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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의 침입과 로마 제국 말기의 내부적인 모순으로 말미암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지중해 문화가 단절되면서 중세가 시작되었다. 6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초기 중세를 흔히 암흑기라고 부르지만 이것은 과학 분야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기술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다. 우선 중세를 거치는 동안 특히 농업 기술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이 있어왔다. 귀리, 보리, 콩 등 새로운 곡물이 도입되었으며, 농작물의 윤작에 새로운 경작 방식인 삼포제가 도입되었다. 바퀴 버팀목, 수직의 날, 수평의 쟁기 보습 등이 중세를 거치는 동안 발명되었다. 특히 카롤링거 시대에 와서는 삼포제 경작과 함께 바퀴 달린 무거운 쟁기가 사용되면서 농경이 강화되었다. 또한 9세기부터 기독교 중세에서는 안장과 멍에 등 다양한 마구(馬具)가 개량되었으며, 8세기와 10세기에는 중국으로부터 비잔틴 제국을 거쳐 등자와 못으로 고정된 편자 등이 등장해 기병의 전쟁 전술을 변화시켰다. 새로운 마구의 개발로 말은 무거운 쟁기에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말은 농경에도 이용되게 되었다.

농업뿐만이 아니라 동력기술면에서도 이 시기에 혁명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8∼9세기부터 수차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으며, 11세기말에는 영국에 무려 5,600여개의 물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제분기와 양수기의 동력원이었던 수직축이 붙은 풍차는 7세기에 페르시아에서 나타났는데, 이것은 12세기경 바람방아의 형태로 유럽으로 들어왔다. 섬유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다. 13세기에는 발로 돌리는 베틀이 발명되었고, 14세기와 15세기에는 특히 피렌체에서는 직물 생산이 급증했다. 이외에도 광업, 건축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상의 진보가 있었다.

중세를 통해 꾸준히 기술상의 진보가 지속된 결과 농업 생산력이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고 잉여 농산물이 발생하였다. 중세 후기에 이르러 잉여 농산물이 많아지면서 도시를 중심으로 이것을 서로 교환하기 위한 시장이 형성되었고, 초보적인 형태의 선대제 수공업 생산도 나타났다. 상업이 발달하고 생산력이 증가하면서 커다란 성당과 같은 대형 건축물이 등장할 수 있었고, 학문을 연구할 대학도 설립될 수 있었다. 또한 12세기에는 노젖는 사람이 없이도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대형 범선이 나타났으며, 나침반과 해도를 이용한 새로운 항해술이 발전하면서 바다와 강을 이용한 수상 교역이 증대했다. 이에 따라 북부 독일 연안에 한자 동맹 도시와 같은 해상 무역의 근거지가 발전하면서 문화의 중심지가 지중해에서 북유럽으로 이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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