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수레 그리스가 말하는 것

[ - 디베이팅데이 ]

전거가감(前車可鑑). 앞 수레가 넘어진 것을 보고 따라가던 수레가 경계한다는 뜻이다. 외채위기로 고꾸라진 그리스를 보면서 한국도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왔다. 보수 언론들은 ‘이때다’ 싶은지 그리스가 과잉복지와 게으른 국민성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무상급식이니 무상보육이니 해서 복지를 늘리다 보면 우리도 그리스 꼴이 난다는 준엄한 경고를 덧붙였다. 지난달 유럽연합(EU) 등의 3차 구제금융이 시작되면서 그리스 뉴스가 많이 줄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과잉복지로 망한 그리스’를 전거가감의 교훈으로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EU)통계국 등의 자료를 보면 이런 주장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리스 재정난의 시발점이 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인데, 그 직전인 2007년 이 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급여 비율은 24.8%였다. 유럽평균인 26.8%보다 낮은 수준이다. 2007년 당시 1인당 연간 사회보장 수령액도 약 4643유로로, 유로존 평균의 3분의 2에 불과했다. 그리스는 유럽에서 복지 수준이 뒤떨어진 나라였다는 얘기다. “복지 지출이 많은 게 문제였다면 스웨덴이나 덴마크가 먼저 무너졌을 것”이라는 얘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또 2013년 기준 그리스의 연간 노동시간은 2060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개 회원국 중 멕시코, 한국에 이어 3위다. 이렇게 장시간 일하는 그리스 사람에 대해 게으름을 탓하는 것은 무지 아니면 의도적 왜곡이다.

그리스

▲ 보수 진영은 ‘이때다’ 싶은지 그리스가 과잉복지와 게으른 국민성 때문에 망했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하지만 자료를 조금만 들여다 보면 이런 주장은 진실과 거리가 말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 jTBC 뉴스 갈무리

 

그리스의 진짜 문제는 복지 과잉이 아니라 복지의 설계가 잘못된 것, 그리고 뿌리 깊은 탈세와 부패였다. 그리스의 복지는 선거에서 표를 좌우할 수 있는 공무원, 법조인, 교사 등 중상류층에 혜택이 쏠린 ‘부자복지’였다. 2011년 기준 그리스의 노인빈곤율이 23%로 OECD평균(12%)의 2배였고, 아동빈곤율은 무려 41%에 달했다는 통계는 ‘잘못 설계된 복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리스에는 또 세원으로 잡히지 않는 지하경제가 GDP의 25%를 넘고, 부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도 세금 떼먹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만큼 탈세가 만연했다고 한다. 연간 탈세규모가 재정적자의 3분의 2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세금만 제대로 거뒀다면 나라살림이 파탄 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고질적인 정치인과 공직자의 부패는 조세혁신을 포함, 어떤 근본적인 개혁도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 2001년 유로존(단일화폐 유로를 쓰는 유럽연합 19개국)에 가입하면서 화폐가치가 실제보다 높게 평가돼 수출경쟁력을 잃은 것, 통화환율정책의 자율조절기능을 잃은 것도 그리스 위기의 중대한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유로존 가입과 함께 그리스에는 외국자본이 쏟아져 들어와 부동산 등 자산 거품을 키웠다. 이 거품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꺼지면서 은행부실과 재정위기로 이어졌다.

 

우리가 그리스로부터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지하경제와 탈세, 특히 부유층의 조세회피를 방치한 채로는 건전한 재정도, 복지국가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 교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그리스와 비슷한 GDP의 24.7%로 추정된다. 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경제활동이 징세되지 않는 ‘무법지대’에 있으니, ‘유리알 지갑’으로 불리는 봉급생활자 등 꼬박꼬박 세금 내는 사람들만 억울하고 재정규모를 늘리기도 어렵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로 대기업과 부동산자산가 등의 세금이 대폭 깎이는 바람에 박근혜 정부의 무상보육 등 제한적인 복지 확대마저 재정난관에 부닥쳤다. 그러니 언론은 복지를 공격하는 대신 ‘부자증세와 세정강화’를 주문하는 것이 옳다.

 

그리스가 무리하게 유로존에 가입한 뒤 수출경쟁력을 잃고 국제자본의 놀이터가 됐던 것 역시 무역과 금융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내수를 튼튼히 하지 않고 해외 수요에 목을 매는 경제, 외국 자본이 들어오면 환호하다가 급격히 빠져 나가면 국가 부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는 우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위안화 평가절하와 미국의 금리인상 움직임 등에 요동치는 국내 금융시장은 국제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에 이렇다 할 통제장치를 갖추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더욱 부각시킨다. 앞에서 고꾸라진 그리스를 보면서, 또 다른 환란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제대로 고민해야 할 때다.

 

출처 : [단비뉴스] 황종원 기자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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