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왜 인간을 도와야 하나?

인간은 왜 인간을 도와야 하나?

  • #9943

    <전제조건>
    1.현대 사회에서, 대다수의 인간들은 ‘나’ 를 돕거나 위해주지 않는다.
    2.꿀벌은 ‘나’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작동하도록 도와준다.

    <질문>
    한마리의 꿀벌이 밟혀 죽는것이, 다른 한 인간이 죽는것보다 더 슬프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인가?

    <확장질문>
    농약때문에 집단폐사된 꿀벌 100마리를 보면서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만, 세월호 학생들 100명이 죽은것에 대해선 조금도 슬프지도, 안타깝지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인가?

    <주의할점>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냉혈한이 아니다. 나는 꿀벌이나 코끼리같은 ‘나의 삶에 도움을 주는’ 벌레 및 동물들과, 아버지, 어머니, 친척, 친구들 같은 ‘나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인간들의 고통과 아픔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 #9945

    되게 깊이 있는 생각을 혼자서 해보신것 같네요

    주제가 되게추상적이라 납득이 안되는 부분도 있지만

    자신을 도와주는 생물은 슬퍼하고 자신과 관련이 없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생물은 슬퍼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 인가라는 뜻인가요?

    단순하게생각해서 꿀벌이 죽는것을 인간이 죽는것보다 더 슬퍼하는사람이있다면..그거 정상인이 아닌것같은데;
    자기가 키우던 반려견이나 애완동물이 죽은것을 주위에 잘 모르는사람이 죽는것보다 슬퍼하는 사람은 있을수야 있겠지만
    꿀벌은 쫌…;

    인간은 인간을 도와야 하는가? 솔직히 말해서 딱히 도울 필욘 없죠. 도덕성에 관련된 문제니까요.
    너는 이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으니까 징역5년에 벌금 3000만원이야! 라는건 말이안되잖아요 ㅎㅎ

    하지만 사람은 사회성을 띠는 동물이고 생각 할 수 있는 배려할 수 있는 동물이기에 서로 도우고 사는 것이
    결국엔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살면서 깨달았기에 인간이라는 종족이 이렇게 지구에 살고있는것 아닐까요

  • #9967

    sam

    모두가 서로 돕지않는다면 모두가 서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꿀벌뿐만아니라 인간도 지구의 존속을 위해 노력을 해야하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입니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지 않는 한에야 지구없이 인류는 존재할 수 없겠지요. 거창하게 말하면 ‘연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겁니다.

    첫번째 질문에도 여러 전재조건을 단다면 잘못된 일이 아닐겁니다. 뭐 극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강도가 칼을들고 나를 쫓아오는데 옆의 꿀벌이 귀찮게해서 발로 걷어찼는데 그 순간 강도의 몸의 균형이 무너져서 절벽으로 떨어지는 걸 봤다는 식의… 뭐 이런걸 원하신 건 아니겠지만 어떤 논지로 말씀드리는지는 아시겠지요.

    결국 어떤 사람에게 있어 선善이라는 건 그 사람에게 이득 혹은 도움이 되는 일일테니까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월호 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것은 위에서 말한 ‘연대정신’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그들(세월호 학생)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사회가 그들(분노하지 못하는자들)에게도 선善이 되는 사회인 것을 모르는 데에서 오는 무지인게지요.

    • #9970

      1.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존재들의 입장에서, 인간은 선(善) 인가요?
      2.심지어 인간 스스로에게조차 인간은 선(善) 합니까?
      3.악(惡)의 기준이 ‘나에게 해로운 것’ 이라 가정한다면, 인간은 지구 전체에게 악(惡)이 아닌가요?

      4.인간이 악(惡)이라면, 인간이 인간을 돕는것은 ‘집단이기주의’ 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5.인간이 악(惡) 이라면, 지구 전체에 선(善)한 꿀벌의 죽음이, 인간 스스로에게조차 악(惡)인 인간의 죽음보다 더 슬픈것은 왜 잘못된 것일까요?

  • #9986

    sam

    선악에 대한 관점은 지구에 70억개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제 관점과 궁금이님의 관점에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제 공부가 많이 부족해서 명확히 언어로 표현하기가 아직 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인간이 그 다른존재에게 도움 혹은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할 경우, 그 다른 존재의 입장에서 인간은 선일것입니다.

    2. 한 사람이 인류 전체에 있어 선이 되는것이냐고 물으신 것이라면, 그것은 그 사람의 행위가 인류에게 도움이 되느냐 혹은 피해가 되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갈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선악의 구분은 그 사람이 행하는 행위에 따라서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지구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해야 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니 인간은 지구에 악하다 라고 하는 견해조차도 결국 인간의 잣대로 지구를 평가하는 것이니까요. 환경파괴라는 것은 사실 인간의 관점에서 조망한다면 인간의 지속적인 존속을 위해 지양되어야 하는 행동일 뿐입니다. 지구는 강인한 플라스틱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류를 진화시켰다라는 관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4. 인간이 반드시 악이라면, 누군가를 돕는 행위자체가 일어나지 못할 것 입니다. 집단이기주의라고 말씀하신것은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종種의 입장에서 말씀하신 것인지요? 그렇다면 인간이 어떤 특수한 종種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 행위를 받아들이는 종種에게 인간은 악일 것입니다. 그러나 2번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 행위에 국한해서만 악이 될 것입니다.

    5. 이전에 말씀드렸던 강도와 꿀벌의 예시를 다시 차용하면 반드시 잘못된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 이 행위의 잘잘못을 판가름 하는 것은 그것을 관찰한 ‘내 자신’의 판단입니다.

    다른 예시를 들어보지요. 선하다고 여겨지는 꿀벌이 나를 쏜다면 그 꿀벌은 내게 위해를 끼친, 즉 악한 행위를 한 꿀벌이 됩니다. 그러나 그 꿀벌이 자신들의 벌집에 접근하려고 하는 나를 막기위해 벌침을 쏜 것이라면 그 꿀벌은 꿀벌들에게 있어 선한 행위를 한 것이겠지요. 이렇듯 저는 선악이 절대적인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9990

      1.하지만 대다수의 인간은 ‘나’를 돕는데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의사항에 밝혔다시피 ‘나에게 도움되거나 나를 위하는’ 사람들의 죽음엔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글에서 말하는 ‘인간’ 이란 나를 돕는데 관심없는 99.99%의 인간을 말하는겁니다.

      2.어떤 개체의 선악 기준을 예 아니면 아니오 로 구분지을 수 없으니, 각자의 ‘일상적 체감’ 을 통해 ‘상식’ 을 합의하는게 어떨까 합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수천수만의 사람들 중, sam님께 도움을 주는 인간이 많나요 아니면 피해를 주는 인간이 많나요? 자연파괴, 소음공해, 인구과잉, 주거환경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요. 반대로, 꿀벌이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작동하게 하는 열쇠같은 존재라는 것은 이미 수많은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사실이고, 꿀벌이 멸종되면 지구생태계도 같이 멸종한다는 것 또한 과학적 사실입니다. 그럼 꿀벌이 인간보다 객관적으로 더 선(善)하다는 합의를 봐도 좋지 않을까요?

      3.지구가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인간을 진화시켰다라… 그럼 이런 가정도 가능합니다. ‘우주를 파괴시키기 위해 내려온 13명의 악마가 인간을 만들어내어 지구를 기지로 삼아 악을 저지르고 있는건 아닐까?’ 당연히 말도 안되는 가정입니다. 오컴의 면도날이 필요한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4.악인들도 서로 돕습니다. 신화를 보면 악마들도 협동하니까요. 일상에서도 정치인들이나 경제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서로 돕죠. 그밖에도 정경유착, 학벌주의, 우리가남이가 등등 ‘악이 악을 돕는’ 일은 수도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악이면, 아무도 돕지 않는다’ 는 것은 잘못된 가정으로 보입니다.
      인간은 어떤 특별한 종 ‘하나’ 만을 대상으로 공격하지 않지요. 인간이 지난 100년간 멸종시킨 동물들만 해도 수백종이 넘습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구요. 인간이 ‘지구’ 즉 생태계에 끼치는 ‘좋은영향’ 이 단 한개라도 있을까요?

      5.한마리의 꿀벌이나 한명의 인간이 종 전체의 선악을 나눈다는건 좀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요?

      꿀벌은 지구 생태계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꿀벌은 지구전체에 ‘선’한 행위를 하고있다.
      인간은 지구 생태계에 악형향을 준다 따라서 인간은 지구전체에 ‘악’한 행위를 하고있다.
      수천억마리의 꿀벌 중 한마리가 나를 공격했다 = 꿀벌 전체는 악인가?
      수십억마리의 인간 중 한마리가 나를 도와줬다 = 인간 전체는 선인가?

      심지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꿀벌이 인간을 죽인다면, 그것은 지구 전체에게 도움되는 ‘선’ 을 행하는것이 아닌가?

  • #9997

    sam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제 답변이 마음에 족하시길 간절히 바라며 부족한 손가락이나마 놀리도록 하지요 ㅎㅎ

    1. 저는 의식하고 있지 않든 무의식중이든 간에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은 그것의 영향력이 미미하나마 모든 인간사회에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므로, 한 인간의 행동이 다른 인간에게 미친 이 영향은 그 영향을 받은 다른 인간의 관점에서 선한지 악한지,즉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판단 할 수 있을 따름일 것입니다.

    2. 1번의 연장선상에서 말씀드리면 꿀벌이 인간보다 선하다고 판단하는 그 객체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객관성이라는 것은 결국 무수히 많은 주관성들간의 공통분모일 테니까요. 이를테면 궁금이님께서는 자연파괴와 소음공해, 인구과잉 그리고 주거환경적인 측면에서 타인을 바라볼때에는 이들이 궁금이님 자신에게 악悪이 된다고 생각하신다고 추측됩니다. 저도 저러한 측면에서 타인을 바라볼 때에는 제 자신에게 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에게 선이 될 수도 있겠지요. 옆집에 새로 이사온 이웃이 돌리는 떡을 받았을때,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면서 새벽같이 일하는 신문배달부의 노고를 생각해볼때, 주야로 입주인들을 위해 수고하시는 경비아저씨들을 볼때에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악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3.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말을 처음 알게됐습니다. 제 안계를 넓혀주신것에 우선 감사드립니다 ㅎㅎ

    저는 지구 생태계라는 정의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정의라는것에 주목하여 플라스틱 이야기를 꺼낸 것 입니다. 지구가 과연 지구 생태계를 번성시키기 위해서 46억년전에 화산활동을 시작했을까요? 이 의문은 우리가 지구의 입장을 알 수 없는 이상 결국 철학의 영역에서 추측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지구 생태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결국 인간 종족의 존속을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꿀벌이 생태계 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면, 꿀벌은 지구 생태계에 선이 될 지언정,즉 인간에게 선이 될 지언정 지구에 대해 선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4. 3번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생태계와 지구를 동일시 하는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악인들간의 도움도 건방지게 제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그들이 절대 악인 혹은 절대 악마가 아니기에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경유착과 학벌주의같은것도 절대악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사회의 일반의지가 이러한 것들이 자신에게 악이 된다고 생각하고 배격하는 것이지요.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말씀드린다면 저는 정경유착과 학벌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관계당사자들간에 이로인한 이득이 있기에 발생하는 것이겠지요. 이것때문에 피해를 보는 절대다수 (저를 포함하여)의 시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5. 어떤 한 사람이 꿀벌과 인간 전체의 선악을 판가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나’가 일생을 사는동안 53만 2천명의 사람이 나를 도왔고 4천200여만 마리의 꿀벌도 나를 도왔다고 한다면-도움의 기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그 ‘나’는 53만 2천여명의 사람과 4천 200여만마리의 꿀벌이 ‘나’에게 행한 행위의 선악을 판단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나머지 꿀벌과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의 기준에서 그 선악을 알 수 없습니다.

    지구와 지구 생태계를 동일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계속 말씀드렸다시피 생태계라는 단어 자체도 결국 인간의 정의定義이기에- 만약 동일시 한다고 생각해도 향후 인류 전체가 생태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가능성도 0이 아니기에, 인간을 생태계에 대해 절대악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10014

      저도 제 사고의 범위를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디베이팅데이에 가입하였습니다ㅎㅎ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에서 많은 토론이 있었으면 합니다.

      1.현대사회는 그 존재를 유지하는것만으로도 자연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자연광물을 소비하고, 수많은 동물을 감금시키고 고문하다 잡아먹고, 수많은 화학제품으로 땅을 오염시키고, 수많은 불연성쓰레기들로 대기와 대지를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생태계 입장에선 어찌됐든 ‘절대악’ 이지요.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인간에게도 큰 피해이기 때문에, 그 생태계를 파괴하는 인간은 곧 ‘생태계 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에게도’ 악합니다.
      그러나 꿀벌은 존재자체가 지구전체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지요. 따라서 생태계 입장에서 꿀벌은 ‘객관적 선’ 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저는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의 죽음보다 꿀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 이구요.

      2.꿀벌이 인간보다 선한지 악한지를 ‘인간입장’ 에서만 판단한다면 그건 ‘집단이기주의’ 가 아닐까요? 인간의 선악판단에 있어 집단이기주의를 벗어나려면, 인간 이외의 대상들에게도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해야 할텐데, 인간이 인간 외의 존재들에게 미치는 이로운 작용이 무엇이 있을까요? 물론 이로움의 기준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나은’ 이로움만으로 특정합니다.

      3.’인간중심적 정의’ 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태계 전체의 정의’ 를 판단한 것입니다.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존재’ 전부에게 ‘선’ 한가? 를 질문해보자는 거지요.
      그리고 ‘지구’ 와 ‘생태계’ 를 따로 구분하고 계신데, 구분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4.’악의 협동’ 이 ‘절대악’ 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정경유착이나 지역갈등, 성차별, 학벌주의, 사다리 걷어차기 등등 수많은 사회적 문제로 알려진 ‘악의 협동’ 들이 모두 ‘선’ 하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일부의 이득을 위해 그 외 나머지가 피해를 보는것’ 이 ‘집단이기주의’ 이고, 인간이 생태계에서 정확히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는 ‘인간사회에서의 집단이기주의’ 는 ‘악’ 으로 치부하면서, 생태계에서 정확히 같은짓을 하고있는 인류 전체에 대해선 ‘악’ 으로 가정하지 않는걸까요?

      5.어떤 한 사람의 판단으로 꿀벌과 인간의 선악을 판단할 수 없기에 ‘인간 외 모든 존재’ 에게 ‘선’ 한지를 판단한 것입니다.
      꿀벌은 생태계에서 없어선 안될 매우 중요한 존재이며,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 생태계는 완전히 붕괴됩니다. 생태계 전체가 작동을 멈추는거지요. 따라서 꿀벌은 ‘선’ 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겁니다.
      인간은 생태계에 ‘존재하지 않는것보다 더 나은 도움’ 을 주는것이 있나요? 만일 그런것이 없다면 인간은 생태계 전체에 ‘악’ 하다고 판단할 수 있을겁니다.

      생태계는 인간이 ‘그렇게 부르자고 약속’ 한 것일 뿐,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미 인류사 전부터 존재했던 ‘시스템’ 입니다. 그리고 생태계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우리가 인지한 대상들’ 을 포괄한 개념이구요. 따라서 저는 선악을 구분할때 ‘인간의 집단이기주의’ 를 배격하기 위해 생태계를 기준으로 선악을 구분하고자 한 것입니다.

    • #10023

      sam

      다시한번 꼼꼼한 답변을 달아주신것에 감사드립니다.

      답변을 드리기 전에 저의 선악관에 대해 자세히 설명드리고 이에 대한 비판을 받는것이 대화의 진전에 조금이나마 성과가 있을것이라 생각해서 한번 써보겠습니다. 제 선악관을 글로 써보는것도 좋은 경험이네요. 이런 기회를 주신것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선악이란 아주 극단적으로 뭉뚱그려 말하자면 이득과 손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A가 B에게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한다면 B에게 있어 A는 선한 행위를 한 것입니다.
      B가 A에게 손해가 되는 행위를 한다면 A에게 있어 B는 악한 행위를 한 것입니다.

      제 선악관에서 선과 선, 그리고 악과 악 간의 질적인 우열은 그것을 판단하는 주관성에 따라 시시각각 틀려질 것입니다. 양적인 우열에 있어서는 객관성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저는 무수히 많은 주관의 공통분모가 곧 객관이라고 여깁니다.)

      절대선과 절대악이란 곧 모두에게 있어 항상 선이고 또 모두에게 있어 항상 악인 것입니다. 제 선악관대로 말씀드리자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유일신조차도 절대선이 될 수 없습니다. 그(혹은 그녀)가 행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그와 대립하는 사탄의 입장에서 볼때 손해, 즉 악이 되니까요. 신의 전능한 속성에 대해서는 논외로 두어야겠습니다. 인간의 모든 이성과 논리는 신의 전능함 앞에서 무너져버릴테니 말이죠.

      악이 악을 돕는행위에 대해 말하자면,
      악인과 악인간의 협동은 그 악인들에게 있어 이득입니다. 즉 선입니다.
      그 협동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있어 악인간의 협동은 손해입니다. 즉 악입니다.
      악인간의 협동이 법의 처벌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피해자에게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선악과 사회정의를 구분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와 생태계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구와 생태계를 동일시 할 수 없는 이유는 지구가 생태계의 상위집합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태양계를 전체 집합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수금지화목토천해의 행성들은 태양계라는 전체 집합의 부분집합이 되겠습니다. 지구도 하위 집합들을 가지고 있지요. 지질학적으로 본다면 지각, 맨틀, 외핵, 내핵등의 요소들이 있겠고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여기에 다 나열하기 불가능할정도의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겠습니다.

      이쯤에서 생태계의 정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태계(生態系, 영어: ecosystem)는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들과 또 그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주변의 무생물 환경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생태계를 연구하는 학문을 생태학(ecology)이라고 한다.” -위키백과 ‘생태계’ 항목

      지구와 생태계가 동일하다면 지구에 대한 명제중 성립하는 명제들에서 지구라는 단어대신 생태계를 삽입해도 그 명제는 항상 성립해야 합니다.
      명제1)지구에는 많은 생물들이 살고있다. (O)
      명제1-1)생태계에는 많은 생물들이 살고있다. (O)

      명제1-1의 생태계가 지구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다른 행성의 생태계를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현재까지 인류가 보유한 지식에 의하면 지구만이 생물이 존재하는 유일한 환경이므로 옳다고 여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됩니다.

      명제2)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은 지구의 지각과 맨틀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O)
      명제2-1)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은 생태계의 지각과 맨틀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X)

      명제2는 참입니다만 명제2-1은 참이 아닙니다. 생태계를 서로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들과 무생물환경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라고 할때, 지각과 맨틀 사이에도 이러한 상호작용 관계가 조성되어 있어야, 즉 생태계가 존재하여야 명제 2-1이 성립할 것입니다.

      명제3)지구의 대부분은 수성, 금성, 화성, 달과 마찬가지로 암석과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를 포함한 이들 다섯 천체 중에서 지구는 가장 무거우며 또한 크다. 밀도 역시 가장 높으며, 표면 중력, 자기장, 자전 각속도가 가장 큰 천체이다. (O)
      명제3-1)생태계의 대부분은 수성, 금성, 화성, 달과 마찬가지로 암석과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태계를 포함한 이들 다섯 천체 중에서 생태계는 가장 무거우며 또한 크다. 밀도 역시 가장 높으며, 표면 중력, 자기장, 자전 각속도가 가장 큰 천체이다. (X)

      생태계 대부분이 지각 표면에 있다는것을 생각해보면 암석과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물로 이루어져있다고 하는 쪽이 옳겠군요. 생태계라는것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행성들에 비해 그 밀도가 높다고 하는것은 맞는 말입니다만 명제3의 밀도와 명제3-1의 밀도는 그 의미가 달라지게 됩니다. 나머지 표면중력, 자기장 등도 이와 같습니다.

      따라서 지구와 생태계는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겠습니다. 지구의 부분집합으로써의 생태계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궁금이님께서는 생태계가 지구의 탄생과 함께 존속되어온 시스템이며 인간은 그것에 생태계라고 명명한것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현대 인류가 생태계에 있어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즉 생태계에 있어 손해를 주고 있다는것은 현대 인류의 행위를 생각해볼때 옳다고 생각됩니다. 현대 인류는 생태계에 있어 악입니다.

      다만 절대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500만년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부터 현대의 인류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생태계에 있어 오롯한 악이었을까요?

      설령 그랬다고 한들, 앞으로 인류는 멸망전까지 생태계에 있어 계속 악일까요?

      인류가 생태계에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하는것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옳다고 판단한다면 그 판단 이후 인류는 생태계에 있어 선이 되는 행위들을 해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생태계나 인류 둘중 하나는 사라지겠죠.

      Nightmare님은 궁금이님께서 상처를 받고 인간을 미워하게 되셨다고 여기시는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반대로 궁금이님께서 인간의 미래를 염려하시어, 즉 인류의 존속과 생태계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신다고 여겨집니다.

    • #10048

      제 의견의 대전제 부분에 대해선 거의 동의하신것 같아 토론이 막바지에 접어든것으로 보입니다.
      ‘나에게 선악구분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 이해타산에 따라 적용되는 것이다’
      큰 논제는 합의점를 찾은것으로 보이니, 세부적인 부분만 간단히 정리하고 토론을 마치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새로 추가된 부분들에 대해 답변하겠습니다.

      1.500만년전 원시인류로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계속 자연에 ‘절대악’ 이었을까?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현대’ 라는 수식어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제가 말하는 ‘절대악’ 은 현대인류 입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돕지 않는다’ 는 전제 또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 에게만 한정통용 됩니다.

      2.오히려 궁금이님이 인간의 미래를 염려하여 이런 질문을 하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 :)

      이제 다시 핵심질문으로 돌아가 보고자 합니다.

      “현대 인간은 생태계 입장에서는 ‘절대악’ 이고, 심지어 인간 스스로에게조차 (나에게 도움이 되는 극소수의 인간을 제외하곤) ‘악’ 한데, 어째서 우리는 꿀벌의 죽음보다 인간의 죽음에 더 슬퍼해야 하는가?”

      “같은 맥락에서, 어째서 우리는 세월호 학생 100명의 죽음을, 꿀벌 100마리의 집단폐사보다 더 슬퍼해야 하는가?”

    • #10116

      sam

      아주 명료하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저로써는 매우 감사할 따름입니다 ㅎㅎ

      “현대 인간은 생태계 입장에서는 ‘절대악’ 이고, 심지어 인간 스스로에게조차 (나에게 도움이 되는 극소수의 인간을 제외하곤) ‘악’ 한데, 어째서 우리는 꿀벌의 죽음보다 인간의 죽음에 더 슬퍼해야 하는가?”

      정리1: 인간이 생태계에 대해 설령 절대악이라고 가정할지라도, 이를 통해 생태계가 인간에 대해 절대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생태계가 현대인류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고려해볼때, 인류의 생존을 최우선가치로 삼는 사람(A)에게 있어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는’ 인간들(B)은 그 사람(A)에게 있어 악인(B)일 것입니다.

      정리2: 꿀벌이 생태계에 있어 절대선이라고 가정한다면 답변1의 사람(A)은 꿀벌이 생태계에 도움이 되기에, 이어서 인류의 생존에게 있어 유리한 작용을 하기에 모든 꿀벌은 선하다고 할 것입니다.

      답변1: 위의 두 답변을 토대로 판단해본다면 언뜻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고 선인(혹은 선봉善蜂)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것이 당연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판단은 예를 들자면 부모가 집을 비운사이 벽에다 낙서를 한 아이가 집을 더럽힌 죄로 사형을 언도받아야 한다는것과 마찬가지인 판단입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구에 발딛고 살아가는 동물들 중에서 자립이 가장 느린건 인간이라고들 합니다. 가령 당장 한국에서 스스로의 결정을 책임질 수 있는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연령은 만19세 입니다. 이와 다르게 개는 6개월이면 성견으로 취급받고, 금붕어도 1년이면 모어(母魚)의 역할을 해낼 수 있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에서 성체(成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것이 가장 더딘 족속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국가가 생겼고, 현대국가는 그 국민들을 교육할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국민들에게 있어 교육은 의무이자 권리가 되었지요. 좁은 의미에서 보자면 교육의 목적은 결국 국가가 순조롭게 기능하는것에 국한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교육과 양육이라는 것은 그 학생이 인간 성체가 되기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사자나 독수리가 새끼를 기르는 것과 별 다를바가 없습니다. 원시인류는 사자나 독수리같은 양육방식을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류의 생활양식을 유지하기 위한, 즉 생존을 위해서는 현대의 교육이 필요하겠지요.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서, 그리고 질문하신 내용의 전제들에 하나의 조건만 추가한다면 아래의 문장들이 성립됩니다.

      (추가조건1) 생태계의 보존은 현대인류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위 조건을 삽입하는 것에는 충분히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문장1. 인간에게 있어 교육은 현대사회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성인이 되기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다.

      문장2. 교육받지 못한 사람은, 즉 생존에 필요한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없는 사람은 성인이 아니다.

      문장3.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람은 따라서 스스로의 생존에 불리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다.

      정리3. 그러므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람은 미성인이므로 교육을 통해 스스로 생존에 유리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성인이 되어야한다.

      즉 전제속의 현대인류는 추가조건 하나 덕분에 악인이 아닐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찾게 된 셈입니다 ^^;

      이제 이들은 정리1,2의 A에게 있어 죽어 없어져야할 악인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지도받아야 할 학생이 됐습니다. 짝짝짝!

      게다가 그 배움의 성과에 따라 오히려 A이상으로 생태계의 보존과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즉 인류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되는 존재로 거듭날 여지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들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느낄 감정은 우리가 그 재주를 못다 피우고 요절한 이들을 생각해볼때 떠오르는 그 감정과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슬픔과 깊은 아쉬움 이겠지요.

      꿀벌과 인간의 죽음을 저울질 했을때 왜 인간쪽의 죽음을 더 슬퍼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같은 맥락에서, 어째서 우리는 세월호 학생 100명의 죽음을, 꿀벌 100마리의 집단폐사보다 더 슬퍼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한꺼번에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우선 위키백과의 이 문서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C%9B%94%ED%98%B8_%EC%B9%A8%EB%AA%B0_%EC%82%AC%EA%B3%A0%EC%9D%98_%EC%B1%85%EC%9E%84

      위의 내용에 대해 다소 편향되었다고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에 대한 합당한 비판이 제기되지 않는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 수순일줄로 압니다.

      이제 꿀벌의 죽음과 세월호 학생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깊이’를 논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감성적으로 판단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호 학생들의 죽음에 더 슬퍼할 것입니다.
      타자에 대한 감정이입은 그 타자와 타자로 인해 해당 감정을 느끼는 본인간의 공통점이 많을수록 더 커지기 마련이니까요. 확실히 인간인 우리는 꿀벌보다야 똑같은 인간에게서 그 공통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테지요. 다만 제가 받은 교육으로 감성에 기반한 판단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심리학자라면 슬픔에 대해 감정이입 이상으로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제 지식이 얕아 당장 지금은 ‘감정이입’ 이 이상의 말씀을 드리기 힘들군요.

      이성적으로 판단해본다면 결국 이 역시도 ‘생존’이라는 정언명령의 아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는 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침몰의 원인을 제공한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해수부, 구조에 앞서 그들의 이윤을 앞세워 어쩌면 생존할 수도 있었던 희생자들을 만들어낸 언딘 등은 희생자들에게 있어 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희생자들도 유가족들도 아닌 대다수에게 있어서 이들은 현재 악이라고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잠재적으로 볼때 그들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잠재적 악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청해진해운이 운항하는 배에 탑승하진 않으려고 하겠지요.

      인간이 인간을 돕는 이유는 그렇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침몰사고와 비슷한 인재(人災)가 더 이상 재현되지 않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도 생태계의 보존 못지않게 우리의 생존과 깊은 연관이 있는 과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성인으로서의 역할이겠지요.

      그러나 꿀벌과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의 깊이를 저울질하자니 다시금 저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요.

      감정적으로 제 자신은 응당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에 더 큰 슬픔과 분노를 느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제가 만들어낸 ‘생존론’의 감옥에 갇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꿀벌 100마리와 세월호 희생자100명중 그 누가 더 인류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되겠는가라는 의문은 그들의 기여를 정량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제게 없기에 도저히 해명할 수가 없습니다 ㅠㅠ

      뭔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것 같은데 이건 좀 더 시간을 많이 두고 고민해봐야 할것 같군요.

  • #10001

    <전제조건>
    1.현대 사회에서, 대다수의 인간들은 ‘나’ 를 돕거나 위해주지 않는다.
    2.꿀벌은 ‘나’ 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가 작동하도록 도와준다.

    <질문>
    한마리의 꿀벌이 밟혀 죽는것이, 다른 한 인간이 죽는것보다 더 슬프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인가?

    <제 생각>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도, 누군가는 죽을것입니다.
    저는 그것에 슬퍼하진 않습니다. 그저 나도 언젠간 죽겠구나. 하고 미리 간 그들에게 명복을 빌고, 약간 두려울 뿐입니다.
    그리고 주변인의 누군가가 죽는다면, 친할 수록 슬플것이고, 별 상관없다면 위와 같을 것입니다.
    한마리의 꿀벌이건, 저 바다에서의 물고기들이건. 어느 산의 초식동물이건.
    자연은 순환합니다. 그들이 분명 이 지구의 순환에 도움이 되는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죽는다고 저는 슬퍼하진 않습니다. 미안할 뿐입니다. 그들도 간혹 인간 개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입장에선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가해자가 될수도 있으니, 미워하진 않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건 몇가지 있지만. 그중 주목할건 무엇이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것이고, 그 죽음에 슬퍼하고 하지 않고는 상황이나 친밀도에 따라 달라진다라고 생각합니다.
    꿀벌의 죽음에 슬퍼할 수 있고, 누군가는 구더기의 죽음에 슬퍼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

    한마리의 꿀벌이 밟혀 죽는것이, 다른 한 인간이 죽는것보다 더 슬프다면, 그것은 사람의 목숨보다 꿀벌의 목숨을 더 가치있게 보거나 꿀벌이 밟혀 죽은 것에 슬퍼하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에 잘못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그의 가치관에선 사람이 꿀벌보다 우위이기에 이해하지 못해서 아닐까요?

    왜 굳이 잘못되었다는 걸까요?
    우리가 평소 아끼던 반려동물과 모르는 사람의 죽음.
    물론 우리는 모르는 이들의 죽음을 대부분 더 슬퍼하겠지만.
    자신을 중심으로하는 이들, 사람을 싫어하는 이들 등의 부류에선 반려동물의 슬픔을 더 슬퍼하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잘잘못이 아니라 다름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확장질문>
    농약때문에 집단폐사된 꿀벌 100마리를 보면서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만 세월호 학생들 100명이 죽은것에 대해선 조금도 슬프지도, 안타깝지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인가?

    <제 생각>
    … 글쎄요.
    꿀벌 100마리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도 좋지만.
    꽃필 기회가 사라진 학생들 100여명에 조금도 슬프지 않다면, 그것은 조금 ‘이상’ 이지 않을까요?
    왜 꿀벌 100마리만을 생각하는 걸까요? 왜 꿀벌 100마리의 죽음에는 그렇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걸까요?
    그들이 지구에 도움이 되기에? 그들이 좋아서?
    왜 인지 저로선.. 글쎄, 왜일까요?
    질문자님께선 주의사항에 ‘나의 삶에 도움을 주는’ 벌레 및 동물과 나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인간들에 대해서 슬픔을 느낀다 쓰셨는데.

    그렇다면 물어볼까요?
    모기나 독사는 질문자님의 삶에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꿀벌이 질문자님에게 독침을 쏜다면 그땐 꿀벌조차 질문자님에게 도움을 주는게 아닙니다.
    이럴때는 어떻게 하실지 궁금하고.

    질문자님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인간들의 슬픔에 대해서,
    세월호 희생자 학생 100명들이 죽지 않았다는 가정에서 그들이 질문자님의 미래에 도움을 주게 될 운명이었다면?
    지금 100여명의 학생들이 죽은 것은 큰 손해로 보게 되는거 아닐까요?

    너무 손익을 따지는 것 같습니다만..
    어쩃든 사람 100여명의 생명이 사라진것은.. 그들의 부모와 친구들을 생각해서도 슬픈 일이고.. 그들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을 생각해서도 슬픈 일이죠. (하물며 꽃도 채 피우지 못한 학생들인데!)

    인간은 사회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농사를 지어 땅의 기운을 풍족하게도, 빈약하게도 하고, 타 생물을 잡아먹거나 자연에 피해를 주기도하고, 타 생물을 치료해 주거나 자연을 가꾸기도하는 이중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서로의 행복과 슬픔을, 생각이나 느낌을 나누는 이들입니다.
    인간은 공감하는 동물입니다.
    그런 인간으로서 타인의 슬픔과 행복을 공감하는 것이 가능하고, 지인의 성공에 행복해할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인간의 죽음에 슬퍼할수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과 친했던 이들의 슬픔이 나누어 졌을 수도 있고, 그들의 슬픔을 짐작함으로써 슬퍼진것일수 있습니다.

    학생 100여명의 죽음보다 꿀벌 100마리의 죽음을 더 슬피 여긴다면.
    그것은 다른 인간들에게 공감하려 하지 않는 것 이 아닐까요?
    인간들에게 상처를 받아 그들을 미워하게 된것이 아닐까요?

    • #10013

      ‘인간의 죽음보다 꿀벌의 죽음이 더 슬픈건 선택이다’
      이 부분에 있어선 저와 어느정도 의견의 합의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같은 명제를 ‘인간’ 에서 ‘세월호 학생’ 으로 객체를 바꾸니까 의견을 달리하시는군요.
      제가 이 질문을 통해 정말로 알고싶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우선 제기하신 질문들에 답변하겠습니다.

      1.독사나 모기, 나를 쏜 꿀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에 대해선 주의사항에 이미 언급한것 같습니다.
      “나의 삶에 도움을 주는’ 벌레 및 동물들과, 아버지, 어머니, 친척, 친구들 같은 ‘나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인간들의 고통과 아픔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벌레나 동물의 죽음은 당연히 관계없는 인간들보다 더 슬퍼할 겁니다.
      나와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면, 지구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선’ 한 자들의 죽음은 애도하겠지요.
      지구에게 선한것은 어떻게든 나에게 선하게 작용하니까요.

      2.세월호 학생들이 꽃피지 못한 생명들이라 슬퍼해야 한다?
      어째서 그럴까요?
      농약때문에 폐사한 벌집에 있던 수많은 애벌레들의 죽음에 비해 세월호 학생들의 죽음이 어째서 더 슬플까요?
      꽃피지 못하고 죽은것은 애벌레나 세월호 학생이나 다를게 없을텐데요.
      이미 ‘꿀벌과 인간의 죽음 중 누구의 슬픔을 더 애도해야 하는지는 개인선택이다’ 라고 윗 질문에서 합의하셨는데
      그것이 ‘세월호 학생’ 으로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인데 왜 ‘더 애도해야 할 대상’ 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3.세월호 학생들이 미래에 나에게 도움을 줄 운명이었다면?
      이는 정확히 반대 논리로 반박될 수 있습니다.
      만일 세월호 학생들 미래에 나를 죽이러 달려올 살인마들이 될 운명이었다면?
      물론 둘 모두 무의미한 가정입니다.

      4.너무 손익을 따지는것이 아닌가?
      현대사회는 손익에 따라 사람을 쉽게 죽이고 살리는 세상입니다.
      저도 여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를 이용해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자들’ 에 의해
      건강과 목숨을 깍아 최소한의 돈을 벌어 삶을 연명해 나갈 것이구요.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자들 (사장, 회장) 들은 사회적으로 본받아야 할 훌륭한 인물들로 선망이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 는 그렇게 해선 안될까요?
      왜 ‘손익에 따라 인간을 구분’ 해선 안될까요?
      현대사회에 적합한 윤리관을 갖추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5.인간은 타인의 슬픔과 행복을 공감하는 사회의 동물이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도움이 되는 벌레,동물,인간들과 함께 교류하며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그 외의 인간들의 죽음에 무관심할 뿐입니다.

      6.인간은 농사를 지어 땅을 경작하고, 타 생물을 잡아먹고 자연에 피해를 주고, 타 생물을 치료하고 자연을 가꾼다
      <1>인간이 땅을 경작하는 것이, 인간이 땅을 경작하지 않는것에 비해 땅에 도움이 되나요? 경작을 할수록 땅의 양분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유리한 작물’ 을 위해 잡초나 기타 다른 곤충, 식물은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죽이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이득을 위해 행해지는것이 ‘농사’ 지요.
      <2>인간이 타 생물을 잡아먹고 자연에 피해를 주고있으니, 생태계 입장에서 인간은 ‘악’ 이지요.
      <3>타 생물을 치료하는것은 ‘인간이 그들을 다치게 했기 때문에’ 치료하는 것이죠. 만일 노루가 호랑이에게 물렸다면, 그걸 돕는것은 생태계에 간섭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옳은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네셔널지오그래피 사진기자들도 생태계를 제3자 입장에서 관찰할 뿐 약한 동물을 돕거나 하지 않습니다.
      <4>인간이 자연을 가꾸는건, 그들이 자연을 먼저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망가질 것도 없었던’ 자연을, 자신들이 망가뜨려놓고, 도움되는 부분만 가꾸는 것이죠. 그 이유도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이구요.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7.세월호 학생 100명의 사망보다 꿀벌 100마리의 죽음이 더 슬픈것은 다른 인간에게 공감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길거리의 누가 저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나요?
      세월호 학생들, 그 유가족들은 제 슬픔과 아픔에 공감을 했었나요?

      8.당신은 인간에게 상처를 받아 인간을 미워하고 있을 뿐이다
      정확히 반대논리로 답변이 가능합니다
      “당신은 인간에게 상처를 받아, 일부러 인간을 미화시켜 내면의 분노를 상쇄시키고 있을 뿐이다.”
      물론 둘 모두 무의미한 가정입니다

  • #10028

    [‘인간의 죽음보다 꿀벌의 죽음이 더 슬픈건 선택이다’
    이 부분에 있어선 저와 어느정도 의견의 합의가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같은 명제를 ‘인간’ 에서 ‘세월호 학생’ 으로 객체를 바꾸니까 의견을 달리하시는군요.
    제가 이 질문을 통해 정말로 알고싶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왜 인간일때는 상관하지 않으면서 세월호 학생일때에는 다른말을 하느냐.. 고 물으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제 답은 이렇습니다.
    딱히 와닿지 않아서입니다.
    인간. 이라고 하면 너무 포괄적입니다.
    구제불능의 악인도, 모두에게 필요한 성자도, 이젠 편히 쉬시는 어르신들도, 갓 피어날 어린아이들도.
    모두 ‘인간’에 포함되어있고.. 딱히 그냥 인간의 죽음이라고 하면 ‘아.. 어느 누가 죽었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인간’이 ‘세월호 학생’이라는 생각을 하게되면.

    ‘세월호 학생’은 무슨말이지? -> 세월호? -> 세월호 참사의 원인? -> 공공의 부패 -> 학생들의 무죄 -> 학생들이 겪은 불행한 사건 -> 학생들이 그 상황에서 느낄 절망과 심정 -> 죽은 이들의 가족이 느낄 슬픔

    위와 같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서 마지막으로 슬픔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 죄없는 학생들이 안타깝게 사라졌구나, 만약 내 가족이 저안에 있었다면 정말 슬펐을거야.
    등등의 생각들을 하게 되요.

    물론 꿀벌 100마리의 폐사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생명이 사라졌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의 죽음에 슬프게 생각하지만,
    제가 ‘이상’하다는 것은. 네, 제 기준에서 ‘이상’하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 밑에

    [왜 꿀벌 100마리만을 생각하는 걸까요? 왜 꿀벌 100마리의 죽음에는 그렇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걸까요?
    그들이 지구에 도움이 되기에? 그들이 좋아서?
    왜 인지 저로선.. 글쎄, 왜일까요?]

    라고 썻듯이, 제 기준에서 이상한겁니다.
    음.. 결국, 꿀벌 100마리의 생명과 학생 100명의 생명에서 무엇을 더 무겁게 치는 가는 선택입니다.
    제 생각에선 학생 100명 보다 꿀벌 100마리의 생명을 더 무겁게 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님께선 꿀벌이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하셨기에 그들의 무게를 더 높게 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문자님의 평소 사용하시는 물건들과 이용하시는 것들, 그리고 섭취하시는 것들에는 과연 질문자님에게 도움을 주는 생물, 자연물등에 피해를 주는건 없으신지요?
    궁금해지는 군요.

    1.지구 입장에서 객관적으로’선’한 자들을 말씀하셨는데..
    빛이 있기에 어둠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등에서의 예수그리스도는 어둠속에 빛이 생기라하셨고, 땅과 하늘, 그밖의 식물과 동물을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셨다지요.
    ‘선’이건, ‘악’이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건 신의 의도에 만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의도에는 그것들이 해야할 사명을 같이 주었겠지요.

    세상의 탄생설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국 세상은 만들어졌고. 지구위에는 동식물과 함께 인간이 생겨났습니다.
    바퀴벌레, 쥐, 공룡, 독사 등..
    지구에 ‘선’한 도움을 주는 것들조차 다른 무언가에게 해를 끼칩니다.
    (지구에 가장 필요한 물. 그것이 모든 대지를 덮어버린다면. 지구의 다른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동식물이며 인간은 죽어버립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우리 모두를 사라지게 할 수 있죠.)
    벌은 물론 도움을 주지만. 사람들이 다치기도 하죠.
    사람들은 다른 무언가를 오염시키기만 한다고요?
    그런 사람도 옛날에는 많이 먹히고 습격받아가며, 생존을 위해 성장해왔습니다.
    생태계 최하위급에 해당해도 좋을 나약한 육체를.
    도구를 쓰는 지혜로 최상위급에 올랐습니다.
    마치 6-3번에 있는 생태계의 순환의 노루가 호랑이에게 물렸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삶을 위해 벌을 폐사 시키는 것과 무엇이 다르죠?

    결국은 ‘선’과 ‘악’의 기준은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거고.
    고통속에 인간이 성장하듯, ‘악’이 존재하기에 ‘선’을 느끼고 ‘선’을 지향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가 ‘악’한것도, 모든 이가 ‘선’한것도 아니라는것이고.. 지구에 해가 된다해서 사라져야만 하는건 아니라는 겁니다.(물이 대지를 덮쳐 아무것도 없어지면. 그것은 지구에 해가 되는 걸까요? 물에 생존하는 동식물의 세계가 될뿐 아닌가요? 공룡의 시대가 빙하기와 유성우와 천재지변에 사라졌듯, 언젠가 인간도 사라지게 될겁니다. 인간은, 사라지기 싫어서 우주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인간이 우주에 나가기 전에 사라진다면 그것은 지구가, 우주가 인간을 원하지 않는 것이고.. 인간이 나간다면, 그들이 원하는 걸까요?)

    (예를 들어. 정말 그런 일은 없으면 하지만..
    누군가 제 가족을 해합니다.
    저는 그것에 분노해서, 그를 증오하고 죽이려합니다. 그리고 죽여버립니다.
    살인을 이야기하는 건데.. 여기서 그는 반드시 악인인걸까요?
    그도 누군가에겐 선일수 있지않나요?
    그런 그를 죽인 저는 악인걸까요? 어떻게 해야할까요?

    또다른 예로.
    악덕 사장이 지구에 무척 해가 되는 폐물질을 정화하지 않은채 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생물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는 분명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그를 구속하여 제대로된 책임을 지게 해야하는 거고,
    그와 같은 종족인 다른 인간들이 정화를 위해서라도 힘쓰는 겁니다.
    자신들이 살기위해서건, 악덕 사장의 잘못을 씻기위해서라도.)

    질문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래서 머리아파요.

    2.
    [세월호 학생들이 꽃피지 못한 생명들이라 슬퍼해야 한다?
    어째서 그럴까요?
    농약때문에 폐사한 벌집에 있던 수많은 애벌레들의 죽음에 비해 세월호 학생들의 죽음이 어째서 더 슬플까요?
    꽃피지 못하고 죽은것은 애벌레나 세월호 학생이나 다를게 없을텐데요.
    이미 ‘꿀벌과 인간의 죽음 중 누구의 슬픔을 더 애도해야 하는지는 개인선택이다’ 라고 윗 질문에서 합의하셨는데
    그것이 ‘세월호 학생’ 으로 껍데기만 바뀌었을 뿐인데 왜 ‘더 애도해야 할 대상’ 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에 대해서, 1번 위에 드린 말씀을 참고해주시기 바래요.

    와닿는 것의 차이로. 애벌레의 죽음도 슬프겠지만.
    학생들의 죽음이 더슬프게 느껴지는건.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변 배가 된다고합니다.
    학생들의 죽음에 슬퍼해드림으로써 유가족들의 슬픔이 조금이나마 줄어들리는 없지만.
    그래도 그들이 조금이나마 덜 슬퍼하길 바라고..
    같은 인간이기에, 학생들이 죽은뒤 좋은곳에 가길 바라는 겁니다.

    3.[세월호 학생들이 미래에 나에게 도움을 줄 운명이었다면?
    이는 정확히 반대 논리로 반박될 수 있습니다.
    만일 세월호 학생들 미래에 나를 죽이러 달려올 살인마들이 될 운명이었다면?
    물론 둘 모두 무의미한 가정입니다.]

    그렇네요. 우스운 가정이죠.
    하지만 그들이 있음으로서, 무언가의 영향은 존재했을테니까요.
    단순히 도움이되건, 해가 되건, 무관하건..

    애초에 도움이되냐로 따진 제가 잘못했네요.

    4.[너무 손익을 따지는것이 아닌가?
    현대사회는 손익에 따라 사람을 쉽게 죽이고 살리는 세상입니다.
    저도 여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를 이용해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자들’ 에 의해
    건강과 목숨을 깍아 최소한의 돈을 벌어 삶을 연명해 나갈 것이구요.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자들 (사장, 회장) 들은 사회적으로 본받아야 할 훌륭한 인물들로 선망이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 는 그렇게 해선 안될까요?
    왜 ‘손익에 따라 인간을 구분’ 해선 안될까요?
    현대사회에 적합한 윤리관을 갖추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는 형이 군 복무하셨을때.
    업무에 시달려 밥도 못먹던 적이 여러번 있으셨다더군요.
    군대는 그럼 최고위인 대통령의 영달을 추구하는 건가요?
    국민의 안전과 자유의 보장이죠.

    그리고 굳이 ‘질문자님을 이용해서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자들’ 밑에서 최소한의 돈을 벌어 삶을 연명해 나가실 필요가 있으신가요?
    질문자님께서 사장, 회장이 되어선 안된다는 말을 누가 하는건가요?

    질문자님이 원하시고, 하실수있다면. 그래도 되잖아요.
    질문자님의 기쁨도 찾으면서, 건강도 챙기는 일을 하시면 되잖아요.
    ‘손익에 따라 인간을 구분’ 해선 왜 안되냐구요?
    질문자님 스스로 그렇게 구분되어지시는 것에 불쾌함을 느끼실텐데, 그것을 남에게도 강요해야할까요?

    뭐. 저라고 성격좋은건 아니라서 짜증내고 하는데..
    그래도 옛말의 최고로 좋은 친구인 내가 힘들때 날 위해주는 친구를 찾고 싶어 안달나있습니다.
    나 스스로도 그런 친구가 되어 주고 싶구요.

    질문자님을 누군가가 이용해 먹으려하신다면.
    질문자님도 그들을 이용해 먹으세요.

    누군가 질문자님에게 이용해 먹으려는게 아닌, 순수하게 호의를 배푸신다면.
    질문자님도 그에 따라 그분께 도움을 드리세요.

    그럼 뭐가 잘못되는 거죠?

    [현대사회에 적합한 윤리관을 갖추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여기서 적합한 윤리관이란 뭘 말하시는 거죠?

    5.[인간은 타인의 슬픔과 행복을 공감하는 사회의 동물이다.
    그래서 저는 저에게 도움이 되는 벌레,동물,인간들과 함께 교류하며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그 외의 인간들의 죽음에 무관심할 뿐입니다.]

    네. 그건 질문자님의 선택이고, 제가 뭐라 간섭할 부분은 아니죠.
    저는 그저 인간이라는 종족이 지니는 성질중하나를 생각해본거니까요.

    6-1.[인간이 땅을 경작하는 것이, 인간이 땅을 경작하지 않는것에 비해 땅에 도움이 되나요? 경작을 할수록 땅의 양분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인간에게 유리한 작물’ 을 위해 잡초나 기타 다른 곤충, 식물은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죽이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이득을 위해 행해지는것이 ‘농사’ 지요.]

    호랑이가 살기위해 노루를 잡아먹는 것처럼.
    인간도 살기위해 ‘농사’를 시작했고, 여유가 생기기에 욕망에 따라 이득을 쫓게 된거죠.
    인간의 이득을 위해 행한다구요?
    저희 할머니가 농사일에 밭일 혼자하시는데..
    왜 저희 집에 안사시고 허리아프신데 계속 농사일 하시는걸까요?
    할머님 혼자만의 이득을 위해서로 봐야하나요?
    명절에 어린 손자손녀에게 용돈이라도 한푼주시려고 허리아픈데도 농사일하시고..

    아는 친구의 부모님은 그 친구 대학보내려고 농사일 하세요.

    그 외에도, 단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걸까요?
    그들에게 소중한 이들을 위하는게?

    6-2.[인간이 타 생물을 잡아먹고 자연에 피해를 주고있으니, 생태계 입장에서 인간은 ‘악’ 이지요.]
    말씀 드렸듯이, 신이 인간을 만든 것에 이유가 있을 거고..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먹고, 벌이 꿀을 찾는것처럼.
    인간은 타 생물을 잡아먹을 뿐입니다.
    이게 과해서 문제인거지, 원시시대엔 인간이 먹히는 최하위였고, 지금도 잡아먹힌답니다.

    자연에 피해를 주고있으니 생태꼐 입장에선 악이라구요?
    쓰나미, 지진, 산사태 등에 인간도 죽는답니다.

    인간은 자신이 최상위인듯 하지만. 아직은 어떤 도구를 쓰건, 자연앞에 무기력한 존재일 뿐입니다.

    자정작용이라는게 있습니다.
    자연 스스로 오염된것을 깨끗이 만드는 것이죠.

    빙하기건, 어떤 천재지변이건.
    인간이 자연을 괴롭히는 도가 커지면 인간은 자연에 의해 멸망할 겁니다.

    6-3[타 생물을 치료하는것은 ‘인간이 그들을 다치게 했기 때문에’ 치료하는 것이죠. 만일 노루가 호랑이에게 물렸다면, 그걸 돕는것은 생태계에 간섭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옳은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네셔널지오그래피 사진기자들도 생태계를 제3자 입장에서 관찰할 뿐 약한 동물을 돕거나 하지 않습니다.]

    노루가 호랑이에게 물려서 그걸 돕는게 생태계의 간섭이라구요?
    인간으로서 이미 생태계의 일부분인 우리가, 노루를 돕건, 호랑이를 돕건.
    그건 그들 자유입니다.

    전래동화 중 은혜갚은까치 에서,
    선비는 뱀이 아기새를 먹는걸 방해합니다.
    그의 선택은 아기새를 구하는 거고, 까치는 이에 목숨으로 보답합니다.
    왜 도우면 안되는 건가요?
    그렇다고 마구 도우면 또 안되지만. 굳이 돕지말아야하는 자연의 법칙이 있나요?

    그리고, 자연의 매가 다친걸 우연히 발견한 동물보호협회 인원들은 그 매를 그냥 치료하고 풀어줍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 스스로가 씻으려고 노력합니다.

    6-4. [인간이 자연을 가꾸는건, 그들이 자연을 먼저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망가질 것도 없었던’ 자연을, 자신들이 망가뜨려놓고, 도움되는 부분만 가꾸는 것이죠. 그 이유도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이구요.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가꾸는건, 그들이 파괴했기도 했지만 그들 스스로 보기 좋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망가지지 않을 거라구요?
    그렇죠. 우리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멀쩡한 산을 깍아 아파트를 짓습니다.
    이에 대해 드릴 말씀은 없긴 한데.
    멀쩡한 산을 깍고 바다를 메워서 집을 지을 만큼, 좁은 곳에 많은 인구가 몰려서 그렇죠.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런 상황?

    7.[세월호 학생 100명의 사망보다 꿀벌 100마리의 죽음이 더 슬픈것은 다른 인간에게 공감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길거리의 누가 저의 아픔과 슬픔에 공감하나요?
    세월호 학생들, 그 유가족들은 제 슬픔과 아픔에 공감을 했었나요?]

    인간은 저마다 각자의 슬픔과 아픔이 있어요.
    괜시레 혼자 아파하고 혼자만 슬픔있는 듯 들려서 약간 화날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이해되는게 저도 이전에 그렇게 물었기에 이해되기도하고.. 복잡합니다만.

    아무튼 인간은 저마다 슬픔과 아픔과 절망과 기쁨, 환희, 희망이 있죠.
    분명 아프고 밉습니다만…
    그렇다고 저들 스스로 지닌 것도 있을건데 내가 더 주어야 하나 싶기도하고.
    나도 못견디겠으니 신경쓰기 싫기도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딜수 있는건.
    견딜 수 밖에 없는건…
    가족 때문이죠.
    부모님이 주신 사랑이나… 그분들이 저때문에 겪은 슬픔이나 아픔에.
    어떻게 보답이라도 해야하는데 여전한 자신을 보면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웃음)

    아는 애 중에.. 우울증심한애가 있는데..
    사정상 연락못한지 오래되가지만.
    그애는 부모님으로부터 미움 받는 것에 슬퍼하더군요.
    누가 그애의 슬픔을 알아주고 있나요?
    질문자님이?
    당신은 다른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알아주시나요?
    … 그애에게 어떻게 해주지못하는 지금에 무척 미안하더군요.
    착한앤데 그렇게 슬퍼만 하는것에 화가 나더군요.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할지 당신에게 묻는게 아닙니다.

    다들 똑같은 인간이라는 겁니다.
    저마다의 슬픔과 아픔에 사정이 있는.
    그래서 서로를 도우며 서로 아픔을 치유해 주어야한다 생각합니다.

    저 밖에 웃음 짓는 이들도 언제는 울었을 거고. 힘들어 할테니까요.

    8.[당신은 인간에게 상처를 받아 인간을 미워하고 있을 뿐이다
    정확히 반대논리로 답변이 가능합니다
    “당신은 인간에게 상처를 받아, 일부러 인간을 미화시켜 내면의 분노를 상쇄시키고 있을 뿐이다.”
    물론 둘 모두 무의미한 가정입니다]

    정확히 반대논리로 답변이 가능하다구요?
    예, 저도 상처받았습니다.
    그래서 뭐요? 인간을 미화시켜요?
    ㅋ 가장 증오하는게 인간인데. 또 가장 사랑하는게 인간입니다.
    내면의 분노를 상쇄시키는건, 일부러 인간을 미화시키는게 아니라 가장 사랑하는 이들 또한 인간이라서입니다.
    둘다 무의미한 가정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시죠.

  • #10030

    마지막에 좀 오버한듯한데.
    죄송하구요.
    아무튼… 좋은하루 되세요.

    • #10047

      꽤 많은 부분에 있어 합의가 이루어졌네요. 계속 합의점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1.꿀벌의 죽음이 세월호학생들 죽음보다 더 슬프지 않은 이유는 그 주장이 딱히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토론에 적합한 발언이 아니므로 답변도 불가능하겠습니다.

      2.인간, 이라고 하면 너무 포괄적이다.
      =제가 말한 ‘인간’ 이란, 현재 지구를 장악하고있는 가장 발달된 포유류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3.세월호 학생들은 무죄인데, 공공의 부패때문에 죽었으니 슬프다.
      =같은 논리로, 생태계는 무죄인데, 인간의 파괴행위로 동식물들이 멸종되고 있어서 슬프다 라는 방향도 가능합니다.

      4.모든 생명의 죽음을 슬프게 생각한다.
      =친족을 살해하고 부녀자를 강간하고 집을 불태운 후 자랑스럽게 경찰에 가서 범죄를 자백하여 사형을 받은 사형수의 죽음에도 슬퍼하시나요?
      아니라면, 동물을 멸종시키고, 쾌락을 위해 동물들을 농장에 감금하고 고문하다 잡아먹고, 생태계를 불태우고는 자랑스럽게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 선이다’ 라고 주장하는 인간들의 죽음은 왜 슬퍼해야 할까요?

      5.왜 꿀벌 100마리만을 생각하는 걸까요? 왜 꿀벌 100마리의 죽음에는 그렇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는 걸까요?
      =같은 논리로, 왜 세월호학생 100명만을 생각하는 걸까요? 왜 세월호 학생 100명의 죽음에는 그렇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면서, 매일같이 병원과 골방에서 죽어가는 병자와 노인들의 죽음은 일일히 슬퍼하지 않는 걸까요?

      6.제 생각에선 세월호 학생 100명 보다 꿀벌 100마리의 생명을 더 무겁게 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논리로, 저 역시 꿀벌 100마리보다 세월호 학생 100명의 생명을 더 무겁게 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7.질문자님은 평소 사용하시는 물건들이 생물과 자연에 피해를 주지는 않으신지요?
      =같은 논리로, 우리가 베트남에서 한 행동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에게 피해보상과 사죄를 요구하면 안되는지요?
      ‘너도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으니 넌 할말 없다’ 는 주장을 외국에서는 whataboutism 이라고 합니다. whataboutism에 따르면, 나이트메어님이 누군가에게 길거리에서 무차별하게 구타당해 사망해도, 나이트메어님은 어떤 피해보상도 주장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whataboutism 논리에 따르면, 인생 전체에 단 한가지 잘못이라도 있다면 그는 어떤 피해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양되야할 논조입니다.

      8.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등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어둠속에 빛이 생기라 하셨고…(중략) 탄생설에는…(중략)
      =종교인이 아니시라면 종교적 언어는 토론에 인용하지 않으시는게 좋겠습니다. 종교적 선악구분의 허구성은 이미 수없이 논파되었습니다.

      9.이것저것 생각하면 선악구분은 머리가 아프다.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선인일텐데 그걸 어찌 일일히 고려하느냐.
      =그래서 저는 인간중심적 선악구분을 지양하기 위해 ‘생태계 전체에서의 선’ 을 기준으로 제시했습니다. 인간끼리의 선악구조는 생태계 전체에는 ‘절대악’ 이므로, 그것을 선의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10.학생들의 죽음을 꿀벌의 죽음보다 더 슬퍼하는 이유는 슬픔은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로, 꿀벌의 죽음을 세월호 학생들의 죽음보다 더 슬퍼하는 이유는 슬픔은 나누면 반이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되기 때문입니다.

      11.아는 형이 군복무를…(중략) 군인이 밥을 굶으면 대통령이 개인영달을 추구한것인가?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신지 이해가 어렵네요. 개별사례를 통해 논리를 드러내고자 하신다면, 좀더 명확하게 제시해주시기 바랍니다.

      12.질문자님이 오히려 남에게 ‘손익에 따라 인간을 구분하라’ 고 강요하고 있다.
      =저는 강요한적이 없습니다. ‘왜 내가 손익에 따라 인간을 구분하는것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느냐?’ 고 질문하였을 뿐입니다.

      13.질문자님이 생각하는 적합한 윤리관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손익계산을 통해 구분짓는 것을 ‘현대사회에 적합한 윤리관’ 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전 사회가 그 작용을 통해 구성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인이 나를 손익계산을 통해 이용하고 있으니, 나도 타인을 손익계산을 통해 이용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가 주장하는 윤리관입니다.

      14.호랑이가 살기위해 노루를 잡아먹듯이, 인간도 살기위해 농사를 짓고 자연에 피해를 준다.
      =호랑이의 생존활동이 생태계를 파괴하는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생태계의 순환에 필요한 ‘초식동물 계체수 조절’ 작용을 하고있지요. 하지만 현대사회, 즉 현대 인간들의 생존은 생태계의 균형을 파괴시키고 수많은 동물들을 멸종시키고 있습니다.

      15.자식을 위해 농사를 짓는 부모는 소중한 이들을 위하기 때문에 선이다.
      =’인간중심의 선악구분’ 은 ‘집단이기주의’ 라는것이 제 주장의 전제입니다.

      기타 ‘당신만 아파하는거같아 화가날거같은데 나도 그리 물었으니 복잡하다’ 등등은 답변할 수도 없고, 상당히 자가당착적인 부분이 많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좀더 ‘기존에 있었던 논쟁들’ 을 세심히 검토하시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답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길이는 긴데 정작 새로운 논지 몇줄 안되고 대부분 혼잣말과 불필요한 돌아가기와 개인의견 강요들 뿐이라 토론의 집중도를 떨어뜨립니다.

      토론장에서 개인감정과 개인의견을 모두 적지 마시고, 일단 메모장에 한번 적어보신후, 거기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 토론에 적합한 부분, 같은말이 반복되지 않는 부분을 추려서 간략하게 올려주시면 좀더 상대를 배려하는 토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10305

    하하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데 참 어렵네요…

  • #10344

    오컴은 왜 면도날을 들었을까요?

    아시다시피 오컴 중세시대 신학자이자였습니다.

    중세시대는 신에 관한 철학적 논쟁들이 있어왔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바로 보편 논쟁입니다.

    이 보편 논쟁은 보편 개념의 실체를 인정 안하느냐

    아니면 인정하니냐에 의해 촉발된 철학적 논쟁입니다.

    예를 들어 불필요하다는 입장은

    책상이라는 개념의 존재성은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책상이라는 개념이 지칭하는 경험적 대상만

    인정하는 것입니다. 책상은 단지 경험적 대상의

    집합적 총체에 불과한 것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책상보다 상위 보편 개념인 “가구”

    내지 “도구” 또한 그 자체로서 존재성은

    않고 단지 개별자의 집합에 불과하다고 보고요.

    보편 개념을 개별자와 같이 굳이 존재론적 층위로

    구성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보편 개념의 실체를 인정하는 입장은

    보편 개념이 개별자만큼이나 존재론적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고 보지요.

    이 논의가 중세시대에서 중요했던 이유는

    신이 보편 개념으로서 “존재”한다고 정당화했기

    때문입니다. 신이 보편개념이여야만

    예수님, 영, 하나님이 삼위일체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지요.

    만약 보편 개념으로서 신이 실체가 없다면

    예수님, 영, 하나님을 하나로 존재할 수도 없고

    신에 대한 이해도 이성보다는 개별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됩니다. 연역적 인식이 상위 개념으로부터

    아래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 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논의 위에서 오컴은 보편 개념의

    존재성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오컴은 굳이 존재성을 불필요하게 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보편 개념의 실체를 부정하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이번 벌꿀과 인간 사이에

    선악 논쟁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을 것 입니다.

    현대 인간이 악이다. 벌꿀이 선이라고 하기 이전에

    개별 인간들, 개별 벌꿀들을 살펴볼 수 밖에 없지요.

    또한 생태계 입장, 지구 전체의 입장은 덧없는 개념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것은 실체 없는 보편 개념이기 때문이지요.

    혹자들은 지구 전체의 입장,생태계의 입장이라는 것

    조차 이름이 다른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보편 개념이라고 볼 것 입니다.

    어쨋든 위와 같은 관점은 오컴의 날을 엄밀히

    적용했을 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 #10345

    위 토론을 읽다보면

    한 가지 궁극적 전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선이란 곧 존재를 보존 유지시키는 것이고

    악이란 존재를 유지시키지 못하는

    “변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존재”와 “변화”를 가지고 이야기하다보면

    “본질”이라는 개념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본질이란 어떤 것을 어떤 것답다고 말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개념입니다.

    따라서 “무엇”의 존재는 곧 그것의 본질을 일컫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이 a라는 존재로 불리기 위해서는

    a의 본질을 지녀야하기 때문이지요.

    이제 존재와 변화, 본질을 가지고 벌꿀과 인간 그리고
    생태계에 대해 논의 해보겠습니다.

    위 토론의 발제자님은 벌꿀은 생태계의 본질을

    유지시키는데 도움을 주지만

    현대 인류는 그렇지 않다고

    본 것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굳이 생태계의 본질이 있을까요?

    아니 더 나아가서 본질이라는 과연 있을까요?

    본질이 있더라도 그것은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제 개인적인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본질은 있는지 없는지 확증할 방법은 모르겠지만

    있다고 해도 굳이 변화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 위에 제가 쓴 보편 논쟁에서의

    보편자 인정 입장에 대한 비판이 적용가능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즉, 본질이 무엇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판단한 것으로 인간중심적이라는 것이지요.

    정리하자면 인간이라고 해서 굳이 생태계에

    유익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생태계의 본질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다고해도

    그 본질이 변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본질이란

    단지 인간이 만들어낸 구성물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 #10346

    §대다수의 현대 인류가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반면

    대다수의 벌꿀은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므로

    인간이 죽은 것보다 벌꿀이 죽은 게 더 슬프다.

    그리고 인간을 위하는 행동은

    생태계 입장에서 집단이기주의이다.§

    ▣ 슬퍼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은 자유라고 봅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슬퍼하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생태계의 입장이라는 것도 작위적일 수도 있고

    굳이 생태계의 입장이 고정되어야만하는 이유도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생태계의 입장이 고정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현대 인류의

    잘못 때문에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과 연결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확률적으로 생각해서 그랬다고 그렇더라도

    직접 확인 불가능한 영역이 아닌한

    굳이 확률적으로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 같네요.

    ▣집단이기주의의 정의가 좀 포괄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자기 집단한테는 이득이지만

    남한테는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했는데

    저는 남한테 무관심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 이유는 의도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 무관심한

    행동을 구분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굳이 벌꿀도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약 벌꿀이 수가 많아서 수많은 식물의 꿀을

    뽑아간다고 했을 때 그로 인해서 생기는

    나비나 다른 꿀을 먹고 사는 생물들의 피해는

    이루말할 것 없으며 나비와 다른 꿀을 먹고 사는

    생물들을 먹거나 영양분으로 쓰는 생물도 피해가

    엄청 클 것 입니다.

    즉, 집단 이기주의는 선악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선악 판단은 본질, 보편 논의를 떠나서

    선악은 존재에 기여하느냐 여부로 본 것인되

    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한 것이지요.

    또한 인간의 집단이기주의는 선으로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생태계에 도움을 주는

    것 입니다.

    따라서 집단이기주의 그 자체는 선악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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