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 - 디베이팅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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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의 결실인가 사회적 계약인가

결혼을 꿈꾸는 남녀들의 오해와 편견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엇갈림. 200년이 지난 현재도 우리는 누군가와의 결혼을 고민하고 꿈꾼다. 꿈과 현실의 뒤엉킴에서 엘리자베스가 그리고 우리가 찾는 ‘결혼’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부터 결혼을 해야 어른 대접을 해줬고, 비로소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주었다. 결혼은 남녀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지만, 결혼과 동시에 상대 가족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꽤 복잡한 관계 맺기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성장하고, 사랑하고, 마침내 누군가를 인생의 반려자로 맞아 어른이 된다. 200년 전, 당돌한 영국 여성 엘리자베스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어른이 되었을까?

《오만과 편견》을 쓴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 그는 굵직한 서사 대신 자잘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한다. ‘사랑과 결혼’. 언뜻 대중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케케묵은 소재 같지만, 이 키워드만큼 한 사람의 생애를 규정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소재도 흔치 않을 것이다. 오스틴의 시대에 영국은 산업혁명을 겪으며 급격한 사회적 변화를 거치고 있었지만 여전히 여성의 지위는 남성에게 종속된 것이었다. 오스틴은 ‘결혼 제도’ 안에 숨겨진 사회적 위선을 포착한다. 겉으로는 의례와 법도를 지닌 것처럼 보이는 신사 숙녀들. 그러나 재산이 없으면 그들이 움켜쥔 위치조차 지킬 수 없는 위기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인물들은 지위 고하, 신사 숙녀를 막론하고 실속 챙기기에 바쁘다.

제인 오스틴이 구사하는 반어적 대화는 자기 실리를 챙기고자 하는 상류 지배 계층의 이중성을 잘 드러낸다.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성공적인 결혼에 닿기 위한미덕의 포장쯤 된다. 한 가족의 일상을 아주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오스틴의 풍자방식은 독자만이 그 미묘한 흐름의 변화를 알아차리도록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날카롭다.

 

동상이몽의 빗나간 꿈

영국 시골마을 롱본의 베넷가를 중심으로 한 이웃의 화두는 오로지 ‘결혼’이다. 무도회는 웨딩 마켓인 셈. 혼기에 있는 당사자, 혹은 가족들은 무도회에서 서로가 원하는 결혼에 어떤 사람이 잘 어울리는지 ‘관찰’한다. 그 조용한 어수선함 속에서 베넷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만 마땅찮아 한다. 결혼이 삶의 전부인 양 여기는 엄마와 동생들이 부끄럽기만 하다. 조용하던 마을에 빙리 일행, 콜린스, 군대의 장교들이 오면서 마을은 부산해진다. 베넷가의 딸들과 신랑감들이 얽히고 오해와 이해를 반복하며, 엘리자베스는 한 발짝 결혼에 다가간다.

베넷 부인에게는 혼기에 찬 다섯 딸이 있다. 신흥 세력인 변호사 집안에서 신사인 베넷 씨에게 시집 온 것처럼 자신의 딸들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18세기 영국의 상속제도에 따르면, 장남에게 전 재산과 지위를 물려주고, 아들이 없다면 남자 친척에게 재산이 상속된다. 이 얼토당토 않은 상속제도만 봐도 당시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는지 짐작케 한다. 딸만 다섯인 베넷 씨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없고, 자연히 베넷 부인은 결혼만이 딸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길이라 여긴다. 리디아의 결혼이 결정되자 베넷 부인은 자신이 결혼하는 것처럼 들떠 움직인다.

제인이 열여섯이 된 이후로 그녀의 제일 큰 소망이었던 딸의 결혼이 이제 바야흐로 실현되려는 판이라, 그녀의 생각과 말들은 온통 우아한 혼례니, 훌륭한 모슬린이니, 새 마차니, 하인들이니 하는 것으로만 달려갔다.

결혼은 행복이라고 믿는 그녀. 문제는 베넷 부인은 딸들이 ‘누구와’ 결혼하는가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 누군가의 초점이 ‘재산이나 지위가 어떤가’에 맞춰져 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베넷 부인은 왜 이리 결혼에 매달리는 것일까?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여성의 경제적 삶이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판가름되는 현실. 그 막강함이 결국 베넷가의 딸들을 ‘베넷 부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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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페르소나,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의 첫 번째 남편감, 콜린스에게 결혼이란 집에 갖춰야할 장식처럼 조용히 자신의 말에 순종할 여성을 찾는 일이다. 자신의 지위와 재력이 어느 정도 갖춰졌고, 자신의 후견인인 캐서린 영부인의 권유 때문에 결혼을 결정한다. 당시 여성은 사회 활동에 맞지 않는다는 편견으로 경제적인 능력을 발휘할 직업의 기회나 교육이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 교육은 결혼을 위한 훈련에만 맞춰져 있었다. 여성이 재정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남성에게 잘 보여야하고, 오직 외양적 아름다움이나 남성에 대한 순종, 희생만이 여성의 미덕이었다. 콜린스는 이 점을 콕 집어 엘리자베스에게 그녀의 현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사랑도 존경도 없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반면,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롯이 콜린스의 옆 자리를 스스로 선택한다. 그녀는 “순전히, 아무 사심 없이, 단지 결혼에 따른 지위와 재산만을 보고 그의 청혼을 수락”한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재산이 없는 아가씨에겐 오직 결혼만이 명예로운 생활 대책”이라는 샬롯의 생각은 당대를 관통하는 여성에 대한 시각이다. 이 결혼에서 샬롯은 제법 잘 처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콜린스의 집에서 샬롯의 방은 깊숙한 곳에 좁게 자리한다. 샬롯, 그 똑똑한 친구가 가족을 위해 허울만 ‘안락한 가정’을 택했다는 사실에 엘리자베스는 가슴 아파 한다.

엘리자베스는 샬롯의 선택을 수긍하면서도 ‘자존심’만은 버릴 수 없다. 결혼에 대한 생각 역시 남들과는 조금 다른 그녀. 그녀는 콜린스가 여성은 단지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싶어 한다고 말하자 자신을 ‘이성적 존재’라며 반박한다. 엘리자베스는 모두가 Yes라고 해도 No라고 말할 수 있는 당돌한 여성이다. 그녀는 결혼을 위해 훈련되는 서커스 동물이 되기를 거부한다. 보통 ‘교양 있는’ 여성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비오는 진흙탕을 두 발로 걸어오는 행동에서 다아시는 그녀의 ‘생기’를 알아본다.

다아시의 감정을 모르는 엘리자베스는 그를 편견으로 가득 찬 눈으로만 바라본다.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다아시도 콜린스와 비슷한 남자라고 생각한 것. 우여곡절을 겪고, 다아시의 진심어린 장문의 편지를 읽고 나서야 엘리자베스는 깨닫는다. 자신도 엄마와 다르지 않게 “편파적이었으며 편견에 가득 차고 어리석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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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다아시를 통해 감사와 존중이 사랑의 밑바탕임을 이해한다. 두 남자를 완벽히 파악했다는 그녀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주 단순하고도 오래된 진리를 깨닫고 그녀는 조금 더 깊어진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우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에 결혼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제인 오스틴 역시 엘리자베스와 샬롯 같은 노처녀였다. 스무 살 되던 해에 가까웠던 롬 르프로이가 청혼할 것이라 당연히 믿었다. 그러나 제인보다 재산과 가문이 좋은 여자와 결혼하길 바라는 남자 쪽 집안으로 인해 그녀의 꿈은 무너진다.

엘리자베스와 같은 나이, 스물일곱 살에는 재산이 많은 상속자 해리스 비그위더의 청혼을 수락했다가 철회한다. 매력이나 사랑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사랑 없는 결혼보다는 노처녀의 삶을 택했고, 아버지가 사망한 뒤 작은 아파트와 친척집을 전전하며 집안을 꾸려야 했다. 스무 살 무렵 첫 작품 《첫인상》을 집필했지만 외면받았다. 사랑의 아픔을 바탕으로 1813년에야 《오만과 편견》을 다시 세상에 내놓는다. 그 사이 그녀가 겪은 삶의 조각이 소설 속에 박혀 그녀의 분신, 엘리자베스가 탄생했다.

제인 오스틴은 엘리자베스에 자신을 투영했음에도, 엘리자베스를 ‘결혼’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랑과 조건 두 가지를 모두 성취한 여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그녀의 시도가 여성이 결혼을 보는 관점을 생각하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왔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성 스스로가 아니라 다아시가 다시 청혼하는 형태로 끝이 나는 결말은 결혼이라는 그 틀 안에서 여성이 빠져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결혼, 엔딩 아닌 엔딩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 아니라 감사한 마음까지 생겼다. 사랑, 그것도 열렬한 사랑 때문임이 분명했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을 통해 당시 사회에 만연했던 성과 계급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사라졌을 때, 서로가 서로를 진실하게 바라보는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음을 말해준다. 한 사람이 설 수 있는 공간이 동그란 원이라면, 자신이 설 자리를 포기하고 원 안에 타인을 들여놨을 때 비로소 그 마음을 사랑이라 부른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서로의 원 안에서 벗어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양보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녀의 엔딩도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처럼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맺는다. 현실 속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둘의 차이를 극복하고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험난한 인생의 벽을 해쳐나갔을까? 서로 다른 사람이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소설은 끝났지만 엘리자베스의 결혼은 이제 시작이다.

200년의 세월이 흘렀다. 현재의 ‘엘리자베스’들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나? 스물일곱이건 서른이 되어서건 우리는 결혼의 문 앞을 서성인다. 때로는 콜린스처럼 현실을 바라보기도 하고, 리디아처럼 열렬한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결혼의 기준은 시간을 따라 환경에 따라 달라져 왔다. 그러나 (일반적인) 결혼의 기준은 하나의 선택일 뿐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결혼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말하고 있다. 그 결정이 때로는 사랑이 되어, 때로는 책임이 되어 함께 인생을 꿈꾸는 일. 결혼은 엔딩이 아니기에 수많은 ‘엘리자베스’들이 오늘도 여전히 문 앞에서 서성이고, 모험에 뛰어들기도 하겠지.

 

작가소개

제인 오스틴 (1775~1817)

1775년 영국의 햄프셔 주에서 유복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학교 교육을 거의 받지 않은 채, 가정교육을 받으며 15세에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21세부터 장편소설을 썼다. 1801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 어머니와 함께 작은 아파트와 친척집을 전전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홀로 친척들의 일을 도와주며 집안을 꾸려나가면서도 글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1817년 건강이 악화되어 홀로 42세에 죽음을 맞이한다.

오스틴의 작품은 18세기 후반의 영국 중간 계급(젠트리)에서 일어나는 일상 가운데 남녀의 결혼을 둘러싼 문제를 극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생동감 있고 재미있는 대화는 제인 오스틴 작품의 매력. 생전에 소설 《센스 엔 센서빌리티》 《맨스필드 파크》 《엠마》 등을 출판했다. 그녀의 작품은 유독 많은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녀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 <비커밍 제인>도 2007년 만들어졌다.

 

함께 보면 좋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오만과 편견》의 현대판인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서른두 살의 노처녀 브리짓 존스의 사랑이야기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통해 사회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그녀의 일과 사랑에 대한 애착과 도전을 보여준다. 계급이 사라진 현대사회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물질과 외모, 성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계급과 사람들의 편견으로 힘들어하는 브리짓 존스가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브리짓은 연이은 실패와 여성이라는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간다. 다니엘과 마크 두 사람에 대해 때로는 편견에 휩싸이기도 하고 그들의 오만에 상처받기도 하며, 실패에도 꿋꿋이 자기 자신을 지키려 노력하는 브리짓은 마지막에는 사랑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노처녀라는 편견을 무너뜨린다.

 

discussion

1. 엘리자베스를 두고 제인 오스틴의 페르소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2. 결혼에 대해 엘리자베스는 당대의 현실에 비추어보았을 때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런지 말해보고, 엘리자베스가 깰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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