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는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 - 디베이팅데이 ]
토론에 참여하시기 전, 주제에 관한 현재의 의견을 밝혀주세요 : 중립

현재 중립에 있는 네모를 드래그하셔서 매우찬성, 찬성, 중립, 반대. 매우반대로 옮겨주시면 의견이 반영됩니다.

egd

 

discussion

안락사는 불치의 질병에 걸려 죽음의 단계에 들어선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그 환자를 죽게 하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한 윤리, 비윤리, 혹은 실효적 논란 등은 고대 서양사에서도 등장할만큼 오래된 문제이다. 3세기 이후, 인간의 생명은 신이 부여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기독교적인 사상이 강하게 자리잡아 유지되었으나, 르네상스 문화가 도래하며 안락사 개념은 다시 재인식되기 시작했는 등 그 논의의 뿌리가 깊어 더욱 찬반의 논란이 거세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1960년대 이후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응하여 ‘인간답게 죽을 권리’라는 주장에서 시작되었으며, 형법학계에서의 안락사는 심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며 사기가 임박한 불치 또는 난치의 환자의 촉탁,승낙을 받아 그 고통을 제거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의료적 조처가 생명을 단축하는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분류에 따라 안락사의 개념도 세분화할 수는 있으나, 결국 어떤 종류의 안락사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 상황과 여건에 따라 안락사는 허용되는 것이 오히려 인권의 측면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팽팽하다.

안락사는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data

a. 안락사의 형태와 정의

1. 본인의사에 따른 구분

1) 자발적 안락사

죽임을 당하는 당사자의 의사에 따라 수행되는 안락사의 유형. 당사자는 명령, 의뢰, 신청 등의 적극적인 방식으로 안락사르 요청하거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안락사를 승인한다.

2) 반자발적 안락사
반자발적 안락사는 자신의 죽음에 동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자발적 안락사와 유사하나,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자신의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있지만 동의하지 않은 사람에 의해서 안락사가 수행되었을 때, 이것을 반자발적 안락사라고 부른다.

3) 비자발적 안락사
자신의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없는 환자를 타인의 선택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

2. 시행자에 따른 구분

1) 적극적 안락사

안락사를 수행하는 사람이 환자의 생명을 단축시킬 것을 처음부터 의도하여 구체적인 행위를 능동적으로 취하는 형태이다. 치사량의 약물을 주사하여 환자를 안락사 시키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소극적 안락사는 당사자가 이전부터 존재하던 질병 등이 원인이 되어 죽음의 과정에 들어섰을 때 그 진행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이를 방치함으로써 안락사 시키는 경우이다.

2)소극적 안락사

필요한 치료를 처음부터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거나, 환자에게 제공되던 치료를 철회함으로써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 모두를 포함한다. 대체적으로 소극적 안락사에서 환자, 가족 또는 의사가 치료를 중단하거나 시작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유는 치료의 효과가 미미하거나 치료가 환자에게 줄 부담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
b. 안락사의 정의(종교학대사전/한국사전연구사/네이버)

 

news

벨기에 안락사 나이 제한 철폐 방침…어린이도 안락사 요청 가능(2014.02.12 뉴시스)

“안락사 왜 법으로 막나” 유서. 프랑스 86세 노부부 동반자살(2013.11.26 경향신문)

 

pros opinion

a. 안락사는 생명의 자기결정권 차원에서 인정되어야 한다.

이미 사회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의 제도화를 향한 사회적 논의는 시작되었다. 의미없는 연명치료는 주변 뿐 아니라 대상자 본인에게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며, 이는 편안하고 존엄한 마지막을 바라는 개인의 권리에 반하는 문제이다.

b. 존엄적 죽음

타인의 의지가 아닌 본인의 의지로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는 환자에게는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병원에서의 연명치료 속에 맞이하는 죽음보다는 자신의 품위를 지키며 마지막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기 위해서 안락사의 법적허용은 필요하다.

 

cons opinion

a. 생명경시의 풍조를 불러온다

죽음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윤리적 선택의 최전선에 서있다. 안락사는 생명경시의 풍조를 불러올 충분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고, 그러한 우려를 불식할 만한 반대급부의 장치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이는 절대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b. 경제적 문제 등 외부의 판단으로 생명의 문제를 가늠할 수는 없다

가족의 증언이나 판단,의료진의 동의로 중단된 연명치료는 환자 본인의 실제 의사와 다를 수 있다. 법적 해결책으로 찬성측이 제안하는 병원 윤리위원회 등 최종적 판단 기구 역시 병원의 이해관계에 치우칠 수밖에 없어 전적으로 맡기기에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 결국 준비되지않은 안락사의 허용은 사회적 약자의 손쉬운 처리방법으로 악용될 소지마저 충분하며, 이러한 사례도 실제로 나타난 바 있다.

 

reference

a. 참고관련사건 : 김할머니 사건(존엄사 판결)

b. 보라매병원 사건/국가법령정보센터 판결문

서울지법 남부지원 1998.5.15. 선고. 98고합9

대법원 2004.6.24, 선고, 2002도995, 판결

 

translate

This house Believes that Euthanasia should be allowed

 


최초입장 결과 (1288명 투표)
145 388 285 157
토론댓글 현황 (63개 주장)
63 37

  Opinions

  1. Alpon Mirr D. Arpen의 프로필
    Alpon Mirr D. Arpen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저는 자발적 안락사에 대해서 찬성합니다. 먼저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생명에 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관점에서 생명은 일원론과 이원론으로 나누어지는데, 저는 프린스턴대 철학과 교수 셸리 케이건 박사와 같이 물질론적 입장, 즉, 생물체의 신체는 정밀하고, 복합적인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철학으로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생명을 통해 그 존래로써 바라는 미를 추구하게 되는데요, 이를 생명의 미의 추구라고 하겠습니다. 어떠한 생물체이든, 각각의 생명들이 바라는 이상이 있고, 모든 존재들은 그런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철학적인 관점에서 저는 안락사를 찬성합니다. 안락사를 허용하는 경우는, 신체에 큰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진행하기가 힘들고 이러한 상황이 고통스러울 때 자발적인 안락사는 그 생명의 미입니다. 죽음은 생명으로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따라서 한 존재의 죽음은 가치론적으로 몰가치성을 띄게 됩니다. 문제는 이 자연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밟는 중, 타인에게 피해를 주게 될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암말기인 환자에게 생명을 어떻게든 유지시키기 위해서 행해지는 수술이 가족들에게는 큰 경제적 부담을 주게 될 것입니다. 그 가족들은 그것이 괜찮을지는 모르나, 과연 그 환자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경제적 빈곤 또는 정신적 피로가 가중되는 것을 계속 보는 것이 행복할까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분명히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이런 이들에게 미란 오히려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였을 때, 병과 같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 법적인 제제를 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의문이 듭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의사를 표시하였을 때는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가장 이성적인 동시에 가장 감성적인 동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생물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죽음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나, 인간은 이를 연장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의료기술들을 발달시켜 왔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은 그 당사자에게 맞겨두는 것이, 생명과 그 목적에 대한 사회의 마지막 존중인 것 같습니다.

    0 0 답글
  2. 페러데이의 프로필
    Lv2 페러데이 님의 찬성 의견 - 1년 전

    고통스럽게 죽는 것 보다는 편안하게 죽는 것이 죽는 이도 그걸 지켜보는 이도 더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0 0 답글
    • 제다이의 프로필
      제다이 님의 찬성 의견 - 1년 전

      주관적 생각 마시고 객관적 의견을 다세요

      0 3
  3. 들라코거스의 프로필
    Lv4 들라코거스 님의 찬성 의견 - 1년 전

    “안락사는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가?”

    안락사를 논한다는 것은 환자의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환자의 병원비와 간병에 들어가는 비용은 매우 크다.
    경제적 수준에 따라 한 가정을 파괴시킬 수도 있는 비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사회에서 안락사의 찬반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
    굳이 병원에서 안락사하지 않아도 경제적 부담에 몰린 가족이 환자를 직접, 간접적으로 살해하는 방법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락사를 논하려고 하니까 ‘생명경시풍조’ 같은 쓸데없는 논거가 나오는 것이다. 그건 합법적으로 죽이느냐 불법적으로 죽이느냐의 차이일 뿐인데 그건 실제 상황에 처한 개인의 입장에서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다.

    0 0 답글
  4. 강현영의 프로필
    Lv4 강현영 님의 찬성 의견 - 1년 전

    저는 안락사에 찬성합니다. 안락사라는 것은 편안하게 죽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가만히 살고 있는 식물인간 같은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0 0 답글
  5.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찬성 의견 - 1년 전

    발제문의 전반적인 내용과 토론이 전개되어온 양상을 볼 때, 선택의 합리성보다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정당한가, 라는 논제에 가까워 보이네요. 이렇게 논제를 이해하고 주장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1. 일단 찬성 입장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경우를 나누어 접근하는 것이 타당할듯하네요. 우선 본인의 의사가 확고할 경우 안락사가 허용되는 것이 타당합니다. 생명은 소중하지만 인격의 전제가 되고 삶의 주체가 될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확고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큰 고통이 지속될 경우, 인격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며 스스로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환자의 자기정체성을 지속시켜주고 삶의 의미를 회복시켜주는 차원에서 안락사가 정당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자살은 권리가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는 자살을 구조대상으로 보는 직관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었던 만큼, ‘구조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비가역적 죽음의 과정에 들어간 환자에 대한 안락사는 제가 권리임을 거부한 자살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을 듯합니다. 이런 경우는 구조대상이라 볼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환자의 동의가 있다면, 이 경우는 ‘이중효과론’에 의해 분명히 옹호될 수 있습니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 주된 의도이고, 그에 따라 환자의 (확정된)죽음을 가속화하는 것은 그에 수반되는 결과일 뿐이라면, 단순히 예상되는 결과만으로 선한 의도에 의한 행위를 비윤리적인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론이죠.
     
    2. 다음으로는 환자가 명시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동의를 밝히지 않은 경우겠죠. 이는 다시 세 가지로 세분될 수 있는데, 안락사에 대한 동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는 경우와 거부할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 그리고 환자의 태도에 대한 증언이 상충되거나 혹은 의사를 알 수 있는 증언이나 증거가 아예 전무하다시피해서 정말 의사를 추정할 수조차 없는 상황,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환자가 안락사를 거부할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경우입니다. 이 환자에 대해서는 적어도 간접적 안락사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분명할 것 같습니다. 환자가 안락사 거부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혔다면, 의사는 그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극적 안락사, 즉 장기화되는 치료를 거부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됩니다.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환자의 가족은 확률이 극히 낮은 실낱같은 희망만을 이유로 부양의 의무를 지속해야 하는데 이는 가족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희망고문인 셈이죠. 그렇다고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에는 도덕적인 부담감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용인하게 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환자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가족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가족의 부양 의무 경감만을 일방적으로 고려할 수도 없고요.
     
    그럼에도 저는 (꽤 과격한 판단일 수 있으나) 불확실한 경우와 거부 의사를 밝힌 경우, 모두 추가된 몇 가지 엄격한 조건하에 안락사가 정당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우의 허용 여부가 ‘안락사’라는 행위가 ‘생명을 빼앗는 행위’라는 서사에 포섭되는가, 아니면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라는 서사에 포섭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고, 안락사가 전자에 해당하지 않음을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환자의 의사가 불확실하거나 안락사에 부정적일 경우에 대한 보다 엄격한 요건을 제시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0 0 답글
  6.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찬성 의견 - 1년 전

    이를 논증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죽음에 대한 정의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합당할 것 같습니다. 생명 현상을 정의한다는 건 대단히 까다로운 일이지만,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기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련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정의해볼까 합니다. 정의에 사용된 개념 하나하나를 따지고 들어간다면 답해낼 자신이 솔직히 없지만, 여러 대안적인 정의들과 비교해볼 때 그렇게 형편없는 정의는 아닐 듯합니다.
     
    그리고 죽음은 이런 생명 현상의 종결을 지시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망이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 단순히 ‘생명 현상이 종결한 순간 또는 그 이후’라고 정의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죽음이 일직선의 시간 축에서 점으로 표시할 수 있는 특정 순간으로 정의되기란 대단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령 신경계의 기능이 회복 불가능해져도 순환계는 작동하고 있을 수 있고, 흔히 사망했다고 칭해지는 경우에도 모든 세포가 사멸한 상태는 아닙니다. 따라서 죽음을 특정할 수 있는 순간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에 따라 전개되는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죽음이 하나의 과정이라면 그 시작을 언제부터로 보는지가 대단히 중요해집니다. 이는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필요한 영역이니 제가 쉽사리 답하기 힘들 것 같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가역적인 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저는 이 비가역성이야 말로 죽음이란 사건의 핵심적인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은 죽게 되어 있으니 이것이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불치병에 걸렸다고 죽은 사람 취급할 수는 없으니까요. 따라서 순환계나 신경계 등 일부 하부 체계의 비가역적인 기능상실 등의 조건을 추가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술해놓으면 대단히 애매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안락사의 허용 여부가 문제가 되는 의료 현장에서는 ‘회복 불가능’을 판단할 기준을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판단을 내리고 있음은 현실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결국 ‘안락사’라는 논제에서, 안락사의 허용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것은 ‘(현상 유지는 가능하더라도) 상태 호전이나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의학적으로 판단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죽음을 비가역적인 과정으로 정의할 경우, 이미 죽음의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따라서 이미 죽음의 단계에 들어섰다고 판단이 된 상태에서 안락사 결정은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라기보다는,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로 보는 것이 적합합니다.
     
    다만 위험성은 분명히 있습니다. ‘비가역성’이란 게 불확실성을 내포한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의학적 전문성이 절대적이지는 않은 만큼 결국은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특히 회복은 불가능하지만 의학기술을 통해 꽤 오랜 기간 동안 현상유지는 가능한 경우가 더 문제가 되는데,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내린 환자가 회복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 일임하기는 어렵습니다. 다소 냉정한 표현이지만, 가족은 환자의 죽음에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람들입니다. 유산이나 치료비 등의 현실적 이해관계가 있는데, 막연한 가족에 대한 낭만적 이미지만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결정하는 권한을 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의사들끼리 일방적으로 판단할 수도 없을 겁니다. 이들은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이지만, 전문성의 기반은 획일적인 만큼, 집단사고의 위험에서 자유롭기 힘듭니다. 무엇보다 의학적 판단의 정밀성이란 게 그렇게까지 확고하지는 않습니다. 본인의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환자라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본인의 의사가 확실치 않은 경우는 그 대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안락사의 허용을 간단히 결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국 본인의 의사가 확실치 않은 경우 다원적인 전문성이 확충된 독립된 위원회가 결정을 해야 할 텐데, 이들에게 생사여부를 전적으로 맡기는 건 과중한 부담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현실적인 대안을 구상해본다면, 회복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상태에 접어든 후 치료가 장기화된, 그러나 환자의 경우 외부 전문가(타병원의 의사나 윤리학자 등)가 포함된 독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하되 직접 생사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연령 및 건강 상태, 가족의 부양 능력, 환자의 가치관과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예기간’을 내놓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예기간이 만료되면 그동안 환자의 변화 등을 고려해본 후 담당의사의 판단과 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치료거부를 허용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구성한 결과가 안락사에 동의하는 것에 가깝다면 유예기간은 짧아질 것이고, 명시적인 거부의사를 밝힌 경우 유예기간은 상당히 길어져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유예기간 동안 부양의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실성에 따라 일정한 책임을 지게 할 수도 있을 테고요.

    0 0 답글
  7. bella0214의 프로필
    Lv1 bella0214 님의 찬성 의견 - 5달 전

    저는 찬성합니다.

     

    안락사는 사람이 살 가치가 없을 때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가 사는지도 죽는지도 모르면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또, 기계로 목숨을 겨우겨우 이어가도 그렇다.

    물론 사람이 오래오래 살고 싶겠지만 아무 의미가 없을 때는 안락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것이 돈도 아낄 수 있고, 평화롭게 죽을 수 가 있다.

     

    0 0 답글
  8. Liberabit의 프로필
    Lv8 Liberabit 님의 찬성 의견 - 4달 전

    삶과 죽음은 자신의 자산이므로, 자기 자신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안락사 허용은 대단히 현명한 정책입니다.

    0 0 답글
찬반토론에 참여하기 전에 읽어주세요
  • 찬반토론은 서로간의 다름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며, 서로를 인정하고 더 나은 지향점 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게재하실시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부족하거나, 비방을 목적으로 게재하실시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토론의 순수성을 신뢰합니다.
  • 서로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 소통과 공감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 지식과 지혜의 조건없는 공유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