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10218

    저 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있다 없다를 떠나서 단순히 저 명제 자체에 관한 고찰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가 듣고싶습니다.

  • #10221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파괴의 범위를 어디까지 두는지가 중요할텐데요

    1. 정신적 파괴
    2. 육체적 파괴
    3. 정신적 육체적 파괴

    가볍게 이 세가로 나눈다고 했을 경우 저는 1번 항목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파괴의 의미도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에 굳이 범위를 정하자면 ‘자기학대’로 해석하고 의견을 남기겠습니다.

    누구나 자학적인 행위는 일상에서 무의식의 습관처럼 행해지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다이어트 중인 사람이 자신의 식욕을 억누르며 ‘나는 살을 빼야하기 때문에 저녁을 굶을꺼야’라는 행위도 본인의 본능을 억누르고 스스로에게 고문을 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또는 직장 상사가 업무상 본인을 갈궜을 경우 ‘직장 상사의 말이니까 참고 견뎌야해’ 이런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참는 행위 자체가 결국에는 자신의 본성,본능을 억제하는 자기학대와 같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학을 일삼는 동물이며, 자학할 권리도 있다.

    • #10225

      aceman 님, 우선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몇가지 궁금증이 생겨 질문드립니다. 저도 파괴를 자기학대의 범주로 상정하고 질문드리겠습니다.

      1. 예로 드신 식욕과 직장상사의 갈굼을 참고 넘기는 것은 상황적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장기적으로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될 선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즉 결과적으로 자기학대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는 아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aceman 님께서는 단순히 자신의 본능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자기 학대가 성립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2. 위로 드신 예처럼 가벼운 예가 아닌,
      극단적인 예로 이를테면 (행위자가 쾌락 추구가 아닌 자기 파괴를 목적으로 사용하는)마약같은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자기파괴 행위도 충분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3.만약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법의 제재를 제외하고
      인간적, 윤리적인 측면에서 그 행위를 제재하는 것은 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 #10235

      1. ‘자기학대’라는 조금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자기 자신의 본능을 끊임없이 통제하는 행위도 결국 학대만큼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윤리적인 측면을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2. 마약을 예로 드셨는데 마약행위를 하는 행위자는 마약을 자기파괴의 목적이라 생각하지 않고 자기쾌락의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행위자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마약을 하는 행위자는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못하겠죠. 따라서 질문이 “마약을 이용한 자기파괴 행위에도 충분한 권리가 있는가?”에는 답변하기가 조금 애매한것 같습니다.

      제 맥락에서 마약이야기를 살펴본다면 “마약 중독자가 그 쾌락을 잊지 못해 마약을 흡입하고 싶지만 처벌이 무서워서 참아낸다”가 자기파괴에 가깝겠죠.

      3. 인간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면 본능대로 살아가도 문제 없겠죠.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하는 사회는 결국 윤리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처음에 말씀드린것 처럼 이런 법체계와 윤리적인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학대할 권리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일상에서 자기학대하고 있다는 의미로 답변드립니다..

    • #10243

      답변 감사드립니다, aceman 님.

      2,3. 저는 마약을 하는 상황을 자해같은 순수하게 자기파괴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로 설정한 것인데,
      실제적인 상황이라면 aceman님의 말씀대로 행위자가 단순히 쾌락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일테니
      성립 가능하지 않은 설정일 수 있겠군요. 제가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상황과 개연성에 구애받지 않도록 구체적인 예시를 들지 않겠습니다만,
      aceman 님이 언급하신 법체계와 윤리적인 면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 수준의 자기학대가 아닌
      순수하게 자기파괴적인 충동에서 하는,
      법에 저촉되지 않는 극단적 자기학대를 막거나 방해하는 것은 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타인의 극단적 자기학대, 자기파괴를 방관하지 말아야 할까요?

  • #10245

    답변 감사드립니다.
    정리를 잘해주셔서 자기파괴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범위가 좁혀졌네요.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제제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일까?”
    사실 이 질문도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정신을 갖고 있다면 자기파괴행위를 하지 않을테니까요.

    가장 쉽게 떠오르는 예로는 “자살” 인데요.
    개인의 호기심 내지, 아무런 갈등도 없던 사람이 돌연 자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욕구가 최상위로 꼽힐 정도로 매우 강한데요. 그런 욕구를 버리면서까지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비정상에 가깝다고 봅니다.

    비정상적인 상태의 어떤 개인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을 권리의 침해라고 표현할수는 없지 않을까요?

    • #10247

      역시 주제 자체가 애매하고 추상적이었기에 상황적 맥락에 따라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있어
      딱 잘라 반박하거나 동의하는 확실한 입장을 정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이 생존욕구를 잃은 상태를 비정상에 가깝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aceman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런 갈등도 없던 사람이 돌연 자살을 선택한다면
      비정상에 가깝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정신적 결함으로 볼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상태에서 자살을 택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예를들면 안락사도 일종의 자살행위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안락사가 본인의 삶의 질을 확보할 합리적인 권리를 행사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맥락에서는 비정상이라고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락사의 경우처럼 개인이 삶의 욕구를 잃을 특정한 상황이 아니라
      aceman님이 말씀하신, 이 글에서 정의한 비정상의 경우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은 권리의 침해라 할 수 없다고 하신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그런 경우에는 행위자에게 정신적 결함이 있다는 객관적 보증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aceman님이 처음에 말씀하신 사람에게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하신 말씀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살 권리가 있다면 죽을 권리도 있다는 말에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만약 오늘 마포대교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켜보게 될 것 같아요..역시 헷갈리네요ㅎㅎ

  • #10249

    aceman님께서 마약을 예로 정하셨는데, 사실 마약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쾌락을 목적으로 이용했겠지만, 그 결과가 결국 자신의 몸을 해치는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마약 역시도 자신의 몸을 파괴하는 것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목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자신이 장애인을 도와주려고, 선한 목적을 갖고 도와주더라도 장애인이 별로 내키지 않았어더라면 그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죠. 목적이 아무리 선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마약 역시도 자신의 쾌락을 목적으로 이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파괴에 이르겠지요. 다만 일시적으로는 쾌락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이는 극히 일시적인 현상에 불구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결과는 극히 일시적이고 죽음에 비하면 아주 작은 쾌락보다는 마약 중독자 앞에 다가올 무시무시한 미래라고 생각하는게 더 옳다고 여겨집니다.

    • #10252

      논지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의견 감사합니다.

      참고로 마약을 처음 예로 든건 저였습니다^^
      마약을 자기파괴의 목적으로 쓸 수 있다는 의견으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학생님께서는 저 명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10255

    아래의 링크는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논지의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결국 자발적 안락사는 자기 자신의 삶과 죽음을 선택할 권리와 그 범위에 관한 논쟁인 것 같습니다.

    안락사는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 #10258

    sam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소지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했던 말이죠.

    사강은 파란만장한 일생의 끝무렵 결국 그녀 최후의 안식을 마약에서 찾으려고 한, 그러나 그 기구한 삶의 과정도 겸허히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 고결한 작가였습니다.

    사강은 무엇을 위해 자기파괴를 주장했을까요? 제가 사강 본인이 아닌만큼 그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는 그녀가 파괴를 위한 파괴를 부르짖었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그건 심지어 그녀의 고결함을 모욕하는 말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는 금언을 되새겨본다면, 누구도 사강의 신념을 폄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외려 최후의 수단으로 마약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녀의 비참함에 대한 연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 마약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좀 더 다면적인 관점에서 자기파괴에 대해 논해보고 싶었습니다.

  • #10356

    자기 파괴라는 것은 말그대로 자기 자신을 파괴, 심하다면 죽음에까지 이르는 행위이죠. 제 의견부터 말씀드리자면, 자기 파괴는 마땅한 권리를 행사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자살을 예로 들어보도록 할까요?
    A가 자살을 한다면, 주위 사람들은 매우 슬퍼할 것입니다. 그들은 A를 소중히 여기니까요.
    여기서 잠깐, 과연 A는 그들을 소중히 생각할까요?

    그 순간만큼은 A는 그들을 ‘죽음’보다 밑으로 놓았습니다.

    ‘자기 파괴’라고 하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요하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만큼 확신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 확신에는 ‘내가 이렇게 하면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할꺼야.’라는 전제가 깔리기 마련이죠.

    ‘권리’라는 것은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자기 파괴를 하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반응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죠.
    따라서 책임이 있음에도 하는 자기 파괴는 엄연한 권리 행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10360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것에서 ‘파괴’란 주체적 또는 그에 준하는 파괴를 말하는 것 아닌가요? aceman님이 제시하신 맥락은 이 주제에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파괴를 이렇게 세 가지 중 한 가지에 해당한다고 해석했습니다.

    1. 자기 신념에 따른 자기 파괴.
    2. 자기 취향에 따른 자기 파괴.
    3. 현실에 직면해서 선택한 극단적인 자기 파괴.

    1번의 경우 충신의 자살을 들 수 있죠. 전태일의 분신 자살 같은 것도 해당하고요. 2번의 경우 마약 복용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고요.

    저는 1번과 2번을 행할 권리는 있다고 보지만, 3번은 글쎄요… 신념은 헌법에서 양심의 자유로도 명시한 만큼, 자기 파괴를 제한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보여집니다.

  • #10365

    저는 이 명제를 보고 짧지만 확고한 말이 생각나던데, 다른 분들께서는 심도깊은 토론을 하셨네요. 딱히 길게 쓸 말이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나는 나를 파괴한다’에서 주어의 ‘나’는 현재의 나이고, 목적어의 ‘나’는 과거, 예전, 기존의 나이니 그것은 결국 현재의 나에게 달린 것이 아닐까요? 그것을 제한한다는 것은 현재의 본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더라도 그것을 고려한 후에 선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니 개인적으로 침해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누군가의 자살로 주위 사람들이 슬퍼하더라도, 그 사람의 선택을 막을 권리는 없는 것처럼 말이죠.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 #10501

    이 명제에 대해 계보학식의 접근을 해봅시다. 왜 사강은 법정에 서서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부르짖었을까요? 이것을 이해해야 “권리”라는 광범위한 단어를 쓴 사강의 의도를 짚을 수 있습니다. 사강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입니다 : “자신에 의한 자신의 파괴는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걸 한번 더 뒤집으면 “당신들에게는 나를 처벌한 근거가 없다.”가 되겠죠. 제가 볼때는 이 명제는 지록위마적인 논증의 전제로 쓰인것 뿐인거 같습니다.

    얼핏 보면 굉장히 우아하지만 이 말은 그저 궤변일 뿐입니다. 표면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사강의 행동이 고결하고 강인한 정신의 자아추구로 보일 수 있지만 사강은 쾌락을 추구하고 그 부가적 작용으로 자신의 파괴가 따라왔고, 1995년 법정에서 그녀는 “나의 행동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았으니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자신을 방어했습니다. 하지만 사강은 저 명제와 상관없이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저것이 사실이라고 쳐도 이미 마약사범은 현행법상 범죄니까요. 사강은 불법행위를 억지 논리로 덮으려고 한 것입니다.

    밀란 쿤데라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솔제니친 이래로… 세계 전체가 하나의 인권이 되었고, 모든 것이 권리로 바뀌었다. 사랑의욕구는 사랑의 권리로, …, 과속으로 달리고 싶은 욕구는 과속으로 달릴 권리로, …, 야밤에 길거리에서 소리치고 싶은 욕구는 야밤에 길거리에서 소리칠 권리로 바뀌었던 것이다.” 사강은 자신의 욕구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권리라는 단어로 치환했을 뿐입니다.

    자신을 파괴할 권리는 문법적인 환상을 보여줍니다. 문장에 주어와 목적어가 있듯이, 마치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듯한 환상을 말이죠. “자기 파괴”란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에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며, 현실은 그게 아닙니다. 현실에는 그저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욕구”를 시행에 옮기면서 “자신을 파괴할 권리”를 주창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죠.

    요는 이것입니다. 자신을 파괴할 권리라는 것은 허구입니다. 현실에는 사람, 욕구, 그리고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욕구를 행동으로 옮기는데 있어서 이것이 사회가 합의한 틀을 벗어나 있는가 아닌가입니다. 물론 그 틀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타인을 설득하고 타인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그 틀을 바꿔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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