가 잘 안되지만 결론은 삶 자체에서도 분명히 곧바른 의미인 범죄자처럼 사회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고 장애인들이나 특정 계층 혹은 일반 시민들도 상대적으로 사회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 개념중 어느것 이더라도 분명히 피해를 보게되는 생명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물론 사회가 어느정도의 대략적인 기준과 판단을 하여 나누겠지만 어떠한 상황에 대략적인 기준과 판단에 대한 이해와 감안이 자살이라는 가치는 왜 적용이 안되냐는 것입니다. 자살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라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라는 입장을 주된 논리로 생각하는게 아니라 해당 가치를 고려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것을 주된 논리로 가져가는 반대측의 얘기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냐에 대한 시각의 차이를 논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자살에 대한 문제에 타인, 사회가 개입되는 것은 단순히 개개인이 고려할 가치이지 사회가 나서 옳고 그르다를 판단하는건 자살의 외압 중 또 다른 외압이나 다름없습니다.

    또한 찬성측 입장에서 불만인 것은 자살을 찬성, 반대 하는가에 대한 프레임은 처음부터 반대 심리가 너무 큽니다. 개인이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가(삶과 죽음을 동등한 가치선상에서 비교)의 논조로 토론했으면 바람입니다.

    (덧붙여 그럼에도 윗 논리가 주된 논리라고 생각하시는 반대분들은 나그네쥐 집단자살에 대한 학설증 종족 보존 본능을 위한 집단 자살 이라는 학설이 있는데 이것을 인류로 대입하면 어떻게 판단하실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현재는 아니다 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미래 인류의 개체수가 매우 급격히 늘어 집단자살이 종족 보존의 유일한 방법이다. 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실지 매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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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모자장수의 프로필
    Lv5 모자장수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조해성 님의 의견은 재밌게 읽었습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 부족하지만 제 나름의 생각을 끄적여보자면, 우선 다른 반대측 분들은 ‘자살은 사회 혹은 타인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 ‘자살은 개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선택지로써 존중받아야 한다’ 라는 주장 자체가 자칫하면 자살을 정당화하는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장된 분위기의 사회가 상식적인 사회인지, 그러한 사회를 조장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것인지 오히려 찬성 측의 의견을 가진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물론 개인의 원초적 욕구나 생각이 개인의 입장에선 가장 우선되는 것이겠지만, 어떤 사회 속에서, 집단 속에서 자신이 원하든 원치않든 속하게 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라면 타인과 사회가 단순히 ‘자신의 외적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들’로만 치부하는 건, 그 사회에서 살아가며 받게되는 이익이나 효용, 행한 의무나 지불을 통한 상호성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배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객관적인 입장이 아니겠죠.

    또한 ‘삶 자체가 타인과 사회에 좋지 못한 영향이 확실시 된다면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야 하나’라고 물으셨는데, 이는 어떤 인간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키는데서 오는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범죄자가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해왔던 모든 인생의 시간들이 ‘악함’으로 점철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적으로 했던 행동들,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들이 누군가에겐 좋게 작용했을 수도 있고, 심지어 범죄 행위조차 누군가에겐 ‘저런 범죄자처럼은 되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 사람에게 결과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일일히 따져봤을 때, 과연 어느 누가 타인의 인생에 대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좋다, 좋지 않다 확실히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요. 그런건 그 사람의 모든 인생, 모든 시간들을 세세하게 따져봐야 비로소 확실시 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걸 사람이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물론 저는 자살 행위 자체가 끼치는 영향을 우려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런 반대 측 분들의 의견에 대해 반박하는데 적절한 예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어떤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논할 때, 단순히 논리적 구조에만 얽매여 주장을 이어간다면, 현실 세계에서와의 간극이 생겨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장애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부분은, 제가 보기에 어떤 ‘절대적인 가치’ 하에 진행되는 의견처럼 보입니다. 장애인을 위해 투자되는 비용을 다른 ‘생명’을 살리는데 투자되는 게 더 나은 투자가 아닌가, 라는 부분은 역시 문제를 너무 단순화 시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를테면 어떤 문제에 대해 단순히 비용의 높고 낮음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도 의문이며, 그 상관관계를 객관적인 데이터화 해서 확실히 따질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또한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인류가, 혹은 심지어 한 나라에서조차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내림차순으로 하나하나 따져가며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저로선 의문입니다. 인간은, 인간이 형성하고 있는 사회는, 그들이 얽매여 있는 문제들을 논리적 구조를 통해 단순화 시켜서 보는 건 상황을 명료하게 보게할 순 있지만, 거기서 오는 간극 탓에 자칫하면 오류에 빠질 위험이 농후하다 생각합니다.

    전 자살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곳 토론의 주제도 자살이 ” ‘개인의 선택’으로써 존중받을 수 있는 건가?”라는 주제인 것이겠죠. 죽음을 자의로 선택하는 게 유효한가, 라는 문제에 대해선 시간이 되신다면 제가 위에 쓴 내용을 읽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짧은 식견으론 언급하신 학설 자체에 대해선 무지하지만, ‘미래 인류의 개체 수가 매우 급격히 늘어 집단자살이 종족 보존의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문제에 대해선 종종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현재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건 사실이고, 과거에 맬서스라는 경제학자는 ‘인구론’이라는 책조차 펼치며 인류의 종말을 점쳤지만, 이 역시 그다지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으로써 생기는 문제들은 그를 상회하는 기술 발전의 속도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에 대한 문제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도 충분히 고려, 인지하고 있는 문제기에 차후 대처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현존하는 기술력이 별다른 이변없이 발전해간다면 몇십년 뒤엔 다른 행성으로 이주도 가능할테니까요. 그렇기에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자살’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이 도래할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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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성의 프로필
      조해성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모자장수님의 의견 잘보았습니다. 저는 자살에 대한 논점이 ‘자살은 개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선택으로 존중 받아야 한다’ 라고 한다면 앞서 말한 ‘자살은 사회 혹은 타인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 더욱 쉬운 논점이라고 봅니다. 이미 우리사회는 님께서 얘기하신대로 살인이 조장된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 개선되야할 방향인 것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개선되기 전까지는 살인이 조장된 분위기의 사회에서 자살은 현사회의 사회적 탈피의 개념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인이 조장된 분위기의 대표적인 예는 기업윤리를 위배한 옥시사태, 명확한 규제가 없는 총기소유 합법, 전쟁에서 고의적인 민간인 살인, 시각에 따라서는 교통의 이용에 의한 물리적 살인, 집단 따돌림 등의 사회적 살인이 있습니다. 물론 현 사회는 이것을 엄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만 그틈 사이에서 피해자는 당연하게 생기기 마련입니다. 개개인은 이러한 부조리를 감당하기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자살은 살인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 살인이 조장된 사회의 탈출구로 생각하는겁니다. 저는 이러한 사회속에서의 자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님께서 말씀하신 ‘사회에서 살아가며 받게되는 이익이나 효용, 행한 의무나 지불을 통한 상호성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배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에 대해 얘기하자면 어느 누구도 동의하에 그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하나의 집단일 뿐입니다. 사회가 강압적으로 개인을 편입하고 개인의 존엄성, 자기결정권등을 훼손한다면 그것을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 같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자살의 이유이거나 사회가 강압적으로 형성한 족쇄나 다름없습니다. 다만 이 문단의 내용은 존중의 의미가 아닌 이해에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윗 문단의 내용은 저에게는 크게 중요치는 않습니다. 해당문단이 선결된다면 윗문단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은 기본적으로 죽음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을 언제 죽을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불안으로 자살을 결심하던 신념으로 결심하던 자살이라는 행위는 정당하다는 얘기입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은 기본적으로 존중받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소 알고있는 죽음이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죽음은 자연사가 될 수 있고 타살도 될 수있으며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와 개인이 생각하는 죽음입니다. 그렇기에 죽음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살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죽음이라는 의미에 자신의 자가 결정권과 존엄성이 내포된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서 가장 주체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이후 미래에 기술이 발전되어 영생을 누릴 수 있다면 생명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하지만 현재로써는 이 문단의 내용이 저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윗 댓글의 목적은 ‘자살은 사회 혹은 타인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준다’에 대한 반박글을 알기 쉽게 접근하려 최대한 객관화 시켰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범죄 행위의 절대적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글을 써보다가 본문도 한번 꼬아서 질문드린 형태라서 여기에서 사례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보시는분들이 이해가 어려우실 것 같아 객관화 시켰습니다. 그렇기에 윗 댓글은 의도적으로 논리적 구도를 부각하여 쓴글입니다. 이런 의미를 바탕으로 윗 댓글의 기본적인 의미는 이해가 되실것이라 생각됩니다.

      (모자장수님은 윗 댓글의 논점을 옹호하는 시각이아니라 모자장수님께 말하는 것이 아니며 다른분들이 오해하실까봐 간략히 적습니다. 위기는 항상 예상치 못한곳에서 옵니다. 인류에서의 집단자살 학설의 가능성이 일어날 가능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위기로 인류 종족보존을 위해 고의적인 핵전쟁, 고의적 바이러스 살포 등 여타 대안보다 집단(선택)자살이 가장 민주적이고 반인륜적 방법이다. 라고 하며 권장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저도 이것이 우리사회에선 절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핵심은 자살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니라고 답하는것으로 생각되어 윗 댓글에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의 가치의 논조로 얘기하셨으면 좋겠다고 적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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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모자장수의 프로필
    Lv5 모자장수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살인이 조장되는 사회’라는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자살이 정당화 되고 조장되는 사회’처럼 ‘살인’이라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행위의 하나로써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심지어 존중까지 나아가는 사회에 대해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기에 ‘현 사회에선 이것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지만’ 이라는 조해성 님의 말씀에 저는 모순을 느낍니다. 사회적인 맥락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경우는 존재하지만 전체 인구의 비율로 볼 때 극히 일부의 인간들이 저지르는 행위이며,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도 그에 동의하지 않으리라 저는 믿고 싶습니다.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는 건 ‘극히 일부’가 아니라 절대다수의 일반인들이라 생각합니다. 전 그런 사람들이 살인을 정당화 있진 않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살인이 조장되는 사회’ 라는 것 자체가 제가 보기엔 조해성님의 주관적인 의견이며, 제 입장에선 그다지 동감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우리는 탄생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어디선가 우연찮게 태어났을 뿐이죠. 이는 상당 부분 운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만약 제가 시리아에서 태어났다면 전쟁통에 일찍이 죽어버렸을지도 모르고,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면 꽉 차있는 복지 정책으로 인해 평탄한 삶을 영위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영혼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기에,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하는 생각들, 행동들은 그 사람이 태어난 순간부터 속하게 되는 환경, 이를테면 국가나 사회에 현저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영향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 한 인간은 그러한 수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끼쳐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게 확립된 자아가 오롯이 개인의 자유만을 외치며 사회가 하는 역할(개인의 생명권을 보장한다던가)이나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권장되는 행동 지침들이 ‘필요’의 맥락에서 부정되고 그저 수많은 선택권의 일부로써 취급받는다면, 전 잘 모르겠습니다. 결국 어느 쪽이나 극단이 문제겠지만, 이는 극단과는 또다른 문제인 것 같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으로 조해성 님께서 말씀하신 ‘어떤 사회로부터의 도피의 수단으로의 자살’이라는 말 자체가 전 그다지 동감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 태어날 적엔 본인이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성인이 된다면 다른 나라로의 이주를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고, 살다보면 그러한 사회적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본인에게 심각한 수준의 고통을 주는 사회적 문제가, 사회적 불안이 본인이 자살한 후 1개월 뒤나, 1년 뒤에 해결된다면 어떡하죠? 혹은 이틀 뒤라면? 그래도 자살은 가치있는 선택이었을까요? 그 상황에선 어쩔 수 없던 것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이렇든 저렇든 간에, 자살이라는 행위는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렇기에 그 모든 가능성들을 배제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자살이라는 선택지가 저는 존중받아야 하는 건지, 단지 ‘개인의 선택권’의 일부이며 ‘자기결정권’의 일환으로 치부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자살이라는 행동의 선택지가 점심 메뉴를 고르는 선택지, 휴가 계획을 세우는 선택지 등과 같은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어폐입니다.

    또한 본문에 ‘사회가 강압적으로 개인을 편입하고 개인의 존엄성, 자기결정권등을 훼손한다면 그것을 비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알기에 우리 사회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강압적으로 배제하거나 억압하지 않으며, 오히려 설득과 위로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자살이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아니라는 게 자살 욕구를 느끼는 모든 인간을 손가락질 하고 억압하자는 게 아니라, 당신들이 느끼는 자살 욕구가 과연 당신들의 인생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겁니다. 자살은 명백히 인간이 할 수 있는 다른 행동의 선택지와는 다른 차원의 행위입니다. 생명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생명을 자의로 끊어버리는(심지어 그럴듯한 이유인지조차 불확실한 조건에서) 행위에 찬성하는 것이 과연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인지 저로선 의문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자기결정권을 근거삼아 하는 주장 또한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어떤 사회적 권고도, 구속이나 누리고 있는 이권도 철저히 외면한 체 오롯한 의미에서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고 싶다면 오히려 전 무인도로 떠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길가에 지나가며 꾸며져 있는 조그마한 조형물조차, 가로등의 전구 속 필라멘트조차 어떤 인간, ‘타인’의 손길이 거쳐간 결과입니다. 우린 모두가 모두의 희생 위에서, 불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의 한명으로서, 사회적 맥락으로 주장되는 가치들이, 동의하는 상식들이 개인의 결정적인 무언가를 해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살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범죄자의 인생과 같이, 결과적으로 어느 쪽으로 더 영향을 미쳤는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이에 대해 논의하는 건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는 사고 실험의 일환으로 토론자끼리 탁상공론 하기 쉬운 주제일지 모르지만, 본디 논쟁이라는 게 반드시 의미를 가져야만 진행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전 자살에 대한 관점이라면 ‘자살이 개인의 선택지로써 유효한가’라는 시점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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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성의 프로필
      조해성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과 살인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살인에 대한 사전적의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며 자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때는 주체가 타인이 되는 부분이 대부분입니다. 자살 사건에 대한 뉴스보도를 살인사건이라고 보도하지 않으며 사건의 진상이 자살인지 타살이 불분명 할때는 이것을 분명히 나눠 자살인지 살인인지 나뉘어 보도하고 현대 한국의 대중들은 살인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의미 그대로 쓰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에서 자살을 살인이라 칭하는 것은 사전적 의미에는 맞는것이겠으나 실제 쓰이는 상황을 보면 자살의 반대되는 단어를 살인이라 칭하며 이는 이 본문에서도 자살이라는 단어에서의 혼란과 거부감이 발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자살과 살인은 서로 다른 의미로써 명확한 구분이 필요합니다.
      ‘자살을 존중하는 것이 자살을 조장하는 것이다는 분명 날조된 이야기입니다.’ 현재 자살을 시도 함으로써 당사자나 친인척에게 어떠한 책임이 전가되지 않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살이란 행위를 존중 한다고 해서 자살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진 않습니다. 또한 ‘자살이란 행위 자체만을 존중하는 것이지 개인이 자살함에 있어 내포된 의미는 존중과는 무관하다는 애기입니다.’
      옳지 못한 행위들에 대해 현 사회는 엄격히 통제 하고 있습니다. 엄격히 통제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 행위들을 완전히 관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희생자들은 나올 수 밖에 없는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2차 세계대전의 3천만의 민간인 희생과 비슷한 형태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것이고 에이즈와 같이 몇천만의 희생과 더불어 잠재적 전파 가능성을 가진 전염병이 발생될 수 있는것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에볼라는 만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단지 돈 때문에 백신개발을 미루고 있엇습니다.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돈보다는 생명이 귀중한걸 알았을텐데 극히 일부가 아닌 지구상의 모든 제약사의 생명윤리보다 기업이윤이 중요했기 때문 이였습니다. 극히 일부였던 나치는 2차세계대전으로 5천만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이런 것이 분명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사회는 이러한것들에 대한 충분한 결론과 해결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나가야 한다. 라고 하지만 현실은 부조리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상황으로서의 대입은 이상적 사회가 아닌 부조리한 상황을 대입하여야 합니다.

      사회는 개인의 동의 없이 강압적으로 사회에 편입시켰습니다. 님께서는 이민이나 시간의 문제로 설명하셨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사회가 강압적으로 편입시켰으니 그 사회의 부적응은 개인의 책임이라 하기보다는 사회의 책임에 가깝습니다. 이민을 하려면 사회가 나서서 해주고 시간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사회가 그 시간에 대한 책임을 지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사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 라고 하니 극복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극복해서 살아가고 극복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도피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자살에 대한 개념을 모르고 자살을 결심할까요? 전혀 아니라고 봅니다. 모든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살을 할만한 가치가 이외의 가치를 우선하기에 자살을 하는것입니다. 어떤 가치가 우선인지는 개인에 선택에 맡기자는 겁니다. 님 논리대로 한다면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이겨내고 평생을 살아왔으나 사회는 변하지 않고 개인은 평생을 우울증에 걸려 죽었다면 그 책임은 누가집니까? 반대로 님 말씀처럼 1시간 후 1년 후 해결이 된다면요? 이런 가치 충돌은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님(반대분측분들) 께서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지 않습니까

      제가 ‘사회가 존엄성, 자기결정권을 훼손한다면 비정상적 사회’라고 한 이야기는 자살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살로서 파생될 수 있는 인간 기본의 기본권, 말 그대로의 자기정권을 뜻합니다. 집단 따돌림은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기에 발생된건가요? 생명의 존엄성은 존중 받을 권리입니다. 죽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는 당연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존엄성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인정 함에 따라 그것을 인간의 존엄성 이라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자기결정권이 훼손된다면 그것이 곧 존엄성이 훼손된것입니다. 님 말의 어폐가 있는 것이 자기결정권을 주장한다면 무인도를 가라고 하지만 이것이 진정으로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그자체로 존엄성과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개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무인도에 가라고 하는 것은 존엄성, 자기결정권 훼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이 강압적으로 사회에 편입된 결과이고 자살을 시도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님께서 앞서 말한 ‘우리 사회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을 강압적으로 배제하거나 억압하지 않으며’ 란 말에 어폐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무인도행은 행복추구권에 위배되고 우리나라 헌법상 자기결정권 중에는 생명신체 처분에 대한 결정권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정을 반영한 헌법이며 이를 초월한 인간의 존엄성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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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성의 프로필
      조해성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헌재에 이런 판례가 있습니다. 다만 자살에 관한 판례는 어떠한것도 없었습니다.(아마 운영진에서는 자살과 존중의 관계를 이 판례에서 따온 것 같습니다.)
      헌법 제10조가 정하고 있는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 내지 일반적 행동자유권은 이성적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의 자기의 운명에 대한 결정, 선택을 ‘존중’하되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부담함을 전제로 한다. 2004. 6. 24. 2002헌가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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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최민규의 프로필
    최민규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안녕하세요. 몇가지 의문이 있어서 몇자 적어봅니다. 찬반토론으로 쓰신 글들을 보았더니 대부분 자살하는 사람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에 대해서 얘기가 많이 나오더군요.
    저는 어떤 행위에 있어서 그 행위가 정당화되기 위해선 주어진 권리하에 이루어져 있는가를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자살과 같은 경우는 자기 생명에 대한 소유권과 의사 선택의 자유 두가지가 합당한지에 대해서 판단해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이기엔 암묵적으로 생명에 대한 소유권이 모두 자신에게 귀속되어 있다는 전제하에 글이 쓰여진거 같던데 우리가 생명을 어떤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여 얻은것이 아닌 만큼 생명이 주어지는 과정에 사회의 역활이 들어가 있으므로 저는 어느정도 생명이라는 것은 사회에 귀속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논점하에서는 생명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이 완벽하지 않은 만큼 그 자산을 해할 권리는 없어 보이는데 개인의 자기의 생명을 온전히 소유한다면 그 권리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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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군 같은 경우 자살 시도는 곧 형사처벌과 연결되는데, 이는 군인의 생명은 나라를 지켜야 하는데 쓰여야 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비슷한 원칙을 다른 곳에서도 적용이 가능한가요? 군 외에서 그런 원칙을 적용을 한다면 그것은 민주사회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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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제다이의 프로필
    제다이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최민규 ; 다른 윗분들의 의견들 수준을 보고도 이런 심오한것을 질문 하시나요? ㅋㅋ 옳바른 대답 안나와요 ㅋㅋ

    제가 조금 알려드릴게요

    우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있어야 되요 생명의 존엄성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 입니다

    존엄적이란 형용사는 오직 인간에게만 붙어요 가끔 동물들의 생명도 존중하려고(하지만 박테리아나 짚신벌레는 인정하지 않는) 누군가가 생명의 존엄성을 주장하는데 이는 완전히 허위구요

    존엄성이나 자연권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건 르네상스 초기 시대에 타란 미란둘라 라는 신학자 였어요

    르네상스 시대 전 중세에는 인간은 귀하지 않았어요 신만이 귀했어요.

    프랑스 혁명부터 세계2차대전을 거치고 인간의 존엄성 또는 인권에 대한 규정이 발표되요 그 유명한 세계인권선언이죠 인류는 제노사이드 같은 대학살을 막기위해 인간의 존엄성이란 적어도 이거다 라고 규정해요

    인권과 지연권과 존엄권은 같다고 보시면 되요
    법리적 해석으로 엄밀하게 들어가면 차이점이 있지만 법학도가 아닌이상 알필요도 없어요 막상 알아도 그게 그거잖아? 라는 말만 나와요

    결국 중요한건 인간의 존엄성은 절대적으로 종교적으로 신성한 권리가 아니라 인류가 전쟁을 거치고 자신들이 그 희생자들이 되는걸 방지하고자 고안하고 다듬은 발명품 이라는 겁니다.

    파리도 이성이 있다면 파리 사회에서 지들이 존엄하다고 할거에요

    자신의 신체를 자신 맘대로 하는건 오로지 자기의 권리 입니다. 사회에 귀속되지 않아요. 엄밀히 말하면 사형제도도 존엄성 침해에요

    그런데 자살이 왜 옳지 않은지는 칸트의 철학에 의존 할 필요가 있어요

    인간은 태어나면서 사회로부터 존엄성을 인정받고 귄리를 인정받아요 자살할 권리까지 그런데 그와 동시에 책임도 받아요 자살을 하면 책임 수행을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자살이 나쁜 겁니다.

    아마 100세 노인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했다고 하면 칸트는 그 노인이 스스로 자살을 원한다면 옹호 했을 거어요

    정리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이란 절대성 신성성을 깨구요 인간이 부여된 권리만큼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해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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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성의 프로필
      조해성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칸트의 철학이 왜 옳은지에 대한 설명은 없으시네요

      칸트가 말하는 자살은 사회로부터 자살이라는 권리를 받는다 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며 자살로서는 자신을 책임을 지지 못한다 라는게 핵심인데 이것은 칸트 자신이 인간 본연의 내제된 가치를 살핀다기보다 자신의 철학에 모순점을 미화시킨 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칸트가 말하는 자살은 인간의 본연가치보단 사회의 방향성을 우선하여 제시한 것이며 그렇기에 자살과 타살을 동일시 한다면 이것은 잘못되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자살이라는 것은 사회가 말하는 권리와 의무를 뛰어넘는 인간 본연적 가치행동입니다. 단일비교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가 인간본연 가치를 실질형태로 정리한 단어일뿐 인간의 본연가치라고 말하는 행동, 감정, 사고 등은 절대적으로 보장받아야 하며 이 기본가치자체를 사회가 권리라고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민규님 댓글도 답하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의 생명에 대한 소유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합당한 대가 라는 것은 현시대의 사고방식의 기한 것으로 이사고방식이 옳은것인지(성숙한것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생명 이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혹자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만이 합당한 가치비교라고 볼 수도 있겟지요, 물론 개개인의 성장에는 사회의 역할이 들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회는 개인을 위해 존재하고 존재하여야 합니다. 올바른 사회의 당연한 역할이며 개인의 성장에 대해 사회가 지분을 가지고 개인에게 자기선택권 및 정상적 행동에 제약을 준다면 그것이 올바르지 못한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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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제다이의 프로필
    제다이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조헤성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어나 보셨나요?

    칸트철학이 옳은지를 설명해야 해요?

    칸트가 말하는 자살은 인간의 본연가치보단 사회의 방향성을 우선하여 제시한 것이며 그렇기에 자살과 타살을 동일시 한다면 이것은 잘못되었다 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말에서 전 당신이 칸트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것을 100퍼센트 확신 합니다

    현학적인 말을 일부러 유식하게 보이려고 막 썼지만 제 주장을 그냥 재인용 했다는 생각밖에 안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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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성의 프로필
      조해성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제다이
      칸트의 철학 자체가 옳은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분야에 대입했을때의 이야기를 하는것입니다.
      칸트철학의 기본적인 부분밖에 모릅니다만 칸트가 말하는 자유의 전제가 도덕적, 의무론적(책임론적) 자유이지 개개인의 무제한적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해당 문단은 이 문단에 의해 쓰여진 것이며 이것을 자살이라는 개념에 대입해볼때는 인간본연의 가치보다 사회를 우선시 한다는 것, 자신의 철학의 모순점을 미화한다는것으로 저는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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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0101336의 프로필
    Lv1 0101336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저는 아직 학생이라 생각이 미숙할수도 있지만, 전 솔직히 말해 자살이 옳은건지 그른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살을 반대하는 입장에 선 사람은 분명 자신의 인생을 만족해하며 살아가고 있겠죠. 그들은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막상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입장과 일상을 보다보면, 어느세 동조감을 느끼게 되고 자살이 어쩔수 없다고 느껴집니다. 빚, 폭력, 범죄, 마약 등등 인생에서 도저히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좌절감 절망감, 하루하루가 지옥같은 생활을 수년째 하며 마침내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은 정말로 죽고싶어서…. ‘죽고싶어서’ 자살을 하는 걸까요? 직접 시도를 하신 분이라면 잘 아실 겁니다. 매일매일 자살을 생각하지만 정작 죽음의 기로앞에 서면 엄청난 공포감과 두려움, 뒤이어 살고싶다는 본능과 함께 몸부림치게되죠. (저도 경험을 해봐서 잘 압니다. 이유는 묻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이런 엄청난 두려움을 무릅쓰고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 살고싶다는 마지막 생존 본능까지 저버린채 목숨을 저버리는 이들은 과연 나약해서, 비겁해서, 죽고싶어서 자살을 하는 걸까요? 적어도 제가볼때는 그들은 아마 살고싶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그저 평범하게 웃고 떠들고 사소한것에 화를 내고 슬픈 영화를 보며 울고 식당에 가서 맛있는 외식을 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가족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 아마 그렇게 살고싶어서. 너무나도 강렬히 그렇게 ‘살고싶어서’…..! 어쩌면 제가 너무 개인적인 부분으로만 초첨을 맞췄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자살은 단적으로 보면 사적인 부분이지만, 넓게보면 그렇게 하게 만든 사회적인 영향도 적지 않으니까요. 물론 우리도 더 이상의 자살을, 비극을 막기위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자살이란것이 아무래도 개인의 사적인 부분이 큰지라 결국 한계점이 들어날 겁니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좋아도 당사자가 만족을 해야겟죠. 결국 자신의 선택이 크게 작용한다는 겁니다. 물론 자살이 무조건 옳은건 아니겠죠.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니겠죠. 자살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통을 참는 인내심이 부족하다거나, 정신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그들의 삶을 단 하루, 일주일이라도 살아봤다면, 과연 그들에게 자살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 어느 누구의 사연 앞에 떳떳히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완벽한 ‘동조’는 있어도 완벽한 ‘이해’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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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Hjumper의 프로필
    Hjumper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자살이 어떻게 존중받는 선택이 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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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lmlhs0308의 프로필
    Lv1 lmlhs0308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유사한 상황에 놓여본 한 사람으로써 제 의견을 쓰자면, 자살은 내가 지금까지 지녀왓으며 앞으로 지닐수 있는 모든것들을 져버리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를 하고자 하는 확신이 설때까지 그 본인의 심정은 단 1퍼센트도 다가갈수없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끊는것은 본인의 행위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상황까지 몰고간것은 절대 본인의 의지가 아닙니다. 나약해서도 아니고 그럴만한 아이라서도 아닙니다. 강한사람 누구나 겪을수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이겨내고말고가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며 나아가 직-간접적 타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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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들라코거스의 프로필
    Lv4 들라코거스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자살은 말리고 만류하고 막되 금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포기할 정도로 내몰린 사람에게 “너 죽으면 이러이러한 벌을 내릴 거야. 가족들이 힘들 수도 있어” 하고 말하는 건 잔인하기만 할 뿐인 것 같아요. 온 힘을 다해 말리고 만류해야죠. 그래도 그가 죽겠다고 한다면 그를 위해 싸워주기라도 해야죠. 그래도 죽겠다고 한다면 오늘은 기어코 부둥켜 안고 놔주지 않아 오늘만은 살게 할 수도 있죠. 그러나 그가 죽었다고 하면 그 때는 그와 같은 사람이 없도록 싸워줘야겠죠. 그의 자살을 용납할 수 없다면 더.
    자살을 보고 개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선택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자살은 선택이 아니라 차라리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자살로 말하지 않아도 되게 그의 마음을 들어주는 게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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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MIMoon의 프로필
    Lv1 MIMoon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은 스스로 자(自) 죽일 살(殺) 스스로를 죽인다라는 뜻입니다
    매년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자살 혹은 자살시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근데 여기서 자살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살은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고 삶에 너무 지친 사람들만이 택하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사회적약자들이 선택할수 있는 최악이자 최선의 선택입니다
    우리나라 즉 대한민국은 청소년 자살률이 높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것을 예로 들어 중,고등학생들이 너무 힘든 학업에 지치거나 참을수 없는 학교폭력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며 저희는 과연 자살을 했다는 이유로 더 참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판할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더 이상 살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그릇된 선택이 아닌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저희가 알아주고 위로하고 기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살을 개인의 선택으로서 존중해주지 못하고 사회에서 억압한다면 그 죄는 누가 책임져야하며 자살을 한 사람들에게 죽어서도 못 다할짓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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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허스밴드의 프로필
    허스밴드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찬성 의견입니다. 자살 또한 개인의 자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도덕적, 사회적 책임 또한 감수할 수 있다면 위법을 저지르는 것 조차 개인의 자유입니다. 자살 또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자살의 선택은 이 세상 자체를 도피하는 마지막 수단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정신적인 고통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얼마나 괴롭기에 자살을 선택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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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마리의 프로필
      Lv1 김마리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위법을 저지르는것은 이미 강제성의 특징을 띄고 있는 법의 특성에의해 제한받고 있으므로 개인의 자유라고 보기어려우며
      따라서 위법을 저지르는것이 개인의 자유라는 이유로 자살을 개인의 자유라고 보기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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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으앙의 프로필
    Lv1 으앙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저는 자살이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자살이 존중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다른 사람이 옳다 옳지 않다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끊고 끊지 않고는 자신의 선택이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의적으로 수명을 단축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을 존중하고 싶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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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김마리의 프로필
    Lv1 김마리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자살은 직.간접적 살인행위이다.
    단지 그 화살이 자기자신을 향해있을뿐 생명을 해치는 살인행위이다.
    또한 주변인이나 가족 친척등이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경우 유가족에겐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속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이는 자살로 이어지기도합니다..
    두번쨰로 자살을 유일한 도피하는 마지막 수단이라며 찬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청소년의 자살의 경우 충동적인 경우가 많아 위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으며
    그외 연령층의 사람들의 자살원인은 우울증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치료비율이나 관련 약 사용 비율은 OECD국가중 하위를 기록하고있습니다.
    제 때 치료받지 못한 정신적 질환으로 인한 그들의 선택이 과연 현실을 도피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구분지으며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는 것이 옳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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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모자장수의 프로필
    Lv5 모자장수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많은 분들이 자살에 대해서 관대하신 것 같네요. ‘그것 뿐인 인생’은 없습니다. 내겐 너밖에 없다는 둥, 이게 아니면 절대 안된다는 둥, 내 인생은 이 길 뿐이라는 둥…. 그런건 없어요. 다들 자기 스스로 본인들을 가두고 있는 것일 뿐이죠. 뭔가에 대한 맹목성은 언제나 경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살의 이유가 뭐든 간에, 저로선 그 삶의 인생이 ‘그 이유 뿐’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시간은 우리가 매순간 실감하기엔 너무나 희미한 것이고, 모든 흐름을 머릿속에 담아두기엔 너무나 방대한 것입니다. 자살의 이유가 얼마나 많은 세월에 거쳐서 쌓인 것인지에 대해선 저로선 알 길이 없지만, 개인적 차원에서의 인생이 얼마나 유구한지 인지하고 있다면, 자살이라는 선택지는 그다지 유효한 선택지가 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살을 결심하거나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의미없는 말이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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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인간의 프로필
    인간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궁금한 것이 과연 인간은 어떤 경우(상태)에 처하면 자살을 선택할까요?

    사회와 체제(지배계급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강제규정)가 강요하는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좌절감, 패배감, 수치심 또는 공동체의 삶은 사회(집단)이 책임져야 하는데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선택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건 사회적 살인으로 봐야 하는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자살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공동체집단)이 변화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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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789654123852의 프로필
    789654123852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자살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중받고 말고 할 이유가 원래부터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다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으로 자살을 택했는지에 따라 그 주체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서도 존중할 수 있고 존중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요.
    존중되어야 하는가 존중되지 말아야 하는가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자살의 스펙트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고통의 해방을 위한 자살 외에도 신념을 지키기 위한 자살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자살도 남에게 고통을 지우지 않기 위한 자살도 있습니다.
    따돌림이나 생활고, 협박과 같은 외적 갈등에 떠밀려 다다른 자살,
    죽어버린 이에 대한 미련을 벗지 못한 내적 갈등의 고통으로 해방되기 위해 택하는 자살,
    자신이 저질러 버린 잘못에 부끄러워하며 양심을 위해, 조금이라도 떳떳해지고 싶어 하는 자살,
    자신들을 탄압하는 적을 제거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도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한 결과의 자살,
    가족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지게 만들고 싶지 않아 선택하는 존엄사나 죽음보다 더한 물리적인 고통으로부터의 안락사 등등..
    모두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훌륭하다 칭찬하거나, 나름대로 존중하거나, 이해만 하고 납득하지는 않거나, 강렬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게 사실이지요.
    그 방식들도 서로 다른 상황의 처절함이나 위대함에 따라 상대적인 가치가 매겨져 결국 제각각의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빚을 잔뜩 지고 오늘만 사는 마음으로 돈 펑펑 쓰고 갚을 생각에 막막해져 그 번뇌가 고통스럽기에 자살하는 것을 보고 끄덕일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IS의 자살 테러도 IS입장에서는 훌륭하며 칭송받을 업적으로 보이고 당하는 국가들에게 있어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미치광이의 소행으로 보이겠죠.
    딱히 첫 예시 같은 외부적 요인의 직간접적인 고통으로 택한 자살에 대한 시각만을 고려하기에는 위에 나열한 자살의 방식은 모두 현재도 적잖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http://www.pharms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113013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41767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1919796
    결론을 말하자면 자살이라는 개념 자체에 존중하거나 그렇지 아니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실질적으로도 자살을 존중하겠다고 어떠한 상황에서 자살을 두둔할 캠페인을 벌일 까닭은 없고 자살을 존중하지 않겠다고 누군가의 자살을 막을 방도도 없지요.
    굳이 존중할까 안 할까를 판가름내려면 자살이라는 넓은 개념을 흑백 논리로 나누기보다 상황을 조금 더 좁게 설계하는 게 옳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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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ganghyuk0804의 프로필
    Lv1 ganghyuk0804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어차피 자신의 삶인데 간섭해야 하나요?자살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안하고 개인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요?딱히 주장을 정하기가 어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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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zeki2002의 프로필
    Lv4 zeki2002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자살로 끝나면 좋겠지만 가족이 있으면 가족이 슬퍼하겠죠
    그럼 무조건 유족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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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의 프로필
    익명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zeki2002님은 그럼 고아의 자살은 찬성하시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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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zeki2002의 프로필
      Lv4 zeki2002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그래도 생명은 귀중한데 완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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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SUA12의 프로필
    Lv3 SUA12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생명자체가 소중하고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살이라는 단어가 입밖으로 나오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단어가 입밖으로 나온다면 자살과는 멀리 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큰 고통과 마음의 상처에 시달리고 그 옆에 사람들도 자살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해서 존중해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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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김대환의 프로필
    김대환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을 하는 이유는 죽음이 삶보다 더 의미있게 느껴질때 하는 행위입니다. 삶으로 부터 오는 고통이 죽음으로부터 오는 고통보다 더 클때 하는 행위 입니다. 삶으로 부터 오는 고통이란, 책임감, 압박, 지침, 기대감, 자괴감 등 아주 다양한 고통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죽음으로 부터 오는 고통은 물리적 고통, 책임감 (가족에 대한), 이루지 못한 꿈 등이 있습니다. 삶으로 부터 오는 고통보다 더 적은 다양성을 보여주죠.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질감, 유대감 등이 형성됩니다. 그들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 줍니다. 이미 삶을 살면서 자신들도 겪어온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너무 풍요로운 환경속에서 자라왔거나, 걱정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많아야 건강한 사회 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러지 못합니다. 자유롭다고들 하지만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웃을때 누군가는 울고 있습니다. 울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하지만 웃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자살에 대한 이해도와 동정심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 법적으로 다뤄질 문제 까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자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자살이라는 결심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실패, 그리고 고민이 들어가는 지를요. 이는 자살을 비웃는 자들이 지금까지 모아온 권력과 돈보다 더 힘든 고난과 역경이 따르는 일 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살을 결심할 때까지만 이지, 죽기 직전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자살하고 싶은 사람’과 ‘자살한 사람’은 아주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죽기 직전의 두려움을 이겨 내느냐 마느냐의 것 입니다. 죽기 직전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 만큼 힘든일은 없습니다. 애를 낳는 것 역시 죽기 직전의 두려움을 이기는 것보다 적은 두려움을 유발합니다. 애를 낳는것을 ‘죽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죽는것은 ‘죽는 일’ 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고통 덕분에 이겨낼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두려움이 죽기 직전의 두려움보다 클때………………………………….하……… 의미없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짧게 말하겠습니다.

    원하는 장소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죽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루지 못한 꿈이다.

    죽는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며, 이는 게이가 되겠다는, 전교 1등을 하겠다는, 해병대를 가겠다는 선택보다 훨신 힘들고 어려운 선택 입니다. 이러한 선택 또한 존중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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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강현영의 프로필
    Lv4 강현영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하나? 라는 논제에 찬성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자살 시도를 햇다는 것은 자신이 더이상 버틸 수없고 자신의 스트레스를 없애버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 되어야 하나?라는 논제에 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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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0. 제시된 논제의 뉘앙스가 약간 묘한데, 사실 이미 사망한 고인에게 윤리적 책임을 묻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 뿐더러 유족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자살자에 대해서도 현실적으로 존중을 표하는 거야 그럴 법하기는 하지만, 본문을 읽어보면 사실 표제처럼 구체적인 자살기도자보다는 자살이라는 행위가 개인의 자율적인 선택권인지가 초점인듯하네요. 저는 본문에 근거한 해석을 바탕으로 논제를 이해했으며, 자살이 선택권의 범위에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해볼까 합니다.

    다음으로 개념을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자살이 무엇인지 직관적으로는 뻔할 겁니다. 자신의 생명을 끊기 위한 목적으로 그 목적을 실현시켜줄 만한 행위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행위를 자살이라 부릅니다. 이러한 개념 정의에 제시된 조건 중 토론이 진행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목적성일 것 같습니다. 이 조건을 해석함에 있어서 순수하게 생명 단절만을 의도해야 한다는 건 너무 엄격하지만, 적어도 가장 우선하는 목적이기는 해야 할 듯합니다. 다른 목적, 가령 정치적 목적이나 도덕적 목적까지 용인하면 사회운동이나 희생적 행위까지 논의의 범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지나치게 포괄적이라 제시된 논제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자살이 선택권에 따른 행위라는 찬성론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삼단논법에 의거하고 있습니다.

    대전제 :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개인은 선택의 자유가 있다.
    소전제 : 자살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결론 : 따라서 자살은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

    자유주의의 대원칙인 대전제를 완전히 부정하기란 상당히 까다롭고 원론적, 철학적인 문제로 쟁점이 확장되기에 많은 분들이 소전제를 부정하는 전략을 채탁해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이 전략도 제법 효과적입니다. 타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행위를 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자살은 타인에게 여러 해악을 야기합니다. 죽음 같은 묵직한 주제와 함꺼 거론하는 게 터부시되긴 하지만, 어쨌든 집값이 떨어진다든가 시체에서 발생하는 악취, 주변인들에게 줄 우울증, 상실감이나 연쇄 자살을 유발하는 효과, 보험금 지급 등등.

    이런 반론의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산속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살해도 되는 게 되니까요. 하지만 고립자가 정말 심각한 재반론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윤리가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라는 전제 하에서는 적절한 재반론이겠지만, 윤리도 결국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면, 애초에 어떤 영향도 주고 받지 않는 사람은 모든 윤리적 평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소전제를 부정하는 이런 반론이 실패하는 것은 다른 대목입니다. 자살이 가져올 수 있는 여러 해악을 떠올려보면, 그리고 윤리가 사회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체계라는 걸 감안한다면 대전제가 되는 자유주의의 대원칙도 무력화되고 맙니다. 타인에게 어떤 해악도 미치지 않는 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해악과 개인이 가지는 자유의 효용을 비교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의 보완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 경우에도 타당한 비교기준이 있는가 하는 반론에 부닥치게 됩니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이 논제는 자유주의의 대원칙에 대해 사유해봐야만 하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2. 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이념이라고는 해도 유일한 이념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윤리라는 게 애초에 여러 가지 가치기준이 중첩되어 있는 복합체계라면(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참조), 자유주의의 대원칙이라도 다른 핵심 이념의 원칙과의 충돌에 따라 제한될 수 있습니다.

    생명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존중하는 것은 대다수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윤리적 기준 가운데 하나입니다.

    더불어 생명은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전제조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가 생명권에 선행한다고 보기는 힘들며 경우에 따라 제한적으로 선택권이 존중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타당하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제한적으로 선택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원칙이라면 당연히 선택 가능한 경우가 제한될 것입니다. 숙고된 결정이어야 하고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의 합리적 사고 능력을 가진 행위자의 결단이어야 합니다. 현재까지의 경험적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보면 많은 경우 자살기도자들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물론 보험금을 위한 자살 등은 합리적 선택이라 볼 여지가 있습니다만, 이 경우 일종의 도덕적 해이라고 볼 수 있으니 정당한 선택에 해당되기 힘들 듯합니다.

    3. 다음은 귀류법을 통한 논증입니다. 개인이 가지는 선택의 자유가 생명권보다 우위에 있다고 해보죠.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최대한 보장되기를 바라고, 이러한 안전보장은 사회적 공공재로서 수혜대상에서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한국에 살겠다고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국경 내에 있다면 국군이 보호해주는 것처럼요. 굳이 저런 특이 케이스를 배제하려는 건 대단히 비효율적이니까요. 이런 점을 보면 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들은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일반적인 안전이 중요하더라도 개인의 생명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이상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선택의 자유>생명>안전을 위한 보호조치>선택의 자유…

    즉 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타당한 규범 체계라면 갖춰야 하는 일관성의 논리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따라서 이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선택의 자유가 생명보다 우선할 수 있다고 가정한 최초의 전제를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4. 고인에게 존중을 표하는 것과 자살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별개입니다. 고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규범이 요구되는 것은 구체적인 상황 속의 행위자입니다. 이미 사망한 경우라면 고인을 윤리적으로 평가하기보다 온정적인 관점을 우선적으로 취하는 건, 그들의 행위가 면책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태도 자체가 규범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규범은 독립적이며 별개의 문제입니다. 자살을 통해 사망했더라도 그를 존중해주는 것은 고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규범을 따른 결과일 뿐, 자살의 윤리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아닙니다. 여러 가상의 사례를 들고, 각각의 경우에 자살 행위자를 옹호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살이 허용된다는 것은 이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는 주장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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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꼬마아가씨의 프로필
    Lv1 꼬마아가씨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저는 찬성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살기 힘들어서 자살을 하는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대로 할수 없다면 그사람은 더 고통을하고 힙들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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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thesjw0318//

    0. 표제만 보면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다.’는 것과, ‘개인의 선택은 혹 자살이라 할지라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 혼합되어있습니다. 저는 전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 정확히 말하자면 ‘자살은 개인의 선택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입장이고, 후자에 대해서는 찬성의 입장입니다. 여기서는 님의 주장에 대한 반론에 집중할 것이기에 찬성 입장으로 서술합니다.

    자살에 대한 개념을 잡으셨던데, 선택권 역시 중하게 다룸에도 불구하고 선택권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잡아놓지 않으셨습니다. ‘숙고된 결정이어야 하고 용인할 수 있는 정도의 합리적 사고 능력을 가진 행위자의 결단’을 용인할 수 있는 선택에 의한 자살로 언급하셨던데, 물론 자살의 주체성에 대한 판단 기준을 함부로 잡는 것은 곤란하지만, 대체적으로 저런 자살을 갖다가 주체적 자살이라 하지 않던가요? 선택이라는 것 자체에 주체적이라는 개념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2. 생명에 대한 존중이 선택의 자유보다 더 우선시된다는 근거로 우리 사회를 포함한 대다수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이고, 또 생명은 자유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전자에 대한 반박은 군중에 의한 논거를 제시했다는 것으로 퉁치고, 후자를 반박해보겠습니다.

    자살이라는 것은 0.에서 언급하신 대로 ‘자신의 생명을 끊기 위한 목적으로 그 목적을 실현시켜줄 만한 행위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그 ‘자신의 생명’은 어느 시점의 생명일까요? 미래 시점일 것입니다. 선택이 과거에 영향을 끼칠리는 없고, 현재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곧 ‘생명은 자유의 전제조건’과 모순이니까요. 그렇다면 자살은 자신의 미래의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라 해석될 수 있습니다. 생명은 자유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자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이렇게 ‘미래의 자유를 위해 현재의 자유를 포기해라.’는 주장으로 귀결됩니다. 이 ‘미래의 자유를 위해 현재의 자유를 포기해라.’는 주장, 많이 비판받고 있지 않던가요?

    님께서는 또 경험적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많은 경우 자살기도자들은 제시하신 주체적 기준에 만족하지 못한 자살이라 규정하셨습니다. 많은 경우 자체가 단순히 수적으로 많다는 것인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과연 제시하신 기준이 정당한가, 제시하신 기준에 따라 주체적인 자살과 그렇지 않은 자살이 통계적 분류가 가능한가, 분류가 가능하다면 정말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생각해 봤을 때, 이렇게 자살기도자들의 자살은 주체적이지 않다고 규정하는 것은 심히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특히 통계적 분류가 가능한가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입니다.

    3. 이 주장은 굉장히 무시무시한 결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보다 생명권이 더 소중하다고 한다면, 자살은 물론이고, 담배도 피워서는 안되고, 술도 적당히 마셔야 하고, 살이 쪄서도 안됩니다. 이런 행위들이 모두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갉아먹는 행위이거든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최대한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주장하셨는데, 과연 이것이 맞는 것일까요? 만약 사실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여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담배 피우는 사람도 극소수여야 하고, 비만인 사람도 극소수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남에 의해 침해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 옳은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전 보장 역시 남의 생명과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인의 선택권을 제약할 것이고, 결국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갉아먹는 행위는 ‘선택의 자유>생명>안전을 위한 보호조치>선택의 자유’의 순환에 해당하지 않게 됩니다.

    4. 토론 초기에 이야기를 꺼냈지만, 주체적인 자살만이 존중받을 수 있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윤리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자살이 존중받을 수 없다고 한다면 반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인에게 존중을 표하는 것과 자살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별개인것 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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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약간 솔직해지면, 사실 이 중간의견은 가급적 쓰지 말자는 생각 하에 글을 남기다 보니 스스로의 생각이 확립되지 않은 이런 논제에 대해서는 서툰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네요. 저도 기본적인 태도는 비슷합니다. 케이스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게 당연할 듯합니다. 다만 디폴트는 생명이 선택에 우선하는 걸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판단에서 전개한 주장인데, 이 부분에 공감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여기서부터 엇갈리고 있는 걸까요?

      제가 반론을 다 이해했다고 자신하기는 힘들지만, 반론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 질문드리고 싶은 게 보이네요.

      “자살은 자신의 미래의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라 해석될 수 있습니다”라는 근거를 바탕으로 제 논거에 반박하셨는데요,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자살에서 비교할 가치를 모두 자유로 치환한 하나의 해석일 뿐이란 생각도 듭니다. 지금 내가 가진 행동의 자유가 미래의 모든 자유보다 반드시 우월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것만으로는 반론이 완성되었다고 하기엔 다소 부족한 듯합니다.

      이런 해석이 자살을 규정하는 가장 타당한 해석임을 논증해주시면 개인적으로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자살이란 문제에서 일어나는 가치충돌은 생명과 선택권으로 보는 것이 더 일반적이지 않나 싶은데, 이것을 자유와 자유의 충돌로 보면 사실상 생명이란 가치의 문제는 생략되고 마는 게 아닌지 여쭙고 싶네요.

       

      또 한 가지는 순환의 문제에 대하 반론하신 내용입니다. 저도 책을 통해 알게 된 논리를 응용해보자는 생각에 댄 논거였고, 반론하신 부분은 타당한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비만, 흡연, 음주 등은 죽음의 간접적인 인과관계일 뿐입니다. 자살의 수단은 죽음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만한 행위들이고요. 비만이나 흡연으로 반박하신 부분은 제 의도를 다소 확대해서 해석하고 계신 게 아닐까 해서 밝혀둡니다. 전략적 혹은 수사적 표현일 뿐이시라면, 보다 적합한 다른 예시를 들어주시는 데 그리 어려움은 없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순환의 문제 얘기는 사실 어떤 상황들을 떠올리며 도출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게 진전된 논의가 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몇 자 더 남겨봅니다.

      자살이 개인의 선택으로서 존중 받아야 할 행위라면,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제가 안전보장을 위한 조치라 표현했던)조치들, 가령 구조대원이나 의사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집니다. manymaster님 말씀대로 개인의 선택이라 볼 수 없어서 구조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해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를 사전에 알 수 있는 방법이란 게 사실상 전무합니다(혹시나 그런 방법이 있다면 제가 가정한 상황이나 이를 일반화시킨 순환의 문제는 통째로 날려도 되겠네요). 따라서 구조자의 입장에서는 모두 구조하는 게 정답입니다. 이것이 제가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표현한 근거의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살은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고, 어떤 자살은 구조의 대상이라고 해버리면, 누구나 구조하는 행위도 결과적으로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가능성이 생기는 겁니다.

      제가 순환의 문제라고 표현한 딜레마는 이 상황입니다. 윤리적으로 타당한 자살의 존재를 인정하면, 타당한 행위를 저지한 구조자의 행위는 권리 침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를 감수하지 않고는 구조행위 자체가 무력화됩니다. 그러나 구조해야 하는 경우가 명백히 존재하는 데 이를 포기할 수는 없지요. 권리침해를 감수해야먀 하거나 구조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결과적으로 생명, 선택, 구조(안전보장보다는 이 용어가 적절해보이는데 왜 진작 안 떠올랐는지 모르겠네요) 순환이 생깁니다. 이 순환을 끊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구조행위를 권리침해로 보지 않는 것입니다. 즉 기본적으로는 자살을 권리로 보지 않는 것이죠.

       

      괜히 이상한 예를 들었다가 논의에 혼선만 가져오는 게 아니길 빕니다. 혹시 이 재반론에서 반론하신 부분에 대한 오해가 있었거나, 반론 내용 가운데 꼭 제가 해명하고 넘어갔어야 하는데 슬쩍 넘어간 부분이 있다면, 번거로우시겠으나 알려주시길 희망합니다.

      제 의견에 관심가져주신 점,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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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0. 저는 생명이 선택에 우선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thesjw0318님은 생명이 선택에 우선시하는 이유로 대다수의 사회에서 그렇게 한다는 근거를 들고 오셨던데, 그런 근거가 어떻게 유효하다 생각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대다수 사회가 그렇다고 이 토론에서까지 유효하다는 주장은 앞서 말했듯 군중에 의한 논거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온갖 감각, 지각, 경험 등에 의심을 품을 수 있어도, 그런 것들에 바탕으로 한 다른 것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을 수 있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 자체는 변함이 없으므로 생각하는 나는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르네 데카르트의 말로 유명하죠. 이 말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생각이 나의 존재성을 좌우한다는 것이므로, 생각이 바뀐다는 것은 내 존재 역시 바뀐다, 결국 내가 내가 아닐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저는 여기서 양심의 자유가 도출된다 생각합니다. 생각을 할 자유는 물론, 그 생각을 표현하고 그 생각을 통해 선택할 자유까지요.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고 하죠. 만약 생각의 존재여부와는 상관 없이 생명이 선택에 우선한다면, 인간은 단순히 쾌락을 위해 다른 생물을 해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물론,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을 해치는 것 역시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생각하는 생명만이 선택에 우선할 수 있다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간 결론은 결국 생각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그 생각을 통해 선택할 자유에 우선할 수 없습니다. 모순이죠.

      2. 생명은 자유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자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미래의 자유를 위해 현재의 자유를 포기해라.’는 주장으로 귀결된다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생명의 가치가 언급될 이유는 전혀 없다 생각합니다.

      또 주체적 자살이라는 것은 ‘지금 내가 가진 행동의 자유가 미래의 모든 자유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깔고 들어간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첫번째로 비만, 음주, 흡연은 죽음과 간접적인 인과관계가 있고, 자살은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으니 구분을 해서 생각을 해달라 하셨는데,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생각합니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비만, 음주, 흡연으로부터 사람을 ‘구조’해야 한다는 발상으로 부터 시작하는 정책 역시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살 구조와 강도는 다르겠지만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오십보백보’, 즉 인과관계가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는 사실 주장의 큰 줄기와는 상관이 전혀 없습니다.

      두번째로 주체적 자살을 존중한다는 것이 자살 구조를 절대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고일 수 있고, 주체적이지 않은 자살일 수 있고, 사전에 알 방법이 없다면 일단 구조를 해놓고 보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보편화가 된다면 자살 시도 자체가 결론적으로 막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사전에 주체적 자살인거 다 안다면, 특히 이전 자살 시도가 있었다면 그 자살이 어떤 자살인지 다 알려지고, 주체적인지 아닌지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자살 시도 자체가 막힐 일은 없다 생각합니다.

      물론 사전 구조가 만능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안전이 중요하다 할지라도 생각할 자유에 우선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글의 0.에서 서술한 내용입니다.

      4. 정리하자면, 생각의 자유는 절대적 공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모든 생명이 선택보다 중요하다고 한다면 먹이 사슬에 있어 심각한 딜레마에 부딫히게 될 것이며, 그 생명을 생각하는 생명으로 한정한다면 생각을 전제로 깐 것이므로 생각의 자유에 따라 모순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생명이 선택보다 중요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에 따라 자살에 있어 생명의 가치가 개입할 여지는 없습니다. 다만, 자살 구조는 사전에 주체적 자살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조건 하에서 이뤄진다면, 근본적으로 주체적 자살을 막는 것은 아니기에 윤리적 문제는 없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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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빠른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0. 생명과 선택의 자유라는 가치 간의 비교에서 자신 있게 들이밀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많은 사회에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표현은 ‘이 정도는 공유된 전제가 아닐까’하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거기서부터 입장이 엇갈린다고 명시적으로 밝히신 manymaster님을 납득시킬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다만 선택이 생명에 우선한다는 주장에 대한 manymaster님의 근거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데카르트의 저 유명한 명제를 들고 오셨는데요, 저는 이것이 주장하시는 바의 근거로 충분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편의상 데카르트의 명제를 ‘코기토’라고 칭하겠습니다. 용법이 다양해진 철학개념을 편의를 위한답시고 적당히 갖다쓰는 걸 양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간에,

       

      manymaster님의 논증을 이렇게 정리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전제1. 코기토 명제는 참이다.

      전제2. 전제1에 따라 생각이 존재의 근거이다

      전제3. 전제2에 따라 생각이 존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다

      전제4. 선택은 생각의 결과이다.

      결론. 전제3,4에 따라 선택이 무엇보다 우선한다(실제로 무엇보다라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제가 이 논쟁에서 대립적 가치로 상정한 생명보다는 우선하는 건 확실하니 일단 이렇게 표현해두어도 통용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무슨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 논증을 공략하면 어느 정도 답변이 되는 거겠죠?

       

      전제1, 코기토 명제부터 시작하죠. 이 명제가 현 논쟁에 근거로 사용되기에 부적절한 이유는, 이 명제 자체가 존재의 비육체성, 이원론적 존재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애초에 존재는 육체적 생명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거죠. 결국 이 명제를 기반으로 한 반론은 순환논증에 그칠 수 있습니다. 이 명제는 처음부터 육신의 생명을 고려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이 명제를 근거로는 선택의 자유가 생명에 우선한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럼에도 이 논거를 고집하신다면, 제가 군중에 기대는 논거를 남용했듯이, 과도하게 특정 철학자의 권위에 기댄 논증이 될듯하군요.

       

      전제2에 대해 반박해보면,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꼭 그게 존재의 근거가 되어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애초에 코기토 명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명제의 대우이고, 이를 통한 논리적 입증일 뿐인데, 이런 입증이 통하는 건 생각이 진행중인 찰나의 순간뿐입니다. 잠시 생각이 멎는 시간이 있다면 이전에 생각하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동일성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코기토 명제만으로 생각이 존재의 근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철학에 조예가 깊으신 듯하니, 이런 전통적인 반론도 아마 익히 아실듯하군요.

       

      다음으로 전제1, 2를 받아들이더라도, 전제3은 비약이라고 느껴집니다. 데카르트가 생각을 존재의 근거로 삼은 것은 ‘생각’이란 생각하는 행위이지 생각의 내용이 아니었던 걸로 압니다. 그런데 manymaster님의 논증은 이것을 생각의 내용으로 해석하여 근거로 활용하고 계시니 당혹스럽습니다. 사고행위가 존재의 근거라고 한들, 그 생각의 내용이 바뀐다고 존재에 대한 침해가 발생한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전제1,2,3에 대한 반론에 따라, manymaster님의 선택의 우선성 혹은 절대성 논증은 받아들이기 어려움을 밝힙니다. 주장하신 바에 대한 오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2. 그러니까 자살을 현재의 자유로 미래의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로 해석하는 게 manymaster님의 해석임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자살을 둘러싼 논쟁에서 생명을 논할 필요가 없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군요. manymaster님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행위가 한 가지로만 해석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는 이상, 자살이라는 행위가 생명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이상, 생명과 자유의 충돌 문제라고 해석할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manymaster님의 해석이 논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근거라면, 자신의 해석이 이 문제를 다루는 데 더 적절하다는 것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선택의 자유가 우선할 수 있다는 직관은 이해할 수 있지만, 생명과는 무관하다는 확신은 그리 이해가 쉽게 되지는 않네요.

      3-1. 오십보백보라고 하셨지만, 저로서는 그것이 의미없는 차이인지 잘 모르겠네요. 비만과 자살을 위한 투신이나 자해가 거기서 거기라면 패스트푸드 광고는 살인미수로 처벌해야 하지 않을까요? 파고 들면 경계가 애매한 케이스가 있을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구분에 명백한 실익이 있는데, 이를 뭉뚱그려 그게 그거라고 단언할 충분한 근거를 저는 아직 모르겠군요.

      3-2. 어떻게든 구조행위에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자살 구조가 대체로 긴급한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고려해보면, 수집할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불어 누군가의 선택이 개인의 판단 결과인지 사회적 영향인지는 그야말로 애매하고, 많은 정보를 정밀히 분석해야 겨우 알 수 있을까말까 한 문제입니다. 현장의 구조자들로서는 더더욱 판단하기 힘들고요.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나 가능한 케이스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실효성 있는 방법이 전무한데, 이를 권리침해 행위로 만들 가능성을 포용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네요.

       

      긴 글 읽어주셨는데, 제 체감상 더 긴 글을 남기고 가려니 약간 송구스럽네요. 그럼에도 토론 상대거 되어주신 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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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1. 우선 저는 생명이 선택권에 우선하지 않는다고 했지, 선택권이 생명에 우선한다고 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선택이 생각의 결과라서 중요한 자유라 말한 것은 양심의 자유에서 내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분리한 그것입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내심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받아야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침해할 수 있다(오해를 할 까봐 말씀 드리자면, 헌법 37조에 따른 침해입니다. 침해를 막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 적이 있습니다.

    1-1. 첫 전제에 대한 반론의 반론은 너무 간단합니다. 사람은 생명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전에 깐 전제와 연계해서 설명드리자면, 남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비윤리적입니다. 곧 남의 생각을 함부로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1-2. 이전에 생각하던 자신와 지금의 자신 사이의 동일성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 역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굳이 생각이 멈췄을 때를 가정하지 않더라도요. 그러나, 이전의 자신이 자신으로 간주할 수 있는 범위가 있고, 지금의 자신이 자신으로 간주할 수 있는 범위가 있으며, 그 둘이 겹치는 영역 속에서 그 생각이 계속 흘러갈때, 그는 흘러가는 그 자신으로 그 자신을 생각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코기토 명제만으로는 찰나의 자신만을 규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찰나의 자신들이 자신으로 간주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하고, 그 겹치는 범위 내에서 생각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그것이 곧 존재의 근거가 된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으로 규정되지 않는 상태로 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죠.

    1-3. 물론 생각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근거는 코기토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밀의 자유론도 있고, 새로 태어났다는 표현이나 변절자 상대로 죽었다는 표현 등도 있죠. 다만 코기토 만큼 절대적인 명제는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코기토를 중심으로 논지 전개를 하려는 것입니다.

    2. 자살을 논하는데 있어서 생명의 가치를 언급해야 한다고 해도, 모든 세부적인 이야기에 언급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중언부언이 될 것 같아서 굳이 생명을 언급하고 싶다면 코기토를 통한 제 주장에 우선 반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명은 자유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자살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미래의 자유를 위해 현재의 자유를 포기해라.’는 주장으로 귀결된다는 논지를 반박하기 위해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 하기보다는, 주제를 바꿔서 생명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편이 낫지 않나하는 생각입니다.

    3-1. 타인에게 어떤 해악도 미치지 않는 행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해악과 개인이 가지는 자유의 효용을 비교하는 공리주의적 관점의 보완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님이 제시하셨습니다. 그 기준이 반론에 항상 부닥칠 수 밖에 없다는 것 까지요. 그런 점에서 권리 침해의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권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굉장히 극단적인 생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생명을 위해 자살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극단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면, 생명을 위해 다른 개인의 선택권 역시 극단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초기에는 모순임을 꾸준히 제시하셨습니다만, 이번에는 그런 말씀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3-2. 논지 전개에 있어서 큰 실수를 한 것이 있어 갈아 엎겠습니다. 무슨 소리냐면, 자살 존중, 사회의 책임, 자살 구조의 관계를 잘못 파악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태일의 자살은 주체적 자살로 간주됩니다. 상당수 노동자들은 이 자살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이 자살이 근로기준법 미준수와 관련된 만큼, 자살에 대한 사회의 책임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전태일의 자살은 근로기준법 준수로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윤리적이기도 하고요.

    일반화하겠습니다. 주체적 자살이라 할 지라도, 누군가에게 그 자살에 대한 책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 그 자살을 주체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자살 구조를 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책임 회피입니다. 그러나, 잠깐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자살은 분명 일어나는 일이고, 특정 자살에 대한 책임이 없는 사람도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으며, 그 사람들은 그 자살에 대해 충분히 주체성을 판단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자살을 윤리적으로 막을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실텐데, 자살을 존중하라 하면서 자살한다면 그건 어떻게 막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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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제가 작성한 첫 글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이네요.

      논지는 자유주의의 대원칙은 비껴가면서 자살이 끼칠 수 있는 해악을 찾아내는 반론이 한계가 있다는 것에서 시작했었죠. 기존 반대주장의 한계를 지적하고 다른 근거의 필요성을 얘기한 대목이지, 주장의 근거로서 제시한 얘기는 아닙니다.

      그 때문에 방향을 튼 반대 논거 중 첫번째가 가치 대립이었습니다. 자살은 결과적으로 생명을 상실케 하는 행위니까요. 이게 미래의 자유를 위해 현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음은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함의가 가지는 위험성도요. 아마도 제가 생명의 가치를 자유의 전제라고 설정했기 때문에 이런 반론을 제시하신게 아닌가 싶은데요. 일단 이 얘기를 하신 게 맞는지 짚고 넘어가고 싶네요. 제가 생각한 게 맞을른지요?

       

      다음으로 순환의 문제였죠. 단순히 권리침해의 가능성이 있어서 권리를 없는 것으로 본 게 아닙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권리침해 가능성이란 게 사실상 구조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무력화해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던 겁니다. 권리침해가 발생할 여지가 있으니까 권리를 인정하지 말자는 얘기는 제가 들어도 폭거에 가까워보이는 논리네요. 제 표현이 오해를 불렀다면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너무 권리침해라는 표현에 주목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초점은 어디까지나 자살을 권리로 존중할 경우 구조행위 자체가 무력화될 위험입니다.

       

      다음으로 전태일 열사 얘기가 나온 건 상당히 당혹스러운데요, 애초에 제가 논의의 범위를 설정하면서 단순한 고통 회피가 아닌 사회운동, 정치적 의사표현으로서의 자해, 자살 행위는 배제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런 특수한 경우는 사안에 따라 고려할 것이 상당히 늘어나니까요. 가령 사회적 책임이 있는 자살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정치적 표현행위의 일환이나 시민불복종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이 사례에 대한 특정한 한 가지 해석방식을 고수하기 위해 제가 논지를 뒤엎어야 할 필요는 없어보이네요.

       

      마지막 문장은 저로서는 상당히 의문인데요, 지금까지 논의에서 자살을 타당한 선택으로 존중하기는 힘들다는 쪽 주장을 견지해온 건 제 쪽이 아니었나요? 저는 누가 어떤 생각으로 자살하려한건지 일일이 알기 힘드니 모두 구조 대상으로 생각하는 편이 타당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살은 권리가 아님을 디폴트 설정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왜 제게 자살을 존중한다면 어떻게 막을 거냐고 따지시는지 조금 의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원칙적으로 자살은 권리가 아니며 모두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생명을 해쳤다고 해서 그 모든 행위를 자살이라는 범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저항, 안식, 불복종, 정치적 표현 행위로 해석해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manymaster님이 좋은 의견을 많이 남겨주셨으나, 다소 논의가 길어지면서 반론을 전부 세밀하게 소화해내기에는 제 이해력이 충분히 받쳐주지는 못하는 것 같네요. 어디를 어떻게 반론하신 건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 같은 어휘를 다른 뉘앙스로 해석하고 있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른 아침에 읽고 작성하기 시작한 글이라 두서가 없었습니다. 이쯤에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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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오늘 일이 있어 상당히 늦었네요.

      제가 생명의 가치를 자유의 전제라고 설정했기 때문에 미래의 자유를 위해 현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던 것은 맞습니다.

      두번째로, 자살을 권리로 존중할 경우 구조행위 자체가 무력화될 위험에 대해 심히 걱정하고 계신데, 이 위험을 무조건 회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생각합니다.

      구조 행위 자체가 무력화 될 수 있다, 그것 자체는 동의합니다. 자살 자체가 긴급 상황이라는 것도 이해를 하고요. 그런데, 긴급 상황이면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북한 함선이 NLL 침범을 했다고 우리 해군에서도 바로 출동해서 바로 함포 쏘나요? 이 교전 돌입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물론 이게 쓸데없이 복잡했다가 선제공격 당하고 나서 간소화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로 함포 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모든 분류된 상황에는 그에 맞는 메뉴얼이 있을 수 있고, 없으면 만들면 되고, 문제가 생기면 보완하면 됩니다. 그걸 권리 침해를 최소한으로 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구조 행위의 무력화가 문제라고 그냥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라고요? 굳이 이런 메뉴얼 만들 필요 없다 그래도 구조행위자에 대해 책임만 안 물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텐데, 그걸 넘어서 자살은 권리로 존중하지 않겠다? 이건 인권에 대한 과잉 침해 아닌가요?

      구조 행위에 대해 적절한 규제가 없어서 인권이 지속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 사례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신과 강제 입원이 있죠.

      http://www.hankookilbo.com/v/1520e8c946ae45c98a8f6c73f200ff8a

      세번째로, 논지 이야기는 제가 실수로 논지를 전개하는데 필요한 요소를 하나 빠트려서 잘못 전개하여 논지를 수정하겠다는 이야기였지, 일부러 님이 논지 전개를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해를 하게 만들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전태일 이야기는 자살이 주체적이라는 것과 자살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그 자살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은 상관관계는 있을 수 있어도 논리적으로는 별개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예시일 뿐이었습니다. 굳이 정치적이고 뭐고 어떻고 이야기를 하셨던데, 그걸 피하기 위해 밑 문단에서 일반화를 일부러 한 것입니다. 다만, 자살과 자살로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 등은 별개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공감이 잘 안 갑니다. 물론 자살이 가벼울 수도 있겠지만,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선택하는 자살은 최후의 수단일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죽음의 무게 역시 무거웠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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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서로 이해가 잘 안되는 얘기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은데, 직관이 엇갈리는 대목까지 도달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당장 논거를 드는 것보다 좀 시간을 갖고 이 토론을 되새겨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물론 그중에는 재반론하기엔 스스로가 보기에도 어설픈 논거도 있습니다. 자살의 범위 문제는 생각을 좀더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겠네요.

       

      걔중에 아직 서로 어려움 없이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논거는 구조행위와 관련된 논리적 순환의 문제인 것 같아서 그 부분에 있어서만 몇 마디 남깁니다.

       

      매뉴얼 등 절차적인 방법을 통해 책임을 묻지 않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해주셨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급하다고 막할 수는 없는 일이죠. 링크로 올려주신 자료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분명 그런 식으로 구조자들이 처하는 문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원리적으로는 해소할 수 있겠네요.

       

      그러나 그럼에도 저로서는 여전히 자살을 구조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자살을 정당한 권리 행사로 인정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훌륭한 매뉴얼과 절차를 통해 자살시도자가 충분히 진지한 숙고 끝에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아냈다한들, 그의 선택을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철수해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살방조죄가 있는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그러기도 쉽지 않고요.

       

      분명 면책시켜주는 방법으로 구조자들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과도한 책임을 지는 일은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조자 쪽 문제 구조자들이 열심히 살려놓은 자살시도자의 자살할 권리는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닌가요? 스스로 죽으려는 권리가 인정 받지만 구조자의 구조의 의무는 인정되며 자살할 권리를 침해한 것에 대한 책임은 면책된다면, 사실상 자살의 권리는 좋게 말해 유명무실, 나쁘게 말하면 그냥 모순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 뿐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자살방조죄가 존재하고, 이 법을 지탱하는 직관인 자실은 구조의 대상이다라는 명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딜레마는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반론이 먹힐지 말지는 간단하게 결정될 수도 있겠군요. manymaster님은 구조자들이 자살자의 진지한 의사를 확인하면 그 사람이 방해받지 않고 자살할 수 있도록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네요. 만약 그러시다면, 저는 제 스스로도 가지고 있는 이 직관부터 재검토해봐야겠군요.

       

      꾸준히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처럼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는 기회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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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생각나는 바가 있어 몇 자 더 적어봅니다.

       

      혹 매뉴얼상 의무를 충실히 다한 후 구조해야 한다고 판단해 살려놓았는데, 나중에 보니 존중되어야 할 선택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를 가정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이 선택을 존중해서, 사후적으로나마 그 사람의 권리가 실현되는 것을 도와야 할까요? 즉 나중에라도 책임지고면 죽여줘야 할까요? 제 직관은 그건 아니라고 하는데, 혹 그래야 하는 게 옳다고 하신다면 그 정말 근본적인 직관의 차이가 드러나겠네요.

       

      일단 제 생각대로, 사후적으로 죽여줄 수는 없다고 한다면, 이 경우엔 우선 권리 침해자들은 면책됩니다. 자살방조죄가 존재하는만큼 그 권리를 침해할 의무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는데다 사후적으로도 실현해줄 수 없는 권리라고 한다면, 이건 권리라고 이름 붙인들 권리로서 존중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제 섣부른 판단일지는 몰라도, 실현을 방해하는 게 의무고 침해받은 권리를 누구도  복원시켜주지 않는다면 여기에 권리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조차 어려워 보입니다.

       

      혹시나 제가 이 글을 작성하는 중에 글을 작성하고 계셔서 서로 문답이 꼬일까봐 좀 걱정이 되지만, 저로서는 거의 마지막 수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글을 남깁니다. 발언 순서를 어기는 것 같아 약간 켕기지만 호기심이 앞섰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만약 자살방조죄는 자유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것이라거나, 사후적으로라도 사망시켜주는 게 맞다는 답변을 히신다면, 그 이상은 논의를 전개할 자신이 없네요. 반면 매뉴얼을 제시하셨던 것처럼 새로운 절차적 해법 등을 제시해주신다면 반갑게 제 생각을 되새길 기회로 여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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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 방조죄가 어떻게 적용되느냐의 문제가 있기는 한데, 실제 주체적이라 생각하는 자살 시도를 도와줬다고 유죄를 때렸던 판례가 있습니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사건번호 92도1145 판결입니다. 나중에 도와줬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무죄로 재심 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이 재심 결과와 제 주장 사이에는 전혀 관계가 없으므로, 저는 자살 방조죄는 위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조했던 자살 시도가 주체적이라는 것을 판단한 후에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일부러 죽이려고 하는 것은 저는 문제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뀔 수 있고, 그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방법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도요. 자신이 투신하려 할 때의 두려움과, 타인이 칼을 들고 목숨을 위협할 때의 두려움은 전혀 다르다 생각합니다. 설령 청부자살이라 할지라도, 부탁한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의 두려움이 같기는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주체적 자살인지 확인할 방법, 구조 후 주체적 자살임을 확인할 방법, 구조한 자살이 주체적 자살임을 확인한 이후 구조자와 기타 사회의 대처까지, 권리의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짜야 할 메뉴얼의 범위가 매우 넓어졌네요. 설령 이런 메뉴얼에서 잠깐 자살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자살할 권리가 권리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두 경우에 대해 차후의 메뉴얼은 큰 차이로 벌어질 수 있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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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 프로필
      익명 님의 반대 의견 - 3년 전

      답변 감사합니다. 저로서는 그 정도까지 제한을 허용하는 권리를 권리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스럽지만, 결국 권리의 개념이나 권리를 인정한다는 말을 다른 뉘앙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논쟁을 이어간다면 아마 권리의 개념을 갖고 싸워야 할 것 같은데, 주어진 논제에서 너무 벗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약간 주저되네요. 이 사이트에서의 토론 경험은 manymaster님이 훨씬 많으시니 판단을 맡겨도 될까요? 논제에서 다소 멀어지는 감이 있지만 권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을 이어갈지, 아니면 일단  논제에 대한 의견 교환은 충분히 된 걸로 보고 마무리해야 하는 게 나을지, 어떻게 보시나요.

      어느쪽이든 환영입니다만, 토론을 이어간다면 얘기가 상당히 멀리까지 온만큼 다소 답변을 준비하고 작성하는 게 늦어질 수 있음은 양해해주셨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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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nymaster의 프로필
      Lv8 manymaster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권리’가 무엇인가라…

      개념을 정의하기 위한 토론이라 한다면, 해당 개념에 대해 서로가 공통점이라 인식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다른 개념임을 인정하면 끝나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이 토론을 위해 할 이유도 없는 것이고요. 또 차이점에 대해서도 인식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적 명확하게 정의를 해야 서로간에 토론이 수월해 질 것인데,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이 공통점과 차이점의 명확함을 위해 이야기하고 있을 수만도 없고요. 논제와 연관성이 있는 토론이라면 큰 문제는 없지만, 그 연관성이 희석이 된다면, 특히 그 희석이 소재와는 직접 상관없는 토론의 사전 준비라면 많이 곤란하겠죠.

      다만, 잠깐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한다면, 저에게 있어 권리는 ‘인격체가 인격체로서의 삶을 위해, 혹은 인격체로서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힘, 자격 따위의 것’을 말합니다. 풀어서 쓰자면 ‘자기 생각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 자기 생각에 따라 더 나은 현재 또는 미래를 위해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말합니다. 자기 생각에 따라 미래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자살할 수 있는 것이고, 생각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선택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그런 선택이 무분별하게 남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제한이 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법학, 경제학 등이 있는 것이고요.

      네이버 국어사전에서의 권리란 ‘어떤 행하거나 타인대하여 당연히 요구할있는 이나 자격’을 말하며, 인권이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을 말합니다. 물론 제가 이런 정의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공통점을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 참고가 가능한 정의이기에 소개하는 것입니다.

      제 생각과 사상을 정리하는 것에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 토론이네요. 특히 구조의 무력화 문제는 어떻게 해결 방법을 찾을 지에 대해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었으며, 코기토 그 자체는 찰나의 존재만을 입증해 준다는 말은 계속해서 곱씹어볼만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이야기 나눠볼 수 있을 때 또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님간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일단락 되겠지만, 이 주제는 계속 열려있고, 다른 분들도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계속 낼 것이며, 그것들에 대해 이견이 있다면 언제든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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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제게도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된 유익한 토론이었습니다. 꾸준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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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들라코거스의 프로필
    Lv4 들라코거스 님의 찬성 의견 - 3년 전

    자살에 대해 논의할 때는 말이죠.
    고층에서 떨어져 죽는 자살, 강에 떨어져 죽는 자살, 동반자살, 수면제로 자살, 자살테러 등등 많은 형태의 자살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곁가지에 좌우되면 자살에 대해 논의할 수 없습니다.
    테러, 살인은 살아서도 할 수 있습니다.
    자살테러, 동반자살은 자살과 테러고 자살과 살인입니다.
    그냥 동시에 일어나는 일일 뿐 그 어떤 인과관계 혹은 연관관계조차 없습니다.
     
    그러니 저는 ‘자살’을 ‘자기 의지로 죽는다’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되어야 하는가?
    일단 제 생각을 밝히자면 당연히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천천히 해나가려고 합니다.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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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라코거스의 프로필
      Lv4 들라코거스 님의 중재 의견 - 3년 전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는 주제에 마음만 앞서

      거창하게 쓰는 재주만 는 것 같습니다. 다시 글 쓰겠습니다.

       

       

      자살에 선택이라는 말을 붙이는 거, 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처음부터 선택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있었던 거죠?

      법적인 절차, 여론 형성, 언론에 기고, 혹은 정말 힘들 때 일상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이라도 있었나요?

      선택권이 얼마나 많았길래 자살을 감히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요?

      그런 ‘선택’ 의 기로에 서본 적도 없는 제가 감히 자살을 ‘선택’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저 뿐만아니라 여기 많은 분들도 어떻게 자살을 ‘선택’ 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건 차라리 협박 또는 강요에 가깝다고 느껴요.

       

       

      어느 분께서는 이렇게 물으시겠죠.

      그건 삶에서 꼭짓점에 내몰린 사람의 자살을 말하는 것 같은데 자살 테러 같은 건 어떻게 생각하니?

      글쎄요.

      제가 말씀드렸듯이 자살 테러는 일단 자살에 앞서 범죄이기 때문에 절대로 존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살 테러의 경우에도 자살한 것에 죄를 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자살을 존중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자살을 긍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살을 존중하고 말고에 상관없이 자살이 일어나는 현실을 긍정해야 합니다.

      지금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어요.

      왜 자살한 걸까?

      그들에게는 죽을 자유 밖에는 없었던 걸까?

      다른 방법으로 재기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마음을 잡도록 도와줄 사람이 없었던 걸까?

      그들은 죽음을 통해서만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결국 이 주제에 의견을 말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자살을 긍정하는 세상을 위해 먼저

      자살을 존중하라고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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