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화상경마장 철회되어야 하는가

[ - dreamn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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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경마장, 마사회장 손자 학교 앞부터 세워보라”
[용산 화상경마장 르포·②] 천막 농성 주민들 “이전 철회 요구, ‘님비’ 아닌 권리”

기사입력 2014.07.18 09:26:12

서울 용산에 전국 최대 규모의 마권 장외발매소, 이른바 화상경마장이 지난 6월 28일 임시 개장했다. 화상경마장 입점 소식이 주민들에게 알려진 지 1년 2개월여 만이다. 그동안 이곳 주민들은 이들은 교육 및 주거 환경을 지키려는 일념 하에 입점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왔다. 지난해 5월에는 교사와 학부모, 일반 주민들이 함께 대책위원회를 꾸렸고. 지난 1월엔 용산 화상경마장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벼를 널어 말려야 할 것 같은 따가운 날씨입니다. 주말이 오는 게 무서우시죠. 그러나 평안이 무기입니다. 지치지 말고 서로 격려하면 주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지난 10일 오후 용산 화상경마장 건물 앞, 그늘 한 점 없는 땡볕 아래서 미사가 열렸다. ‘용산 화상경마도박장 추방 대책위원회’ 주민들은 목요일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은다.

미사가 끝나고, 주민들은 따가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간신히 직사광선을 피할 뿐 덥기는 매한가지. 오히려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곳에 사람 온기가 들어차 더 푹푹 찔 뿐이었다. 달달 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만 겨우 더위를 식혀줬다.

“추우나 더우나 여기 딱 붙어있어야죠. 마사회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지난해 5월 김율옥 성심여중고 교장 등과 함께 대책위를 꾸리고 천막 농성 중인 주민 대표 정방 씨. 그는 성심여중, 선린중에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다. 그러나 정 씨는 용산 화상경마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할 때까지 엄마 역할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끼니 못 챙겨 주는 것보다 도박장 옆에서 공부하도록 하는 게 더 미안할 테니까요.”

199미터면 교육권 침해, 201미터면 교육권 보장?

“처음엔 용산이 국제도시라고 하니, 멋진 건물이 들어오나 보다 했어요.”

허름한 천막 바로 옆, 하늘을 향해 죽 뻗은 18층짜리 건물. 주민들이 이 건물의 실체를 안 것은 꼭대기까지 지어지는 걸 모두 본 뒤였다. 기가 차는 상황이지만, 마사회에도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주민들에게 입점 계획을 밝혀야 할 법적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용산 화상경마장은 현재 자리에 신규 입점이 아닌 이전 형태로 들어섰다. 용산역 부근에 있던 기존 건물이 오래돼 낙후됐다는 이유로 없애고, 현재 자리에 건물을 새로 지은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09년 발표한 ‘마사회 장외발매소 개설 승인절차 및 요건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동일 지역 내 마권 장외발매소 이전 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 동의 없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관내 이전의 경우 마사회가 신고만 하면 어디든 옮길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주민들은 인근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를 가장 우려한다. 그러나 마사회 측은 교육 환경과 관련된 법인 학교보건법 또한 저촉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학교보건법은 학교 경계선 200미터 이내를 학교 환경 위생 정화구역으로 설정하고 유흥 음식점, 호텔 등과 아울러 사행(射倖) 행위장, 경마장 등의 입주를 금하고 있다. 용산 화상경마장에서부터 가장 가까운 학교인 성심여중고까지 서류상 거리는 235미터다. 마사회는 불과 35미터 차이로 불법을 면한 것이다.

정 씨는 마사회가 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했다.

“200미터는 최소한의 거리잖아요. 고작 35미터 차이로 합법이니 ‘배 째라’하는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죠. 199미터에 있으면 교육권을 침해하고, 201미터에 있으면 교육권을 보장하는 건 아니니까요. 애초에 외곽 지역에 세웠으면 오죽 좋아요. 주민들이랑 입씨름할 일도 없었겠죠.”

설령 꼭 여기에 지으려 했더라도, 그 전에 주민들 불러서 설명회 같은 걸 했다면 저는 성의를 봐서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마사회는 건물 다 지어놓고 ‘합법이다’, ‘건물 짓는데 돈 1200억 쏟았으니 너희가 참아라’라는 식이니 우리가 가만히 있겠어요.”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해 7월, 용산구청은 농축산식품부에 이전 승인 취소 요청을, 마사회 용산지사에는 이전을 자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당선 후 성명을 통해 “우리 자녀들의 교육 환경보다 화상 경마도박장 개장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했다. 또, 지난달 16일에는 국가권익위원회가 학생들의 학습권에 심각한 지장이 우려된다는 주민들의 우려를 수용, 마사회 측에 이전 철회를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마사회는 권고를 받은 지 12일 만인 지난달 28일, “지역사회의 갈등이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고 지역주민 및 단체들이 우려하는 사항들이 문제가 없음을 확인시키고 혹시나 운영상에 발생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사전에 발굴하고 개선하기 위해” 임시로 문을 열었다. 이 또한 예고 없는 ‘기습 개장’이었다.

“그 전날 건물 안으로 마권발매기가 들어오는 걸 보고 눈치챘어요. 마사회가 주민들과 대화로 풀겠다더니 결국 상의 없이 시범 개장조차도 기습적으로 했어요. 전혀 대화할 의사가 없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준 거죠. 심지어 권익위 권고가 내려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깡그리 무시하고…. 그게 공기업이 보여 줄 태도인가요.”

“우리가 ‘님비’?… 화상도박장, 쓸 데 없는 혐오 시설”

정 씨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민들이 하나둘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 각종 반찬이며 음료수며 한 보따리씩 들고 온 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마사회를 비판했다.

강정숙(가명) 씨는 마사회가 시범 개장 이유로 든 ‘문제점들을 사전에 발굴하겠다’는 얘기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화상경마장의 문제는 이미 전국 30곳이 증명하고 있지 않나요. 할렘가처럼 주변은 더러워지고,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나빠지고. 기존 문제도 해결 못 하는데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해봤자 설득력이 없죠. 마사회가 그렇게 당당하다면 화상경마장을 현명관 회장 손녀딸 집이랑 학교 앞부터 세웠어야죠.”

이들은 화상경마장을 막는 것은 ‘용산’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정 씨는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알아보니, 여기 말고도 반경 200미터 대에 학교가 있는 곳들이 또 있다”고 했다.

“예전 용산역 지점 건물도 가까이에 학교랑 유치원이 있었더라고요. 사실 그때 막았어야 하는데, 그땐 몰랐으니 지금이라도 해야죠. 사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길은 각자 이사 가고 전학 가는 거예요. 그렇지만 학교는 남아있을 거잖아요. 우리 아이가 아닌 어떤 아이들이라도 피해를 볼 텐데, 같은 학부모 입장에서 두고 볼 수 없죠.”

이들은 나아가 사행 산업 전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도박중독 피해자들, 가족분들과 만나면서 든 생각은, ‘국민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업을 왜 국가가 용인해주고 있는가’였어요. 용산에서 30년씩 사신 어르신들도 천막에 오셔서 ‘화상 경마장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면서 한탄하시더라고요.”

김도경(가명) 씨는 정부가 마사회의 방종을 묵인하면서 국민들에게 사행 심리를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마사회가 권익위 권고도 무시하면서 저렇게 패악질을 부리는데도 농축산식품부나 청와대가 마사회를 어쩌지 못하는 건 돈 때문 아니겠어요. 세금 많이 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켜주는 거죠. 그런데 도박장에 오는 건 가난한 서민이잖아요. 정부가 마사회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거나 다름없다고 봐야합니다.”

정 씨는 대책위의 활동을 결코 ‘지역 이기주의’로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저희에게 ‘님비(NIMBY)’라고 하더라고요. 님비라는 말은 쓰레기장처럼 필요 시설인 동시에 기피 시설의 경우 쓰는 말 아닌가요. 도박장은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시설이죠. 대체 누가 이기주의인지를 봐야 해요. 돈으로 학생의 교육권과 주민의 생활권을 짓밟는 게 과연 누구인지를.”

“마사회 때문에 용산이 제2의 ‘강정마을’ 될 수도”

마사회와 주민들이 대치를 벌인 지도 벌써 1년 2개월이 흘렀다. 양측이 서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치권이 해결해보겠다며 나섰다. 여야 정치인들이 마사회와 주민 간 중재를 시도하는 데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주민투표를 제안한 것.

제안대로 주민투표를 실시할 경우, 용산구민 25만 명 중 17만 명이 입점 반대에 서명한 만큼 ‘이전 철회’로 의견이 모일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대책위 역시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대책위 대표인 정 씨는 정작 본인이 적극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투표 지역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릴 수도 있어요. 용산구 안에서도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는 분들은 우리가 왜 이렇게 결사반대를 외치는지 잘 모르시는 분도 있고, 오히려 막연히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정작 피해를 보는 건 저희인데요.”

주민투표를 하기 위해선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민투표 전에 공청회를 열어 화상도박장의 폐해를 공식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화상경마장이 학교랑 이렇게 가까이 있는지 모르는 분들이 계세요. 임시 개장한 날 온 분들도 이날 처음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도박장이 학교 바로 앞에 있어서 반대하고 있으니 돌아가달라’고 했더니, 몇 분은 알겠다며 그대로 돌아가셨어요.”

김 씨는 화상경마장 문제로 지역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도 큰 문제라고 했다.

“얼마 전부터 아는 주민분이 계속 저를 피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분 가족이 마사회에 취업했더라고요. 가족이 취업했으니 반대할 수 없겠죠. 도박장이 아니라 문화시설이 들어와서 거기에 취업을 해야 서로 좋을 텐데요.”

이야기 도중 김 씨 휴대폰이 울렸다. 동네 주민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마사회가 쌀을 쌓아놓고 주민들에게 나눠준다는 얘기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마사회는 돈으로 홍보를 해요. ‘문화시설 공짜로 써라’, ‘취직시켜준다’, ‘쌀도 준다’고 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매수하다시피 하고 있어요. 사실 경마장 입점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거의 없어요. 다만 이런 술수에 못 이기는 거죠. 곧 있으면 이 동네가 제주 강정마을처럼 될 것 같아요. 주민들끼리 서로 얼굴 붉히고…. 마사회가 이렇게 지역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있어요.”

이들에게 마사회는 이제 꼴도 보기 싫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주민들은 그러나 여전히 소통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고 했다.

“외곽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 아닌 이상 마사회와는 어쩌면 대화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사실 그동안 너무나 많이 실망을 했기 때문에 큰 기대도 없고요. 하지만 마사회 쪽에서 대화의 의지가 있다면 당연히 만나야지요. 저희도 빨리 문제가 해결돼 걱정 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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