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옳았나

[ - 디베이팅데이 ]
토론에 참여하시기 전, 주제에 관한 현재의 의견을 밝혀주세요 : 중립

현재 중립에 있는 네모를 드래그하셔서 매우찬성, 찬성, 중립, 반대. 매우반대로 옮겨주시면 의견이 반영됩니다.

Cheongju_Anti-appeasement_Stele

discussion

근대화를 기점으로 한국사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때, 우리가 반드시 떠올리는 한 인물은 바로 흥선대원군이다. 흔히 ‘쇄국주의’로 표현되는 흥선대원군의 정책은 나름의 정치, 외교 철학을 바탕으로, 서양과 일본 등의 근대 문화를 상대로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펼쳤다. 사실 이런 쇄국정책은 약 500여년간의 조선 왕조동안 유지되어오던 국가적 정책이었다.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을 우려했던 흥선대원군은 마지막까지 정책을 유지하지만 결국 일본과 서양 강대국들의 무력 침략으로 인해 1900년을 전후로 서구 근대 문물이 유입되기에 이른다. 이후 한국은 근대화를 통한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상당부분 상실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흥선대원군이 스스로 개방적 정책을 도입했다면 당시의 국가정세는 상당부분 달라졌을 것이라는 전문가 주장도 존재한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과연 타당했는가

 

data

흥선대원군(나무위키)/(위키피디아)

쇄국정책(위키피디아)

척화비(위키피디아)

 

news

[한국근대사 기행] 대원군은 쇄국주의자인가?(2012.01.05, 뉴스천지)

대원군이 노무현보다 나은 이유(2006.07.26, 한겨레21)

‘쇄국’ 의 흥선 대원군은 개혁가였다… KBS 역사스페셜 분석(2006.08.24, 국민일보)

 

pros opinion

a. 근대 문물이 무조건적으로 선한 것은 아니다

근대 문물의 수용이 현대의 우리에게 상당한 편리함과 이점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금 근대 문물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서양의 많은 국가들이 채택했던 근대 문화가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사실 어디에도 없다. 모든 문화는 존중 받아야 하고, 문화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b. 우리의 정체성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쇄국 정책은 흥선대원군뿐만이 아니라 조선왕조 500년동안 이어져오던 우리의 정신적 기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리학적 문화의 우수성을 근본으로 나름의 전통적 문화를 보존해오고 있었고, 이를 통해 나름의 발전을 이룩하고 있었다. 쇄국이 풀리면서 어떤 결과가 우리에게 돌아왔는지를 상기해보면 그 답이 나올 것이다.

 

cons opinion

a.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한국이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룩한 것은 근대화를 지나면서부터이다. 비록 조선왕조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반대로 일반 백성들은 근대화를 지나며 경제적으로 큰 독립을 이루었다. 흥선대원군이 지지했던 쇄국정책은 결국 자신과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지기에 타당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b.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시대가 거듭할수록, 결국 세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해나간다. 근대화는 세계화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기념비적인 역사적 기준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근대화와 개방정책은 피할 수 없는 추세였으며, 좀 더 현명하게 이를 준비하여 받아들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reference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38. 시대 변화 못 읽고 왕권 강화 집착하다 몰락(2015.05.21, 시사저널)


최초입장 결과 (158명 투표)
20 34 50 28
토론댓글 현황 (34개 주장)
47 53

  Opinions

  1. 트레이서의 프로필추천댓글
    Lv2 트레이서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쇄국정책은 비록 그 의의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정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일본에게 침략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역사에 만약이란 없습니다. 만일 반대로 개방적책을 펼쳤었다 한들 조선이 부강해지고 일본의 침략을 막아냈을거란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쇄국정책이 그러한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지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정세를 읽지 못한 고지식한 사고입니다. 애초에 전통은 예부터 그 원형을 곧이곧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문화의 핵심은 유지하되, 세상 흐름에 맞춰 유동적으로 변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전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합니다. 흥선대원군 역시 그중 한명이죠.

    물론 근대화의 거센 바람이 불면 그 전통의 핵심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 나라의 정체성을 흐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통한 일입니다.
    그러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개혁을 포기한다면, 그 나라는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요?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지만, 보통 개혁을 거부하고 고지식한 자세를 고수했던 국가는 모두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역사가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전통을 지키고자 한 그의 취지는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결정을 함으로써 우리의 전통은 물론 우리나라의 백성마저 희생되었습니다.

    8 2 답글
    • 이주원의 프로필
      이주원 님의 반대 의견 - 5달 전

      인정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0 0
  2. 김정훈의 프로필
    Lv2 김정훈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에는 라다크라는 지역이 나옵니다.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가던 이 평화로운 지역은 불과 50년도 되지 않아 붕괴의 위기를 맞습니다. 서양 문물의 유입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젊은이들이 힘든 농사 대신 편한 서비스업을 찾아 도시로 떠나는 바람에 마을에는 젊은이가 부족해졌고, 서양에서 유입된 제초제와 살충제는 슈퍼 잡초, 슈퍼 병충해 등의 부작용을 낳으며 주민들의 생계마저 위협했습니다. 서양과 수교를 텄을 때 조선이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었을까요?
    물론 지나치게 극단적인 예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의 사례가 보여주듯 문화와 문화의 접촉은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총과 칼로 위협하며 통상을 요구할 경우, 그들에 대한 신뢰는 더더욱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칠 당시 서양은 전쟁과 정복을 거듭하는 위험한 세력이었습니다. 그들의 무장함대는 조선의 앞바다를 서성거리고 있었고요. 물론 대원군이 선교사들을 학살해 서양 세력의 칩입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과잉대응의 기준으로 비난받아야 할 것이지, 처벌한 것 자체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은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왕권국가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평등을 주장하는 선교사들의 존재는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만큼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대원군이 이들을 처벌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대원군의 입장에서 볼 때 서양은 무력으로 국토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학살했으며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세력이었습니다. 그의 쇄국정책은 조선의 전통을 지키고 국가를 수호하려는 행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5 답글
    • 김정훈의 프로필
      Lv2 김정훈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지’를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로 정정합니다

      2 5
  3. Arsene Lupin의 프로필
    Lv2 Arsene Lupin 님의 중재 의견 - 2년 전

    흥선대원군의 행동은 옳다고도, 나쁘다고도 할수는 없습니다. 역사의 대부분의 선택들이 그렇지요(세계대전 같은 반인류적 행위는 제하고요). 당시 조선은 군주국 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동김씨나 풍양조씨의 세도정치로 왕권은 거의 없으나 마나 한 상태고, 나라의 기강은 바로 잡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를 군주국의 기준으로 ‘바로잡으려면’ 왕권을 강화해서 전통적인 기강을 재확립하는 방법뿐이었죠. 그래서 여러가지 정책으로 왕권을 거의 겨우 확립해놓은 찰나 왜세의 침략이 시작된거죠. 만약 신식 문물이 들어오면 그 당시 흥선대원군이 이루어 놓은 모든것을 무너뜨릴수 있는 처지였죠.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편겁니다.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면 쇄국 정책은 우리나라의 선진화를 막고 그저 전통성만을 고수하려한 정책밖에 않됩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기준’으로는 그게 최선의 정책이었다는 거죠. 하지만 평가하는 사람들은 후세인이고 당시의 사회적 기준과 다른 사회적 기준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기준으로 흥선대원군의 잘잘못을 가립니다. 하지만 당시의 기준도 기준이니 우리가 함부로 뭐라 할게 아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3 3 답글
    • 이주원의 프로필
      이주원 님의 중재 의견 - 5달 전

      저는 흥선대원군이 날했다고도 못하겠고 잘한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0 0
  4. 의 프로필
    익명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저는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통상수교거부정책이 추진되게 된 배경을 보면 흥선대원군의 선택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조선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조선의 것만 고집하기 보다는 더욱 더 다양한 나라들과 교역을 함으로써 우리보다 더 발전했던 서양의 선진 문물 또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우리 것을 지켜야하지만,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은 우리 것의 정체성을 지키자 보다는 우리 것이 세계 제일 최고다 였습니다. 결국 1876년 일본과 최초로 근대적인 조약이자 치외법권, 해양측량권 허용 등이 포함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죠. 강화도 조약은 앞서 언급했듯이 불평등한 조약이었습니다. 만약 쇄국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더 일찍 문호를 개방했더라면 조선은 약한 나라였기에 타 국가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겠지만 강화도 조약 만큼 불평등한 조약을 맺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 뒤에 수교를 맺었던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등에게도 최혜국 대우를 인정했죠.

    4 3 답글
    • 박민찬의 프로필
      Lv4 박민찬 님의 반대 의견 - 5달 전

      익명님에게 찬성합니다.

      흥선대원군의 세도정치라…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것 같네요.

      0 0
  5. 깨어있는국민의 프로필
    Lv3 깨어있는국민 님의 중재 의견 - 2년 전

    저는 이상황에서 그선택이 어찌보면 옳았으나 이상황이 아닌 시대를 보았을때 실패한 정책이라고 봅니다. 쇄국정책을 할수밖에 없었던것은 우리가 사대하던 중국이 무너진것과 이웃나라였던 일본조차 무너지자 우리는 극도의 불안감이 생기며 자꾸 외국배가 우리나라를 어슬렁거리자 우리는 그들을 배척하는것이 심하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였다면 역사가 바뀌었을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도 세계전쟁에 주축을 그었겠지요, 그러나 쇄국정책또한 현명한 점이 외세의 침략을 견디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아마 흥선대원군 하야후가 문제라고 봅니다. 급격하게 바뀌기때문에 우리가 적응하지못했고 그결과 일본의 침략이 되었습니다. 쇄국을 계속유지했다면 저는 아마 충분히 우리나라가 중립성을 유지하지않았을까 싶습니다.

    3 3 답글
  6. Bleair의 프로필
    Lv2 Bleair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저는 흥선 대원군의 쇄국 정책은 옯지 않다고 봅니다

    취지는 정말로 좋아으나, 결국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략하게 됩니다
    그이유중 하나가 바로 쇄국 정책 떄문입니다

    쇄국 정책을 조선이 강했을때 햇더라면 꽤 괜찮은 정책이였을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제국 주의가 시작되는 시점이였으며, 옆나라들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서 어느정도의 대비가 필요하던 시기 였습니다

    자신의 나라의 전통을 지키려는것은 정말로 좋아지만 시대의 흐름을 못 읽은 것이 아마도 가장 큰 원인 이겠군요

    당시 일본도 미국의 의해서 강제로 통상을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강제로 했기 떄문에 안좋아 보였지만
    나중에 보면 미국의 새로운 문물과 도구들이 쏟아져 나와서 오히려 일본이 발전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조선도 신미양요와 병인양요가 있습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을 포함하여 자신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한사람들이 있었는데
    결국 그 결과는 그토록 싫어하던 일본에게 점령 당함으로써 식민지로 전략되어 버리고
    백성들이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전통이 사라진다? 아주 원통할 일입니다
    하지만 국가가 망해가는데 전통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국가가 중요합니까?
    아무리 전통이 중요시하다고 해도 모든것은 국가 유지를 우선시 해야합니다

    역사에서도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지식하게 전통을 지키겠다고 한 나라들은 다 망했습니다
    조선도 이중에 하나이고요

    만약 조선이 쇄국 정책이 아니라 개방정책을 펼처 다른나라의 우수한 문화를 배웠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아마도 일제에 지배는 당하지 않았을겁니다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략하였으며,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기 떄문에
    옯지 않다고 봅니다

    3 3 답글
  7. 홍석현의 프로필
    홍석현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흥선대원군 본인도 그 당시 국내에 유입되어 있던 가톨릭 신부들을 통하여 꾸준히 서구세력과 접촉을 시도하였으나, 서구열강은 좋은 먹잇감 하나 더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 군인이 쓴 일기에는, 조선이 베트남보다 풍요로운 것 같은데, 베트남 말고 이 나라를 식민지로 삼을 것이라고 기재된 내용도 있습니다.. 신미양요 당시에도, 조선은 미국 함대 군인에게, 전쟁할 때 하더라도 일단 음식과 물을 보낼 테니 잘 먹으라고 하였으나, 미국 함대는 가볍게 씹고, 온 강화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애초에 베트남이 프랑스와 어설픈 접촉을 시도하다가 나라가 통째로 망한 걸 보면, 당시 흥선대원군의 정세판단은 정확했다고 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애초에 네덜란드와 오랜 접촉이 있었으며, 미국이 일본을 식민지 삼으려고 살짝 간보다가 남북전쟁을 전후로 한 국내의 혼란으로 인해 실패하였으니, 일본은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 메이지이신(명치유신: 明治維新)이 성공하였던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당장 개항을 하고 싶어도 서양에서 요구하는 것은 철저한 불평등 조약에 기반한 반식민지였기 때문에, 개항을 하고 싶어도 할 대상이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습니다. 설혹 평등조약을 맺으려 해도, 그러려면 서구열강이 얕보지 못할 무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무력을 갖출 무기를 팔아줄 교역대상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죠. 설혹 있었다 해도 재정이 파탄 난 당시 조선에서 얼마나 가능했을지 의문입니다.

    개항을 통해서 근대 문물을 얻는 대신 식민지로 전락하여 일제 강점기의 고통을 수 십년 더 받는것은 진정한 근대화가 아니라고생각합니다. 역사에서도 개항을 한 나라들은 일본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 망했습니다. 조선도 이중에 하나이고요

    그리고 강화도 조약은 흥선대원군의 집권이 끝나고 개항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올라오던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즉, 쇄국정책을 통하여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는것을 흥선대원군이 막고 있었는데 방패인 쇄국정책이 사라지니 조선은 바로 일제의 삭민지가 되어버린 것이죠.

    개항을 한다? 아주 원통한 일입니다.
    하지만 개항을 하면 식민지가 되는데 근대문물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국가가 중요합니까?

    2 5 답글
  8. 정채원의 프로필
    정채원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당시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조선이 그렇게 믿고있던 중국도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힘이 매우 약해진 상황이었고 많은 나라들이 강대국의 간섭에 놓이게되던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쇄국후 침략을 받아도 서양열강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낼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서양의 강대국들이 보유하고있었던 최신식무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개항후 군사력을 높인 후 쇄국을 했었더라면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의 간섭을 받을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홍석현님의 의견에 근거로 나온것의 일부는 잘못된 것입니다. 신미양요의 배경이 되었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정확히 말해주시지는 않았으나 정황상 그렇게 생각할수 있는데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상당한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 주민들이 먼저 제너럴 셔먼호를 보고 공격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구실이 되어 신미양요가 일어났지만, 제너럴 셔먼호 사건 자체는 전체가 다 미군의 잘못은 아닙니다.
    또한 개항을 한다고 해서 식민지가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개항으로 인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나라중에는 일본이 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근대화에 성공했고 그 결과로 강대국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개항함으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나라의 예시를 든것입니다.) 홍석현님께서는 일본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고 하시는데, 어째서 예외입니까? 예외로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확히 알려주십시오.

    3 4 답글
  9. 홍석현의 프로필
    홍석현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개항을 통해 열강과 평등 조약을 맺을 정도의 군사력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맨 처음 개항응 할때 열강에 맞먹는 군사력이 없다면 당연히 불평등조약이 될테고 군사력 증가가 불가능하게 되죠.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이 왜 군사력을 제대로 증강하지못 했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제너럴 셔먼호가 아닌 신미양요 때의 일입니다. 제 댓글에서 ‘강화도를 쑥대밭으로’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죠. 제너럴 셔먼은 평양에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제 댓글에 써 있었듯이 일본이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이유는 첫 째, 일본은 몇 백년 전부터 서양과의 교류가 있었으며 둘 째, 미국의 남북전쟁이 기막힌 타이밍에 터졌으며 셋 째, 메이지 유신이 기적적으로 성공하고 넷 째, 조선과 불평등 조약을 맺어 미국에 의한 손해를 상쇄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선은 서양과의 교역이 거의 없었고 국내 상황으로 볼때 메이지 유신과 같은 개혁이 일어나기 힘들었으며 주변에 식민지 삼을 나라가 없었습니다. 또한 일본을 제외하고 개항을 했다가 식민지화가 되지 않은 나라는 굉장시 적다고 알고 있습니다.

    2 3 답글
  10. 서건우의 프로필
    서건우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명성황후에 의해 개화된 이후 조선은 외세에 휘놀려지게 됩니다. 각종 이권은 서구 열강에게 침탈당하고, 그나마 개혁도 외세에 의해 그 나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일본에 의지했던 갑신정변이 그랬고, 갑오개혁조차도 친일 인사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전 조선의 기틀은 완전히 뿌리뽑혀 있었습니다. 세도 정치로 인해 왕권은 추락하고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데다가, 1802년에는 장용영이 해체되고 조선 군사 체제는 안동김씨 가문의 세력의 유지 기반으로 전략하고 맙니다.

    그나마 조선을 회복시키려 노력한 사람이 바로 이하응입니다. 환곡제를 폐지하고 왕권 강화를 위해 힘을 쏟으며, 군사 제도를 개편하기 시작합니다. 이 전에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었다면 조선의 식민지화는 더 빨라졌을 것 입니다.

    2 3 답글
    • 서건우의 프로필
      서건우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휘놀려지게 -> 휘둘려지게

      2 3
  11. Bleair의 프로필
    Lv2 Bleair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일본도 미국의 의해서 강제로 개항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미국에세 많은 제재를 받았지만, 선진문물을 받아 들일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동등했던 국력이 순식간에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식민지로 전락한게 된거고요.

    3 4 답글
  12. this this의 프로필
    Lv3 this this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일본의 경우 네덜란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 덕분에 많은 희생이 뒤따랐지면 문명화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물론 문화적 충돌로 인해 희생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 희생은 문화훼손 정통성 훼손 인적 훼손 등 수 많은 부분에서 문제를 야기했지만,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봤을 땐, 강대국으로 성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앞선 손해를 만회하고도 남습니다. 그 당시 강대국이라는 것이 물론 좋은 의미로서의 강대국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수 많은 국민들이 외세의 침략으로 유린당하지는
    않을 만큼의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2 3 답글
  13. 우왕의 프로필
    Lv3 우왕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당시에는 조선의 경우 3정의 문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고, 백성들도 살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외규장각 문화재가 약탈당하고(프랑스)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파해치고(독일), 통상요구하며 행패부리며, 강화도를 침략하는 행위(미국)를 당했으면서 개방해야지 하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사례로 근대적 발전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강화도 조약을 보면 아시다시피 외교에 대한 정보나 기술도 모르던 조선이 당시 개방했다면, 더 빠른 강화도 조약을 맺는 것일 테고, 식량도 남아 돌지 않았을것 같네요. 결국 식민지도 더 빨리 왔을 걸로 보여집니다.

    1 3 답글
  14. 토론을 즐기는 고딩의 프로필
    Lv2 토론을 즐기는 고딩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흥성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문화발전에 걸림돌이 된것이라고만 생각을 해왔는데, 앞에 있는 의견들을 전부 보니 반대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통을 지키겠다는 취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일제감정기에 대응하지 못했던 우리에게 영향이 없었다라고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 3 답글
  15. 호빵이의 프로필
    Lv1 호빵이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반대 입장을 가지고 계신 많은 분들께서 쇄국이 나라의 발전을 막았다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하셨는데 지금 보아 그런것이 아닐까요?
    현재의 입장으로는 국가의 발전을 막은 정책이라고 볼 수 있지만 만약 그때 우리나라가 개항을 빨리하여 선진문물을 받아들였다면 당시의 사회사상이 흔들리고
    심지어는 왕정도 흔들릴 수 있다고 봅니다.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선량한 백성에게 피해를 줬을거구요. 그리고 개항을 한다고 해도 외부의 사람들과 많이 접할 수 있는 소수의 지배층들만이 선진화된 기술을 가지고 일반 백성들에게 피해를 줬으면 줬지 백성들에게 큰 혁신을 가져다 주진 못했다고 봅니다

    2 4 답글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만약 그러한 논리를 가지고 계시다면, 도대체 언제 개방을해야 하는것입니까?

      그냥 끝까지 개방안하고 우리까리 살레.. 뭐 이런거 하면 무슨 발전이 있습니까?

      옆나라 일본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서 한게 뭐있습니까? 백성피해 줄이고, 왕정을 위해 개방막는다는 논리는 그저 자기 권력 지키려고 한거하고 뭐가 다른지요… 그리고 백성피해를 줄인다는 논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신기술이 생기면 당연히 소수에게 먼저 돌아가기 마련인데 그 이유때문에 아예 신기술을 개발하지 말자.. 이런논리인지요? 그렇다면 현대에도 신기술은 개발되서는 안되는것 아닙니까?

      1 6
  16. 꾸물의 프로필
    꾸물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앞의 의견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 다덤벼라님이 그렇다면 현대에도 신기술은 개발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현대에는 우리나라를 보호할 수 있는 군사력이 있습니다. 안정된 지금에서 보아서 그렇게 보일수 있지만 사회가 혼란한 그 상황에서 보면 얼굴이 하앟고 눈 색깔이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말도 안되는 개같은 종교를 퍼뜨리고 신분제도를 흔들리게 하는 것 자체가 위협적이고 들이면 안되는 존재로 밖애 안 보였을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은 나라의 전통과 제도를 유지하고 나라를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에서 보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시 상황에 있던 흥선대원군은 아니 제가 흥선대원군이 되더라도 쇄국정치를 펼쳤을 것입니다.

    4 3 답글
    • 다덤벼라의 프로필
      Lv7 다덤벼라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애초에 국제정세를 아예 모르고 집안에서 권력싸움이나 하고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어떻게 서방에 털렸는지도 모르고 일본과 청이 그후 어떻게 변화를 위해 힘을 쓰는지도 모르고, 오직 신미양요랑 병인양요때 몇번 외세를 이겼다고 우쭐하고 스스로 소중화나 떠들고 있었죠.

      양무운동이 발생한것도 모를테고, 메이지유신이 실현되고 있는것도 모르고.. 아는것 아무것도 없이 그냥 몇번 투탁거려서 이긴거 가지고 거만떨던것 아닌가 합니다.

      애초에 국제정세에 까막눈이다보니 서양것들이 그냥 기존의 전통을 위협한다는 생각밖에 더 할수가 없었겠죠. 그 서양문들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도 알 턱이 없었겠구요. 그러니까 쇄국하면 언제까지나 안정을 유지할수 있을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개방도 안하고 뻐겼겠죠.

      물론 그때 상황에서야 아는게 없으니까 그냥 쇄국하는게 나을거라고 생각할수야 있습니다만, 정말 세상돌아가는거 하나도 모르고 혼자 자만심에 가득차서 있었다는게 정말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개방안하고 쇄국하고 뻐기려고 했는지 궁금해지네요.. 시대가 제국주의의 시대인것도 몰랐으니 쇄국하고 버티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피해갈거라고 생각했겠지만요..

      2 5
  17. 조해성의 프로필
    조해성 님의 반대 의견 - 2년 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이해는 되지만 확실하게 옳은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7세기 동인도 회사를 시작으로 1842년 중국의 난징조약 1858넌 일본의 미일수호통상조약 1862년 베트남의 사이공 조약 등 조선이 가장 늦은 시기인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방을 시작합니다. 그것도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서양이 아닌 20여 년 전 개항된 일본으로부터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됩니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근대화를 가장 빨리 이루어내고 서양의 팽창주의, 제국주의적 성향을 그대로 가져와 조선이 일본의 첫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또한 첫 근대화가 일본이 아니라 청, 조선 이였다 하더라도 서양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가치는 동일하게 가졌을 것입니다. 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첫 근대화에 성공했는지 저는 3가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네덜란드와의 수교를 통한 국제정세 이해, 국제통화였던 은의 다량 보유, 근대정치치제의 필요성 확립(대정봉환을 통한 메이지유신 시작)입니다.
    일본과 비교해 봣을때 개방 당시 조선의 상황은 매우 열악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또한 조선 건국 초기 이후 주변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쇠퇴되어 가는 중이였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치경제체제의 한계점이 명백함에도 왕조만을 수호하려는 기득권의 잘못된 결단이 신문물을 뒤늦게 받아드리고,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조선 후기에 세도정치, 매관매직, 갑신정변 등 기존 정치체제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이 여럿 나왔습니다. 단기 이벤트성 사건이 아닌 조선 역사가 흐를수록 왕권은 더욱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흥선대원군과 찬성측의 입장은 왕권부터 확립해야 한다. 라는 것인데 이미 조선의 대내외적 정책과 체제는 갈수록 후퇴되어 실패했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며 마지막 기회였던 개방까지 늦추는 판단이 되어버렸습니다. 왕권이 국제정세(실익)보다 중요했엇다는 것을 반증하는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정치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반개혁파와의 대립 끝에 기득권 세력이 개혁을 전면 실행하여 힘을 실어줬습니다. 위에분이 말씀하신 종교라는 가치 침입으로 인해 신분제 질서가 어지러워져 국가혼란이 올 것이며 당시 자신이 흥선대원군 이였더라도 쇄국정책을 하실꺼 라고 하셧는데 일본의 경우 기득권 세력 이였던 천황이 반대세력과 마찰을 불사하고 전면개방을 하였습니다. 참고로 조선 왕조는 500년이지만 일본 천황은 1300년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시대만을 한정되어 본다면 어차피 일본의 성공적인 첫 근대화가 명백한 시대적 배경을 안고 있기 때문에 흥선대원군 집권초기 전면개방을 하더라도 일본에 비해 우세하거나 동등한 세력으로 거듭나지는 못한다고 보며 청나라와도 좋지 않은 관계이기 때문에 조선 스스로 자립하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이후 청으로부터 침략이나 일본으로부터 침략은 예정된 수순이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유무와의 관계와 상관없이 근대화로 인한 침략, 주권약탈은 예정된 수순이였다 생각합니다. (이미 흥선대원군의 시대에서는 근대화의 의미는 사라짐)

    3 1 답글
  18. 의 프로필
    익명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솔직히 이건 그 때의 상황의 입장에서 보느냐 지금의 현재인 으리 입장을 보느냐의 차이인데 솔직해 얘기 하자면 그때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그위에 오페르트 도굴 사건도 있었다. 그때의 흥선군의 시점으로 봤다면 프랑스랑 싸웠는데 이겼어, 미국이랑 싸워서 이겼어 그리고 오페르트가 자신의 아버지 무덤을 팠어. “어? 싸웠는데 이기고, 저런 X라이 같은 놈들도 있네. 외국 놈들은 별로 상관 할 것도 아니네” 라는 생각을 들었을 것 같고 아니면 무서워서 쇄국 정책을 한 것일 수도 있고.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다름 나라한테 개항한 적도 없고 경험도 별로 없었던 것인지 개항을 해도 망할 나라이다.

    0 4 답글
  19. 송명섭의 프로필
    Lv2 송명섭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결국 어느나라이든 개국을 하게 되었다는 점은 우선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 조선이라는 나라의 체제 자체는 급격한 문물 수용에 대해서 부담감, 즉, 급변하는 사회 체제를 받아들이기에는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 면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더 심한 문제는 다른 외국간의 교류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무역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국력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흥선대원군 역시 처음부터 쇄국정책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개화를 하자고 주장했으나 여러가지 조건과 상황속에서 사건들이 터지자 쇄국정책으로 바꾸게 된 것입니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으나 만약 흥선대원군의 집권이 이어져서 쇄국정책이 이어졌다면, 그래서 좀 더 주도적으로 국가 무역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힘을 키울 시간적인 여유를 벌었다면 이 쇄국정책의 의미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따라서 쇄국 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의 정책은 국가의 힘을 길러서 자신들의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려 했던 성공적인 정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 2 답글
  20. 은색이의 프로필
    은색이 님의 찬성 의견 - 2년 전

    당시는 대항해시대 이다. 즉 힘 없는 나라는 힘 있는 나라에 [강대국]식민지가 되는 세상이었다. 강대국들이(프랑스,미국) 우리나라에 온 명분은 무역이라고 하지만 속으론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였던 것이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아니었다면 강대국의 식민지가 되었을 갓이다.
    강대국들이 정말 통상을 하고 싶었다면 일방적으로 우리 해안으로 쳐들어 오지 않고 높은 직급의 관리들이 와서 회담을 열었을것이다.

    3 1 답글
  21. thesjw0318의 프로필
    Lv4 thesjw0318 님의 중재 의견 - 1년 전

    가급적 중간의견을 택하지 않고 토론에 임하고 싶었으나 이렇게 되었네요.

    토론이 다소 단순하게 흘라가고 있는듯 합니다. 상이한 의견 간에도 대체로 몇 가지 전제들에 대해서는 합의가 있는 듯한데, 저는 이런 합의된 전제들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쇄국정책의 의도는 좋았다
    쇄국정책의 의도가 국가 수호였다, 는 논거가 생략된 가정으로 보입니다만, 여러 각도에서 검토해보아야 할 대목이 대강 넘어가고 만 듯합니다.

    일단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그렇게 일관된 정책기조가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흥선대원군도 근대 무기나 기술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쇄국정책은 그의 집권 말기에 행해진 정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의도가 국가수호인지 정치적 혹은 이념적 판단인지, 혹은 권력유지인지는 좀더 파고들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의도가 국가수호인 게 틀림없다고 해도 흥선대원군이 인식한 국가의 범위가 무엇이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세도 정치를 타파한 것 때문에 개혁적인 이미지가 있는 건 사실이나, 왕실의 위엄을 명분으로 경복궁 재건 사업 등에 과도한 투자를 한 걸 보면, 흥선대원군의 정책적 지향이라는 게 결국 왕권강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고종이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건 1863년으로, 노예해방을 놓고 미국이 남북전쟁을 벌이던 시기이고, 불과 5년 후엔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일으킬 무렵입니다. 이런 시대에 왕실의 위엄에 집착하고 왕실 수호를 국가수호로 여겼다면 명백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고, 흥선대원군이 이에 대해 윤리적, 정책적인 내적 확신을 가졌다고 해도 그다지 타당한 판단이었다고 해주긴 힘들 것 같네요.

    2. 의도가 마냥 좋은 방향으로 해석된 것이 문제라면, 결과면에서는 다소 실질적인 부작용이 과대평가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시기는 1863년부터 1873년까지 약 10년이고, 그의 쇄국정책은 집권과 동시에 시작되어 끝까지 관철된 정책 기조가 아닙니다. 말하자면 고작해야 몇년 정도 지속된 것에 불과하고 그 이전에는 군사 기술등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쇄국정책이 행해지던 그 몇 년의 영향력도 현대사회에서 몇 년이라는 시간이 갖는 영향력보다 훨씬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근대 이전의 사회는 신진대사가 훨씬 느리다고 한다면 적절한 비유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실정을 고려해보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상징적인 의미는 클지언정, 실질적인 효과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따라서 좋은 의도로 한 건 맞지만, 나쁜 결과를 초래했다는 식의 단순화는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쇄국정책에 대한 선입견에는 부합하지만 면밀한 검토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할만한 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1 1 답글
  22. fenneka의 프로필
    Lv1 fenneka 님의 중재 의견 - 1년 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은 나라의 통상을 막아 우리나라의 상황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흥선대원군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 2 답글
  23. bd의 프로필
    Lv3 bd 님의 반대 의견 - 1년 전

    우선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말할 때 그 찬반의 정체성이 늘 조선입니다.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쪽 모두 ‘조선’ 이라는 나라가 선택할 정책으로 ‘쇄국’ 이 옳고 그르냐를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걸 민족적인 시선까진 아니더라도 당시 백성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해 쇄국을 선택했다고 해도 쇄국이라는 잘못 된 정책으로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미래도 밝지 않을 뿐더러, 조선을 뛰어넘어 조선 백성과 민족적 차원에서도 쇄국을 한다고 한들 좋을 것이 하등 없습니다.  마치 원시 부족민이 부족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문명과 스스로 단절한 것이 부족사회는 유지가 될 지언정, 그 부족사회의 주민들은 그 사회만을 우선적이자 절대적으로 유지한다는 잘못 된 가치선택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입니다.  조선은 결국에는 식민지로까지 떨어졌으니…

    쇄국이 옳으냐 그르냐보다 먼저 조선이 과연 존속할 가치는 있는지부터 생각해보고, 존속 돼야 한다고 할 때에 쇄국이라는 것이 효과적인지를 따져야 쇄국에 대한 공감이 가능하겠죠.

    쇄국을 통해 개혁의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던 조선 지배층이 생각하는 신문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새로운 시대에 대해 이해부족이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일부가 주장하던 메이지 유신식의 변혁도 결국 막부 체제의 붕괴 속에서 새로운 지배구조가 일어난 것을 보지 못하고, 조선이 마냥 문을 열거나 닫으면 신문물과 구체제가 융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보면 구시대적 발상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죠.

    결국 그 시대 지배층이 ‘쇄국’ 을 말할 때 그들이 생각하는 서양문물이란 것이 총, 의료, 인쇄 이런 물질적인 것이지.  상업 부흥과 계층 붕괴, 변화하는 가치와 권리의 재분배 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쇄국을 주장한 것이죠.

    제 개인적 생각은.  쇄국이란 것도 올라선 권력 하루라도 더 쥐고 있으려는 조선 권력층의 발악 같은 것이지만, 조선이 일본보다 먼저 구 지배구조가 붕괴해서 망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4 1 답글
  24. Vainglory의 프로필
    Lv1 Vainglory 님의 찬성 의견 - 1년 전

    지금 일본에게 뒤쳐지는 것은 쇄국 정책 때문이 아닙니다. 일본은 서양의 신식 문물을 받아들여서 빨리 성장했고 우리나라는 쇄국정책 때문에 발전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저희는 중국과 교류를 하며 발전했습니다.”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니 일본에게 뒤쳐지지” 라고 하는 분들도 계실텐데 중국의 문물을 받아 들였다는게 아니라 중국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교류를 한 것을 우리나라와 교류를 한것입니다 중국이 중간에서 중재 역할을 해주며 우리나라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해준 것입니다.지금 북한에 중국이 붙고 우리나라에 미국이 붙어서 밀어주는 것과같은 셈이죠.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뒤쳐진 것은 우리나라의 시민 정신 때문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원래 우리나라를 침략한 것이 아니라 교류하러 왔죠. 하지만 위리나라 사람들은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침략을 하려고 했죠 하지만 가는 도중에 배가 침몰합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침략하러 간 사람들을 구해주고 다시 보내줍니다. 여기서 서양인들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이미지는 정해집니다 이래서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성장 할 수 있었습니다

     

    0 1 답글
  25. 민경호의 프로필
    민경호 님의 찬성 의견 - 1년 전

    개항을 하면안됨

    0 1 답글
  26. kw7298의 프로필
    Lv1 kw7298 님의 반대 의견 - 1년 전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시대착오적인 그리고 사회변화를 따라가지못하는 무능한 집권세력의 크나큰 패악이라고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 게시글중에 우리가 일본제국주의 세력에게 제국주의적 수탈자가된것이 외부변수에의하여 즉 일본의 성장과 외부세력의 침탈적태도를 가지고 우리나라에 접근하여서 이러한이유 즉 외부요인으로인해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되었다고 말씀하시는대 이는 접근방식의 오류같습니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우리나라는 정조대왕이 죽고난후 세도정치기간동안 어떠한 변화,개혁 사회적 진취와 진보를 진행하지도않았을뿐더러 사회의 패착역시도 개선하려는 의지역시 존재하지않았기떄문입니다. 세도정치세력들은 1862년 진주민란이 일어날떄가지 삼정의 문란도 해결하지못했습니다.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였으나 불과 보름만에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는 태동기가 되면서 자본주의를위한 상인들의 자본의 내적축적이 일어나면서 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이룰수 있었으나 기회를 놓쳤고,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경복궁중건과 당백전발행으로인한 하이퍼 인플래이션발생등이 국가의내부에서부터 시작되어온 사회갈등과 계급충돌을 야기하여 국가가 망한것이라고 보는시각이 옿다고 생각합니다.

    0 1 답글
  27. 박주석의 프로필
    Lv1 박주석 님의 반대 의견 - 9달 전

    그때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개혁하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드려 발전하였습니다. 그 당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드려 개혁을 한다면 우리나라는 부강한 나라가 됬었을 수도 있고 식민지로 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흥선군처럼 쇄국 정책을 피고 서양 문물을 받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들의 강한 군사력으로 식민지가 되었겠지만(실제로 그렇게 됬지만), 적어도 개항하여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드리고 개혁하여 군사, 경제 등의 면을 강화한다면 일본의 식민지로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0 1 답글
    • 박민찬의 프로필
      Lv4 박민찬 님의 반대 의견 - 5달 전

      네네 그럴수도 있겠군요.

      0 0
  28. 조성원의 프로필
    조성원 님의 반대 의견 - 5달 전

    당시 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조선이 그렇게 믿고있던 중국도 아편전쟁에서 패배해 힘이 매우 약해진 상황이었고 많은 나라들이 강대국의 간섭에 놓이게되던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더라면 쇄국후 침략을 받아도 서양열강으로부터 조선을 지켜낼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서양의 강대국들이 보유하고있었던 최신식무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개항후 군사력을 높인 후 쇄국을 했었더라면 우리나라가 다른나라의 간섭을 받을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홍석현님의 의견에 근거로 나온것의 일부는 잘못된 것입니다. 신미양요의 배경이 되었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정확히 말해주시지는 않았으나 정황상 그렇게 생각할수 있는데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조선의 백성들에게 상당한 잘못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조선 주민들이 먼저 제너럴 셔먼호를 보고 공격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구실이 되어 신미양요가 일어났지만, 제너럴 셔먼호 사건 자체는 전체가 다 미군의 잘못은 아닙니다. 또한 개항을 한다고 해서 식민지가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개항으로 인해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나라중에는 일본이 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하여 근대화에 성공했고 그 결과로 강대국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개항함으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거둔 나라의 예시를 든것입니다.) 홍석현님께서는 일본이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고 하시는데, 어째서 예외입니까? 예외로 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정확히 알려주십시오.

    0 1 답글
  29. Richard의 프로필
    Lv2 Richard 님의 찬성 의견 - 5달 전

    제 생각에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쳐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의 개방과 개호가 늦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현대에서 일제강점기의 모든 역사를 알고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어쩔 수 없는 조선의 유학자였습니다. 비록 만동묘 타파, 서원 철폐, 호포제 등을 실시하기는 했지만 경복궁 중건 등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천주교를 사학이라고 생각했고, 헌종, 철종 때와 같이 무자비한 탄압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므로 흥선대원군 입장에서는 쇄국 정책이 가장 효과적이고 그동안 지켜왔던 조선 왕실의 태도와도 가장 잘 맞아떨어졌을겁니다.

     

    또한 뒤에 고종이 개항을 했지만 그것 역시 수박 겉핧기 식의 개항에 불과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유학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 면을 생각해 볼때, 흥선대원군이 개항을 해도 과연 효과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0 1 답글
  30. 박민찬의 프로필
    Lv4 박민찬 님의 반대 의견 - 5달 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나라의 발전은 생각해 보지 않은 흥선대원군이 아닌가 싶네요.

    서양문물은 안 받아들이나요?

    0 1 답글
  31. 별솔미르의 프로필
    별솔미르 님의 찬성 의견 - 2주 전

    흥선대원군은 위 찬성 측 토론자분들께서 말씀하셨듯이 본래 무턱대고 쇄국을 주장할 정도로 어리석은 이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개항을 주장했던 인물이었죠.

    그러던 이가 갑자기 쇄국정책을 추진한 건, 여러모로 조선 내부의 사정이 좋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도정치로 인해 나라가 피폐해진 것은 물론, 백성들의 민심도 좋지 못해 언제든지 반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대부분이 반대한 개항을 실시한다? 물론 어찌어찌 그들을 이겨내고 개항을 해낼지라도, 금세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어버렸을겁니다. 나라가 힘이 없었으니까요.

    이리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임시적으로나마 쇄국을 펼치며 국력을 신장하고 있던 것인데, 가뜩이나 시간이 모자란 판국에 명성황후와 고종이 왕권을 갑자기 되찾은 뒤 무턱대고 개항을 해버리는 바람에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되고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했죠.

    물론 흥선대원군의 생각보다 서구 문물이 훨씬 발전하고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나, 당시의 국가적 상황으로는 무턱대고 개항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수렴하는 일이었음을 알아야합니다.

    0 0 답글
찬반토론에 참여하기 전에 읽어주세요
  • 찬반토론은 서로간의 다름을 확인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며, 서로를 인정하고 더 나은 지향점 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게재하실시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부족하거나, 비방을 목적으로 게재하실시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 토론의 순수성을 신뢰합니다.
  • 서로간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 소통과 공감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 지식과 지혜의 조건없는 공유를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