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페이지 게시판 커뮤니티 자유게시판 무생물을 함부로 해도 괜찮은가? ‘무생물을 함부로 해도 괜찮은가?’에 답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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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궁금증 먼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인권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그 논의가 시작된 점은 아마도 홉스의 리바이어던으로부터 시작될 것입니다.

홉스는 자연상태의 인간의 능력이 인간에게 권리와 자유를 부여한다고 보았지요.

이는 순수한 자연 상태로부터 주어진 것이 보증된 권리로 이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루소의 사회계약설에서 반박되어집니다.

현재 물리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과 당위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권리가 자연 상태의 “능력”으로부터 부여되었다는 주장에서

자연상태에서의 자유롭고 이성적인 “인간 본성”으로부터 부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는 고대 시대로부터 거슬러서 바라보아야만 그 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대 사회는 목적론적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목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윤리학 시간에 플라톤의 이데아설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적어도 철학에 흥미가 있다면

이데아설은 들어볼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데아라는 것은 사물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인데

이는 오로지 이성적 사유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천상에 존재하는(감각적 경험할 수 있는 땅 위의 대상이 아닌)” 대상이지요.

이데아는 의자에도 책상에도 존재합니다. 의자의 이데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앉는 도구일 것입니다.

앉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라면 그것은 의자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책상의 이데아는 무엇일까요? 네모낳거나 둥그런 판자에 기둥이 달려서 그 판자에 물건을 올려 둘 수 있는 도구라고 말하거나

좀 더 정교한 정의가 있겠지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고대 사회에는 사물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데아가 있었고 그것은 곧 본질이

되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이데아 – 본질이란 그 자체로 자연적으로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데미우르고스라는 신이 “원래부터 존재하던” 이데아를 본 따 사물과 인간들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지요.

그런고로 본질이란 그 자체로 주어진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대시대에는 아직 인간이라는 개념이 지칭하는 대상들은 매우 한정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인간은 오로지 그리스 시민 중 남성 뿐이 었으니까요. 여성과 아이 그리고 외국인, 노예는 인간이라는

본질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에 이들은 따라 인간의 본질적 활동인 정치, 체육, 예술에 참여할 수 없었지요.

고대 초, 중세말 쯤을 겪으면서 이 인간이라는 개념은 본편적으로 확장될 여지를 얻게 됩니다.

기독교에서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씀이 사상화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사상화되는 과정이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지만 각설하고

근대에 들어서 인권선언문들을 통해 인간이라는 개념이 지칭하는 대상이 확장이 가시화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프랑스 인권선언문에 특히, 평등 사상은 모두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리하자면 이러한 맥락에서 “그 자체로 주어진” 인간의 본질이 부여한 인간으로서 권리를 우리는 인권이라고 부릅니다.

이 인간의 본질은 자유롭고 이성적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할 수 있고

또한 약속과 계약을 맺을 수 있으며 책임이라는 것을 질 수 있게 하지요.

아주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질 논의는 오늘날 상당히 큰 문제를 앉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제시한 의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의자를 앉는 용도로만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그 의자의 용도가 책상처럼도 사용할 수도 있거나

또는 의자 위에 서서 전구를 가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즉, 본질이라는 것이 진실로 존재하는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과학에서 본질 논의의 약점이 여실히 들어납니다.

갈릴레이의 발견이 있기까지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지구에 만들었다면 지구가 당연히 모든 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경험적인 실험을 통해 이는 반박되고 태양중심설이 들어서게 됩니다.(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고 하지요.)

그리고 경험적인 연구에 의한 진화론을 통해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이 또 한번 반박되게 됩니다.

이렇게 과학계에 그 동안 본질에 의해 인간이 중심이 되었던 가설들은 경험적 사실을 통해서 파괴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본질을 통한 추론에 대한 반박은 비단 과학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본질은 개별 인간에게 적용하다보면 그 본질이 반대 사례에 부딪힐 때가 많아집니다.

어떤 인간은 정말 똑똑하지만 어떤 인간은 멍청할 수 도 있고 또한 자유롭지 못한 사유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간의 본질이 정말로 있는지 우리는 의심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의심을 넘어서서

본질론적 사고는 큰 문제를 야기한 적이 있지요.

자유롭고 이성적인 인간이라는 믿음은 인간을 너무 신뢰하게 만든 나머지

기술을 통제하기 어려우리 만큼 발달시켰고 1,2차 세계대전을 낳았습니다.

또한 스스로를 기만하게 만들어 사회 구조에 나약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오늘날 본질 논의는 상당히 약화된 추세입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그 논리가 상당히 인간에게 매력적이며 또한 연역적 확실성을 제공하는 점에서

어떤 논의들에 한해서 아직 유용하게 사용되곤 합니다. 종교나 몇몇 사회과학 분야에서 말입니다.

어쨋든 제가 아는 선에서 인권을 설명해드렸습니다만 오늘날 어떻게 논의가 되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이 생긴다는 것과

무생물에 이러한 인권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음을 이해하셨을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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